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Kim did such a good job? RAW novel - Chapter 93
93화 Chapter 59 – 까칠한 김 대리!
“예, 작가님.”
-어머. 대리님. 늦은 시간에 미안해요. 잠깐 통화 괜찮죠?
늦은 시간에 미안하면 전화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사표를 써야 한다.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다른 게 아니고 이번에 신작 들어가는 게 느낌이 괜찮아서 종이책으로도 내 보고 싶은데, 어떨까 해서.
“어… 저번에 말씀하신 대로 편집 부분은 통째로 김나희 씨한테 일임한지라….”
-그래서 나희 씨한테 연락을 했는데 퇴근 시간 이후라 그런지 답장이 없더라고. 근데 내가 마음이 워낙 급해서 말이지. 미안해.
“아니, 괜찮습니다. 그러면 제가 나희 씨랑 전화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좀 알려 줘요.
“알겠습니다. 들어가세요.”
-쉬어요~
쉬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휴우.”
정훈은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김나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세 번 정도 울리자, 바로 나희가 전화를 받았다.
-네. 대리님.
“나희 씨, 잠깐 통화되지?”
-예. 무슨 일 있나요?
“천수희 작가님한테 연락이 와서.”
-천수희 작가님한테요?
“어. 나희 씨한테 연락을 했는데 답장이 안 온다고 나한테 연락을 하셨네.”
정훈의 목소리에는 까칠함이 가득했다.
-아… 제가 근무시간 끝나고는 업무 관련된 커피톡은 확인을 안 해서….
“나도 근무시간 끝나고 업무 때문에 연락하는 거 싫어. 그런데 항상 부장님도 그러시고, 팀장님도 편집자라는 직업은 늘 작가랑 소통해야 된다고 말했잖아. 나도 몇 번이고 말했고. 하아…. 늦었으니까 긴말 안 할게. 얼른 천수희 작가 커피톡 확인해서 답장 보내.”
정훈이 단호하게 말하자, 나희도 금세 기가 죽은 목소리를 냈다.
-예.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해.”
-알겠습니다. 죄송해요.
혜리의 말에 정훈은 대답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럴듯한 이유를 말했으면 모를까, 기껏 하는 말이 근무시간이 끝나서 확인을 안 했다는 거라니.
근무시간 끝나고 업무에 관한 연락을 받는 걸 좋아할 사원이 어디 있겠는가? 좋아하면 그게 이상한 거지. 당연히 정훈도 업무 시간 끝나고 연락하는 것보다는 업무 시간에 연락해 주는 게 좋다.
그러나 본업이 있어 밤에만 글을 쓰는 작가, 낮에는 글이 잘 써지지 않아서 밤에 글을 쓰다가 막히면 연락하는 작가 등 다양한 케이스가 있기에 이제는 자정만 넘지 않으면 그러려니 한다.
더 이상 작가들과의 연락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편집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상, 어쩔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전화를 끊고 답답한 마음에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려고 뒤적거렸다.
‘아, 담배 끊었지.’
담배 끊은 지 몇 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버릇은 남아 있었다. 전화를 끊은 지 5분도 되지 않았는데 나희에게 너무 독하게 말하지 않았는지 걱정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낸 게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건 내가 꼰대가 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인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원하든, 원치 않든 다른 직원보다 상사의 위치에 있을 때 지적할 건 지적해 줘야 하니까.
정훈은 씁쓸함을 안고 밖을 보며 마음을 다스렸다.
바로 들어가면 왠지 모르게 나희 때문에 올라왔던 감정이 혜리에게 돌아갈 것 같아서 최대한 가라앉히고 가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약 20분이 더 지나고 나서야 정훈은 혜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혜리는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머리에 수건을 싸매고 있었다. 그사이에 씻고 나온 모양이다.
“무슨 일이야?”
“별거 아니야.”
“그러면 다행이고.”
“많이 기다렸지?”
“아니야. 얼른 씻고 나와.”
“조금만 기다려.”
“칫솔 거기 꺼내 놓은 거 써. 앞으로 계속 그거 쓰면 돼.”
“알았어.”
정훈은 휴대폰을 침대 위에 올려놓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혜리는 침대에 누워 리모컨을 들고 볼만한 프로그램이 있나 채널을 돌렸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라 특별히 눈길을 끄는 방송은 없었다.
우우우웅.
