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29
28회
밖으로 나왔던 민준이 다시 안으로 들어가자 매니저가 화들짝 놀라 뒤따랐다.
매니저는 민준이 감독에게 확답을 주려는 줄 알고 식겁했으나 그가 향한 곳은 방향이 달랐다.
준은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정신없이 홀을 뒤지더니 이내 카운터로 달려갔다.
주인 남자는 기쁨을 숨기지 못한 얼굴로 그에게 사인지를 건넸다.
연예인의 첫 등장에 내심 흥분했던 그가 틈을 보고 있다가 용기를 낸 순간이었다.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사인에 응한 준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저, 아까 홀에 계시던 분이요. 야구모자 쓰신 아가씨…. 말입니다.”
“아, 제 스승님이요?”
“네, 그분 좀 뵐 수 있을까요?”
준은 윤설을 찾는 제 마음이 무엇인지 몰랐다.
왜 찾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이대로는 보낼 수 없다는 감정이 너무나 강렬해 용기를 낸 것뿐이었다.
“아이고 어쩌나요? 30분 전에 가셨는데…..”
“네에? 가, 가셨다고요?”
실망감으로 가득 찬 얼굴이 주인 남자의 시선에 담겼다.
하지만 그는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연예인에 대한 배려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민준이 또다시 용기를 냈다.
“그분, 여기에 자주 오시나요?”
“매주는 아니지만 종종 와서 봐주시곤 합니다만…..”
“저, 그럼 혹시 연락처라도 알 수 있을까요? 아,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고, 제가 아는 분인 것 같아서요. 꼭 만나야 할 일이 있거든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민준은 제 마음의 갈망을 위해 태연하게 거짓말하는 스스로에게 흠칫 놀라고 말았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왜 이렇게 가슴이 뛰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매니저와 민준이 낙안당의 대문을 빠져나왔다.
“얌마, 너 왜 안하던 짓 하고 그러냐?”
조금 전, 곁에서 모든 것을 지켜본 매니저가 당황스런 말투로 한 마디를 건네자 준이 입을 열었다.
“형, 아까 그 여자 말이에요.”
“여자? 심이지?”
“아니요. 그 스승이라던…..”
“아, 야구모자?”
매니저의 담담한 물음에 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 아가씨 말이에요. 우리가 민속촌에서 본 사람이에요.”
“민속촌에서 봤다고?”
“네.”
“설마, 그 댕기머리? 이산가족 상봉하던 그 사람 말이야?”
매니저가 정확히 기억해내자 준이 밝게 웃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왜?”
“아……그게….. 신기하잖아요. 여기서 또 마주치다니…. 젊은 아가씨가 조선 음식에 해박한 것도 그렇고…. 중년의 사장님이 스승이라고까지 여기는 것도 신기하고요.”
민준은 스스로 급조해서 꺼낸 이유가 전혀 설득력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매니저의 반응보다 한 여자의 음성이 더 앞서고 말았다.
골목을 채 빠져나가지 못한 그때, 뒤따라 나온 심이지가 그들을 불러 세웠다.
“민준 씨………”
준이 뒤돌자 윤 매니저가 식겁한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서로의 소속사를 통해 아니라고 해명한 후, 간신히 잠재운 스캔들이었다.
한적하고 외진 골목이라 다행히 보는 눈은 없었지만 누군가라도 나타난다면 큰일이었다.
“하실 말씀이라도…..?”
준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묻자 심이지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신 점,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었어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지 씨도 피해자시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어쨌거나 저희 쪽에서 먼저 해명을 하지 않아서 일이 커진 것도 있으니까요.”
차분한 음성이 붉은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여기까지 오신 거….. 김 감독님의 작품 때문이겠죠? 저는 그래요. 대본을 보면서 괜찮다는 느낌이 오더군요. 저랑 또 엮이는 거 불편하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작품이 마음에 드신다면 놓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민준 씨와 함께라면 영광으로 여기겠습니다.”
심이지가 시선을 떨구자 윤 매니저가 발끈했다.
“저기요, 무슨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요. 오늘의 자리는 김 감독님이 하도 식사 한 번 하자고 하셔서 옛정 때문에 나온 겁니다. 이렇게 또 엮이면 서로 좋을 일 없다는 건 뻔할 뻔자 아닙니까? 이지 씨의 타격도 만만치 않을 텐데요? 아무튼 우리 준이는 이번 김 감독 작품 안 할 테니 잘 해보시죠.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윤 매니저가 준의 등을 두드렸다.
악역을 자청해 당황스런 분위기를 정리했으니 그만 가자는 의미였다.
민준은 당황해하는 심이지를 향해 인사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심이지는 골목 끝으로 사라지는 두 남자를 응시하며 주먹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살며시 떨리는 그녀의 눈빛 속엔 원망과 갈망이 동시에 숨어있었다.
“아놔, 어디서 조신한 여자 코스프레야? 진짜 어이 상실이네.”
밴에 오른 매니저가 퉁명스레 한 마디를 던지자 운전을 담당하던 이가 귀를 쫑긋 세웠다.
