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119
119
내년에는 괜찮아지지 않을까?
““조져!””
이제는 연례행사가 된 연습생들과의 구호 시간을 끝으로 멤버들이 흩어져서 무대에 오르기 전 마지막 점검을 했다. 이안의 시야에 온통 검은색 옷에 검은 두건과 복면을 착용한 임노을이 보였다.
“노을이 이제 무대 올라갈 수 있어?”
“네!”
무대에서 대차게 넘어진 이후로 무대 공포증이 생겼던 임노을은 데뷔조를 솎아 내는 과정에서 극적으로 회생했다. 무대에 올라선다는 공포 보다 데뷔조에 들어가지 못한 공포가 더 컸다.
‘역시 데뷔가 걸리면 뭐든 잘하게 되는 건가.’
무대 위로 올라간 멤버들이 무대 위를 걸어 다니며 대략적인 폭을 잡았다. 세트를 밖에서 지켜봤던 거랑 직접 위에 서는 거랑 느낌이 달랐다.
“가까이서 보니까 디테일 쩌는데?”
“장식 조심해야겠다. 너무 뒤로 가면 머리 박겠는데.”
“여기 보석 빠져 있다.”
김주영이 무대 세트에서 떨어져 나간 크리스털 장식을 대충 주머니에 넣었다.
“팬들 없어서 아쉽다….”
“응원 없으면 재미없는데.‘
텅 빈 스탠딩석이 유난히 허무해 보였다. 오랜만의 무대인데, 팬들 없이 하려니 다들 기분이 축 처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녹화 진행할게요!”
“넵!”
빈 공간을 멍하니 바라보던 멤버들이 후다닥 자리를 잡았다.
* * *
간접등만 켜진 채 모든 조명이 꺼지고, 이 무대를 위해 이주혁이 특별히 작곡한 인트로 곡이 흘러나왔다.
검은 옷을 입은 백업 댄서들이 깃발을 들고나와 발을 맞추며 행진했다.
-ㅁㅊ개떨려
-무대돈냄새 오졌다
-어떡해 벌써 잘했다ㅠㅠㅠ무대 미쳤다ㅠㅠ
마치 개선식 같은 무대 구성과 웅장한 인트로에 본방 사수를 하던 팬들이 SNS로 실시간 반응을 올렸다.
화려한 두루마기를 걸치고 가죽 셔츠를 입은 멤버들의 손등에는 은색 체인 장식이, 바지 허리춤에는 노리개 장식이 움직일 때마다 너울거렸다.
“이 우주는 나의 발아래
내가 있어서 세상이 완성돼”
곡의 첫 소절은 조태웅이 장식했다. 이안과 이주혁, 그리고 보컬 트레이너의 집중 관리를 받은 그는 자신 있게 마이크를 들었다.
-미친 음색ㄷㄷ
-태웅이 미쳤다ㅠㅠㅠㅠㅠ
-조태웅 노래 엄청 늘었는데?
이어서 김주영과 김 현의 페어 안무와 노래 파트, 박서담이 노래를 불렀는데, 아직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근데 박진혁은 언제 나와?
-뭐야? 왜 없어? 의자도 없는데?
-다리 다쳐서 안나왔나
이안이 후렴구를 부르던 순간에도 여전히 박진혁이 보이지 않았다.
이때, 갑자기 곡의 분위기가 전환됐다. 둥, 둥, 북 치는 소리가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백업 댄서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드럼 소리를 시작으로 길게 늘어진 크리스털 장식을 거칠게 휘저은 박진혁이 무려 가마를 타고 등장했다.
-미친 진혁아ㅠㅠㅠㅠ존멋ㅠㅠㅠㅜㅠㅠ
-컨셉개돌았다ㅠㅠㅠㅠㅠㅜㅠㅠ
반바지를 입은 왼발에는 깁스를 하고 있었는데, 깁스에 크리스털 장식을 붙이고 그라피티 아트를 색칠해 하나의 패션이 된 것처럼 화려했다.
-ㄴㅇㄱ 이렇게 등장할줄이야
-개까리해ㅠㅠㅠㅠ
박진혁이 마이크를 들어 파워풀한 랩을 하고, 백업 댄서들이 그가 탄 가마를 무대 중앙에 내려놓는다. 댄서들은 가마를 들었던 손잡이 부분을 밑으로 내리쳐 가마와 손잡이를 분리한다.
“다 나가 내 세상에서
널 밀어 내 세계에서”
박진혁이 다리를 꼬고 여유롭게 카메라를 응시한다. 자신의 파트를 마친 그는 다치지 않은 오른발로 바닥을 차 의자를 돌린다. 등받이에 편히 기댄 박진혁은 백업 댄서가 의자를 잡아 줄 때까지 의자를 뱅글뱅글 돌렸다.
“으이구 아주 지 집 안방이야.”
