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50)
256화. 서천무존 (3)
“…당 소저! 달아나시오!”
이벽의 외침이 쩌렁하게 퍼졌다.
“……!”
흠칫, 당려옥의 몸이 흔들렸다.
말 그대로 하늘 위에서 펼쳐지는 천외천(天外天)의 싸움을 넋 놓고 지켜보고 있던 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쐐애애액.
이벽이 상대하던 정체불명의 노인이 어느새 자신에게로 쇄도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다, 달아나야 해!’
당려옥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것은 독이나 암기 따위로 어떻게 해볼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죽지 않기 위해선 그저 이 자리를 피해야만 한다. 허나.
움찔.
그조차도 여의치 않았다.
‘용’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 의지와는 관계없이 몸이 떨렸고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후우욱.
그 순간, 이벽의 몸이 함께 떨어지기 시작했다. 예의 노인을 따라잡았고 검을 내뻗었다.
이내 두 사람이 다시 엉켜 들었다.
훅, 후욱.
허나 용과 하나가 된 노인의 몸은 거짓말처럼 이리저리 휘어졌고, 그대로 이벽의 검을 가볍게 피해버렸다.
“…으득.”
당려옥은 이를 악물었다.
이벽이 자신을 살리기 위해 저토록 애를 쓰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달아나는 것’조차 못한다면… 무인으로서 자격이 없다.
훅, 다음 순간 당려옥의 소매에서 비수가 흘러나왔다.
푸욱.
그리고 당려옥은 자신의 허벅지를 찔렀다. 날카로운 고통이 돌자 이내 번쩍 정신이 들었다.
타닷.
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대로 당려옥은 달아나려 했다.
후우욱.
“……!”
허나 그때였다.
지척에서 날아드는 칼날의 존재를 느낀 당려옥이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서걱.
날아드는 검을 가까스로 피해낸 당려옥의 머리카락 몇 올이 잘려 나간 채 허공에 흩날렸다.
“…쳇, 더럽게 굼뜨구만.”
검을 뻗은 공능자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못 도망가네, 소저. 아무래도 저 노고수께서는 ‘우리 쪽’ 어른이신 것 같아서 말일세.”
“…….”
당려옥의 시선이 공능자를 향했다. 공능자는 검을 쥔 한편, 다른 한 손으로 복부를 움켜쥔 채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는 일찍이 아미에서 이벽의 검에 의해 중상을 입고 산공독에 내력마저 금제 당했으나.
혼란을 틈타 일부나마 내력의 운용을 되찾은 모양이었다.
허나 일부라고 한들 그는 ‘청성제일검’이었으며, 그것만으로 당려옥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훅.
“핫! 그러게… 말조심하는 편이 좋지 않았나?!”
다시 한번 검이 뻗어졌다.
그리고 더는 피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이를 악문 당려옥이 암기를 마주 던지려던 그때였다.
콰아아앙!
“…컥!”
충돌음과 함께 달려들던 공능자의 몸이 옆으로 훅 밀려났다. 비척비척 간신히 몸을 가누었다.
“……?!”
“뭐해요! 안 도망가고!”
당려옥의 시선이 좌측으로 움직였다. 함께 마차를 타고 왔던 아미의 정연화가 장을 내뻗고 있었다.
“빌어먹을! 내가 왜 그쪽을 구해줘야 하는데! 은공의 뜻만 아니었어도!”
* * *
“큭……!”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든 막아서려 했으나, 그저 아주 조금의 시간을 늦췄을 뿐 끝끝내 정룡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이내 설상가상으로 저 아래에서도 일전이 벌어졌음을 확인했다.
쾅, 콰아앙!
정연화의 손에서 금빛의 장법이 연거푸 뻗어졌다.
상처를 움켜쥔 채 가까스로 균형을 되찾으려던 공능자의 몸을 연신 두드렸다.
콰앙, 쾅.
“하앗! 합—!”
“큭, 이런 하찮은 공격에……!”
정연화가 필사적으로 공능자를 저지하고 있었으며, 당려옥은 그제야 겨우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허나.
그녀가 제아무리 발버둥을 친들 정룡에게 따라잡히는 것은 결국 시간문제일 터였다.
“…….”
이벽은 정룡의 등을 바라보았다.
다시 한번 ‘따라잡을 수는’ 있다.
허나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조금 전, 맞서 싸울 때에도 이벽은 정룡에게 제대로 된 공격을 단 일 검조차 성공시키지 못했다.
하물며 마음먹고 이벽으로부터 달아나고 있는 지금, 그를 저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앞질러야 한다.’
상대를 요격할 수 없다면.
보다 빠른 속도로 앞질러서 어떻게든 일행을 데리고 이 자리에서 ‘튀는 수밖에’ 없다.
후욱, 쐐애애액.
