Mr. Kim did such a good job?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Chapter 99 – 친척들 사이에서도 존재감이 확실한 김 대리!
“정훈아, 멀었니? 이제 가야 되는데.”
“네, 다 씻었어요.”
정훈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나왔다. 어젯밤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탓에 느지막이 집에 돌아와서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다. 그 탓에 눈꺼풀이 굉장히 무거웠지만, 일단 차례는 지내야 하니 어영부영 씻고 부모님과 집을 나섰다.
가서 차례를 지내고 친척들과 인사하고 이야기를 하며 이것저것 하다 보면 점심을 먹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식곤증이라는 잠을 잘 명분이 생기니, 그것만 생각하며 눈을 부릅뜨고 버티고 있었다.
할아버지 댁에는 어제 도착한 친척들이 이미 차례상을 차리고 있었다. 정훈은 어머니가 집에서 해 온 요리를 꺼내 같이 상을 차렸다.
어린 동생들과 5촌 조카들을 깨워 해가 막 뜨기 직전에 차례를 시작했다.
늘 그렇듯, 할아버지의 주도하에 차례는 무난하게 진행되었고, 누구 하나 실수하지 않고 잘 끝이 났다.
음복을 하며 정훈은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반갑게 인사를 했다. 옆에 앉은 고모부에게 정훈은 편하게 물었다.
“언제 오셨어요?”
“어제 자정 넘어서 겨우 도착했다. 무슨 차가 서울부터 여기 도착하기 전까지 막히나 몰라.”
“어휴, 얼마나 걸리신 거예요?”
“한 10시간 넘게 걸렸지?”
“진짜 지옥이셨겠네.”
그때, 고모가 질색을 하며 손을 저었다.
“어우, 말도 마라. 화장실 한번 가려고 휴게소 들어가는데, 차도 막히고 주차할 곳은 없고, 화장실에 줄도 늘어서서 한참 기다렸다니까.”
“하하하. 이번 설은 다른 때보다 귀성객이 많이 늘었다더라고요. 국제 정세가 불안정해서 국제 환율이 오르는 바람에, 명절에 해외로 가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오는 모양이에요.”
“그렇구나. 요즘 하도 북한이 미사일을 쏴 대니까 어수선하긴 한가 봐.”
“그러게 말이에요. 거 안 그래도 전방에 있는 군인들만 명절에도 못 쉬고 고생하죠.”
“으휴, 그러게 말이다. 아, 그나저나 올해부터 군인 월급 오른다며?”
“네. 병장이 40만 원인가, 그 정도 되는 것 같던데요?”
고모부는 자신의 아들 조기원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아들, 들었어? 군인 월급 오른대.”
“아, 그만 놀려, 좀!”
조기원은 입술을 뾰로통 내밀며 정훈을 째려봤다.
“정훈이 형까지 너무한다, 진짜.”
“하하하하. 야, 나는 군인 월급 오른다는 말밖에 안 했다고?”
“그게 놀리는 거지! 당장 다음 달에 입대하는데 좋은 말은 못 해 줄망정, 진짜 서럽다고.”
“아들아. 군대 그거 별거 아니라니까. 가서 그냥 캠프 왔다고 생각하고 며칠 밤만 새우면 금방이야. 아빠 때는 3년을 있었다니까, 3년을?”
“또, 또 그놈의 아빠 이야기. 진짜 군대 이야기만 하면 아저씨들은 전부 ‘내가 군대에 있을 땐 말이야….’라거나 ‘요즘 군대 좋아졌지.’라는 말만 하더라. 어후!”
정곡을 찌르는 조기원의 말에 고모부는 웃음이 빵 터졌다. 워낙 유쾌한 성격이라서 늘 만날 때마다 아들과 재미있게 노는 것은 물론 정훈과도 편하게 이야기를 하는 분이었다.
“정훈아, 요즘 군대 좋아졌지?”
“하하하하. 그렇죠. 요즘 뭐, 그냥 진짜 캠프 아니에요? 선임들 툭 괴롭히면 마음의 편지 쓴다면서요.”
물론 그러면 군 생활이 힘들어진다는 건 정훈과 고모부 모두 잘 알고 있었지만, 계속 조기원을 놀리는 것이었다.
“아, 근데 요즘은 북한에서 미사일 쏘면 휴가 나왔다가도 들어가야 된대요.”
“그래? 기원아. 그럴 거면 아예 휴가 나오지 말고 21개월 동안 군대에 있을까?”
“제발 이 아저씨들아, 그만해요.”
