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eighbours RAW novel - chapter 16
“나한테 원체 눈을 못 떼시길래. 특히 이거.”
그가 제 오른쪽 귓불을 가리켜 보였다. 온전히 드러난 초승달 모양 피어싱이 샹들리에 빛에 반사돼 눈이 부셨다.
“그거야 연우재 씨가 아니라 그게….”
“보석 좋아하냐?”
“아뇨. 금… 관심 없어요.”
“금 아닌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호박색과 노을빛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빛깔은 아무리 봐도 금편(金片) 같은데.
“이리 와서 봐 봐. 가까이에서.”
연우재가 여상하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강아지를 부르는 듯한 손짓이 거슬렸지만 나는 순순히 일어나 그에게 향했다.
하지만 그가 먼지 털듯 탁탁 내리치는 옆자리에 앉지는 않았다. 최대한 거리를 둔 채, 엉거주춤 그의 귀를 들여다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더 눈이 부셨다. 태양의 한 부분을 초승달 모양으로 오려 낸 것 같았다.
“확실히 평범한 금은 아닌 것 같은데…. 혹시 다이아몬드?”
“맞아. 팬시 비비드 옐로라나 뭐라나. …맘에 들어?”
그의 어조가 은근히 누그러졌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소파 끄트머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까요….”
“응.”
“왠지 조폭… 같네요.”
“뭐?”
연우재의 어조에 다시 날이 서자 어깨가 절로 움츠려졌다.
“아니, 원래 조폭이 금 좋아하고, 아, 이건 다이아몬드지만…. 아무튼 이렇게 번쩍이는 거 좋아한다고 들어서요.”
“아, 됐어.”
그가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려 귓불을 다시 가렸다.
“맘에 든다고 했으면 주려고 했는데.”
뜬금없다. 잘은 몰라도 다이아몬드라면 값이 엄청날 텐데 그걸 내게 왜 준다는 건지.
그때 소파에서 일어나려다 손이 미끄러져 상체가 기울어졌다. 손바닥이 차디찬 대리석을 짚는 순간, 강한 악력이 내 팔꿈치를 잡고 단번에 끌어 올렸다.
“가, 감사합….”
엉겁결에 연우재의 옆에 바짝 붙게 되었다. 그 순간, 싱그러운 체향에 움찔 놀라 다시 주춤 뒤로 물러났다. 담배 냄새가 날 줄 알았는데 체취가 너무 좋았다. 머스크 향 비슷하면서도 인공적인 것과는 또 달랐다.
“앗….”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다시 몸이 중력에 이끌려 아래로 향했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기 직전, 커다란 손이 또 한 번 내 팔을 잡았다. 이번에는 팔꿈치가 아니라 어깨 아래 팔뚝이었다.
블라우스 반팔 소매를 비집고 들어온 단단한 손가락이 안쪽의 맨살을 거세게 움켰다. 그 감촉에 찌릿, 전율이 일었다.
“아, 이거…!”
본능적으로 그 손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연우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무섬증 같은 전율이 일었다. 발가락까지 곱아드는 감각에 나는 이 악물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그제야 연우재는 내 팔을 잡았던 손을 놓았다. 손도장을 찍기라도 한 듯, 그의 손가락이 닿았던 말랑한 살점이 홧홧하니 뜨거웠다. 불꽃이 확 올라왔다 저절로 소강된 것도 같았다.
“…괜찮아?”
시원스런 눈매에 염려가 떠올라 있었다. 내가 너무 아프게 잡았나, 중얼거리는 소리에 나는 그저 숨을 골랐다.
“괜찮…아요.”
바닥에 주저앉을 뻔한 게 다였다. 그게 다였는데, 심장이 터질 것처럼 숨이 차올랐다. 달아오른 양 뺨이 너무 뜨거워 연우재의 시선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미친 걸까? 겨우 살 좀 맞닿은 걸 가지고.
그것도 넘어지려는 사람을 일으켜 주려던 의도에 불과했다. 그 어떤 불순한 진의도 없이, 순수한 손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송은효.”
스스로를 꾸짖던 차, 연우재의 저음이 정수리 위에서 울렸다. 상쾌한 체취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내가 고개를 푹 수그리자 정말 어디가 안 좋은 줄 알았는지, 그는 가슴까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젖히며 뭐라고 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야, 나 좀 봐 봐. 진짜 어디 안 좋냐고.”