오랜만의 방송 무대에 신이 나서 더 저러는 것이 분명했다. 앞에서 지켜보던 매니저, 박동수가 고개를 저었다.
박진혁의 의자를 지정된 위치로 옮기는 것은 주로 백업 댄서들이 맡았고, 멤버들은 그의 근처에서 자신의 파트를 소화했다.
-누가 박진혁 수납당한다고 했냐
-무대오졌다ㅜㅠㅜㅠ
-아위 노래좋네
-내돌도 아닌데 얘네 무대는 챙겨봄 무대 재밌어서ㅇㅇ 흥해라
‘발목 부상’ 진혁, 무대 수납은 없었다… 아위(AWY), “역대급 컴백쇼”
아위, N넷 컴백쇼로 화려한 귀환, 온라인 동시 스트리밍 접속자 폭증
컴백쇼를 성공적으로 마친 아위는 다음 주, 꽉 찬 음악방송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고기 회식을 했다.
“대표님이 너네 고기 먹이라고 카드 주시고 갔어.”
“와! 킹갓빛!”
“대표님은 안 와요?”
멤버들이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BHL엔터의 이병헌 대표는 아위를 이을 차기 남자 아이돌 그룹 론칭에 매진하고 있어서 요새 한창 바쁠 시기였다. 그래서 멤버들과 같이 식사를 하지는 못했다.
“걔네 내년쯤 데뷔할 예정이래.”
“벌써? 시간 개빨라. 원래 이렇게 빨리 데뷔해?”
“우리랑 블랙러시 형들이 텀이 길었지.”
아위가 향한 곳은 숙소 근처의 고깃집이었다. 그들이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식사를 하던 손님들이 술렁거렸다. 마스크를 끼고 들어왔어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친, 아위다.”
“누군데, 아이돌?”
“와 잘생겼어.”
칸막이가 설치된 구석 자리로 향한 아위는 고기가 나오기도 전에 신나게 밑반찬을 해치우고 있었다.
단체석 옆 4인 테이블에 앉은 매니저들이 질색을 했다.
“고기 나오기 전에 이게 뭐냐.”
“반찬 리필 좀 해 주세요!”
마지막 하나 남은 도토리묵을 젓가락 사투 끝에 가져간 사람은 조태웅이었다. 김 현이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돼지.”
“꿀꿀.”
조태웅은 얄밉게 입을 오물거렸다.
고기가 나오고, 역시나 김주영과 이안이 집게를 들었다. 이주혁이 사이다를 마시며 말했다.
“아까 동수 형한테 들었는데, 우리 NMA 나가기 전에 케이팝 콘서트도 나갈 예정이래”
“그것도 N넷에서 하는 거지?”
이안의 질문에 이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온라인으로 할 거래. 팬 없이.”
“올해는 응원 없다고 봐야겠네.”
이안의 말에 옆에 앉아있던 김 현이 고기를 집어 먹으면서 말했다.
“아까 진혁이 나오는 순간에 팬들 막 비명 지르고 그랬을 텐데.”
아위가 무대 구성에 참여하는 것도 ‘이렇게 하면 팬들이 좋아하겠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무관중 기간이 길어지니 무대가 할 맛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확진자 점점 낮아지더라. 겨울 전에는 코로나도 잠잠해지지 않을까?”
“야 최이안, 니 생각은 어때?”
조태웅의 질문에 쌈을 한가득 입에 넣은 이안이 웅얼거렸다. 멤버들 사이에서는 이미 공공연하게 무당이라 불리던 이안이었다. 이안은 과거를 곱씹으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내년에는 괜찮아지지 않을까?”
“그래?”
중간에 고비도 있지만, 올해 말과 내년부터는 활발한 활동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고기를 집어 먹었다. 이안의 말을 믿는 것 같았다.
“설마 진짜 믿는 건 아니지?”
“넌 무당이잖아. 미래 적중률 대박.”
“허, 내가 무슨 예언자야?”
이안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김 현이 말했다.
“예언자 맞지 너 예전부터 자잘하게 뭐 맞추고 그랬잖아. 신기하네, 어떻게 알았지?”
“…꿈에서 나왔어.”
멤버들이 오올, 감탄을 내뱉었다. 이안은 앞으론 입조심 해야지 생각하면서 괜히 물로 목을 축였다.
“식사는 괜찮으세요?”
그때, 식당 사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주방에서 나와 아위의 테이블로 향했다. 사장은 접시 한가득 고기를 담아와 아위의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저희가 이렇게 많이 주문했었나요?”
“서비스입니다. 팬이에요.”
“헐, 감사합니다!”
서비스라기엔 지나치게 양이 많은데. 멤버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장이 양손을 비비면서 말했다.
