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253
254화 농부의 삶
팜오리들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농사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싸움꾼이기도 하다.
농부가 무슨 전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주 큰 착각일 수밖에 없다.
농사를 짓는다는 행동 자체만으로도 어지간한 활동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체력을 소모시키는 것은 물론이요, 자라나는 작물과 기르는 가축.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름진 땅을 숱한 침략자들에게서 지켜야만 한다.
예로부터 지켜야 하는 것이 있을 때 더욱 목표 의식이 생기는 법이라고 했던가?
거기에다가 응애 시절부터 뛰어남으로써 대지모신의 축복이 가득 담긴 땅속에서 남다른 땅의 힘을 축적하게 된 팜오리들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헉, 허억. 조금만 쉬었다 하면 안 될까요?”
“꾸왁! 꾸와아아악!”
“아, 알겠어. 알겠다니까. 하면 되잖아!”
넘치는 힘의 에너자이저 상징이라도 되는 듯.
농사를 짓는 것부터 전투에 이르기까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스파르타식으로 밀어붙이는 팜오리들의 교육 방식.
그 덕분에 먹던 것을 죄다 토할 것만 같은 심정으로 따라가기 급급한 대지모신 길드원이 된 진상들이지만 이 일도 하루 이틀, 나아가서는 일주일 등.
언젠가는 익숙해질 터.
이것이야말로 농장의 쓸 만한 인재가 탄생하게 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터.
그렇게 충분히 팜오리와 맞먹을 정도의 1인분을 하게 된다면 진우도 그에 따른 선물도 준비 중인 상태다.
“그런데 다들 여기에 계셔도 괜찮아요? 지난번에 부탁드렸던 건 괜찮죠?”
– 물론이다 계약자여.
– 어허, 우릴 뭘로 보고. 정신쯤이야 여러 개로 쪼개서 나누면 될 일이지. 그게 아니더라도 정령들이 있는 곳이 곧 우리들의 눈이기도 하고.
그것은 다름 아닌 정령과의 계약을 추진하는 것.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줘야 아쉽지 않은 법 아니겠나?
4대 정령왕부터 어둠, 그리고 한때 존재했으나 이제는 없어진 본래 자신의 자리가 되었을 작물의 정령왕까지.
마음먹기에 따라서 농장의 진상들부터 대지모신의 길드원 등.
맞춤형으로 계약을 주선해 주는 정령 물주나 마찬가지인 셈이라 할 수 있겠다.
– 우선 결과는 나쁘지 않아. 대지모신님의 축복과 태초의 아이가 함께 해준 덕분인지 대부분 정령과의 친화력이 높은 편에 속하더군.
– 당장 하급 정령과의 계약은 전부 가능하고, 몇몇 특출난 녀석들은 중급도 충분히 받아들여도 문제없을 거다.
– 특히나 저기에 있는 인간들의 친화력이 오르는 속도는 이 차원 내에서도 독보적으로 빠르다고 할 수 있겠지.
정령왕들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팜오리의 특훈을 받고 있는 진상 패밀리다.
이제는 옛 모습을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구수한 시골 청년들이 되어 버린 이들.
“흐음, 확실히 굴리는 게 정답인 건가?”
원래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는 것보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 자란 야생초가 더욱 질긴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한계까지 밀어붙인 덕분인지 당장 중급 정령과 계약해도 이상 없을 친화력을 갖추었다고 할 정도.
“어떻게 이대로라면 저만큼 쓸 만한 편인가요?”
– 비교 대상이 비교 대상이다 보니 원.
– 이곳의 차원. 아니, 다른 차원의 인재들을 다 둘러봐도 계약자 정도 되는 친화력을 지닌 존재는 찾기 힘들 거다.
“그 정도인가요?”
– 그야 당연한 소리다. 계약자가 워낙 특이 케이스라고 볼 수 있을 테니.
– 대지모신님의 축복을 집중적으로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상상도 못 할 거다.
“그 정도야 알고는 있죠. 안 그래도 감사의 인사로 약초주 한 잔 정도는 드렸다고요.”
억만금.
아니, 그 이상을 줘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감사한 마음은 덤으로 말이지.
헌데 그렇기 때문이랄까?
– 흠흠, 그런데 왜 우리들한테는 안 주는 거지?
– 바위는 서운하다.
– 계약자여. 아무리 대지모신님이 우리보다 우선이라고 해도 주는 것 없이 부려 먹기만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아, 알았어요. 알겠다고요!”