“왜요? 안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말도 마라. 심이지가 왔다.”
“헐, 진짜요?”
흥분한 채로 운전기사와 몇 마디를 나누던 매니저가 준의 눈치를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암튼…. 준아, 이번 드라마는 절대로 안 하는 거다. 알았지? 너 옛정이니 뭐니 해서 엮이면 절대로 안 돼. 이번에 이거 하면 스캔들 진짜 되는 거 시간문제라니깐. 거머리 같은 것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냐? 어떻게든지 파고들걸? 오, 노노.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알았지? 야, 내 말 듣고 있냐?”
멍하니 차창을 바라보던 민준이 눈을 감은 채 머리를 기대자 매니저가 입을 다물었다.
언제나 예의바른 그가 대답이 없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보통은 마음이 복잡하거나 감정이 격해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준은 상대에게 실수할까 봐 조심했고 젊은 혈기에 울컥할 때면 조용히 혼자서 생각에 잠기곤 했다.
매니저는 그가 심이지의 등장에 심란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준의 마음은 다른 이유로 살며시 흔들리고 있었다.
준은 차마 낯선 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의 욕심이 2프로를 채웠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지 몰랐다.
어쨌든 그는 얼굴이 알려진 배우의 입장이었고 사람들의 신뢰를 받는 이상, 쉽게 얻은 수 있는 것도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민준은 친절한 주인 남자의 물음에 애써 고개를 가로젓고 말았다.
사실 그는 윤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민속촌에서 감명 깊게 지켜봤다고 하기엔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하기만 했다.
스토커나 변태 같은 멘트로 딱이었다.
물론 그가 그런 취급을 받을 리 없었지만 연예인의 지위를 이용해 그렇게 다가서는 것은 준에게 상식 밖의 일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아닌 친구의 번호였다.
이미 자신의 개인 폰 번호가 유출된 고통을 아는 그로선 상대에게 같은 고통을 줄 수 없었다.
‘……할 일이 태산인데…..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그녀는 나의 존재를 모를 텐데….. 갑자기 어필한다면 얼마나 놀랄까? 게다가 나에 대한 마음이 없다면…… 그래, 그럴 수도 있잖아. 하지만….. 왜 자꾸만 끌리는 걸까……? 휴우….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간 것일까?’
일을 마치고 돌아와 막 현관에 들어선 해인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깔끔해진 집안이 유난히 빛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혼자 있을 땐 잠만 자고 다니기 일쑤였기에 청소는 일주일에 겨우 한번이 전부였었다.
어지럽힐 사람이 없다는 것과 피곤하다는 핑계로 자신을 합리화시키기에 바빴던 해인이었 다.
하지만 윤설과 함께 지내게 된 이후로 그녀는 어느덧 깨끗한 공간에서 숨 쉬고 있었다.
“어우 야, 또 청소했구나? 에공, 그러지 말라니까. 같이 하지. 헤헷…. 말뿐인가?”
“미안하게 여기지 말렴. 누누이 말했지만 신세를 지는 입장에서 작은 도리를 하는 것뿐이니 말이다.”
“정말로 괜찮은데…. 히잇. 윤설아, 그런데 깨끗해진 집을 보니 네가 꼭 우렁각시 같다.”
오랜만에 유머 코드가 통하는 순간, 윤설과 해인이 해맑게 웃기 시작했다.
해인은 윤설이 이 세계에서 고립감을 느낄까 봐 조선 시대의 것을 검색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물론 궁금한 점을 속 시원히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장점 중의 장점이었다.
그 시대를 사는 이에게 직접 듣는 이야기는 책이 대신할 수 없는 것이었다.
윤설은 자신을 배려하는 해인에게 고마움을 느꼈고 알고 있는 것을 자세히 가르쳐주었다.
“참, 네가 말한 거 사왔어. 동대문 시장을 다 뒤진 거 있지? 광목이라는 천을 네 덕분에 처음 알았어. 크큭…. 그나저나 이건 뭐 하려고? 설마…. 심심해서 수라도 놓으려는 거 아니야?”
해인의 물음에 윤설이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떨구었다.
무언가를 몹시 부끄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응? 진짜인가보네? 크큭…. 그럼 실이라도 사올 걸 그랬다. 에이, 윤설아, 그게 뭐가 부끄럽다고 그러니? 얼마나 조신해. 역시 넌 조선시대 규수라니깐. 히잇…..뭐 사실이긴 하지만.”
해인이 손사래를 치자 윤설이 귀까지 붉어진 모습으로 겨우 입을 열었다.
“해, 해인아…. 실은 말이다. 바느질은 바느질인데…..그, 그것이……”
“응? 뭔데? 어우 야, 우리 사이에 무슨 말 못할 비밀이 있다고 그러니?”
“실은……개짐을….만들려고 한단다.”
난생처음 듣는 단어에 해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개짐? 개집은 아니겠지? 푸핫. 미안. 농담임. 그런데 그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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