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n's humanity is a little weird RAW novel - Chapter 14_3
“이브…… 이브가…….”
그가 허공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희게 질린 그 얼굴 위로 짙은 공포가 서려 있었다.
“이브……!”
절망이 뒤섞인 목소리가 밤하늘을 괴롭게 울렸다.
* * *
“이보네 님! 이보네 님!”
늦은 밤중, 체르니시아 저택의 문을 두드리는 손님이 있었다.
마침 아이들을 재우고 아래로 내려오던 나는 늦은 시간에 찾아온 손님을 직접 맞이했다.
“무슨 일이지요?”
행색을 보아하니 황궁의 기사였다.
황궁 기사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내게 외쳤다.
“폐, 폐하의 상태가 위독하십니다!”
“위독이라니……?”
“이보네 님께서 와 주셔야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동하며 하지요. 우선 출발을……!”
갑작스럽게 찾아와 인사도, 설명도 없이 대뜸 황궁으로 가자는 그 말에 당혹스러움보다 걱정이 덜컥 들었다.
지난번에 테오도르가 다친 것을 이미 목격했기 때문이다.
‘아니야. 괜찮을 거야.’
그래. 괜찮을 거야. 테오도르잖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애써 그는 괜찮을 거라 곱씹으며 겉옷 하나만 걸친 뒤 곧바로 말에 올라탔다.
황궁을 향하는 도중 기사가 내게 상황을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어둠에 반발하는 이들과 페르디난트의 추종자들이 손을 잡고 폐하를 습격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폐하께서 당하시고 벤야민 페르디난트가 탈출을 했습니다.”
“벤야민이…….”
“현재 황궁 내에 에른스트 황자님도 자리를 비우셔서, 바깥으로 사실이 알려지면 큰일 납니다.”
“…….”
궁금한 것이 많았으나, 일단은 말을 달리는 데에 집중했다.
어느덧 황궁 정문을 통과하여 황제궁 앞까지 당도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황궁 경비대가 아닌 황제의 직속 호위단이 황제궁의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린든 경!”
“아, 이보네 님!”
심각한 표정으로 기사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던 린든이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어떻게 된 거예요? 분위기가 왜…….”
“황제궁의 사용인들을 잠시 다른 곳으로 내보낸 참입니다.”
“네? 왜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테오도르가 급습을 당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응당 사용인들의 손이 필요할 텐데…….
‘어……?’
이때였다.
닫힌 황제궁의 문 안쪽에서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려왔다.
홱!
절로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이게 무슨 소리지요?”
“아, 이보네 님. 그게…… 실은…….”
린든이 절절매며 난처한 목소리를 내었다.
나는 그를 두고서, 닫힌 궁전의 문을 열어젖혔다.
“아윽……!”
그러다 곧바로 들려오는 신음 소리에 멈칫했다.
“아흑, 읏, 흐윽…… 안 돼…….”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이 안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이브! 안 돼……!”
처절한 비명 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테오도르였다.
그것을 알아차린 순간 나는 황량한 복도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테오도르……!”
“헉, 허억…….”
그러자 두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기고 있는 테오도르의 모습이 나를 반겼다.
“이브…… 이브…… 이브…….”
연신 내 이름을 부르짖던 그가 바닥에 몸을 만 채 끅끅 울었다.
그가 흘린 눈물이 바닥에 뚝뚝 고였다.
“테오……도르……?”
조심스럽게 그를 불러보았다.
그러자 그가 별안간 홰액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벌겋게 충혈된 두 눈과 마주친 순간, 나는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나도 함께 바닥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것만 같은 그 얼굴이, 꼭 죽은 사람의 것 같았다.
핏줄이 터져 붉게 충혈된 두 눈은 내가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폐하께서 어둠에 당하셨습니다. 가장 끔찍한 시간 속에 사람을 가두는 술식이라고…….”
어느새 내 뒤를 쫓아온 린든이 주절주절 설명했다.
“가장 끔찍한 시간……?”