“있다가 사인이랑 사진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고기까지 받았는데 안 해 줄 수도 없고. 이주혁이 박동수를 힐끔 바라봤다. 박동수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좋죠, 고기도 주셨는데. 계산할 때 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사장이 활짝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까짓거 사진 한 방 찍어 주고 사인 해 주는 게 뭐가 어렵겠냐 하겠지만 이걸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안 그래도 추가 주문하려고 했는데 잘됐다.”
방문을 안 했는데 사인을 위조해서 ‘연예인 누구가 다녀간 집!’이라고 홍보하는 것들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진짜 방문했던 이런 식당의 사인을 따라 해서 올린다.
이주혁은 매니저들에게 고기를 나눠 주고 자신들의 불판에 고기를 와르르 쏟았다. 박서담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형 너무 많이 쏟았어요.”
“그, 그래?”
이주혁이 머쓱하게 웃었다.
아위의 쿡방은 요린이들의 폭주와 요잘알 삼인방이 고통받는 모습으로 팬들에게 반응이 아주 좋았다. 입덕 필수 영상으로 꼽기도 했다.
* * *
음원 사이트에 아위의 음원이 풀리고, 그들은 N넷 음악방송으로 음방 활동의 시작을 알린다.
-오늘자 기괴한 음악 차트.jpg
-와 차트에 아이돌 음악이라 들을 게 없어
-진심 차트개혁 필요하다
-작년부터 난 차트 안 보고 듣고 싶은 음악만 들음
아위의 곡이 대중성도 잡아가는 가운데, 팬들의 음원 총공과 합쳐져서 이번에도 가볍게 음원 차트 1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줄 세우기를 진짜 했네.’
이안이 TOP100 차트를 위에서부터 천천히 내려갔다. 아위의 앨범 아트가 줄을 지어 이어져 있었다. 이번 컴백은 정규 앨범이라 곡 수도 많았고, 심지어 예전에 발매됐던 곡도 팬들의 스트리밍 리스트에 껴 있어서 더 길게 늘어져 있었다.
-마이디어 군대가니까 이젠 얘네냐? 지겹다
-아니 다른 앨범은 왜 스밍하는거야?
-어쩌라고 팬들이 듣는다는데 ㅡㅡ 알아서 거르라고
-이걸 조장한게 수박차트인데 어떡해 수박차트에 항의하세요~~
인기와 팬덤이 많아지고 대형 아이돌로 들어서게 되면 으레 있는 현상이었다. 이안은 망돌 시절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을 하나씩 실천하는 것에 기분이 묘해졌다. 그는 줄 세운 음원차트를 캡처했다.
‘개혁 전에 줄 세워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어차피 미래에는 차트 개혁을 한다. 게다가 외국 음원 사이트도 한국에 들어오게 되면서 이런 기괴한 현상은 어느 정도 완화되긴 한다.
“새벽부터 기운들도 좋아.”
“뭐가?”
“아니, 우리 음싸 줄 세우기 한 거.”
“아, 나도 봤어. 우리 좀 오지는 듯.”
이안의 옆에 선 조태웅이 칫솔에 치약을 쭉 짰다. 이안이 조태웅을 지긋이 쳐다봤다.
“너 왜 여기 화장실 오냐? 니 방 화장실 써.”
“현이 형이 안 나와.”
“그럼 인정.”
김 현은 씻는 시간이 극도로 길었다. 늦잠을 자버린 조태웅은 화장실 사수에 실패했다.
그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멍하니 양치질을 했다.
“너 드라마 들어가지?”
“어, 토요일에 미팅 있어.”
음악방송은 무관중으로 진행하지만, 드라마나 영화 촬영은 점점 활기를 띠고 있었다. 그 시기에 맞춰 조태웅은 웹툰 원작 드라마에 캐스팅됐다.
“너는 아직 대본 보는 중?”
“엉.”
소속사는 들어온 캐스팅을 무조건 하라고 하지는 않았다. 무조건 당사자인 이안의 의사에 맡겼는데, 그래서 편하게 작품을 고를 수 있는 이안은 대본을 신중하게 물색 중이었다.
“배달원 카메오 들어갔을 때 이미지 때문인가 거의 피 땀 눈물이야.”
“그래도 그게 캐릭터 각인시키기엔 좋잖아.”
“그렇긴 하지.”
배부른 소리겠지만 예전처럼 아무 드라마나 들어가서 필모그래피가 난잡해지는 건 싫었기 때문이다.
“…많이 힘드냐?”
거울에 비친 조태웅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컴백 때문에 바쁜 데다가 드라마 캐릭터 연구 때문에 며칠 새 잠도 제대로 못 잤기 때문이다.
“원작이 있는 거라서 좀 피곤해….”
인기 많은 원작일수록 원작 팬들의 기대치는 높다. 조태웅의 캐스팅 소식이 들리면서 원작 팬들의 호불호 의견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장악했다.
“아… 많이 뭐라고 해? 인터넷 좀 끊어.”
“너나 끊어.”
조태웅이 발로 이안의 종아리를 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