입대 D-Day를 세고 있는 기원으로서는 참 속이 터질 일이었지만, 어차피 입대하는 것은 자신이었다.
정훈은 더 이상 놀리면 울 것 같아서 이쯤 하고 다시 고모부에게 이야기를 했다.
“아, 고모부. 근데 저, 얼마 전에 군대 꿈 꿨어요.”
“야, 나는 아직도 꾼다. 재작년에도 한번 꿨을걸.”
“진짜 꿈이 완전 애매했어요. 꿈에서도 전역을 했는데, 전역하기 직전에 제도가 바뀌어서 전역을 해도 군대를 한 번 더 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진짜 깜짝 놀라 가지고, 잠에서 깨고 나서도 휴대폰으로 검색해 봤다니까요?”
“하하하하하. 그것도 웃기네.”
그때, 정훈의 어머니가 등장하며 말했다.
“뭔 놈의 남자들이 말이 이렇게 많아? 바로 성묘 가야 되니까 얼른들 먹어.”
“옙!”
***
성묘를 마치고 나서 정훈은 집에 돌아가자마자 대자로 뻗어서 잠이 들었다. 할머니 댁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 장작 보일러는 이 한겨울에 너무나도 힐링 그 자체였다.
뜨끈하다 못해 뜨거울 정도여서 두꺼운 이불을 깔고 그 위에 올라가는데, 눕자마자 노곤노곤 잠이 오는 게 아주 최고였다.
그렇게 꿀잠을 자고 나서 일어나자,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거실에서는 거하게 술판이 벌어져 있었다.
정훈의 어머니는 그가 자는 사이에, 이번에 아들이 올 때 옷과 함께 사 왔던 양주까지 집에서 들고 왔다. 할아버지 댁이 가까운 게 또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이야.
“오, 정훈이 일어났냐?”
“여기로 와라. 같이 한잔해야지!”
“이 양주, 네가 사 왔다며? 어쩐지 맛있더라, 야!”
아들이 사 온 양주에 정훈의 아버지는 어깨가 으쓱 올라가 있었다. 원래는 아버지 혼자 드시라고 사 온 것이었지만, 이렇게 아버지도 자랑스럽게 여기고 기뻐하시니, 정훈에게는 나쁠 것이 없었다.
“저 어제도 술 마시다가 왔는데….”
정훈이 살짝 빼려고 하자, 고모부가 손수 일어서서 정훈의 팔을 잡고 끌어와 앉혔다.
“에이, 내가 너만 할 때는 하루에 소주 세 병씩 먹고도 멀쩡했어!”
늘 그렇듯 ‘왕년에 내가~’라는 말과 함께 정훈은 소주를 한 잔 가득 받았다. 양주는 어른들 드셔야 하니까, 젊은 정훈은 소주를 먹어야 한다나, 뭐라나.
한 잔 시원하게 들이켜자, 고모부가 웃으며 땅콩 하나를 까서 입에 넣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때, 맞은편에 계시던 정훈의 큰아버지가 넌지시 물었다.
“정훈이도 이제 슬슬 장가갈 나이 되지 않았어?”
곧바로 큰어머니가 맞장구를 치셨다.
“그래, 요즘은 미리 준비 안 하면 나이 먹어서 가기 힘들다더라. 여자 친구는 있고?”
작년 설과 추석에는 아쉽게도 여자 친구가 없었지만, 드디어 이번에는 여자 친구가 생겼다. 정훈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완전 예쁩니다.”
“오, 사진 있니?”
“잠깐만요.”
정훈은 휴대폰으로 커피톡에 들어가 사랑의 프로필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여자들은 자신이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저장해 두기에, 정훈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진을 보여 주는 것보다 이게 더 나았다.
조금 못생겨도 친척 어른들은 예쁘다고 해 주실 테지만, 사랑의 얼굴을 보면, 정말로 예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가 건넨 휴대폰을 받아 든 어른들은 학생들처럼 고개를 쑥 내밀어 정사랑의 사진을 보았다.
“어우, 미인이네!”
“정훈이, 능력 장난 아닌데?”
“이야, 역시 정훈이야. 지금까지 결혼을 안 하고 기다린 보람이 있네! 하하하핫.”
아내 자랑은 팔불출이라는 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 친구의 미모 칭찬에 정훈은 부끄러움과 뿌듯함이 동시에 들었다.
“만난 지 얼마나 됐어?”
“어, 사귄 건 두 달 정도 됐는데….”
두 달밖에 되지 않았다면 분명히 이르다, 섣부르다, 아직 더 만나 봐야 된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한마디를 덧붙였다.