“네, 가장 괴로운 기억을 극화시켜 영혼을 파괴하는 저주입니다.”
“말도 안 돼. 테오도르잖아요. 테오도르가 그런 것에 당할 리 없잖아요.”
“신체의 강함과는 별개의 일이라는 걸 이보네 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
나는 아랫입술을 꾸욱 깨문 채 테오도르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가 갇혀 있는 시간대를 왠지…… 알 것 같았다.
“미안해, 미안해, 이브…….”
왜냐하면…….
“내가 널 죽인 거야……. 내가, 내가 널…….”
테오도르는 계속해서 내 이름만을 읊으며 울고 있었으니까.
내가 죽음을 위장하고 달아났던, 그때.
테오도르는 그 시간대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우윽, 윽…….”
급기야 그가 울다 못해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 브, 우우욱…….”
그러나 몇 번을 게워 내도 나오는 것은 신물뿐이었다.
“기억이 극화된 탓에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하십니다.”
나는 테오도르와 한 차례 시간의 흐름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그 속에서 내가 떠난 뒤 괴로워하는 테오도르를 보았다.
사람들 앞에서는 멀쩡하게 국정을 운영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 그가 그러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브 로웰린의 죽음 이후 테오도르는 미쳐 버렸으며, 세상의 섭리를 어기면서까지 나를 되살리고자 했다.
어떻게든 내 죽음을 부정하고자 하였던 그의 몸부림이었다.
그와 함께 보았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저 시절의 그는 이따금 잠에서 깨어나 혼몽한 정신에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고 저처럼 숨이 넘어가도록 울었다.
“이, 이브…… 이브…… 내가, 헉, 내가…… 내가, 윽, 미안…… 미…….”
제대로 문장을 끝맺지조차 못하고 울음 섞인 숨을 토해 내는 그 모습이 내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저를 부른 이유는…….”
“폐하를 저 시간대에서 꺼내 주십시오.”
“어떻게 하면 되지요?”
“이보네 님이 죽었다고 믿고 계시니, 살아 계신 이보네 님을 보여 드리는 것만이 폐하를 저 시간대에서 꺼내 드릴 수 있다고 합니다.”
“…….”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테오도르에게 다가갔다.
“이브! 안 돼, 이브……!”
그사이 테오도르는 벌떡 일어나 고함을 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앞에 멈추어 섰다.
“테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
“이브……. 이브…….”
그러나 그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계속해서 나를 찾았다.
“테오!”
나는 그의 얼굴을 양손으로 덥석 붙잡아 내 쪽으로 고정시키며, 그의 이름을 소리 내어 크게 불렀다.
그러자 테오도르가 멈칫하였다.
“이……브……?”
마침내 그의 초점이 내게로 맞춰졌다.
그의 동공이 가늘게 떨렸다.
테오도르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래, 나야, 이브. 나 여기 있어.”
“이브……! 살아, 살아 있었어……!”
테오도르가 가쁜 숨과 함께 울음을 토해 냈다.
“살아 있었어! 이브가, 이브가 살아 있었어!”
주르륵, 흘러내린 눈물이 그의 얼굴을 감싸 쥐고 있는 내 손을 함께 적셨다.
테오도르는 그 자리에 선 채로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흐윽, 흑, 이브, 내가, 내가 미안해, 내가…… 내가, 널…….”
서럽게 울던 그는 이내 지쳐서 픽 쓰러졌다.
쓰러지는 테오도르의 몸을 린든이 재빠르게 다가와 부축했다.
“괜찮은 건가요?”
나는 린든에게 기대어 있는 테오도르의 몸을 쳐다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조금 전에는 그의 상태에만 신경 쓰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몸의 상처 또한 심각해 보였다.
테오도르는 상의를 탈의한 채 복부에 붕대만 감고 있었는데, 지난번 보았던 그 상처가 또다시 터져 붕대를 흠뻑 적시고 있었다.
“몸의 상처야 금방 나으실 겁니다. 그보다는 정신 쪽이 걱정이지요.”