육체없는 정신체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감정은 존재하는 법.
아무래도 축제 당일 대지모신한테만 한 잔 따라 줬던 게 어지간히도 섭섭했나 보다.
하긴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상이 있을지언정 너무 과한 차별은 좋지 않다.
그래도 명색이 정령왕.
초월자로서 한 속성의 정령들 중에서는 나름 한가닥 하는 최고참 아니겠는가?
“이 정도면 충분하죠? 예?”
– 엎드려 절받기지만 뭐, 나쁘진 않은 것 같군.
– 동감이야.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
그것은 종족과 정신체를 따지지 않는 것일까?
어째 하나같이 초월자라는 자리에 오른 이들일수록 유치해지는 느낌이다.
* * *
정수아와 전성 그룹 말고도 진우의 농장을 찾아오는 이들은 또 하나의 그룹이 있다.
혈석 길드장 이창혁.
한 때 S등급의 헌터로서 타고난 실력이 입증된 인물.
어째서 ‘한때’로 취급하냐고 한다면 그야 지금에 이르러서는 SS등급으로 승격했기 때문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든 간에 진우와 얽히면서 그 나름의 큰 이득을 본 존재.
그렇지만 이창혁이 얻은 것들 중에서 가장 기뻐하는 것은 힘보다도 다른 쪽에 있다.
“석우야. 형 왔다.”
“앗, 형님 오셨습니까?”
“이장님은?”
“어머니랑 드라이브 나가셨죠.”
“허 참. 삥 뜯어 가신 걸로 아주 본전을 뽑으시는구만.”
“아하하…….”
“농담이다. 너도 트럭 그만 몰고 제대로 된 차 한 대 정도는 장만해야지. 뭣하면 내가 사 줄까?”
“괜찮습니다. 저야 트럭이 익숙하니까요.”
“짜식. 그래서 어느 세월에 참한 며느리 하나 딱 만들려고?”
“그렇죠. 근데 형님도 현재 솔로 아니십니까?”
“……크흠, 내가 할 말이 아니었었구나 이거.”
일평생 고아였던 그에게 주어진 가족.
비록 피는 단 1mm도 섞이지 않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중요한 것은 자신을 받아주느냐 안 받아주느냐의 차이일 뿐인 것을.
게다가 덕분에 고질병인 분노조절장애까지 완치되었으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을 터.
또한 대지모신 길드와 전성 그룹과 비교했을 때에 그 크기가 작다고 할 수 있을 뿐.
혈석 길드 자체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에서도 꽤나 손꼽히는 집단 중의 하나다.
특히나 사냥 부분에 있어서는 베테랑들로 한 가득인 길드로서 협업 관계가 되면서 혈석 길드의 성장세는 가히 눈부실 정도다.
그중에서도 대중이 바라보는 혈석 길드의 이미지도 상당히 달라졌다.
흔히 이미지 메이킹이라고 하던가?
과거에는 어딜가든 사고를 치는 탓에 반기는 사람들이 없다시피 한 반면, 지금은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서 오히려 원하는 이들이 늘어난 실정이다.
당연히 그러다 보니 길드에 가입을 원하는 이들도 나날이 늘어나는 상태.
굳이 스카우트를 동원하지 않아도 알아서 실력 있는 높은 등급의 헌터나 장래가 유망한 신입 헌터들이 가입 신청을 넣을 정도!
“진우 보러는 안 가세요?”
“……무서운 소리 하지 말아라. 임마.”
“형님도 참. 진우가 뭐가 무섭다고 그래요. 만만하기만 하구만.”
“됐고, 장혁이나 보고 돌아갈랜다.”
물론 이창혁이 이렇게 변할 수 있었던 것에는 다 김진우의 참교육이 있었던 덕분이긴 해도 툭 까놓고 말하자면 또다시 겪고 싶지는 않다.
‘나보다 어린 게 맞는지 의아할 정도라니까.’
강력한 힘이야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지만 김진우는 다르다.
잔인하지는 않지만 뭐라고 해야 할지……. 더럽고 치사하다?
전투직과는 거리가 먼 농부라고는 믿기지가 않는 스피드와 파워.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알려진 모습에 불과할뿐이다.
“창혁이 너나 나나 진짜 운이 좋은 거였다.”
“거참 갑자기 뭔 뜬구름 잡는 소리여.”
