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36
36화 하이패스
예로부터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다.
저렴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고, 공짜에 지급되는 것에는 서비스의 가치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반면 1회 편도 이동에 자그마치 100억 원이라는 비용을 자랑하는 세계수 택시 라타콜.
그 비용에 걸맞게 라타토스크는 그냥 일반적인 택시와는 많은 부분에서 상당히 달랐다.
“촌놈마냥 멍 때리지 말고. 자, 이쪽으로 얼른 오라고. 신참.”
앞부분만 봐서 몰랐는데 몸을 뒤로 돌리자 보이는 라타토스크의 후방.
거기에는 마치 숙소를 보는 것마냥 건물 한 채가 떡하니 마련되어 있었다.
누가 다람쥐 아니랄까 봐.
도토리 모양의 집.
아니, 그건 그렇고…….
“어떻게 다람쥐 등에 건물이 있을 수 있죠?”
“택시잖아. 당연한 상식인 것을 뭘 새삼스럽게 묻고 있어.”
“…….”
요즘 택시에는 호텔도 달려 있던가요?
“어서 오십시오, 손님. 안전하고 포근한 라타콜 호텔입니다.”
“최상의 서비스로 맞이해 드리겠습니다.”
심지어 호텔 안쪽에는 직원들도 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상당한 숫자.
물론 인간은 아니다.
라타토스크와 같은 다람쥐.
단지 그 크기가 일반적인 지구와는 격이 다르다는 정도?
“…….”
무어라 반박하고는 싶은데 할 말이 없다.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는 콜택시 호텔.
그래도 딱 하나.
비용적인 부분은 속이 쓰리긴 하다.
[50억 원이 출금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 고객님!”
미리 체르를 통해 언질을 받아 두긴 했지만 50억 원이라는 비용이 이동 비용으로 지불되다니.
총 자산이 1천 억 원이라고 해도 50억 원은 결코 적지 않은 수치다.
그러나 거금을 소모한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목소리가 허공에서 울려 퍼진다.
(어이, 곧 출발할 거니까 괜히 떨어져서 황천길 가고 싶은 거 아니면 얼른 방 안으로 들어가 있어!)
“저저, 성질 머리하고는. 자, 어서 들어가자고.”
“아, 네.”
작은 손으로 진우의 옷깃을 잡고 힘 있게 끌고 가는 체르의 손길.
진우의 근력과 체력도 나름 약하지는 않은데 체르는 어린아이 다루듯이 그를 간단히 끌고 가서는 냉큼 복슬복슬한 털 침대에 몸을 내던진다.
“와아, 이거 엄청 부드럽네요?”
“그래도 일단은 라타토스크. 그 녀석의 털로 만든 거니까.”
솜사탕 같은 보드라움과 살아 있는 듯한 뜨끈한 열기.
몸을 눕는 것만으로도 구름에 누운 것 같은 기분이다.
그렇게 만족스럽게 얼굴을 부비는 내 모습에 반대쪽 침대에 누워 있던 체르가 혀를 차면서 조언한다.
“흠흠. 내가 아끼는 신참이니까 노파심에 말하는데 다람쥐들이 꼬드겨도 뭐 시켜 먹을 생각일랑 하지 말어. 여기 놈들. 나보다 더한 놈들이야. 팁 같은 거 절대 주지 말고. 한 번 찍히면 나중에 고생한다.”
똑똑똑-
“손님. 맛난 음식이 있는데 구매하시겠습니까?”
체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을 두드리는 다람쥐 수인들.
누가 다람쥐 아니랄까 봐.
녀석들이 한 아름 손에 움켜쥐고 있는 것은 주로 곡물과 견과류들이다.
‘아이템화’가 적용되지 않은 흔하디 흔한 땅콩이나 잣과 같은 것들.
문제라면 하나같이 더럽게 비싼 가격이랄까?
“다, 다음에 이용할게요.”
“저런. 아쉽게 되었네요. 그럼 언제든지 입이 심심하면 불러 주세요!”
물론 절대 부를 일은 없겠지만 진우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잘했어. 저거 샀으면 신참 너 제대로 호구 잡히는 거야.”
“뭐, 확실히 별다른 효과 없는 땅콩이 하나에 만 원은 좀 선 넘긴 했네요.”
“양심 뒤진 거지. 장사를 이따구로 하니까 팔릴 리가 있나. 쯔쯔쯔.”
호텔에서 캔 콜라가 5천 원 정도 하듯 특별한 경우도 있긴 하지만, 모름지기 정도라는 게 있다.
땅콩 하나에 국밥 한 그릇.