린든이 한숨을 푸욱 내쉬며 설명했다.
“당장은 이보네 님께서 와 주셔서 폐하를 진정시킬 수 있었지만…… 이건 임시방편입니다. 시전자를 찾아 술식을 제거하지 않는 한.”
나는 눈을 감고 쌕쌕 숨을 내쉬는 테오도르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붉고 까슬해진 눈가에 자꾸만 시선이 머물렀다.
“벤야민이 달아났다고 들었어요.”
“아, 실은 에른스트 황자님께서 벤야민 페르디난트를 쫓고 계십니다.”
“에른스트가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린든의 말에 놀라 그를 쳐다봤다.
“에른스트까지 위험해지는 건……!”
에른스트까지 이 일에 휘말려 버리다니, 걱정이 더해졌다.
작은 장난에도 눈물을 글썽이곤 하던 에른스트가 걱정이 되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보네 님. 에른스트 황자님께서는…… 쉽게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른스트는 검도 못 쓰고 가호의 힘도 없잖아요!”
“아, 네, 뭐…… 정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믿을 구석이 있어 드리는 말씀이니…….”
린든은 어색하게 말끝을 얼버무리며 변명했다.
수상쩍었으나, 그의 말마따나 아무런 방비도 없이 에른스트가 홀로 그 뒤를 쫓았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 저는 폐하가 더 걱정입니다. 지금은 간신히 잠드셨지만, 눈을 떴을 때 이보네 님이 계시지 않으면…….”
임시방편이라고 하였으니, 내가 눈앞에서 사라지면 테오도르는 또다시 조금 전과 같은 반응을 보이리라.
“그렇다고 저택을 비운 채 테오도르의 옆에만 있을 순 없어요. 저택에 아이들이 있단 말예요.”
나는 아랫입술을 꾸욱 깨물며 대답했다.
내가 저택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 나를 찾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황궁으로 데려오는 것도…….
“저, 이보네 님. 그럼 폐하를 저택으로 데려가 주시면…….”
이때, 린든이 내게 제의했다.
처형을 이틀 앞둔 날, 밤.
벤야민은 타의에 의해 탈출하게 되었다.
사전에 그와 협의되지 않은, 그의 추종자들이 벌인 짓들이었다.
“벤야민 님!”
“그간 얼마나 고초가 크셨습니까!”
“테오도르 황제, 그 망할 작자가……!”
벤야민은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
그러곤 말없이 몸을 돌렸다.
그는 이브를 떠올렸다.
자신을 차갑게 쳐다보던 그녀의 눈동자가 생각이 났다.
벤야민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그의 손등에 핏대가 흉흉하게 섰다.
“테오도르 황제는 곧 자멸할 겁니다.”
“어차피 에른스트 황자는 힘도 없지 않습니까.”
“알브레히트 황가를 무너뜨려야 합니다.”
“그 미친 황제가 테네브리스의 힘을 공인하겠다고 날뛴 덕에, 일이 쉬워졌습니다.”
그의 추종자들이 뒤편에서 저희끼리 떠들어댔으나, 벤야민의 귀에는 어느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더 이상 제게 웃어 주는 그녀를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벤야민은 많은 것을 포기했다.
그녀의 마음 한 자락도.
흘러가는 어여쁜 미소 한 줄기도.
그리고 두 번 다시 그녀의 친구나마 될 수 없는, 저 자신의 삶마저도.
하여, 그는 저를 찾아온 이브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미 내려놓은 삶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시간에 순종했다.
“테오도르 황제는 다시 재기하지 못할 겁니다. 고대로부터 전해 오는 가장 끔찍한 흑마법에 걸려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남자를, 벤야민은 힐긋 쳐다보았다.
“흑마법……?”
내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벤야민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러자 벤야민의 관심을 받은 남자가 기쁜 얼굴로 설명했다.
“네, 아시다시피 시전자의 피가 없으면…….”
* * *
테오도르는 꿈을 꾸었다.
