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doll is Gigant RAW novel - Chapter (112)
112. 살려주면 안 되나요?
[블랙힐 기지]안드레아스의 계략에 당한 원정대의 이야기를 들은 시안 5군단장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러다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시안 황자는 눈물을 훔치곤 잠시 창밖을 보다 말했다.
“기사와 병사들의 시체도 챙기지 못했겠군.”
“상황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원정대 1군에 나와 사관학교 동기인 녀석들이 꽤 있네.”
“저도 이번에 들었습니다.”
“내가 황자라는 사실을 알고도 허물없이 날 대해준 몇 안 되는 녀석 들었지. 지금 돌아보면 그때가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한 날들이었어.”
시안 황자는 고개를 흔들며 나를 바라보았다.
“생존자가 십여 명이라니, 몇 명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겠군.”
“정확한 명단은 카야킨 전진 기지에 있을 겁니다.”
“알았네······.”
시안 황자가 왜 슬퍼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젊은 날 순수했던 시절의 친구들 죽음을 슬퍼함이다.
이번 원정에 시안 황자도 가고 싶어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어쩌면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모험을 떠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사실 시안 황자의 동기생 다섯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하지만 난 말하진 않았다.
나중에 알아보겠지.
그리고 그중에서 셋은 내 마법인형이 됐고, 하나는 이번에 자아를 각성하며 자동인형이 됐다.
인생 참······.
시안 황자에겐 그 자동인형을 절대 보이지 말아야겠다.
북부군과 5군단은 시안 황자의 정치적 군사적 지지기반이었다.
이번 일로 북부군 기사가 많이 전사했기에 제국도 큰 피해를 봤지만,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눈앞에 시안 황자일 것이다.
거기에 친구들까지 잃었고.
하지만 실망만 할 순 없었다.
“윌리엄 사령관께서 전해드리라는 서신입니다.”
난 품에서 서신을 꺼내 전달했다.
시안 황자는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그러다 뭔가 감정이 울컥했는지, 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마도 친구들의 죽음도 적혀 있는 것 같았다.
“전쟁이란 참 잔혹하군.”
“진짜 전쟁은 시작도 안 했습니다.”
“하긴, 자네 말이 맞네. 슬퍼하기엔 우리 상황이 급박하군.”
“그리고 지금 상황을 잘 이용하면, 시안 황자께선 득이 되실 수도 있습니다.”
시안 황자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지금 내 상황을 알고도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이 상황을 만회하고 힘을 더 키울 방법이 있지 않습니다.”
시안 황자도 바보가 아니었기에 내 말뜻을 알 것이다.
“오리지널 기간트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제겐 케인 황제 폐하께 전하는 윌리엄 사령관님의 서신도 있습니다. 내용은 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제가 가져가는 거신 갑옷을 오리지널 기간트로 만들어 북부군과 5군단에 배치해달라는 내용이 있을 겁니다.”
시안 황자가 고개를 끄떡였다.
“맞네.”
“황제께선 이번에 상당한 비행석을 가져온 원정군의 공을 생각해서라도 그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럼 다가올 전쟁에서 그 오리지널 기간트들이 큰 활약을 한다면, 시안 황자님의 입지는 더욱 커지실 겁니다.”
“그게 거기까지 이어지는군.”
“그리고 할데가르에 원정군을 몰래 집결시키는 이유도 거기서 비공정을 가지고 훈련해 오리지널 기간트를 전략적으로 쓰겠다는 윌리엄 사령관님의 뜻이 담겨 있는 거겠지요.”
시안 황자가 고개를 흔들며 입을 벌렸다.
“역시 자네는 모르는 것이 없군.”
“저라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요. 일단 제 임무는 거신 갑옷을 최대한 많이 할데가르로 가져가는 겁니다.”
“그래 나도 아네. 그런데 20%라니, 좀 과한 건 아닌가? 오리지널 기간트를 만든다고 해도 거기에 탈 기사가 부족할 텐데?”
난 속으로 웃었다.
내가 기사가 몇 명인데······.
“이미 윌리엄 사령관님과 이야기가 된 겁니다. 하지만 시안 황자님께서 굳이 반대하신다면 저도······.”
“아! 아니네. 기사도 없는데, 오리지널 기간트를 놀리면 아까워서 그러지.”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지금 내 자동인형이 몇 명이고, 우리 영지에 오고 싶어 하는 기사가 몇 명인데······.
오리지널 기간트는 없어서 못 탄다.
“그럼 일주일 정도만 더 기다려 주게.”
“일주일이나요?”
“지금 발굴팀이 황궁으로 보이는 건물까지 진입했네. 잘하면 몇 개는 더 건질 수 있을 거야.”
“지금까지 챙겨 놓은 건 몇 개나 됩니까?”
시안 황자가 처음으로 여유 있는 표정을 지었다.
“35개네.”
“오! 좋은 소식이군요.”
