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Kim did such a good job? RAW novel - Chapter 94
94화 Chapter 60 – 당구를 잘 치는 김 대리!
“당구 좋지!”
어느새 들어온 박 과장이 이야기를 듣고 끼어들었다.
‘하아.’
이현우 사원과 정훈은 동시에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지만, 싫은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단지 서로 눈을 마주 보면서 타이밍이란 야속한 것이라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오늘 끝나고 하는 거지? 당구 하면 이 박상현이 빠질 수 없지.”
박 과장은 질펀한 엉덩이를 쭉 뒤로 빼며 당구 큐대를 치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정훈은 박 과장이 끼는 건 영 좋지 않아서 발을 빼려 했다.
“아, 저는 오늘 조금 피곤해서 먼저 들어가 보려고 했거든요.”
그의 말에 이현우 사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정훈을 바라보았다. ‘야속하게 저만 전쟁터에 버려두고 가시는 겁니까?!’라고 외치는 듯했지만, 자신이 살아야 전우도 사는 법. 정훈은 현우의 시선을 외면했다.
“에이, 김 대리가 빠지면 어떡해? 같이 치기로 했으면 쳐야지.”
우우우웅.
그때 현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불법 스포츠 도박을 광고하는 메시지였지만, 현우도 번뜩이는 재치로 빠져나갈 대책이 떠올랐다.
“아! 저도 선약이 있었는데 깜빡했네요. 친구한테 지금 연락이 왔는데 오늘 당구는 힘들 것 같은….”
“무슨 이야기 하고 있나?”
현우가 발을 빼려고 할 때, 온화한 표정으로 장 부장이 들어왔다.
“뭘 그렇게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었어?”
박 과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웃으며 그의 곁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오늘 끝나고 당구 한 게임 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장 부장님도 당구 좋아하시죠?”
“엄청 좋아하지! 3명이서 치는 건가?”
“예! 혹시 부장님은 오늘 저녁에 선약이 있으신 겁니까?”
“없지! 당구 칠 때 홀수면 영 안 맞잖아. 자리 하나 남나?”
빠져나갈 수가 없다. 정훈과 이현우는 다시 한번 눈빛을 교환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으니 점수나 따자.’
‘예, 선배님!’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훈은 박 과장이 대답하기 전에 먼저 장 부장의 옆으로 다가갔다.
“남는 게 아니라 부족하죠! 부족한 자리에 어떤 분을 모셔야 하나 고민했는데 당구계의 명사수 부장님이 이렇게 딱 혜성같이 등장해 주셨네요. 같이 하실 거죠?”
장 부장은 흡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턱을 매만졌다.
“아, 그래? 그러면 내가 빠지면 게임이 원활하게 진행이 안 되는 거네?”
“예. 부장님이 꼭 와 주셔야 합니다.”
정훈은 귀신같이 빠르게 대답하며 박 과장이 치고 들어올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오늘 그러면 끝나고 당구 한 게임 치자고!”
“예!”
어느새 다가온 이현우 사원이 제일 우렁차게 대답했다.
앞으로 당구 헬파티라고 불릴 이 4명의 조합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
6시 땡 치자마자 장 부장이 부장실 문을 열며 나왔다.
“가지!”
아무리 장 부장이어도 조 팀장의 눈치에 정훈은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그 이유를 눈치챈 장 부장이 온화하게 웃으며 조 팀장에게 설명했다.
“아, 조 팀장. 우리 당구 한 게임 치려고 하는데 먼저 가 봐도 되지? 다들 일 남은 거 없잖아.”
“예. 그러시죠.”
조 팀장이 일어나며 가라는 손짓을 하자, 정훈을 포함한 당구 헬파티 인원이 일어났다.
“먼저 가 보겠습니다.”
“고생하세요.”
그렇게 3명은 조 팀장이 퇴근하기도 전에 장 부장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이게 바로 부장 파워!
당구 칠 생각에 설렜는지, 박 과장은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식사를 하고 당구를 치러 갈까요? 아니면 당구를 한 게임 치고 저녁을 먹을까요?”
“예끼, 박 과장. 자네 당구 안 쳐 봤나?”
“예?”
장 부장이 끌끌 혀를 차며 손가락질을 했다.
“박 과장이 뭘 모르는구먼. 당구 칠 때는 뭐니 뭐니 해도 자장면이지. 가서 자장면에 탕수육 먹고 진 팀이 내기로 하자고.”
“아, 제가 그걸 깜빡하고 있었네요. 역시 당구에는 자장면이죠!”
박 과장은 순식간에 태세 변환을 했다. 역시 박 과장도 프로 직장인이다.
“짬뽕은 안 되는 거 알지? 오로지 자장면이야.”
“물론이죠! 여기 회사 근처에 연경이라는 중국집이 그렇게 자장면을 잘합니다. 거기로 하시죠.”