가성비를 떠나서 이 정도로 양심 없을 줄이야.
“서비스 정신이 썩어 빠져서 그렇지 세계수 한정으로 이동 수단에 있어서는 이쪽 업계에서는 최고니까 걱정 말라고.”
그래도 앞서 언급했듯.
비싼 값을 지불한 만큼의 가치는 있기 마련인 법.
(그럼, 5초 뒤에 출발한다.)
꾸구구국-
허공에서 들려온 라타토스크의 목소리와 함께 땅을 크게 박차는 소리가 들린다.
콰아앙-! 투두두두두두두두-!!!
“……!”
폭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을 터트리며 달려 나가는 라타토스크.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잔상이 남을 정도다.
거대한 체구의 속도라고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 속도.
그중에서도 가장 신기한 것은 그런 무게와 속도로 나무나 땅을 거침없이 짓밟는데도 박살 나는 게 없다는 거다.
“신참. 때로는 눈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 때도 있는 법이야.”
“그게 무슨? 설마…….”
사실 생각해 보면 간단한 논리다.
라타토스크는 엄연히 콜택시.
그러나 택시를 탑승하는 고객 중에는 라타토스크보다도 거대한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택시보다도 거대한 손님.
승차 거부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닐 테니 해답은 둘 중 하나다.
라타토스크가 더 거대해지거나, 혹은 고객이 작아지거나.
그리고 진우는 그 예를 두 개 다 이미 눈으로 직접 마주한 상태다.
당장에 땅의 상급 정령이었던 노아단만 하더라도 본래의 모습은 노움과 같은 난쟁이였지 않던가?
그 반대로 라타토스크 또한 10m의 크기보다 더욱 거대해질 수도 있다는 뜻.
“생각하는 대로야. 원래 라타토스크의 크기는 끽해 봐야 10cm정도 될까? 앞서 보았던 다람쥐 수인 중에서도 가장 작은 체구니까.”
“그럼 이 건물은 대체 뭐죠? 환각 같은 겁니까?”
“환각일 리가 있나. 이 또한 녀석의 몸의 일부일 뿐. 어쨌든 나는 도착하기 전까지 눈 좀 붙이고 있을 테니 풍경이나 구경하든지, 아니면 너도 눈 좀 붙여 둬.”
늘어지는 하품과 함께 침대로 다시 다이빙하며 잠드는 체르.
진우 또한 이제 겨우 시작된 여정의 길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숙면을 취해 둘 필요가 있기는 했지만, 생각과는 달리 피로는커녕 눈은 말똥말똥하기 그지없었다.
‘대체 이 세계에는 얼마나 많은 비밀이 있는 걸까?’
지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세계수가 우뚝 솟아 있는 야생.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신비한 것들 투성이지만, 그렇기에 흥미가 동한다.
목적으로 만나고자 하는 잔나비 일족부터 콜택시 라타토스크와 다람쥐 수인들.
그 밖에도 세계수에 있을 셀 수 없이 많을 생명체들까지.
‘더 알아보고 싶다.’
한 자리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싫었기에 모험을 원했고, 모험이라는 냉혹한 사회의 현실을 마주하고 다시금 귀농을 꿈꿨다.
그러나 3년의 짐꾼 생활과 한반도라는 활동 반경.
그것은 지금의 풍경에 비하면 모험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 아니, 올챙이도 못 되었던 건가.’
세계수에 올라타자 고층 빌딩을 올라가는 것마냥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르게 시시각각 변해 가는 풍경이 보였다.
그 방대한 세계를 바라보며 진우는 식었다고 생각한 가슴 한 켠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 * *
이동 수단 업계에서 최고라고 라타콜을 칭찬했던 체르.
그의 말은 확실히 사실이었다.
고개를 들어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했었던 아름드리나무.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위를 쳐다보면 다 보이는 가지들과는 상반되게 아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낭떠러지.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결코 살 수 없는 환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
이 말인즉슨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소리다.
킁- 킁킁-
“그럼 다음에 또 이용하라고, 체르. 거기 신참도!”
“네, 고생하셨어요.”
택시 비용치고는 상당히 페이가 센 편이기는 해도 무사히 도착한 세계수의 꼭대기.
그러나 막상 문제는 세계수에 서식 중인 종족이 ‘잔나비’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헐? 체르가 인간을 데려왔어!”
여우 꼬리를 달고 있는 여우 수인과 켄타우로스부터 시작해서 움직이는 나무인 엔트, 브락시온과 얼핏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의 거인 등.
수많은 종족.
‘미친, 실화냐…….’
