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08)
108 만드라고라는 뿌리채소였다
50년마부.
열두 살에 그가 얻은 별명이다.
공작님의 전속 마부였던 아버지를 따라 처음 마부 견습 겸 마구간 잡일꾼으로 일하기 시작한 것이 6살.
원래 말을 좋아했던 그는 마구간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말의 신뢰도 금세 얻어냈다.
아마 마부로서의 재주를 타고났을 것이다.
6년 만에 공작가 부지 안을 오가는 이인용 마차의 최연소 마부가 되었다.
우연인지 아니면 어린 마부가 탄생했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는지, 그의 마차에 첫 번째로 오른 분은 공작님이었다.
본택에서 연못까지 갔다 오는 짧은 일정이었다.
얼마 안 되는 그 거리를 오가면서 얼마나 긴장했던가.
고삐를 어떻게 잡았는지, 마차가 언제 본택으로 돌아왔는지조차 기억에 남지 않았던 첫 운전이었다.
하지만 그날 공작님은 소년 마부인 그를 칭찬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단해. 마치 50년은 마부 생활을 해온 사람 같구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그 뒤로 그는 공작가 사람들에게 50년마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의 진짜 이름은 몰라도 50년마부라고 하면 공작가의 모두가 안다.
이인용 마차를 몰다 공작가 혈연 분들의 마부가 된 것은 금방이었다.
그리고 다시 공작님 전속 마부로.
순조로운 승진을 거듭해 오랫동안 공작가에서 일해왔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정말 많은 일을 겪고 또 보았다.
거대한 마수가 민가를 덮쳐 토벌하는 현장에 있었던 적도, 공작님의 원정에 동행해 전쟁터 한가운데에 섰던 일도 있다.
거대한 바람에 사람과 말이 함께 날아가는 현장에서 안간힘 쓰며 마차를 유지한 경험도 다수.
마법사들이 내놓는 바람과 물, 불의 웅장한 부딪침 속에 죽을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개 마부이면서도 엄청난 일을 많이 겪었다.
마차 한 대로 싸움이 한창인 적진에 돌진한 적도 있다.
그 나름대로 공작님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도대체 몇 번 사선을 넘나들었을까.
싸울 줄은 모르지만 전진과 퇴각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먼저 전장을 누비며 움직였다.
마차를 움직이는 마부는 주인의 다리.
누구보다 주변 상황을 의식하고 먼저 움직여야 하는 법이다.
거기에 냉정함과 정확한 판단력은 필수.
그걸 하지 못하면 공작의 전속 마부 따위는 역임할 수 없다.
조금 전 도련님의 급작스러운 명령에 지체 없이 마차를 멈췄던 것도 그가 아닌 다른 마부였다면 불가능했다.
50년마부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뱉었다.
‘동요하지 마.’
도련님의 얼굴이 둥근 철통에 감싸여도, 만드라고라가 괴기스러운 잔뿌리를 사방으로 뻗어도, 심지어 그게 자신의 발밑을 더듬어가더라도, 놀라거나 동요하지 마라.
공작님을 모시는 공작가 최고의 마부라는 명성이 운다.
문득 공작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공작님의 전속마부에서 도련님 곁으로 이동할 때 그분께서는 말씀하셨다.
[내 손자는 나보다 더 뛰어난 마법사가 될 거야.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 그런 라파에게 보통의 마부는 역부족이다. 오히려 발목을 잡게 될 걸세. 그 아이가 어디로 가든, 무슨 일을 하든, 옆에 붙어 주게. 자네가 그 아이의 발이 되어줘. 자기 힘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 주게.]공작님의 전속마부는 세 명이다.
공작가에서 일하는 수많은 마부 중 단 세 명.
그중 한 명이었던 그가 도련님 밑으로 간 걸, 몇 명은 강등되었다고 생각해 위로하거나 고소해했다.
하지만 공작님의 말을 직접 들은 그는 알 수 있었다.
능력이 없다거나 필요 없어서 버리는 게 아니다.