“하하핫. 그래!”
넷은 바로 퇴근하기 쉽도록 역 근처에 있는 당구장에 들어갔다. 회사 근처답게 내부는 정장 차림의 사내들로 가득했다.
들어가자마자 벽면에는 당구 10계명이 쓰여 있었다. 대학교를 다닐 때, 공강 시간에 학교 근처에 즐겨 갔던 당구장에 있던 내용과 같은 것이었다.
1. 가급적 후루꾸를 쳐서 상대방의 기를 죽인다.
2. 수시로 말 겐세이를 해서 상대방의 정신을 흩뜨린다.
3. 후루꾸는 필히 장타로 연결한다.
4. 어려운 공은 긴 인타발로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린다.
.
.
9. 이긴다고 생각하는 게임은 차를 주문한다.
10. 큰 게임에 승리한 후 동전 계산은 보조한다.
일본어 잔재가 살아 숨 쉬는 10계명이었지만, 이걸 또 한국어로 고치면 당구장 특유의 분위기가 살지 않는다.
오랜만에 보는 당구장의 향기에 정훈은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공을 챙기는 건 막내인 이현우 사원의 몫이다.
정훈은 당구대 근처에 있는 큐대를 고르다 벽에 붙어 있는 반가운 문구도 보았다.
[300이하 맛세이 금지]당구장에서는 표준어를 찾는 게 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자, 팀 짜야지.”
장 부장의 말에 박 과장이 실실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면 팀은 상사 vs 부하 직원으로 할까요?”
“안 돼! 팀도 정정당당하게 짜야지. 자, 손 모아.”
장 부장은 부하 직원들이 듣기에 당황스러울 만한 말을 외쳤다.
“뒤집어라 엎어라!”
불혹을 훨씬 넘어 지천명에 다가가고 있는 부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깜찍하게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박 과장과 이현우 사원은 반응해서 손을 뒤집어 손바닥이 위로 가도록 했다. 반응하지 못한 정훈만이 손등이 천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 김 대리랑 팀이구먼!”
얼떨결에 정훈은 장 부장과 한 팀이 되었고, 박 과장과 이현우 사원이 한 팀이 되었다.
“부장님은 얼마나 치십니까?”
“잘 치지.”
“그러면 300점으로 놓고 시작할까요?”
“그래. 진 팀이 자장면이랑 게임비 계산하는 거야.”
“예.”
“현우 씨. 일단 시키고 게임 하자고. 저녁 시간이라서 오래 걸리니까 미리 시켜 둬야 해.”
“알겠습니다.”
게임 시작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이현우는 간짜장 4개와 탕수육 소짜리 하나를 시켰다.
“자, 몸 다 푸셨으면 시작합니다.”
이현우 사원이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장 부장과 박 과장이 각각 당구대의 모서리에서 2개의 공을 굴렸다. 4개의 공이 부딪쳐 경쾌한 소리를 내며 게임이 시작되었다.
장 부장이 먼저 큐대를 잡고 하얀 공을 치기 위해 허리를 숙여 자세를 잡았다.
정훈은 여유롭게 미소를 띠며 지켜보았다.
딱!
장 부장이 친 하얀 공이 빨간 공 하나에만 부딪치고 아쉽게 다른 빨간 공 하나를 비껴 나갔다.
“아이, 아깝네.”
잘 친다고는 했지만 썩 잘하는 편이 아니기에 사구 당구를 골랐지만, 오랜만에 하는 당구였기에 영 잘되지 않았다.
다음 선수는 박 과장.
박 과장은 초크로 큐대의 끝을 슥슥 문지르다가 당구대의 끝에 초크를 내려 두었다. 그러고는 길을 찾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이리저리 살폈지만, 장 부장이 아슬아슬하게 공을 빨간 공 옆에 뒀기에 치기가 상당히 애매했다.
“과장님, 이 방향에서 이렇게 치면 될 것 같은데요?”
“오, 그러네.”
이현우 사원의 조언에 못 보던 길을 발견하고 박 과장은 활짝 웃으며 그곳으로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박 과장이 큐대를 두어 번 스냅을 주며 치려고 힘을 주는 순간!
“크흠!”
장 부장이 헛기침을 하며 겐세이 아니, 견제를 하자 박 과장이 놀라며 삐끗해 버렸다. 공은 그대로 굴러가며 홀로 벽에 부딪치고 멈춰 섰다.
차마 장 부장이기에 방해 공작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박 과장은 아쉬움에 부들부들 떨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음은 저네요.”
정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큐대를 잡았다. 대충 간만 본다는 생각으로 큐대를 잡고 손목에 스냅을 주었다.
그리고 힘을 주려는 순간, 이번엔 박 과장이 팔을 쭉 늘어뜨리며 기지개를 켰다.