이브와 사랑을 나누던 시절의 꿈이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었고, 더위를 싫어하는 이브가 퍽 좋아하는 계절이었다.
‘조금 더 따뜻하게 입고 다니면 좋을 텐데.’
테오도르는 셔츠 바람으로 돌아다니는 이브를 보며 생각했다.
아주 추운 날씨는 아니지만, 저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따뜻하게 입으라니까…….”
“뭐 어때.”
걱정이 되어 건넨 말에도, 그녀는 그저 까르르 웃기만 했다.
불어오는 바람결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하늘하늘 흩날렸다.
턱선 길이의 머리카락은 그사이 꽤 자라 빗장뼈 부근까지 내려왔다.
그녀는 유독 머리가 빠르게 자랐다.
그건 아마 강한 가호의 힘이 있는 덕일 테다.
이브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찮다는 듯 쓸어넘겼다.
비죽 튀어나와 있던 머리카락 몇 올이 그녀의 귓바퀴 뒤로 차분히 넘어갔다.
테오도르는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왜 그래?”
문득 그를 돌아본 이브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테오?”
한참을 대답하지 못하고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테오도르는, 뒤늦게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대답했다.
“……예뻐서.”
“뭐, 뭐야…….”
그러자 순식간에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브는 부끄러운 듯 시선을 데구루루 피하며 뺨을 긁적였다.
그 모습에 울컥 사랑이 샘솟아서, 테오도르는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자, 잠깐, 테오. 테오? 테오!”
이브가 제 어깨를 찰싹찰싹 때리며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테오도르는 그녀를 꽈악 끌어안고서 놓아주지 않았다.
제 품에 포옥 안기는 그녀의 온기가 좋아서.
너무 좋아서.
눈물 나도록 좋아서.
“테오……?”
조금 당황한 듯한 이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혹시 울어?”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울어.”
테오도르는 그녀의 어깨 위로 고개를 파묻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이브가 화들짝 놀라 외쳤다.
“잠깐만! 이거 놔! 얼굴 좀 봐야겠어! 우는 목소리잖아!”
품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리는 이브를, 테오도르는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싫어. 안 놓을 거야.”
테오도르는 고집스럽게 대꾸했다.
‘놓으면, 도망갈 거잖아…….’
그러다 문득 스치는 생각에 스스로 놀라 멈칫했다.
‘어? 이브가 도망간다니. 내가 왜 이런 생각을…….’
그 틈에 이브가 테오도르의 가슴팍을 화악 밀쳐냈다.
“뭐야! 우는 거 맞잖아!”
발갛게 부은 테오도르의 눈가를 보며, 이브가 버럭 외쳤다.
그녀는 화가 나고 속상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래? 누가 울린 거야? 속상한 일 있어? 내가 가서 다 혼내 줄게!”
이브는 마음씨 여린 테오도르를 누군가 괴롭혔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하여튼 테오, 너는 너무 사람이 착해서 문제야. 누가 괴롭히면 이렇게 훌쩍훌쩍 울지 말고 혼내 줘야지!”
씩씩거리며 화를 내는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테오도르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자 이브가 뭘 웃냐는 듯 두 눈을 샐쭉하게 떴다.
“안 되겠다. 내가 옆에 계속 있어 줘야겠어.”
“계속 있어 준다고?”
“응. 넌 너무 물러서. 내가 지켜 줘야 한다니까?”
이브는 꼭 공주님을 지키는 멋진 기사님처럼 말했다.
“지금도 지켜 주고 있잖아.”
테오도르는 키득키득 웃으며 그녀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었다.
어느새 눈물이 쏙 들어갔다.
아까는 왜 그렇게 서글펐는지 모를 일이다.
이브는 누군가 제게 실수라도 하면 늘 먼저 나서서 혼내 주곤 했다.
제 앞으로 슬쩍 나서며, 본래라면 제게 호되게 징벌을 당하였을 이들에게 단정한 말투로 훈계를 하는 것뿐이었지만…….
그런 이브의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테오도르는 기꺼이 관대한 마음으로 그들을 용서해 주었다.
