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Kim did such a good job?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Chapter 107 – 아이와 잘 놀아 주는 김 대리!
“아휴.”
정훈은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쉬는 백진우 차장을 향해 다가갔다.
“차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별일 아니야.”
그러나 백 차장의 표정은 심각하게 어두웠다. 별일이 아닌 게 아닌 모양이었다.
“제가 도와 드릴 수 있는 거면 말씀하세요. 어차피 저 이제 다음 주면 부서 이동이라서 크게 일도 없어요.”
“하아. 그냥 개인적인 거라서….”
백 차장은 고민하다가, 정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신뢰감 넘치는 그의 모습에 백 차장은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번에 랜디북스에 내놓은 우리 작품들의 중국 시장 진출 건 때문에 미팅이 생겨서 내일부터 모레까지 부산으로 출장 가야 되거든.”
정훈도 알고 있는 건이었다. 중국 시장 담당자들 일정에 맞춰서 주말에 진행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백 차장이 가는 건 모르고 있었다.
“사실은, 내일 우리 딸이랑 같이 놀이공원 가기로 했거든. 그런데 모레 도착해서 오면 늦어 버릴 것 같더라고. 보상으로 이틀 휴가를 주긴 하는데, 그때는 우리 딸이 학교 가야 되니까 갈 수도 없고….”
안 그래도 홀로 자식들을 키우는 백 차장이었기에 정훈은 도와주고만 싶었다. 잠깐 고민하는 사이, 그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차장님, 그러면 제가 대신 가 드릴까요?”
“자네가?”
백 차장은 아주 잠깐 반색했지만,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런 자리에 어떻게 다른 사람을 보내나?”
당연히 보낼 수 없다. 일개 대리와 부서의 차장을 맡고 있는 자는 일단 미팅에서부터 파워가 다르니까.
물론 이 점은 정훈도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걸 생각해서 말한 게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 차장님 따님이요. 제가 놀이공원 데리고 가서 같이 놀아 주는 건 어떨까요?”
“아… 고맙긴 한데, 애가 낯을 가려서 괜찮을지 모르겠어.”
“정 안 되면, 제가 여자 친구랑 같이 가도 되고요. 제 여자 친구가 아이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아마 이번에 놀이공원 못 가서 상처받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않을까요?”
백 차장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딸이 한 말도 있으니, 이번에도 약속을 깨면 분명 아빠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애기 엄마가 죽은 지 반년도 안 된 아이한테는 정말 실망감이 클 텐데….’
그러나 이제 일주일만 지나면 이 부서를 떠나는 정훈에게 이런 개인적인 일을 맡겨도 될까 고민이 되었다.
유심히 백 차장을 살피던 정훈은 그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아채고 먼저 말했다.
“부담 갖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백 차장님께 도움 받았던 일도 많은데, 해 드린 게 많이 없어서 나가기 전에 드리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하아….”
백 차장은 정말 면목이 없지만, 아이를 위해서 뭐든 할 수 있는 부모로서는 이렇게라도 부탁을 해야 될 것 같았다.
“정말 미안하네. 내가 안면 몰수하고 한 번만 부탁하겠네. 놀고 있으면 미팅 끝나자마자 내가 오후에 바로 가도 되겠나?”
“예, 그러면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마워.”
백 차장은 정훈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사실, 백 차장의 아내가 교통사고로 숨졌을 때, 정훈이 혜리와 헤어진 직후여서 제대로 그를 위로하지 못했었다.
장례식장에 가서 회사원들과 잠깐 얼굴만 비치고 온 게 전부여서 마음에 걸렸었는데, 출판부를 떠나기 전에 이렇게라도 백 차장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면 일요일에 뵙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자세한 일정은 이따가 퇴근 전에 알려 주세요.”
“그래, 알겠어. 정말 고마워.”
정훈은 그에게 목례를 하고 복도로 나와, 바로 사랑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평소보다 사랑의 목소리에 활기가 부족했다. 정훈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어디 아파?”
-어, 속이 조금 안 좋네. 어제 뭘 잘못 먹었는지, 새벽에 토를 좀 했거든.
“그러면 미리 연락하지. 죽이라도 사 갈 텐데.”