이벽이 쾌의 묘리를 쥐어짰다.
몸을 두른 나뭇잎들이 공기의 흐름을 바꾸며 추락하는 이벽의 몸에 가속도를 더해주었다.
이내 정룡의 등이 가까워졌다.
훅.
그리고 마침내 이벽이 정룡을 앞질렀다. 역시, 속도에 있어선 근소하게나마 자신 쪽이 우위에 있었다.
허나 그때였다.
“클클클! 뭘 또 그렇게까지 기를 쓰고 쫓아오나? 저 계집이 자네에게 퍽 중요한가 보지? 미안하네만 그것만큼은 포기하시게!”
섬찟.
이벽은 위협을 느꼈다.
쩌억, 일장 정도 위에서 정룡을 감싼 용의 머리가 다시 아가리를 벌리는 것을 깨달았다.
‘피해야 한다.’
허나 피하려 해도.
‘휘어짐’에 있어 자신은 정룡보다 한 수 아래였으며, 곡의 묘리를 통해 그를 따돌리는 것은 불가능함을 이벽은 알고 있었다. 고로.
더 빨리 달아나는 수밖에 없다.
현재, 이벽은 이미 전력을 다해 쾌의 묘리를 펼치고 있었으나 그보다 조금 더 빨라질 수 있는 기예를 지니고 있었다.
‘…쾌보.’
허나 동시에.
쾌보란 본디 지면이나 벽에 발을 붙여 응축시킨 힘을 일거에 해방함으로써 속도를 얻는 기예였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허공에서는 ‘발 디딜 곳’이 없으므로 쾌보의 기예를 사용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콰아아아.
‘…정말 그런가?’
이벽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바짝 조여든 위기감 속에서, 이미 목천의 힘에 의해 느려져 있던 시간이 거듭해서 한계까지 잡아 늘어졌고, 머리가 달아올랐다.
“……!”
그리고.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이벽은 등천의 경지에 이르러 허공답보의 힘을 얻었다. 그리고 허공답보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딛고 서는 힘이다.
말 그대로 발판 따위가 없어도.
이벽은 이미 허공을 걸어 다녔다.
‘…없으면 만들면 그만이다!’
후욱.
이벽은 판단을 마쳤다.
그 순간, 마음이 움직였고 이벽의 몸을 두르고 있던 나뭇잎 한 장이 소리 없이 이벽의 발아래로 향했다.
찰싹, 밑창에 달라붙었다.
“……!”
그리고 그 순간.
예상치 못한 감각이 스쳤다.
‘이 감각은… 뭐지?’
그것은 오히려.
지면을 밟는 것보다도 훨씬 안정적인 감각이었다. 찰나의 순간, 발아래에서 놀랄 만큼의 힘이 응축되었다.
콰아아아.
허나 그때.
이벽은 벌어진 용의 입이 마침내 바로 등 뒤까지 다가선 것을 느꼈다. 더는 생각하고 있을 틈이 없다.
파아아아앙.
다음 순간.
이벽의 신형이 ‘사라졌다’.
콰드득.
그리고 용이 허공을 깨물었다.
흠칫, 정룡의 눈이 흔들렸다. 허나 그 순간에는 이벽은 이미 저만치 지면에 착지한 후였다.
타앙, 훅.
“…이익!”
등 뒤로 다가선 인기척을 느낀 당려옥이 황급히 비수를 휘둘렀다. 덥석, 허나 그 손은 저지당했다.
“나요, 치지 마시오.”
“…소, 소협?”
“실례해도 되겠소?”
“…아, 네. 그럼요.”
덥석.
이벽은 한쪽 팔로 당려옥의 허리를 대뜸 감아서 안아 들었다. 탕, 그리고 땅을 박차며 몸의 방향을 틀었다.
“클클클클!”
허나 그때였다.
다시 웃음소리가 들렸다.
“자네는 영 질리지가 않는구만! 막간을 틈을 타 사소한 성취라도 얻은 모양이지? 자, 어디 다시 한번 보여주시게!”
콰아아아아.
머리 위로 용이 내리꽂혔다.
파아아아앙.
이벽은 다시 한번 땅을 박찼다.
쾌보를 펼치며 가까스로 공격의 범위를 벗어난 이벽이 저만치의 공능자와 정연화에게로 다가섰다.
서걱, 콰앙!
“큿! 열받게 하는군 그래!”
그리고 그즈음, 마침내 몸을 추스른 공능자가 일검을 휘두르자 정연화의 장이 분쇄되었다.
움찔, 정연화의 몸이 흔들렸다.
마침내 여기까지임을 직감했다.
공능자의 상태가 엉망이었기에 잠깐의 시간을 끄는 게 가능했을 뿐, 애당초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던 것이다.
우우웅.
‘은공, 부디 아미를……!’