그때, 갑자기 정훈의 휴대폰이 울렸다. 원래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기에 남자 친구의 휴대폰을 보는 것에 별 관심이 없던 혜리였지만, 왠지 모르게 조금 전에 천수희 작가와 길게 통화하고 왔던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혜리는 슬쩍 고개를 들어 샤워실을 바라보았다. 쏴아아 하는 소리는 정훈이 여전히 샤워 중이고 그의 휴대폰이 무방비 상태라는 것을 대신해서 말해 주고 있었다.
그녀는 슬금슬금 손을 뻗어 휴대폰을 들었다. 평소 말하던 것처럼 역시 정훈은 비밀번호나 패턴을 등록해 두지 않았다.
휴대폰의 잠금을 풀자, 곧바로 통화 목록이 떠올랐다.
[수신 : 천수희 작가 – 11시 7분] [발신 : 김나희 – 11시 9분]‘어?’
정훈이 들어온 시간은 11시 30분이 훨씬 넘어서였다. 천수희 작가와의 용건은 금방 끝났다는 거고, 김나희와 전화를 한참이나 했다는 거 아니겠는가?
‘뭐지?’
뭔가 이상한 기분이 그녀를 감쌌다. 그녀의 시선은 제일 위에 있는 전화 목록으로 옮겨졌다.
[부재중 전화 : 김나희 – 11시 37분]제일 최근에 있는 전화 목록이 김나희로부터 걸려 온 부재중 전화다. 아무래도 방금 전에 울렸던 진동의 장본인 같았다.
‘전화 걸자마자 취소한 건가?’
자신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깜빡하고 전화했다가 실수를 깨닫고 전화를 끊은 건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나희와 얼마나 통화를 했는지 확인하려고 통화 시간을 보려고 하는 순간, 샤워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혜리는 깜짝 놀라 휴대폰을 내려 두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침대에 누웠다.
“다 씻었어?”
“응.”
정훈은 빙그레 웃으면서 혜리에게 다가왔다. 그녀를 와앙 안으려고 했지만, 여전히 혜리의 기분은 묘했다.
“아까 진동 울리던데.”
“그래?”
침대 위로 반쯤 올라왔던 정훈은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워 휴대폰을 들었다.
“누구야?”
혜리가 고개를 쏘옥 내밀며 물었다. 뭐라고 대답할지 기대되면서 걱정되기도 했다.
“별거 아니야.”
휴대폰을 닫고 내려 두는 순간, 다시 진동이 울렸다. 전화나 메시지와 다른 커피톡 특유의 진동이다.
정훈은 다시 휴대폰을 들고 확인했다.
[김나희 : 죄송해요. 제가 아직 신입이라 서툴러서….]장문의 사과 글이었다. 정훈이 사과받을 만한 일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편집자로서 자신을 다시 생각하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는 뜻의 메시지였다.
‘내일 가서 따로 교육하거나 혼내지는 않아도 되겠네.’
정훈이 휴대폰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자, 혜리는 자동으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왠지 모르게 나희일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누군데?”
“아니, 그냥.”
정훈은 다시 휴대폰을 내려 두고 혜리에게 다가가 입을 맞췄다. 그리고 그의 손길이 혜리의 옷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그녀는 정훈의 손을 밀어냈다.
“나 피곤해. 내일 일찍 출근도 해야 되고.”
“아, 그래?”
멋쩍어진 정훈은 어색하게 혜리의 옆에 누웠다.
혜리는 돌아누워서 입술을 빼죽 내밀었지만, 정훈은 민망함에 천장만 쳐다보느라 그녀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잘 자.”
“어, 너도 잘 자.”
슬쩍 혜리를 안고 자려고 했지만, 왠지 모르게 차가워진 채 돌아누워 있다는 사실에 정훈은 차마 손을 뻗지 못하고 차렷 자세로 누워 잠이 들었다.
***
“그게 뭐예요?”
“이게 파리지옥이라고 곤충들 잡아먹는 건데, 회사에 벌레나 파리 같은 곤충 있으면 잘 잡아먹을 수 있을 것 같더라고. 그래서 하나 사 왔어. 옆에 있는 이거는 끈끈이주걱. 이것도 마찬가지로 곤충들 잡아먹는 거야.”
“와아. 신기하다.”
안정수 사원과 진기용 사원이 최 대리의 근처에 달라붙어 화분에 담긴 식물을 구경하고 있었다. 최 대리는 현재의 광경이 뿌듯해 콧대가 한껏 올라가 있었다.
