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22)
022 이상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잘 때만 해도 사람이 적었는데, 언제 어디서 몰려온 건지 어느새 사람이 많이 늘어났다.
그 때문인가.
아직 성문도 열리지 않았는데 긴 줄이 생겨 있었다.
사람이 아니다.
마차나 수레, 짐 같은 것들이 사람 대신 성문 앞에 길게 늘어졌다.
놓을 짐이 마땅치 않았는지 돌로 작은 천을 눌러 놓은 것도 있었다.
처음에는 그게 뭔지 몰라 멀뚱히 바라보다 뒤늦게 알아차리고, 나도 고기가 담긴 가방을 나 대신 그 줄에 놓았다.
내 모습을 보고 몇 명이 웃는다.
야만인이 줄 서는 게 이상했던 모양이다.
눈치채지 못한 척하고, 나는 기지개를 켜거나 수통의 물로 간단하게 양치질을 하며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내가 어슬렁거리며 근처를 돌아다니자, 렐라가 퍼덕퍼덕 날갯짓하며 머리 위에서 뛰어내렸다.
뒤뚱거리면서 고기 가방을 향해 달린다.
그 짧은 거리를 한참 달려서, 렐라는 사람 대신 줄 서 있는 가방 위에 훌쩍 뛰어 올라갔다.
아, 이런, 떨어졌네.
너무 서두르다 실수한 모양이다.
렐라는 한 번 떨어졌다가 다시 도전해 가방 위에 올라갔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사방을 노려본다.
아마 고기를 지키려는 모양이다.
“….”
괜찮아.
웃는 사람이 더 늘어났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야만인과 새의 조합이 웃겨서가 아니라, 단지 렐라 하는 행동이 재미있어서 웃는 걸 거다.
하늘이 뿌옇게 밝아지면서 거대한 성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줄 앞부분이 일제히 몰린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약간 떨어진 곳에서 자거나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줄 근처로 허둥지둥 돌아왔다.
렐라가 쌈닭처럼 목을 길게 빼며 사방을 노려본다.
하는 모습을 보니, 잘못하면 사람하고 싸우려 들 것 같다.
녀석이 허튼짓을 하기 전에 나도 서둘러 줄에 끼어들었다.
불사조에 불사라는 이름이 들어있다고 해서 싸우다 죽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실제로 렐라 어미는 내 어머니에게 죽은 것 같고.
원래는 이런 것도 어미한테 교육받아야 하는데, 인간인 내가 잘 기를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
나는 다른 사람보다 머리 두어 개는 더 크다.
그런 내가 사람들 틈에 서자, 아이들 사이에 끼어든 어른처럼 눈에 띄었다.
거기에다 주변에 있는 사람이 나와 거리를 두고 뚝 떨어져 서는 바람에 마치 줄이 끊긴 것처럼 보였다.
나를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투명한 원기둥이 서 있는 것 같다.
하아.
소인 나라에 간 걸리버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왠지 모르지만 렐라는 그게 기쁜 모양이다.
마치 자신이 왕이라도 된 듯 가슴을 쭉 내밀고 삐삐 소리쳤다.
어쩌면 녀석이 위협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멀리 서 있는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둘 중 하나라도 기분 좋은 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려나.
우울한 마음에 고개가 수그러드는데, 나를 알아본 병사가 다가왔다.
지난번에 제니를 데려온 병사 중 한 명이다.
뭐, 불쑥 내 머리가 튀어나와 있으니 나를 몰라보기가 더 어려웠겠지.
“당신은… 그… 길드 모험가라는 걸 모두 아니까 그냥 들어가면 됩니다. 줄 설 필요 없어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흠칫 놀라며 다시 나를 보았다.
모험가라는 말을 듣고 놀란 것 같다.
“그렇습니까.”
몰랐다.
길드 소속 모험가는 통행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는 들었지만 줄은 서야 하는 줄 알았어.
짐 같은 건 확인해야 하니까.
어라,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나한테 죽은 모험가는 줄을 섰는데.
“….”
그렇군.
다른 사람들과 병사들 마음의 안녕을 위해서 나는 그냥 들여보내 주는 거구나.
병사가 어색하게 웃는 걸 보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짐을 챙겨 성문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오래 활동하면 이런 태도도 달라지려나.’
내가 위험하지 않다는 걸 알아줄까.
이런 걸로 슬프거나 상처받지는 않아.
다만… 다만….
“…하아.”
다만일 뿐이다.
문 안으로 들어가자, 성문에서 조금 떨어진 구석에 마녀 도르테와 음유시인이 서 있었다.
음유시인은 눈을 감은 채 심호흡을 하고, 도르테는 주먹을 약간 쥔 채 그를 보고 있다.
굉장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지만, 음유시인은 그저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두 사람의 모습이 대조적이고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어 가만히 보자, 도르테가 시선을 느낀 듯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란다.
하지만 곧바로 손을 팔랑팔랑 나비처럼 흔들었다.
반가워하는 건가.
소외감을 느낀 뒤라 그런지 조금, 아주 조금 나도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약간 망설인 뒤 팔을 들어 인사하자, 도르테의 입이 헤 벌어졌다.