전속마부 중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누구와 싸우고 어떤 일이 벌어져도 그라면 도련님한테 걸리적거리지 않고 도움이 된다고 믿으셨기 때문에 보낸 거다.
오랫동안 곁에서 모신 그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신 걸 안다.
50년마부는 다시 한번 깊이 숨 쉰 뒤 마차에 올랐다.
도련님이 원하면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게 준비하는 것이 마차요 마부다.
비록 도련님이 얼굴이 철항아리로 변해도, 그게 갑자기 떨어지고 이번에는 만드라고라가 괴물처럼 바뀌어도, 그가 할 일은 한 가지뿐.
도련님이 필요할 때 반응하는 발이 되는 것이다.
멀리 성문에서 병사들이 당황해 이리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병사들이 뒷북 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대응은 나름대로 빨랐다고 생각한다.
다만 도련님한테 닥친 일이 너무 후다닥 일어나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던 것뿐.
50년마부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주인 혈족을 모시는 상급 마부가 내성의 문지기와 병사에게 뒤져서야 될 일인가.
“….”
바퀴가 잔뿌리에 감기고 있다.
마차가 움직이면 그 잔뿌리를 밟게 된다.
잔뿌리의 본체는 도련님과 부인의 만드라고라.
주인이 소유하고 계신 귀한 영물의 뿌리를 밟아도 되는 걸까.
50년마부는 잠시 고민했지만 결론은 금방 나왔다.
‘나는 마부. 도련님의 발이다.’
그렇다면 할 일은 하나뿐이지.
언제든 움직일 수 있도록, 50년마부는 마차를 조금 이동해 바퀴를 보호했다.
만드라고라의 뿌리가 얼마나 강할지는 모르지만, 물론 잔뿌리가 질겨 봤자 얼마나 질길까 싶을까 마는, 어쨌든 마차의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마차가 이동하자, 머리카락으로 만든 것처럼 가느다란 잔뿌리가 다시 뻗어왔다.
50년마부는 다시 조금 이동해 그걸 피했다.
마차의 움직임에는 아주 약간의 저항도 없어야 한다.
절대로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전’자가 붙지만 공작님의 전속마부에 그런 한심한 인간은 없다.
*
만드라고라 뿌리가 설마 고무로 만들어져 있는 건 아니겠지.
물리적으로 분명 저렇게 늘어질 수 없는데 잔뿌리가 점점 가느다란 실처럼 길어지고 있다.
잘 보면 잔뿌리는 일정 범위까지 늘어나 바닥을 더듬듯 가만 서 있다 다시 길게 뻗어갔다.
마치 중간중간 영양분을 흡수해 몸을 늘리는 것 같다.
만드라고라가 먹는 건 아마 철갑옷 저주의 일부분일 것이다.
내 주위로 몰려온 가루 외에도 유형, 혹은 무형의 뭔가가 있었는지 모른다.
잔뿌리가 상당히 멀리까지 뻗어갔다.
만드라고라의 실뿌리는 땅을 더듬다 가끔 담쟁이덩굴처럼 허공으로 조금씩 가닥을 뻗었다.
그때마다 냄새 맡는 것처럼 뿌리 끝이 움찔거리며 사방을 살핀다.
확실히 뭔가를 확인하는 것 같다.
이런 일이 흔한가 싶어 타티아나를 보았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면 이 세계에서도 드문 것 같다.
적어도 마녀인 타티아나가 자주 보는 일은 아니다.
타티아나는 굉장히 당황하고 있었다.
“기다려! 기다려 봐! 먹으면 안 돼. 배탈 난다구.”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가끔 타티아나는 이상한 반응을 보인다.
어쨌든 저 녀석이 배탈 나는 건 아니겠지, 타티아나.
만드라고라한테 위나 장이 있는가 하는 문제는 둘째치고, 지금까지도 별별 걸 다 먹었지만 탈 난 적이 없으니 적어도 배탈 날 염려는 없을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시들거나 죽을지도 모르지만 내 생각에 이 만드라고라는 죽여도 죽지 않을 만큼 튼튼하다.