그러나 김나희와 이은혜는 멀리서 눈치만 보며 외면하고 있었다.
“조금 징그러운데.”
“그러게요.”
차마 상사라서 뭐라 말도 못 하고 그저 멀리서 대화 나누는 게 고작이었다.
잠시 후, 정훈이 조용히 사무실로 들어오자, 사원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 좋은 아침.”
그러나 활기찬 인사에도 불구하고 정훈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는 잘 모르고 있지만, 어제 잠들기 전부터 혜리에게 이상하게 거리감이 느껴진 탓에 예민해졌고, 까칠해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나희가 눈치를 보며 인사를 했다. 정훈은 대충 인사를 받고 자리에 앉았다. 나희가 귀찮은 게 아니라, 혜리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그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했던 탓이었다.
나희는 어제 정훈에게 보낸 장문의 메시지에 답장을 받지 못해 혹시나 자신 때문이 아닐까, 혼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녀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상쾌한 아침!”
사무실 문을 힘껏 열며 박 과장이 밝게 인사하며 들어왔다. 그는 사무실에서 제일 먼저 자리에 앉으려던 정훈을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김 대리, 요즘 헬스장에서 잘 안 보이네.”
“아, 이것저것 하느라 좀 바빠서요.”
“그래도 운동은 빼먹으면 안 되지!”
“하하… 예.”
누구 때문에 운동을 안 가는 건데. 역시나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 듯, 친절하게 바뀐 것만 같던 박 과장은 정훈의 앞을 지나가며 그를 약 올리듯 말했다.
“어우, 요즘 헬스 하니까 몸이 막 울끈불끈해지는 것 같아.”
박 과장은 팔에 힘을 주며 알통을 보여 주려고 노력했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다부진 몸은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박 과장 때문에 한동안 헬스도 가지 못한 점이 생각나 짜증이 확 솟아올랐다.
그 원흉은 최 대리라고 해도 토를 달 사람은 없었다. 최 대리가 정훈이 헬스를 다닌다고 말하지만 않았어도 평화로운 헬스장에 박 과장이 침입하지 않았을 테니까.
정훈은 괜히 최 대리를 향해 심술을 부렸다.
“아이, 최 대리님. 그런 걸 가지고 오시면 어떡해요?”
“어?”
“여자 작가님들 오셔서 보시면 기겁하시겠네. 그리고 요즘 이렇게 에어컨 빵빵하게 트는데 무슨 벌레가 나오겠어요.”
“그런가?”
금세 기가 죽은 최 대리는 시무룩해져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기를 죽이려고 한 행동은 아니었는데 본의 아니게 짜증을 내 버렸다. 정훈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눈치 없이 박 과장이 다가와 정훈에게 말했다.
“김 대리. 오늘은 운동 같이 하러 가야지. 내가 그 데드리프트를 하고 있는데 정확한 자세인지 아닌지 좀 애매해서 말이야.”
“그건 트레이너분들한테 물어보시면 될 것 같은데요.”
“어?”
예상치 못한 정훈의 태도에 박 과장이 오히려 더 당황했다.
그가 뭐라고 하기 전에 때를 맞춰 백 차장과 조 팀장이 함께 출근했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이에요.”
상사의 등장에 박 과장은 순순히 그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원래 사람이 평소와 다를 때는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건 연륜으로 깨달아 알고 있었다.
***
“대리님. 저녁에 한잔하실래요?”
“야, 너는 머릿속에 술밖에 없냐? 적당히 마셔, 인마.”
“죄송합니다.”
이현우 사원은 정훈의 기분이 영 나빠 보여서 휴게실로 가는 타이밍에 맞춰 따라왔다. 기분을 풀어 주려고 한잔하자고 했지만, 까칠한 김 대리에게 괜히 봉변을 당했다.
바로 자리로 돌아가려다가 그래도 한 번만 더 물어보기로 했다.
“대리님. 그러면 당구 한 게임 어떠세요?”
“당구?”
오늘 하루 종일 다른 사원에게 눈길도 주지 않던 정훈이 이현우 사원과 눈을 마주쳤다. 몇 달 사이에 이현우 사원도 어느새 프로 직장인이 되어 그의 상사인 정훈이 좋아하는 스포츠가 무엇인지 이미 꿰고 있었다.
정훈은 무관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현우를 향해 고개가 돌아갔다는 건 이미 당구라는 단어에 반응했다는 걸 뜻하고 있었다.
“그러면 둘이 끝나고 당구 한 게임이나 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