테오도르는 이브가 좋았다.
너무 좋았다.
정말 좋았다.
그녀가 너무나 좋아서 정말 어쩔 줄 모르겠다.
양손으로 이브의 얼굴을 감싸 쥔 테오도르가 그 작고 예쁜 얼굴만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뭐야, 너 오늘 이상해…….”
이브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테오도르는 이브의 눈가에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사랑해, 이-브.”
테오도르는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면, 늘 그 이름 끝을 길게 늘여 부르곤 했다.
그럼 그녀는 두 뺨을 슬쩍 붉히면서도 수줍게 ‘나도…….’ 하고 대답했다.
그럴 때마다 테오도르는 그녀가 좋아서, 너무너무 좋아서, 끝도 없이 좋아서 미칠 것만 같았다.
나무 위에 올라 속닥속닥 떠들다가, 어느 틈에 그녀가 제 어깨에 기대어 스르륵 잠이 들었다.
한 겹의 얇은 셔츠가 역시 추워 보였다.
‘지난번에도 감기에 걸렸잖아.’
테오도르는 성력으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
그럼에도 안심이 되지 않아 자신의 옷을 벗어 그녀에게 덮어 주었다.
“사랑해.”
그가 자신의 코끝을 잠든 그녀의 코끝 위로 토옥 부딪치며 속삭였다.
“사랑해, 이브.”
몇 번을 토해 내도 부족한 사랑이었다.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 끝을 모른 채 커지기만 해서, 자꾸만 이렇게 흘러넘쳤다.
차츰 해가 저물고, 밤이 되어 갔다.
이런 곳에서 계속 자면 감기에 걸릴 것이다.
그 언젠가, 바깥에서 사랑을 노닐다가 그녀가 감기에 걸렸던 일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래서 저는 한동안 그녀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병간호를 하였고…….
아픈 그녀를 두고 중요한 행사에 참석하였다가 말 위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음……?’
문득 테오도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날의 기억이 흐릿했다.
‘이상하네…….’
테오도르는 묘하게 껄끄러운 기분을 느끼면서도,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그녀를 깨워 실내로 들어갈 참이었다.
“이브, 벌써 밤이야. 어서 들어가자.”
그러나 그녀는 일어나질 않았다.
“이브……?”
테오도르는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이브. 이브……?”
그래서 평소라면 일어나지 않는 그녀를 안고 침실로 돌아갔을 텐데, 그러지 않고 재차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이브, 어서 일어……!”
툭.
그녀가 테오도르의 품으로 쓰러졌다.
그럴 적에 그녀의 몸은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브! 이브!”
놀란 테오도르가 화급히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그녀의 심장이 뛰지 않았다.
이브가 죽었다.
“안 돼, 이브…… 이브……! 이브……!”
그가 죽은 이브를 끌어안으며 울부짖을 때였다.
-테오도르!
불현듯 어디에선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테오도르, 정신 차려!
테오도르는 뻑뻑한 눈가를 움직였다.
내내 감겨 있던 무거운 눈꺼풀이 그제야 들렸다.
“이……브……?”
느리게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자신을 걱정스럽게 내려다보는 이브의 얼굴이 보였다.
“이브……!”
테오도르는 상반신을 벌떡 일으켜 앉았다.
“잠깐, 테오도르. 그렇게 몸을 함부로 움직이면……!”
“윽…….”
그의 복부에서 또다시 핏물이 배어 나왔다.
그러나 테오도르는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두 눈으로 허겁지겁 이브를 훑었다.
꿈.
모두 꿈이었다.
이브는 죽지 않았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안도감이 밀려왔다.
테오도르는 이브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이브…….”
그가 연신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흐느꼈다.
“…….”
이브는 제 허리춤에 파묻힌 테오도르의 검은 머리통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커다란 강아지를 쓰다듬듯 테오도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직 밤이야. 더 자.”
“하지만…….”
테오도르는 섣불리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잠을 잤다가 또다시 이브가 사라질까 봐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