자신과 비슷한 동병상련의 경험을 겪은 김장혁.
예전 질풍 길드장이자 동병상련의 고통을 겪은 인물.
진우의 농장을 찾아왔을 때 유일하게 이장님과 함께 이창혁이 만나는 그였지만, 어째 오늘은 처음 꺼내는 말부터 의아하기 짝이 없다.
“우린 맞는 정도로 끝났잖냐.”
“참 섭섭하게도 말하네. 처맞는 게 얼마나 아픈지 알기나 하는 건가? 나는 기절까지 했다니까.”
“이쪽도 맞아 봤으니까 알지. 그래서 나도 포함해서 말했잖아.”
“그게 뭔…… 아니, 그나저나 저기에 있는 얘들은 처음 보는 얼굴들인데?”
“신참들이야. 오게 된 경위는 자세히는 몰라도 뻔하지.”
“그래서 맞았어요?”
“아니, 맞는 것보다 더한 꼴을 당했다.”
“고통보다 더한 게 있나?”
사람의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것에는 시각과 미각, 후각과 같은 오감 등.
모든 부분이 있겠지만 그중 대표주자는 누가 뭐라고 해도 통증이다.
시각이야 눈을 감으면 되고 미각은 입을 막고, 후각은 냄새를 참으면 되겠지만 자기 몸에 박히는 가시나 칼날은 참기 힘든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허나 무릇 모든 것에는 참을 수 있는 한도라는 게 존재하는 법.
“지금 저놈들. 처음 왔을 때에는 죄다 명품들로 반들반들하게 차려입고 왔었다는 게 믿겨져?”
“저 신참들이?”
어딜 보더라도 외국인 노동자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좋게 쳐준다면 꽤나 미남인 편이라는 정도랄까?
하지만 그 뒤를 잇는 김장혁의 말에 이창혁은 순간 잘못 들었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사실이야?”
“내가 거짓말해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
“이런 미친…… 아무리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지만 그걸 진짜로 실행시키는 게 말이 돼?”
“노파심에 말하는 건데 앞으로 찍힐 만한 짓은 하지 말자.”
“절대로 안 할 거야. 차라리 죽고 말지.”
명품을 입고 끌려왔다가 몇 시간 후 등장했을 당시 똥에 범벅이 되어 있었다는 실로 끔찍한 내용.
이창혁은 처맞고 기절했던 것에 대해서 정말이지 진심을 담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 *
“휴우, 이제 당분간은 납품 걱정할 필요가 없겠네.”
두 개의 거래처에 큰 문제 없이 납품된 작물들.
유통이 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스마트폰과 알림음.
양쪽에서 정산금에 대한 것들이 쉼 없이 날아온다.
이제는 뒤에 0이 몇 개나 붙었는지 세는 것이 되레 어려울 정도의 양.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농부인 진우에게 쉴 여유란 없다.
원래 농사란 한 번 빡세게 짓고 난 뒤 길게 땅을 쉬어 주는 휴농 기간을 가져 주는 것이 기본이지만, 진우의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다.
‘자연이 그대를 돌보리라’를 통해 빠르게 성장하는 작물과 대지모신의 축복 속에서 땅을 쉬어 줄 필요가 없어진 구조.
뭐, 이렇게 일만 하면 지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스스로 선택한 길.
게다가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진우에게는 쉴 수 없는 이유가 명확하게 존재했으니,
꾸왁, 꾸와아아악!
삐! 삐이이이!
꺄꺄! 꺄꺄꺄꺄꺆!
위이이잉~
“녀석들도 열심히 하는데 주인 된 입장에서 놀 수야 없지 않겠어.”
애완동물, 가축.
나아가서는 가족이나 다름없어진 녀석들도 열심히 일해 주고 있는데 자신이 놀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젊을 땐 사서 고생을 한다는 말.
솔직히 지금도 썩 좋아하지는 않는 말이긴 해도 할 때는 해 줘야 하는 법.
“그건 그렇다지만 이건 좀 과하긴 하네.”
초기의 모습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거대해진 진우의 농장 크기.
여기에 소유하고 있는 게이트와 그 밖의 헬헤임 등의 차원들까지 더하면 헤아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
기껏 다 수확해 놓고 다시 씨앗을 심는 과정을 떠올려 보면 절로 고개가 저어지긴 해도 어쩔 수 없다.
“일하자, 일.”
드루이드이자 농부.
진우에게 쉴 시간은 없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