“으허어어!”
방해에도 불구하고 정훈은 일부러 한 템포 늦게 공을 치며 안정감 있게 빨간 공 2개를 맞혔다.
“오, 김 대리 나이스!”
장 부장이 한껏 들뜬 미소로 환호했다. 박 과장은 자신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점수를 낸 정훈이 못마땅했지만, 그가 장 부장의 팀이기에 티를 내지는 못했다.
‘나 아직 안 죽었네.’
정훈은 예전의 감각이 아직 손에 남아 있다는 걸 느끼고는 두 번째 구는 일부러 실수한 척하며 아쉽게 빨간 공 하나만을 쳤다.
다음은 이현우 사원.
이현우 사원도 정훈과 마찬가지로 10점을 내고 두 번째는 점수를 내지 못했다.
한 바퀴 돌아본 결과, 정훈의 실력이 압도적이었다. 삼구를 쳐 본 적이 없기에 사구 당구였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이 정도면 무난하지.’
너무 압도적이면 게임이 재미가 없어지기에 정훈은 일부러 박 과장 팀에게 10점, 20점 정도의 리드를 내주며 천천히 따라갔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나머지 3명의 심장은 쫄깃쫄깃하고 경기는 흥미진진하게 느껴졌다.
“아, 키스라니!” 또는 “방금 따닥 하셨어요!”라고 외치며 서로 주거니 받거니 경기를 펼쳤다.
30분이 지나자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고수들에게는 낮은 점수지만, 300점이라는 게 초보들한테는 쉽게 낼 수 있는 점수가 아니다.
다들 자장면에 시선이 팔려 있을 때, 이제는 정훈이 본모습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타닥!
정훈이 친 하얀 공이 부드럽게 굴러가 빨간 공 2개에 부딪쳤다. 그러고는 빨간 공 2개가 구석에 모였다. 의도한 바였다.
“아, 모였네!”
박 과장이 젓가락으로 자장면을 집어 들다가 질색을 하며 소리쳤다. 공이 모이면 점수 따는 건 순식간이다.
탁!
타닥!
타닥!
탁!
순식간에 정훈 팀의 점수가 쭉쭉 올라갔다. 손으로 탕수육을 집어 먹던 장 부장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정훈의 상승세에 반색을 하며 다가왔다.
“이야, 김 대리! 장난 아닌데!”
“하하하. 아직 놀라시긴 이릅니다.”
정훈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점수를 냈고, 한 번도 텀을 넘겨주지 않고 130점을 따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10점. 그 마지막 점수를 위해 정훈이 준비하는 자세는 바로 마세. 전문 용어로 맛세이.
당구대에 엉덩이를 반쪽만 올리고 걸터앉아 큐대를 수직으로 높이 들어 올렸다. 물론, 이때도 한쪽 발은 바닥에 닿아 있어야 한다.
“300 이하 마세 금지인데….”
이현우 사원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정훈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정훈은 길의 방향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공을 깎아 치듯 세게 내려찍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절대 당구대를 건들면 안 된다는 거고 공만 가볍게 쳐야 한다.
타악!
하얀 공이 옆에 있던 다른 하얀 공과 빨간 공 사이의 좁은 틈을 지나 빨려가듯 다른 빨간 공을 향해 다가갔다.
빨간 공에 부딪친 뒤, 공은 세 면의 벽에 박치기를 했다가 튕겨 나오며 또 다른 빨간 공을 향해 서서히 굴러갔다.
그러고는 툭!
여자와 남자의 입술이 부딪치듯, 아주 부드럽게 하얀 공과 빨간 공이 마주쳤다.
“나이스!”
장 부장이 주먹을 공중으로 내지르며 환호했고, 정훈은 머리를 촤르르 뒤로 넘기면서 우아하게 내려왔다.
“이야, 김 대리, 마세 실력이 장난이 아닌데?”
“김 대리, 갑자기 점수를 확 따는 게 어디 있어? 아직 자장면 다 먹지도 못했는데.”
“대리님, 엄청 나시네요. 눈 깜짝할 새에 점수를 다 내 버리셨어.”
“패자는 카운터로.”
정훈은 승자의 여유가 담긴 멘트를 하며 손바닥을 펴서 카운터를 가리켰다.
“후우.”
박 과장은 부들부들하며 먼저 계산을 하고 나왔다.
“한 게임 더 하시죠.”
“에이, 내기 없으면 재미없잖아.”
장 부장이 박 과장을 놀리듯이 말하자, 박 과장은 이를 악물고 답했다.
“이번엔 술 사기 하시죠. 이 게임 끝나고 바로 나가서 2차 가는 걸로.”
“오, 좋지! 콜!”
정훈과 현우도 당연히 콜이었다. 그렇게 당구 2차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