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81)
287화. 뜻밖의 개입 (2)
‘…무당!’
남궁하연의 얼굴이 굳었다.
난데없이 나타나 자신의 일검을 쳐내고 개방주를 구해낸 여인은 태극무늬가 새겨진 무복을 입고 있었다.
허나 무당에 여제자는 흔치 않으며, 그중에서도 자신의 일검을 쳐낼 만한 실력을 지닌 이는 더욱 드물다.
거기에 더해.
이 정도로 젊은 나이를 감안하면… 좁혀지는 이름은 단 하나뿐인 것이다.
“…어쩜, 소저께서 바로 그 태극무봉이시군요! 반가워요. 나도 소싯적엔 남궁가의 봉황이란 소리를 들었―”
“시끄러.”
송영영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덤벼, 남궁둥이 할망구.”
“…입이 퍽 험하군요. 하기사 무림의 여협이라면 응당 그 정도의 당찬 맛은 있어야죠!”
남궁하연의 눈이 가늘어졌다.
한편 그녀의 머릿속이 바쁘게 움직였다. 구 무림맹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자리에서 돌연 ‘정도맹주의 제자’가 튀어나온 것이다.
그 의미는 어쩌면―
“걱정 마. 나밖에 안 왔으니까.”
허나 그때, 그런 남궁하연의 생각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 다시 송영영이 말했다.
“…아, 그런가요?”
이내 남궁하연의 눈가에 주름이 깊어졌다. 자초지종이 어찌 되었건, 이미 상황을 재고 있을 시기는 한참 지나버렸다.
“정말, 어쩔 수 없군요. 무림의 선배로서… 그 젊고 탱탱한 몸에 예의란 걸 손수 새겨주는 수밖에!”
또한.
저 백옥처럼 고운 얼굴이 이제부터 고통으로 일그러질 생각을 하니… 몸이 달아올라 참을 수 없었다.
남궁하연이 입술을 핥았다.
휘릭.
다음 순간, 그녀가 날아올랐다.
“소저, 물러서시오―!!”
크윽, 철면개가 신음과 함께 다시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든 일검을 막아냈다 한들, 그 이상을 송영영에게서 기대할 수는 없다.
지난 오 년간 그녀가 얼마만큼의 성취를 이뤘건, 남궁하연은 이미 절정을 넘어 초절정의 경지에 다다른 고수다.
결코 후기지수로서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닌―
“비키라니까, 거지 아저씨.”
우우우웅.
허나 그때였다. 당연하다는 듯, 송영영의 검에 투명한 빛무리가 맺혀 들었다.
“……!”
철면개의 눈이 흔들렸다. 허나 송영영의 검은 비단 강기를 일으키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스윽.
다음 순간, 태극을 그렸다.
“호홋! 조금 아플 거예요!”
그리고 이내 지척까지 날아든 남궁하연의 검이 송영영을 향해 뻗어졌다.
후우욱.
“…어?”
허나 태극 안으로 검을 꽂아 넣은 순간, 남궁하연의 표정에 당황이 서렸다.
스르륵.
검신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강물 속으로 검을 빠뜨린 것 같은 모양새였다.
‘위, 위험해!’
일순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낀 남궁하연이 서둘러 검을 거두었다. 훅, 그 즉시 다시 몸을 뺐다.
탓.
이 보 바깥에 착지했다.
“…….”
타아앙, 채앵, 채애애앵!
그리고 사방에서 펼쳐지는 난전의 소음 속에서, 남궁하연은 다시금 송영영을 바라보았다.
송영영은 물러서는 자신을 추격하지 않았고, 그저 좀 전과 같은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고로 오간 것은.
단 일검뿐이었다.
‘절정? 아냐, 이건…….’
허나 그것만으로 남궁하연의 표정을 딱딱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검에 담겨있던 묘리나 서늘한 감각은 둘째치고서라도… 무엇보다 자신의 ‘공격 속도’에 반응했다.
말인즉슨 그것만으로 이미.
‘자신의 아래’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건 놀라운데요. 과연, 천하의 태극검존이 가타부타 제쳐두고 어린 여인을 데려다 냉큼 직전제자로 삼을 만해요.”
이내 남궁하연은 경시하는 마음을 버렸다. 마침내 여인이 아닌 무인으로서 상대를 바라보았다.
훅, 남궁하연이 검을 털었다.
“미안해요, 소저. 얼굴은 다치게 하고 싶진 않은데… 팔이나 다리 하나쯤은 잘라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던가. 할망구.”
“…호홋!”
훅.
남궁하연이 다시 날아올랐다.
휙, 휘익.
그리고 허공에서 연신 방향이 틀어졌다.
날개 역할을 하는 양쪽 소매가 모두 잘려 나갔음에도, 천리비연이란 별호를 지닌 그녀의 기민함은 여전히 제비와 같았다.
“…흥.”
허나 송영영은 콧방귀를 뀌었다.
스윽.
그리고 검이 다시 태극을 그었다.
남궁하연이 제아무리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닌들, 결국에 자신이 막아내야 할 것은 단 한 자루의 검뿐이다.
그리고.
태극은 그 모든 방위를 점한다.
후욱, 후우욱.
그리고 몇 번의 충돌이 이어졌다. 아니, 그러나 그것은 ‘충돌’이라 말하기도 어려웠다.
검과 검은 서로 닿지 않았고.
따라서 충돌음조차 일지 않았다.
“…크윽!”
남궁하연의 주름이 일그러졌다.