어느새 머리 밴드가 풀려 있었다. 하나로 단정히 묶었던 머리칼이 봉두난발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그때 커다란 손이 목으로 뻗어 와 턱을 그러쥐었다. 아프진 않았지만 다정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은효야.”
연우재의 눈이 코앞에 있었다. 길게 뻗은 속눈썹 아래, 한 쌍의 동공은 광활한 우주 한가운데를 유영하는 미지의 행성 같았다.
그 깊고 어두운 심연을 내 것에 담는 순간, 둔중한 울림이 북처럼 뇌리에 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연우재가 전경준의 치기 어린 훈계에 거칠게 반박했던 광경도 떠올랐다.
-씨발. 그럼 태어날 때부터 주위에 온통 개새끼들만 있었던 경우는? 자기 의지랑 상관없이 어릴 때부터 쭉 그런 환경에서 지내야 했다면? 그런 사람한테도 똑같은 개소리를 지껄일 수 있어?
내 처지를 콕 짚어서 일침을 놓았다. 마치 내가 살아온 세월을 정확히 알기라도 하듯이.
그래서 물어보고 싶었다. 혹시 나에 대해, 아니, 서광재의 액막이이자 더부살이로 살아온 송은효의 인생에 대해 이전부터 들은 게 있는지.
연우재 씨. 전에 말한 것 외에도, 나에 대해 아는 게 있나요?
“연….”
하지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풀물 냄새가 곧장 코로, 그리고 입 안으로 들이닥쳤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곧장 인지하지 못했다.
뜨겁고 말캉한 뭔가가 입속으로 틈입해 치열을 쓸다가 점막을 할짝대기 시작했다. 혀뿌리 쪽 침샘을 건드리던 것이 내 설단을 휘감고 나서야, 나는 그게 연우재의 혀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내 뒤통수를 한 손으로 받친 채, 제 혀를 내 입 안으로 밀어 넣고 내 것을 느리게 빨았다. 세상에서 그게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듯. 처음부터 우리가 여기 있던 목적이 그것이라도 되는 양.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건 한마디로 미친 짓거리였다. 연우재와 내가 키스를 하다니.
당장이라도 그를 밀어내고 여기서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경직된 어깨가 풀리며 허공에 들려 있던 두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 내 몸이 내 것 같지 않았다. 꿈도 아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꿈이 아님은, 내 혀를 제 것처럼 진득하게 빨면서 옭아매는 감각이 증명해 주고 있었다. 빗물을 흠뻑 머금은 풀잎, 혹은 사향처럼 몽환적인 냄새 역시도.
그는 내가 저항하지 않아서인지, 좀 더 부드럽게 내 혀를 맛보고 탐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하얗게 바래다 못해 안개가 낀 듯싶었다.
갑자기 몸의 감각이 마비라도 된 걸까?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타인의 타액과 혓바닥이 내 것과 맞닿는, 이 은밀한 접촉에 왜 아무런 저항감도 들지 않는 걸까. 왜 사지가 마비된 것처럼 이렇게….
그때 가슴 아래 묵직한 감촉이 느껴졌다. 연우재의 오른손이, 내 왼쪽 가슴 아래를 받치듯 더듬고 있었다. 속옷 속에 감춰진 정점이 도드라지며 뜨거운 열기가 몸 한가운데서 울컥 치밀었다.
동시에 가방 속에서 희미한 벨 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의 휴대폰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퍼뜩 정신이 들었다. 누가 뒤통수를 후려친 것 같았다.
“그만… 그만해요!”
바위처럼 단단한 어깨를 확 밀쳤으나 입술만 떨어졌을 뿐, 그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 반동으로 내 몸만 뒤로 밀려났고 나는 발딱 일어나서 호흡을 골랐다.
한 손으론 입술을 막고 다른 손은 그가 방금까지 더듬었던 가슴을 방어하듯 바짝 가렸다. 닿았던 속살이 떨어지자 흐려졌던 시야가 비로소 맑아지는 듯했다.
“지금… 뭐 하는, 뭘, 어딜 만진 거예요?”
나는 가빠진 숨을 고르며 연우재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잠시나마 취해 있던 쾌감은 스러지고 경계와 경각심만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는 담담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내려다보았다. 발갛게 물든 눈가, 촉촉하게 젖은 입술이 언젠가 농조로 ‘거기가 성감대인 줄은 몰랐네’ 지껄였던 얼굴과는 사뭇 달랐다. 그 역시 자신의 충동적인 행동에 다소 놀란 것 같았다.
“지금 나… 추행한 거 맞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