지금까지 가만 보아온 느낌은 그래.
내 느낌과 직감은 의외로 정확한 편이다.
게다가 지금 만드라고라는 쫓아오는 타티아나를 피해 이리저리 뛰고 있었다.
잔뿌리를 이용해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는 걸 보면 어디가 아플 것 같지는 않다.
전혀 그럴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뿌리로 몸을 당기는 솜씨가 좋아졌는지, 아니면 땅에서 흡수하는 것 덕분인지, 어쨌든 더 빨라졌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던 모양이다.
놀이라고 생각했는지 렐라도 덩달아 함께 뛰기 시작했다.
타티아나와 렐라, 만드라고라가 잔뿌리 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니까 왠지 우습다.
불사조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상공에서 빙빙 돌고 있었지만 어느새 마차 지붕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해서 마차를 떠난 줄 알았는데 단순히 경고하기 위함이었던 모양이다.
확실히 저 녀석이 이상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주위에 신경을 더 쓴 감이 있다.
경고가 없었다면 반응이 늦었을지 모르겠다.
물론 그래도 아무 상관은 없었겠지만.
단순히 마차 안에서 어항을 뒤집어쓸 뿐이었겠지.
그래도 어쨌든.
‘고맙다.’
내가 가만히 바라보자 불사조가 시선을 맞춰왔다.
피이이.
작게 울음소리를 낸 뒤 불사조가 새침하게 고개를 돌린다.
어라, 어쩌면 쑥스러워하는 건가.
“….”
아니, 그건 아니겠지.
불사조에게 그런 감성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타티아나가 말끝마다 불사조는 정이 깊다고 말하더니 확실히 그런 경향은 있는 모양이다.
슬슬 녀석의 이름도 지어줘야겠다.
계속 어미나 불사조라고 부르는 것도 좀 그렇지.
신데렐라의 신데에서 대충 만들어 신디 정도면 괜찮은 이름이 아닐까 싶다.
신디.
음, 괜찮을 것 같아.
불사조가 마차 지붕에 몸을 가라앉히는데, 마부가 만드라고라의 잔뿌리를 피해 슬그머니 마차를 움직였다.
아까부터 바퀴에 잔뿌리가 닿을 것 같으면 조금씩 피하고 있다.
겉으로는 담대해 보이는데 의외로 쫄보인 것 같다.
그런데 이 잔뿌리는 언제까지 늘어나는 걸까.
대체 만드라고라는 뭘 먹는 거지?
녀석이 너무 열심이라 나도 주위를 돌아다니며 조금 살펴봤지만, 저주의 갑옷 가루는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한테 왔던 게 다인 것 같다.
그리고 만드라고라 저 녀석, 그걸 거의 다 먹어 버렸다.
원래 내 주위에 떨어져 있던 가루가 이제 거의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잔뿌리에 가려져 안 보이는가 했지만, 그걸 들춰서 확인해 보니 확실하게 없어졌어.
식물이 철가루를 먹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놈.
진짜 그런 거 먹고 배탈 날라.
그 사이 내벽의 문지기와 병사들이 달려왔다.
경악한 표정으로 만드라고라 뿌리를 본다.
어느새 만드라고라 실뿌리는 작은 밭 정도로 넓게 퍼져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병사들의 질문에 그래, 괜찮다, 고 대답하려는 순간이었다.
내 눈에 작은 씨눈 같은 것이 들어왔다.
그게 보통의 나뭇가지에 있었다면 아무 문제 없었을 것이다.
하다못해 이 순간이 아니라 다른 때 나왔더라면.
하지만 씨눈은 좋지 않은 순간, 조금 이상한 곳에 있었다.
철가루와 뭔지 알 수 없는 뭔가를 먹은 지금, 하필이면 실뿌리에서 튀어나오고 있는 거야.