“자네 말대로 외성부터 시작해 이데아 제국 내성 곳곳에서 상당한 숫자의 거신 갑옷이 발견됐네. 사실 삭아서 부서지거나 마법진이 지워져 못 쓰는 것이 많았는데, 그런데도 35개나 건진 거지.”
난 왜 삭아서 못 쓰는 갑옷이 많은지 거신 마법사 알리사 엘가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금속으로 만든 갑옷이라 오랜 세월을 이기지 못한 것이었다.
처음엔 거신들도 여러 가지 금속이나 합금으로 갑옷을 만들다가 나중엔 내구성도 좋고 대수림에서 사냥하며 쉽게 구할 수 있는 거신 부산물로 갑옷을 만들었다.
거신 부산물의 경우 갑옷을 만들면서 마석이 깊게 스며들어 보관 기간이 반영구적으로 늘어난 까닭이었다.
그때는 이런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그 정도면 며칠 기다릴만하겠네요.”
최소한 나도 7개는 확보한 상태였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기존에 있는 것과 이번에 확보한 것을 합하면 오리지널 기간트만 15기나 된다.
화염의 탑에서 얻은 13미터짜리 퀸급 거신 갑옷까지 기간트로 만든다면, 대영지 못지않은 전력을 보유하게 된다.
물론 오리지널 기간트를 만드는데, 시간이 좀 걸리고, 당장 기사가 부족해 전부 다 태울 순 없었지만.
“혹시 발굴지에서 무슨 일은 없었습니까?”
“응? 발굴지에서?”
“이상한 게 나왔다던가, 아니면 이상한 현상이 발생했다던가요.”
“아니 없었는데, 왜? 뭔가 벌어질 것 같은가?”
“그건 아닙니다. 혹시 가디언 제국 놈들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다행히 암 드로운이나 거신 마법사가 발굴지를 나오면서 들킨 건 아닌 것 같았다.
설마, 아직도 넘어 오지 않은 건가?
살짝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이번 발굴만 마무리되면 나도 할데가르로 갈 것이네. 죽은 동기생들의 원수를 갚아야지.”
“윌리엄 사령관께는 말씀은 드렸지만, 시안 황자님께서도 너무 눈에 띄게 행동하진 마십시오. 안드레아스는 분명 우릴 감시하고 있을 것이고, 원정군은 조용히 준비하고 있다가 그들의 허를 찔러야 합니다.”
“알았네. 먼저 윌리엄 사령관님을 만나고 다음 계획을 고민해보겠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 발굴지로 가보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거신 갑옷을 모두 가져갈 수 있겠나?”
“방법은 말씀드릴 수 없으나, 분명 가능합니다.”
“알았네. 나도 자넬 믿고 기다리지.”
시안 황자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입술을 꽉 다물었다.
동기들의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이 느껴졌다.
난 그길로 발굴지로 향했다.
***
[이데아 제국 발굴지 내부]이곳은 전에 얼음 절벽에서 거신 마법사를 구했던 곳이고, 아주 길고 거대한 공동에 2차 베이스캠프가 있었다.
주변에 병사도 많았고, 기간트도 제법 많이 있었다.
다행히 얼음 절벽이 녹으면서 거신 시체가 떠내려오는 일은 없었다.
얼음이 녹으면서 약해진 천장과 벽이 무너져 그곳 일대가 정말 거대한 무덤으로 변했다.
난 이곳에 묻힌 거신들을 위해 묵념했다.
“에테나, 눈을 풀어줘.”
“네!”
가디언 제국 발굴지에서 데려온 마장기 기사가 밝은 빛에 눈을 감았다가 한참 만에 떴다.
그리곤 날 노려봤다.
“눈에 힘 풀어. 아니면 다시 가린다.”
기사는 살짝 시선을 피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눈을 가리고 결박당한 채로 여기저기 끌려다녔다.
다시 그 생활을 하고 싶진 않아 보였다.
“날 어쩔 셈이오?”
“그건 지금 고민 중이야. 내가 몇 가지 묻을 텐데, 대답 여하에 따라 자네 처우가 결정될 거니까 잘 생각해서 대답해.”
기사는 불만이 많아 보였지만, 뭐라 하진 못했다.
“이름.”
“마키아스 소령이오.”
“소령? 젊은 나이에 출세했군.”
마키아스가 날 쳐다보며 말했다.
“그쪽은 젊은 나이에 별을 달고 있으면서 소령에 놀라시오. 나도 원래는 대령이었소.”
“하긴 그 정도 실력이면 대령 자릴 줘도 아깝지 않겠어.”
“날 어떻게 할 것이오?”
“질문은 내가 한다. 넌 대답만 해.”
마키아스가 입을 다물었다.
“2계급 강등이라니, 무슨 큰 죄를 지은 거지? 그래서 나이트급 마장기에 탄 거야?”