그중에서도 진우의 눈에 가장 띄는 것은 바로 엘프와 드워프다.
헌터 세계에서의 비대칭 전력으로 손꼽히는 인재 중의 인재.
지구에도 극소수만 등장한 이들은 아인족이면서도 몬스터로 취급받지 않는,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는 존재들이다.
엘프의 경우에는 그 어떤 험지도 농사가 가능한 땅으로 탈바꿈되게 만들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으며, 드워프가 제작하는 무구는 일반적인 인간 대장장이들의 작품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의 퀄리티를 자랑한다.
한국에는 둘 다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미국과 중국에는 드워프가, 러시아에는 엘프가 있다고 대대적으로 알려진 상태. 그 밖에는 완전히 비밀에 묻힌 신비주의의 종족이다.
그런데 이곳에는 그러한 귀중한 인재들이 길가의 흔한 돌멩이마냥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한 영향인 탓일까?
“진짜 인간이야!”
“우와, 신기하다.”
“털도 없고, 꼬리랑 귀도 이상해.”
“무엇 보다 못생겼어.”
“네가 할 소리냐?”
졸지에 지구에서는 흔한 인간이었던 진우가 희귀종이 되어 버린 상황.
신기한 구경거리가 됨과 동시에 주변이 시끌벅적하게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요번에 인간 중에 드루이드가 탄생했다고 듣기는 했는데…….”
“아, 그게 저 녀석이야? 인내의 숲 지붕에 구멍 뚫어 놓은?”
“나 그 구멍 봤어. 모양 되게 웃기던데. 배꼽 잡고 웃었잖아.”
“…….”
아니, 그런 쪽으로 유명해지고 싶지는 않은데요.
“어이, 시간 없으니까 빨리 와. 지금 이 순간에도 돈 떨어지고 있다고, 신참.”
“앗, 죄송합니다.”
호텔 때와 마찬가지로 진우의 옷깃을 잡아당기는 체르의 강한 힘.
역시 작은 고추가 더 맵다는 것을 한 번 더 느끼며 시선에서 멀어지자 체르가 혀를 차 보인다.
“기분 나쁘게시리. 구경거리마냥 쳐다보고 있어.”
“아하하…….”
“웃지 마, 정들어!”
은근히 툴툴대면서도 챙겨 줄 때는 챙겨 주는 것이 츤데레 황금 고블린이 따로 없다.
“정들면 좋은 거 아닌가요?”
“좋기는 얼어 죽을. 상인은 철저한 계산이 우선이라고. 괜히 정이고 뭐고 들어가면 복잡해져.”
하긴,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비슷하다고는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는 사람들끼리 하는 돈거래가 오히려 더 문제가 일으키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는 했으니까.
아무튼 체르의 도움 덕분에 진우는 구경거리 처지로부터 손쉽게 해방되었고 문제없이 걸음은 빠르게 나아갔다.
그 결과 진우는 마침내 고대했던 종족을 마주하게 되었으니,
[잔나비 하급 전사 애드릿] [잔나비 하급 전사 몰그]우거진 대나무 숲의 입구에서 죽창을 움켜쥔 채 지키고 있는 두 마리의 원숭이 수인.
얼핏 보면 그저 대나무를 뽑아서 깎아 만든.
허름하기 짝이 없는 죽창이지만 이곳이 어느 환경인지를 생각하면 결코 평범한 대나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명색이 세계수의 꼭대기에서 자라고 있는 대나무.
꼿꼿하게 솟은 대나무 장대만큼이나 등급과 효과도 예사롭지 않을 터.
물론 지금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잔나비 일족과의 인연을 맺는 것이지.
죽창의 등급을 확인하는 게 아니다.
허나,
“체르 님. 정말로 죄송하지만 지금은 안 됩니다. 우리 두령. 번식 의식으로 무척 바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들어가기도 전에 입구컷 당할 위기.
하지만 황금 고블린.
체르도 이 정도에 물러설 정도로 보통내기의 상인은 아니다.
“그래? 이거 아쉽게 됐는데? 이럴 줄 알고 발정기에 맞춰서 정력에 좋은 제품들을 잔뜩 가져왔는데. 나중에 시드한테 한 소리 듣고 머리 터지더라도 후회하지 말라고?”
“……그, 그런 거라면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손님의 니즈에 맞춰 상품을 파는 것이야말로 상인의 덕목인 법.
“들어와도 됩니다. 두령. 허락했습니다.”
실로 놀라운 정력이라는 두 글자의 힘.
문전 박대에서 하이패스로.
태세 전환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