“….”
왜 놀라는데.
자기도 인사해놓고.
제길, 왠지 이상한 행동을 한 것 같잖아.
내가 시선을 비끼자, 도르테가 갑자기 두 팔을 들고 힘차게 흔들었다.
정말 기쁜 것처럼 활짝 웃는다.
겉보기에는 어려 보여도 나이가 많은 여자일 것이다.
자기 입으로 음유시인한테 뭔가 작업한 게 이십 년이 넘었다고 했으니까.
잘은 몰라도 마녀이기 때문에 늙었어도 젊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나한테 손을 마구 흔드는 모습은 마치 열 살 어린아이처럼 보여서, 왠지 어딘가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
어이, 이제 그만해라.
그만 흔들어.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야만인과 무희.
뭔가 이상한 조합이라고 생각했는지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쳐다보고, 그게 다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불러들였다.
하지만 음유시인은 주위의 소란을 모르는 듯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심호흡을 하고 있다.
어쩌면 마녀의 능력을 사용해 뭔가 하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손을 흔드는 마녀에게서 시선을 떼고, 나는 길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길드에 도착해 마을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보고하자, 제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허리를 거의 직각으로 구부린다.
“죄송합니다, 라파 씨. 설마 그런 계약 위반이 있었을 줄은.”
너무 미안해해서 내가 다 미안하다.
“괜찮아요. 큰일도 아니었고.”
“아니요. 잘못하면 생명이 위험했을 거예요. 라파 씨가 강하니까 다행히 아무 일 없었지만 다른 모험가가 갔다면 죽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제니가 입술을 잘근 씹은 뒤 다시 고개를 내렸다.
“길드는 가능한 한 정확한 의뢰를 받아 모험가분께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번 일은 우리 잘못이에요. 이 일에 대한 제재는 확실하게 하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엉터리 의뢰를 내지 못하도록.”
제니의 눈빛이 무섭다.
나는 마을의 모습을 떠올린 뒤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다.
얼마나 가난한지 나는 가늠해 볼 수 없지만, 그 마을이 적어도 부자는 아니었다.
“그… 가난한 마을에 너무 부담을 주는 것도….”
“….”
제니가 놀란 것처럼 나를 보더니 작게 웃었다.
“정말, 라파 씨는 에노르토스 사람 같지 않아요. 그 나라 사람은 그런 일이 벌어지면 일단 때려 부순 뒤에 시작하거든요. 날 속인 상대의 사정을 생각하다니,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에노르토스 사람뿐 아니라 모험가 중에도 별로 없어요.”
제니는 그렇게 말한 뒤 자화자찬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눈은 정확했어요. 라파 씨가 무조건 때려 부수는 대신 서류까지 제대로 꾸며와서 뒷일이 정말 쉬워졌습니다.”
“….”
“걱정 마세요. 우리가 악덕 대부업자도 아니고, 너무 무리한 일은 하지 않습니다. 이런 일을 조사하고 처리하는 직원이 있어요. 지금은 일하러 가서 사무실에 없는데 나중에 소개해 드릴게요. 그 사람한테 맡기면 정확하죠. 정말 돈을 낼 수 없을 만큼 가난한지, 아니면 엄살을 부리는 건지 알아낼 수 있어요.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낼 수 있는 곳까지 돈을 산출해낼 거예요.”
제니의 말에 따르면, 보통은 마을마다 영주에게 내야 할 곡식을 조금씩 숨겨둔다고 한다.
이곳 직원은 그런 것도 제대로 찾아내는 능력자라며 제니가 빙긋 웃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건 꼭 카드 회사의 추심 같은 느낌이다.
‘푸근하고 얼렁뚱땅한 중세 세계관은 어디로 간 거야.’
왠지 모르게 동심을 파괴당한 기분이 들어 속으로 중얼거리자, 제니가 후후 소리 내어 웃었다.
“아무튼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길드 의뢰비를 분할 납부하는 방법도 있으니까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게 될 겁니다.”
제니는 그렇게 말한 뒤 나무패를 받고,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가 돈을 꺼내왔다.
하지만 그녀가 내민 건 원래 받을 금액이 아니었다.
원래대로라면 150리라에서 수수료를 뺀 90리라를 받아야 하는데, 내 앞에 놓인 건 360리라였다.
1은화가 12리라니까, 은화 30개면 360리라 맞지?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제니가 빙긋 웃었다.
“원래 받을 보수였던 90리라에 추가로 두 마리 잡은 걸 더한 금액이에요.”
“아직 마을에서 받지 못했는데 주는 겁니까?”
“네, 이건 길드 잘못이니까요. 혹시 못 받게 되더라도 그 부분은 저희 손실금으로 처리되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하지만 그렇게 해도 금액이 맞지 않는데요.”
추가로 받을 돈은 200리라다.
수수료를 40%로 계산하면 지금 내가 받는 돈이 너무 많았다.