-안 그래도 후배가 죽 사 와서 먹고 있었어.
“여자지?”
-남잔데?
“헐.”
-하하. 농담이야. 자기도 아는 우리 그 텃밭 담당해 준 사원 있잖아.
“아, 그분이구나. 알지. 농담할 기력이 있는 거 보니까 이젠 좀 괜찮나 보네?”
-응. 다 나았는데 혹시나 해서 죽 먹는 거야. 걱정할 거 없어.
“다행이다. 그런데 말이야….”
원래 이번 주 토요일에 둘은 정훈의 집에서 만나 오붓하게 실내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일요일은 각자 쉬려고 했었기에 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터였지만, 조심스럽게 백 차장 건에 대해 설명하고 괜찮은지 물었다.
그녀가 불편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혼자 갈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몸이 좋지 않아서 걱정도 되었고. 그러나 정사랑은 시원하게 수락했다.
-나도 좋지. 애기가 초등학생이라며? 더 재미있고 좋겠네. 내일 자기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같이 가면 되겠다.
정훈은 자고 간다는 말에 씨익 미소가 피어났다.
“그래, 고마워. 근데 약 같은 거 안 사다 줘도 되겠어?”
-응. 거의 다 나았어.
“알았어.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해.”
-어, 들어가.
“응.”
***
“오늘 오빠, 언니랑 조금만 놀다 보면 아빠 오실 테니까, 그때까지만 같이 놀까?”
백 차장의 딸, 하영이는 낯을 가리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셋이서 사랑의 차에 타고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정훈은 백 차장이 건넨 카드로 자유이용권을 구매했다.
원래 백 차장이 대신해서 값을 치를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지만, 기어코 정훈에게 자신의 카드를 주었던 걸 생각하면, 오히려 사용하지 않는 게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안에서 사 먹거나 따로 쓰는 건 내 카드 써야지.’
안에 들어가자, 정말 오랜만에 오는 놀이공원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직 가정의 달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놀이공원은 가족 단위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둘은 청룡열차와 귀신의 집 등 스펙터클한 경험을 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초등학교 2학년 하영이에 맞춰서 회전목마, 범퍼카 등의 놀이기구를 즐겼다.
그중에서 제일 긴장감 넘쳤던 건 바이킹이었다. 자이로드롭이나 후룹라이드 등과 비교하면 별거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각도가 크게 기울어져서 놀랐다.
하영이가 무서워할까 봐 걱정했지만, 아이는 정훈과 사랑의 손을 꼭 잡고 즐기면서 전혀 겁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놀이기구를 타다가, 출출해진 탓에 정훈은 매대를 가리키며 하영이에게 물었다.
“하영아, 츄러스 먹을래?”
“아니요.”
거절하지만, 뭔가 다른 원하는 게 있는 눈치였다. 정훈은 주변을 주욱 둘러보다가 하영이 옆에 쪼그려 앉아 물었다.
“먹고 싶은 거 있어?”
“저거 먹어도 돼요?”
하영이는 저쪽에 있는 솜사탕을 가리켰다. 역시 어린아이다운 선택이었다.
“당연하지!”
정훈은 하영이의 얼굴만 한 솜사탕 하나를 사서 손에 쥐여 주었다.
정사랑은 하영이와 솜사탕을 나눠 먹으며 마치 몇 년 동안 봐 온 언니, 동생처럼 친근하게 붙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랑이 데리고 나온 건 신의 한 수였어.’
흐뭇하게 둘을 지켜보았다. 사랑은 하영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정훈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물었다.
“하영이네 오빠는 고등학생이라며?”
“네. 지금 기숙사 들어가서 공부하고 있어요. 그래서 한 달에 두 번밖에 집에 안 와요.”
“그렇구나. 많이 보고 싶겠다.”
둘이 귀여운 대화를 나누는 사이, 햇빛이 비치며 슬슬 정훈도 목이 마르기 시작했다. 배도 출출해서 뭔가 먹고 싶었다.
“사랑아, 카페 갈래?”
“그게 낫겠다. 하영아, 언니랑 빵 먹으러 갈까?”
“네!”