뻗어지는 공능자의 검에 맞서 정연화가 마지막 장력을 뻗어내려던 그 순간이었다.
서걱.
“…커억!”
파육음과 함께.
공능자의 몸이 흔들렸다.
“베… 벤 데를 또 베면 쓰나?”
한 마디와 함께 풀썩, 공능자의 신형이 무너졌다. 그리고 그 등 뒤로 한쪽 어깨에 당려옥을 들쳐 업은 이벽이 나타났다.
철컥, 이벽이 검을 거두었다.
“으, 은공……?!”
덥석.
“꺅?!”
“…실례하겠소.”
이벽은 당려옥과 마찬가지로 다짜고짜 나머지 한 팔로 정연화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파아아앙.
이벽의 몸이 쏘아졌다.
양팔과 양어깨에 여인네를 한 명씩 들쳐업은 채, 이벽이 쏜살처럼 내달리기 시작했다.
* * *
파앙. 파아앙.
이벽의 몸이 삽시간에 도시를 벗어났다. 길을 벗어나 숲속을 내달리는 한편, 이벽은 생각했다.
일찍이 공능자와의 일전에서.
이벽은 청강유엽공이 지닌 쾌의 묘리와 쾌보 사이에 약간의 어긋남이 있음을 깨우쳤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두 묘리가 서로 다른 무공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온전히 하나의 동작으로 합쳐지지 못한 채 그저 ‘연계 동작’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미묘한 틈으로 인해, 이벽은 공능자가 이룬 쾌검의 속도를 온전히 따라잡지 못했었다.
허나 조금 전.
정룡의 공격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이벽은 아무런 발판도 없는 허공에서 쾌보를 사용해야만 했고.
등천의 영역 속에서.
나뭇잎을 발판으로 삼았다. 그것은 대단한 깨달음이라기보다는 아주 작은 ‘착안’에 불과했다.
허나.
그 결과는 사뭇 놀라웠다.
파아앙. 파아앙.
실상 지면에 내려앉은 지금에 이르러서도 이벽은 계속해서 나뭇잎을 밟고서 쾌보의 기예를 펼쳤다.
그것은.
이벽의 의지에 따르는 나뭇잎이야말로 그 어떤 지면보다도 가장 이상적인 발판임을 깨우쳤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그 나뭇잎은 청강유엽공을 근간으로 하여 이벽이 이룩해낸 등천의 힘이기도 했다.
즉, 등천의 영역 속에서.
청강유엽공의 묘리와 쾌보는 발판의 나뭇잎을 매개로 마침내 ‘하나의 동작’이 되었고.
이벽은 공능자의 쾌검에도 결코 뒤지지 않는 속도와 그 속도를 다루는 안정성을 얻게 되었다.
파아아아앙.
등천의 영역에 이른 깨달음은.
그저 단순히 허공답보나 이기어검 따위의 ‘요란함’에 그치지 않으며, 생각하기에 따라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해진다.
이벽은.
다른 무엇도 아닌, ‘자기 자신의 무지’에 대한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었다.
“클클클! 클클클!”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벽은 정룡을 떨쳐내지 못했다.
저만치에서 허공 위를 걸으며 성큼성큼 뒤를 쫓아오는 정룡의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적어도 눈에 보이기에는 그랬다.
허나 이따금씩 그가 발을 내뻗을 때마다 애써 벌려놓은 거리는 거짓말처럼 훌쩍 좁혀져 버렸다.
그것은 마치.
극에 이른 곡의 묘리를 통해 이벽과 자신 사이에 남아있는 ‘거리 그 자체’를 휘어버리는 듯했다.
“여인을 둘씩이나 보쌈해서 달아나려 하다니, 거 보기보다 엉큼한 데가 있는 사내로군 자네!”
“……!”
다음 순간.
정룡의 목소리가 바로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파아앙, 그 순간 이벽은 황급히 좌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콰아아아아아앙.
그리고.
이벽이 나아갈 뻔했던 전면에 용의 머리가 거꾸로 꽂혀 들었다. 일순, 거대한 충격파와 함께 숲 전체가 들썩였다.
찌잉.
그리고 이벽은 현기증을 느꼈다.
등천의 힘을 쉬지 않고 사용하자 상단전에 무리가 가해지며 심력이 슬슬 한계에 부치는 것이다.
“…후우.”
다시 한숨을 뱉었다. 결국, 새로 얻어낸 쾌의 기예로도 끝끝내 정룡을 떨쳐낼 수 없음을 이벽은 깨우쳤다.
천하십대고수란.
등천의 깨달음을 얻은 이래, 세월 속에서 스스로가 지닌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이미 수도 없이 시험하고 검증을 마친 존재인 것이다.
탁.
이내 비교적 탁 트인 어느 공터에서 이벽은 걸음을 멈춰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