“믿지 않겠지만 반란죄요. 황제와 루이스 황자를 죽이려 했소. 내가 아니라 가문이 한 짓이지만······.”
“응? 설마, 알브레 가문인가?”
“그렇소.”
“하하! 이런 인연이 있나!”
웃음이 나왔다.
“그때 내가 보르자 전진 기지에서 루이스 황자를 살리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도 없었겠군.”
마키아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오?”
“참! 세상 아이러니하지? 내가 한 행동이 이렇게 미래를 바꾸다니······.”
난 보르자 전진 기지에서 알브레 가문과 반란군이 루이스 사황자를 암살하려던 것과 내가 황자를 구한 일화를 설명해줬다.
이야기를 들은 마키아스는 허무한 표정을 지었다.
“왜? 억울한가?”
“억울할 게 뭐가 있겠소. 이미 벌어진 일이고, 다 자업자득인 거지.”
“그럼 루이스 사황자가 그댈 살려준 이유가 뭐지?”
“그건 나도 모르겠소. 루이스 황자와 사관학교를 같이 다니긴 했는데······.”
“친분이 있군. 그런데 내가 보기엔 실력이 아까워서 살려준 거 같은데?”
마키아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넬 보니, 루이스 황자에게 원한을 품고 있지 않은 것 같군.”
“아까도 말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오.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럼 살려둘 이유가 없는데.”
“뭐요?”
“루이스에게 원한이 있다면 복수할 마음이 있을 테니, 우리 쪽으로 전향하라고 권했을 텐데. 그런 게 아니면 믿을 수 없지.”
난 에테나를 쳐다봤다.
“질문은 끝났어. 에테나 처리해.”
“자, 잠깐.”
스릉!
에테나가 검을 뽑자, 마키아스가 깊은 한숨을 쉬고 눈을 감았다.
“하아!”
몸까지 부르르 떠는 걸 보니, 죽음이 두려운 것 같았다.
하긴 이 세상에 죽음에 초연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한번 죽어본 나도 죽음은 무서운데!
그때였다!
“타일러 영주님, 이 사람 살려주면 안 되나요?”
“뭐?”
“영주님도 같이 싸워봐서 아시잖아요. 이 사람 실력이 너무 아까워요. 그리고 원한 같은 감정은 없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루이스 황자에게 충성하는 것 같지도 않고요.”
“그, 그건 사실이오.”
마키아스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가 처형됐소. 내 아버지는 세무관이지 반란 같은 것에 가담할 리가 없소. 그러니 루이스 황자에게 충성을 바칠 생각은 없소.”
“응? 그대도 살고 싶은가?”
“당연하지 않소.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소.”
“근데 살려주기엔 위험부담이 커서 안 되겠어.”
에테나가 다시 끼어들었다.
“엘프 속담에 두 번째 기회를 주면 간도 쓸개도 다 바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디언 제국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으니, 영주님께서 거둬주시면 충성을 바칠 겁니다.”
“내가 아는 속담 중엔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속담도 있지. 인간은 상황에 따라 쉽게 변절하거든.”
“난 그런 사람은 아니오.”
마키아스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내가 비록 강등당하고 좌천됐지만, 마장기를 다루는 실력은 자신 있소. 그리고 어차피 가디언 제국에 다시 가봐야 난 역적의 자식이오. 평생 대수림을 전전긍긍하다 끝날 텐데, 차라리 두 번째 기회를 잡겠소.”
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부탁하는 자세가 영······.”
갑자기 마키아스가 무릎을 꿇었다.
“살려주십시오.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타일러 영주님, 살려주세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대가?”
에테나는 간절한 표정으로 내게 부탁했다.
“저희 엘프도 처음엔 영주님을 믿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영주님께서 저희를 살려주어 두 번째 기회를 주셨고, 지금은 이렇게 함께 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이 사람에게 기회를 한번 주세요.”
난 짧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했다.
“대신 이 자가 도망치거나 변절하면 그대 목숨을 걸 수 있겠는가?”
에테나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알겠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제 목숨을 내놓겠습니다.”
“좋다. 풀어줘라!”
에테나는 마키아스의 결박을 풀었다.
마키아스가 에테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왜? 왜 처음 본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거요?”
“저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타일러 영주님은 인재를 매우 아끼시는 분입니다. 영주님 곁에 그대 같은 뛰어난 실력자가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도 저를 위해 목숨까지 거셨는데······.”
에테나가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공을 세우시면 영주께선 분명 마키아스님의 진심을 아실 겁니다. 그보다 어서 주군께 인사를 드려야지요.”
“아!”
마키아스가 나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주먹을 심장에 댔다.
“신 마키아스 알브레, 타일러 영주님께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마키아스 경, 내 그대의 맹세를 믿어 보지.”
“감사합니다. 영주님!”
그는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난 에테나에게 살짝 윙크했다.
그리고 에테나도 나를 보며 윙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