식물 영상을 빨리 감기 하는 것 같다.
위험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을 것이다.
“일단 모두 뒤로 물러나.”
내가 말하자, 병사와 문지기가 서로 얼굴을 보더니 빛의 속도로 멀어졌다.
마부한테도 내 목소리는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멀어지는 대신 마차 문을 활짝 열고 외쳤다.
“도련님, 위험하다 생각하시면 그 순간 마차에 올라와 주십시오. 언제든지 출발할 수 있게 대기하겠습니다.”
다시 마부석에 오르는 마부의 몸이 잔뜩 긴장한 것 같다.
아니, 그렇게 비장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저 조심하려고 생각한 것뿐이다.
타티아나도 뿌리에서 돋아나는 씨눈을 본 모양이다.
어라, 하는 표정이 되었다.
일단 그녀를 당겨 언제든 피할 수 있게 준비한다.
내 모습을 살짝 훔쳐보더니 타티아나가 곤란한 듯 목을 긁었다.
“저기… 아무래도 이거 열매인 것 같….”
그렇게 타티아나가 말하는 순간 길쭉한 쌀알처럼 돋아나던 씨눈이 톡톡톡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삐빗?”
렐라가 갸우뚱하더니 떨어진 씨눈을 쪼아 먹기 시작했다.
어이, 그런 거 함부로 먹지 마라.
삐비비, 렐라가 머리를 들고 외치듯 지저귀더니 씨앗을 물고 나한테 달려오기 시작했다.
거의 박치기하듯 내 다리에 머리를 부딪친다.
“…..”
왠지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으로 렐라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렐라가 라파 씨한테 먹으라고 하는 것 같아요.”
그래,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
“맛있었나 봐요.”
만드라고라는 아무래도 뿌리채소였던 모양이다.
뿌리에 열매가 맺히는.
하지만 씨앗은 만드라고라가 만들었는데 왜 자기가 생색내는 거야.
웃기는 녀석이다.
타티아나가 쪼그려 앉아 렐라를 안았다.
“렐라야, 권해주는 건 고마운데, 너랑 달리 라파 씨는 인간이니까 함부로 먹을 수 없어.”
타티아나가 나를 본다.
“렐라는 불사조니까 뭘 먹어도 탈이 나지 않거든요. 독도 맛있게 먹는 애들이니까.”
“….”
“하지만 라파 씨는 렐라가 먹고 괜찮다고 해서 그냥 먹으면 안 돼요. 이건 어떤 효과가 있는지 내가 우선 검증해볼게요. 원래 만드라고라는 마법사한테 좋은 식물이니까 아마 이것도 그럴 거예요. 물론 독일 수도 있지만요.”
타티아나 품에 안긴 렐라가 불쑥 가슴을 내밀더니 작은 입을 벌렸다.
푸쉬쉬.
작은 연기가 입에서 퐁퐁 나온다.
만드라고라의 씨앗은 렐라한테 굉장히 좋았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 씨앗은 다 언제 주울까요.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네.”
타티아나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는 타티아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일단 빗자루부터 가져와야겠다.
빗자루로 쓸어 담고 나중에 정리하면 되겠지.
멀리까지 퍼져 있던 만드라고라의 잔뿌리가 톡톡톡톡 끊어져 바닥에 흩어지기 시작했다.
할 일을 다해 필요 없어지면 끊기는 시스템인 것 같다.
어쨌든 진짜 편리하다.
만드라고라가 비틀비틀 술 취한 것처럼 몸을 흔들며 이쪽으로 달려왔다.
잔뿌리는 늘어나기 전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런데 대체 뭐였지?’
전에는 아무 일 없던 이곳에서 왜 갑자기 저주의 갑옷이 나타난 거야.
어쩌면 마도구사 가문이라는 다뷔토의 새 당주 부부가 뭔가 한 걸까.
하지만 이런 정문 길바닥에서?
나한테 저주의 갑옷을 주고 싶었던 건 아닐 텐데, 그들이 뭘 노린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