혹시 제니가 잘못 계산한 걸까 싶어 말하자, 그녀는 정말 감탄한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라파 씨는 계산을 참 빨리하시네요. 추가금은 저희 잘못이 크기 때문에 수수료를 10%만 받았습니다.”
아, 그런 거구나.
그렇게 계산하면 딱 맞다.
왠지 횡재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모르게 웃었던 모양이다.
제니가 작게 숨을 삼키고, 근처에 있던 모험가 두 명이 히익 작은 비명소리를 냈다.
접수대 안쪽에서도 숨 들이마시는 것 같은, 왠지 급박한 분위기의 호흡이 들렸다.
“….”
나는 잘 몰랐지만, 내 웃는 모습은 조금 무서운 모양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가 웃으면 같이 웃어줬지만,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내가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거인처럼 보이는 거야.
사람 잡아먹는, 무서운 거인.
왠지 어깨가 조금 아래로 떨어졌다.
슬프지는 않아.
절대로 슬픈 건 아니다.
하지만 모처럼 판타지 세계에 왔는데 외모가 이래서야… 빌어먹을!
제니가 어색하게 웃으며 돈을 내밀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라파 씨.”
“… 감사합니다.”
제니가 추천해 주는 일거리로 다음에 할 일을 정한 뒤 길드를 나왔다.
오늘은 쉬고 내일 다시 출발한다.
덩치가 야만인이고, 웃는 얼굴이 숨 막힐 만큼 무섭고, 온몸이 상처로 문신한 것 같으면, 그래,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지.
하아, 아버지를 닮았어야 하는데, 나는 어째서 어머니를 닮았을까.
딸이면 몰라도 아들인데 어째서 어머니를 닮은 건지.
“하아.”
길게 한숨 쉬고, 시장에 가서 약간의 물건을 보충했다.
지난번에는 돈이 걱정되어 사지 못했던 게 몇 개 있었다.
물건을 사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광장에서 악기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음유시인과 마녀가 일할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악기를 연주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저 사람이 부르는 게 어머니 노래만 아니었다면 나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다시 작은 한숨을 쉬고 숙소로 발을 옮기는데 누군가가 도르테를 보고 휘파람을 불었다.
왠지 지저분한 느낌이 들어 쳐다보자, 서너 명의 남자가 손가락으로 구멍을 만들어 찌르는 흉내를 냈다.
도르테는 고개를 외면한 채 모르는 척하고 있다.
“….”
그냥 가도 된다.
마녀고, 나이도 많고, 현혹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이름도 있고, 세상 경험 많은 사람이니 이 정도는 별거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하아.’
도르테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여러 번 겪은 일이라고 해도 싫은 건 싫은 거겠지.
왠지 그녀의 표정이 울 것처럼 보여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뭐, 나이 많은 어르신 공경했다고 생각하면 되지.’
적어도 저 여자는 내 어머니뻘은 될 거다.
게다가 모르는 사이도 아니니까.
나는, 지저분한 농담을 하며 이제는 드디어 허리까지 앞뒤로 움직이고 껄껄거리는 남자 뒤로 가서 섰다.
냅다 발로 등을 걷어찬다.
남자는 허리를 쭉 내밀다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옆에 있던 두 놈도 똑같이 발로 차버렸다.
그래도 힘 조절은 했다.
살짝 밀었어.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한 채 순식간에 나란히 엎어진 세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뭐, 뭐야!”
“어느 놈이야!”
“개색히… 이… 가….”
이빨이 부러진 놈, 코가 부러진 놈, 이마가 깨진 놈.
세 명이 나란히 서서 눈을 부라리다 슬그머니 목소리를 죽였다.
“음악 들으러 왔으면 조용히 듣고 가라.”
내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대답!”
“네.”
“예.”
“알겠습니다.”
남자들이 조용히 바닥에 앉는 걸 보고 몸을 돌리자, 도르테가 가만히 날 보고 있었다.
왠지 눈물도 흘리지 않는데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거참 이상하네.
왜 자꾸만 나이 많은 마녀가 애처럼 보이는 걸까.
숙소로 돌아가자 개방 방주도 울고 갈 만큼 냄새나던 남자는 방에 없었다.
일하러 갔다고 한다.
오늘은 냄새 때문에 괴롭지 않게 푹 잘 것 같다.
평소에는 잘 먹지 않지만 오늘은 포도주를 따로 한 잔 샀다.
이 세상에 태어나 스스로 돈을 번 첫날이니 나름의 축하다.
커다란 나무 잔에 넘칠 만큼 하나 받아 숙소로 돌아가, 렐라에게 고기를 듬뿍 먹이고 한참 이른 잠을 청했다.
그리고 어느새 밤이 된 것 같다.
나는 문밖에서 들려오는 괴이한 숨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뭐야.’
문밖에서 과호흡할 때와 비슷한, 정말 이상한 숨소리가 들려온다.
도끼를 쥐고 조용히 문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이자, 숨소리가 더욱 또렷하게 들렸다.
후우, 하아, 하아, 흐읍, 흐읍….
나는 뭐가 튀어나와도 반응할 수 있도록 도끼를 쥔 뒤 문을 확 당겨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