“원래 사귀기 전부터 알던 사이라서, 많이 친해요.”
“오, 그래? 기존에 알던 사람이랑 사귀면 서로 잘 아니까 더 잘 맞는다더라.”
“그래도 실제로 연인으로 만나는 거랑, 친구로 만나는 거랑은 다르니까 잘 구별해.”
“맞아, 맞아. 잘 알고 나서 결혼해야 돼. 그나저나 이 처자는 무슨 일 하는데?”
또 정훈이 자랑할 파트다.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말했다.
“아, 얘도 푸른 하늘에서 일해요. 재정부인데 올해 초에 과장 달았거든요.”
“어머, 연상이니?”
작은어머니가 놀라며 물었다. 푸른 하늘이라는 큰 기업이라는 것도 놀라운데, 과장이라는 사실에 더 놀란 것 같았다.
“아니요. 동갑이에요.”
“근데 벌써 과장이라고?”
“예.”
큰아버지는 턱을 매만지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아무리 조카여도 민감하게 들릴 수 있는 질문이었기에 신중하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정훈이 너는 대리 아니니?”
“예. 아직 대리죠.”
“그러면 조금 차이가 나지 않겠어? 원래 남자가 사회적 지위가 더 낮으면 가장의 자존심이랄까? 그런 게 조금 꺾일 수가 있거든.”
오랜 경험으로부터 나온 진심 어린 걱정이었다. 큰아버지는 홀로 사업을 하시는 외벌이라서 예외였지만,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많은 경우를 봐 왔기에 혹시나 자신의 조카가 가정에서 어깨를 펴지 못하고 다닐까 봐 걱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훈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거의 마음을 굳히고 있는 것이라서 밖에 말하고 다닐 사람들도 아니고, 다름 아닌 가족과 친척들인데 무슨 일 있겠는가?
“지금은 저도 대리긴 한데, 이번에 본사 경영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서 5월부터는 경영팀에 과장으로 진급해서 갈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듣던 어머니도 깜짝 놀라며 말했다. 원래 경영팀으로 가고 나서 말하려고 아껴 뒀던 터라, 아직 가족들한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뭐, 말 나온 김에 해 버리자. 스카우트받았는데 나중에 가서 안 된다고 할 리는 없을 테니까.’
가족들의 시선이 정훈에게 집중되었다.
“경영팀에 간다고?”
“네. 아마 5월쯤에 갈 것 같아요. 지금 하는 일이랑 많이 다르긴 해도, 월급도 많이 올려 주고 직급도 올려 주니까 괜찮을 것 같아서요.”
“어이고, 잘했다.”
“그래, 정훈아. 남자는 큰 곳으로 가야 되는 거야.”
“푸른 하늘 경영팀이면, 페이도 엄청 셀 텐데?”
그 말의 뒤를 이어 정훈에 대한 축하와 함께 회사 경험을 오래 한 친척들로부터 많은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꼰대스러운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생각해 주고 하는 말이라서 정훈은 하나도 버리지 않고 귀담아들었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마시다가 슬쩍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나 친척 형, 동생들도 이미 이야기를 들었는지, 정사랑의 얼굴을 궁금해했다.
얼굴을 보여 준 순간,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어린 동생들까지 감탄사를 뱉었다.
“정훈이 형. 형 여자 친구 연예인이야?”라는 소리까지 들었을 때는 당장이라도 녹음해서 정사랑에게 전송해 주고 싶었다.
그렇게 젊은 사촌들 사이에서는 예쁜 여자 친구를 가진 친척 형으로, 친척 어른들 사이에서는 푸른 하늘 경영팀의 과장으로 스카우트받은 프로페셔널한 직장인으로 인정을 받으며 설날에도 존재감을 뽐내며 나흘간의 즐거운 명절을 보냈다.
***
“김정훈 대리님?”
“네?”
“사장님께서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예.”
사장실 앞에 선 정훈은 비서의 안내에 마지막으로 심호흡을 하며 가슴을 안정시켰다.
고민하느라 미루고 외면했던 답변을 이제는 말할 시간이었다.
장 부장에게는 미안하지만, 결국 경영팀으로 가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사장이 말한 기한보다는 빨리 왔지만, 그래도 맡은 일은 끝까지 할 수 있도록 날짜를 조금 미뤄 주도록 부탁할 생각이었다.
이미 가족들한테 말한 게 있어서 되돌릴 수도 없고, 남자라면 이렇게 도전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후회는 없어.’
정훈은 긴장한 기색을 지우며 사장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