셋은 옹기종기 붙어서 카페로 향했다. 정훈은 시원한 커피 두 잔과 아이를 위한 딸기 주스 그리고 출출함을 때우기 위한 몇 가지 종류의 빵을 사서 테이블에 앉았다.
하영의 옆에는 사랑이, 그 맞은편에는 정훈이 앉아서 화목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반갑게 다가왔다.
“어이고, 귀여워. 몇 살이니?”
“아홉 살이요!”
“어우, 그래? 초등학생이네!”
“네. 봉이천초등학교 다녀요.”
“그래? 아주 똘똘하네.”
그녀는 씩씩하게 대답하는 하영이가 기특한지,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훈은 자신의 자식이 귀엽다는 칭찬을 들은 것처럼 뿌듯해졌다. 흐뭇하게 이 광경을 보며 빵을 포크로 찍어 입에 넣었다.
아이와 이야기하던 아주머니는 정훈과 사랑을 쭉 훑어보다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애기 엄마, 아빠가 엄청 젊네. 일찍 결혼했나 봐?”
“콜록!”
정훈은 사레가 들려서 기침을 했고, 정사랑은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져 양손을 저었다.
“어우, 아니에요. 저희는 그냥 아는 사람이에요.”
“어머, 그랬어? 미안해. 내가 보기엔 너무 다정해서 가족인 줄 알았네. 그나저나 둘이 부부는 맞지?”
“아니요, 아직은….”
‘아직은’이라는 단어에 이번엔 정훈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직이라면 곧…이라는 뜻 아니야?’
안 그래도 오늘 하영이에게 살갑게 잘 대해 주는 모습을 보며 사랑과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면 정말 알콩달콩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왠지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아이고, 내가 실례했네. 미안해. 그러면 꼬마는 맛있게 먹어.”
아주머니는 사과를 하며 후다닥 자신의 일행에 섞여 카페를 나섰다.
가운데에 있던 하영이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정훈과 사랑은 괜히 민망해져서 말수가 확 줄어들었다.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정훈과 사랑을 번갈아 보더니 정말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언니랑 오빠 사귀어요?”
순수한 어린아이의 질문은 두 남녀에게 결국 웃음을 되찾아 주었다.
“하하하. 그래.”
“맞아. 근데 하영아, 언니 예쁘지?”
“네. 완전 예뻐요.”
“왜 그래, 갑자기 부끄럽게.”
사랑은 정훈을 째려보았지만, 싫은 눈치가 아니었다. 하영이가 있음에도 둘은 여전히 깨가 넘쳐흘렀다.
카페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던 정훈은 백 차장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하영이에게 물었다.
“하영아, 아빠 오셨다는데 같이 점심 먹으러 갈래?”
“아빠 왔어요?”
하영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반갑게 눈을 반짝였다.
“응. 아빠가 식당에서 기다리고 계시겠대. 얼른 갈까?”
“네!”
그렇게 셋은 부산에서 급하게 비행기를 타고 돌아온 백 차장과 3시가 되어서야 만날 수 있었다.
“하영아!”
“아빠!”
식당에서 하영이가 백 차장을 발견하고 와다다 달려갈 때, 둘의 그 기쁜 표정을 봤을 때는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흐뭇했다.
그렇게 넷은 행복하게 늦은 점심을 먹고 나왔다. 이제는 부녀가 놀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했다. 정훈은 바로 백 차장의 카드를 돌려줬다.
“하영이가 밝고 참 귀엽네요.”
“고마워. 김 대리, 진짜 고마워. 제수씨도 정말 고마워요.”
“아니에요. 얼른 가 보셔요.”
“그래. 김 대리랑 제수씨도 재미있게 놀아. 다시 한번 고마워.”
백 차장은 하영이를 보며 말했다.
“하영이. 오빠, 언니한테 인사해야지.”
“오빠, 언니, 고맙습니다.”
“그래, 하영아. 언니도 즐거웠어. 재밌게 놀아!”
“안녕. 또 보자, 하영아!”
백 차장 부녀와 헤어진 후에도 정훈과 사랑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오랜만에 놀이공원에 온 김에 많은 놀이기구를 타며 행복한 데이트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