검을 뻗을 때마다 그곳에는 이미 태극의 벽이 자리하고 있었고, 자신의 검은 그것을 넘어설 수가 없었다.
딱히 ‘가로막힌’ 것도 아니었다.
허나 내뻗은 검이 벽에 닿은 순간, 물속을 휘젓는 것처럼 검의 움직임은 둔해지기 시작했으며.
그 이상 깊이 파고들면.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될 거라는 직감이 자꾸만 스스로를 물러나게 했다.
‘대체 뭐야 이 계집?!’
빠득, 남궁하연이 이를 갈았다.
태극무봉의 검은 방어일변도였으므로, 자신 역시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밀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허, 허헛!”
반면 철면개는 웃었다.
한켠에 물러선 채 일전을 지켜보는 한편, 호흡을 다스리며 엉망이 된 기혈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송영영에게 ‘잠깐의 시간벌기’를 맡겨도 괜찮으리란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무당의 무공에 대해 자세히 아는 바는 없으나 송영영의 검에서 느껴지는 현기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초식 안에 정해진 태극을 따라 그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온전한 이해를 통해 빚어낸 태극이었다.
초식을 벗어나.
자신만의 기예를 완성한다.
그것은 즉, 그녀 역시 이미 초절정으로 접어든 ‘목천의 고수’라는 의미였다.
‘…기재로군.’
불현듯 옛 기억이 스쳤다.
일찍이 혈교 세력에 의해 괴멸된 산서의 지하 분타에서 강시들을 상대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철면개가 보는 앞에서 찰나의 순간이나마 ‘강기’를 보여주었었다.
즉, 그때 이미 불완전하게나마 송영영은 절정의 문턱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초절정에 발을 들여놨다.
일찍이 비룡대주는 절정의 경지를 이룩했다는 것만으로 천하제일 후기지수라 불렸으나, 송영영은 이미 그마저도 넘어선 것이다.
“…….”
아니, 그러나.
이내 철면개는 하늘을 보았다.
콰아아아아아앙!
물론, 그 당시의 ‘천하제일 후기지수’였던 이는 어느덧 절대지경을 이룩하여 자신이 손도 발도 쓸 수 없었던 남궁세가주와 천외천의 싸움을 펼치고 있었다.
“…벌써 늙어버린 건가.”
아랫세대들의 성장을 바라보며, 고작해야 불혹을 넘겼을 뿐인 철면개는 문득 세월을 느꼈다.
“…크으윽!”
한편 남궁하연은 신음을 뱉었다.
불과 반 각도 되지 않아,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초식을 송영영에게 퍼부었으나 결과는 달라질 게 없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조차 않는 태극의 벽을 넘어설 수가 없었고, 적에게 상처 하나 입히지 못했다.
가늠할 수 없는 현묘함 앞에서 자꾸만 물러서 버리는 스스로에게 화가 날 지경이었다.
훅, 후욱.
“뭐해? 내 팔 안 자를 거야?”
“…그 입 닥쳐요, 이 건방진 계집! 힘줄을 모조리 끊어서 내 장난감으로 만들어주겠어요―!!”
격분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허나 남궁하연은 검을 뻗을수록 오히려 스스로가 점점 더 말려드는 듯한 감각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마치 검뿐만이 아니라… 온몸이 물속에 잠겨 서서히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대로는 안 돼!’
무인으로서의 직감이 속삭였다.
어느덧 가슴께까지 차오른 위기감 속에서 남궁하연의 머리가 바쁘게 움직였다.
후욱.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분명 상대의 검은 가볍지 않았으나, 어째서인지 그저 제자리에서 가만히 공격을 흘려보낼 뿐, 단 한 번도 추격이나 반격에 나서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번뜩, 남궁하연의 눈이 빛났다.
타앗, 즉시 제자리에 착지했다.
“호홋! 그래요! 어린 소저께서 잔재주를 제법 잘 부리는군요! 헌데… 검존께서 지키는 법만 가르치고 죽이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았나 보죠?!”
“…….”
“오호홋! 아쉽군요. 마음 같아선 이 자리에서 그 예쁜 피부를 핏빛으로 저며놓고 싶지만… 그것은 우선 이 전쟁을 이긴 다음으로 미뤄두죠!”
탓.
그리고 다음 순간.
남궁하연이 다시 땅을 박찼다. 허나 그 방향은 송영영을 향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좌측으로 멀어졌다.
‘승부를 포기하고 달아난’ 것이다.
“…아, 안 돼―!”
허나 그 순간 철면개가 기함했다.
애당초 그의 목적은 남궁하연의 발을 묶어둠으로써, 난전 중인 제자들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타아앙.
이내 철면개 역시 땅을 박찼다.
잠깐 사이 그러모은 한 줌도 안 되는 내력으로 어떻게든 남궁하연을 추격하려 했다.
허나.
“…커억?!”
털썩.
다음 순간, 놀랍게도.
그럴 필요가 없어지고 말았다.
등을 보인 채 달아나던 남궁하연이 돌연 갑자기 피를 토했다. 그리고는 추락하여 땅을 뒹굴었다.
“이, 이게… 커억!”
남궁하연이 재차 피를 토했다.
허나 그마저도 시작에 불과했다.
콰득, 콰드드득.
“…끄윽, 끅, 아아아악―!!”
돌연 그녀가 신음을 내질렀다.
검을 휘두르던 오른팔과 어깨를 시작으로, 온몸의 근육이 배배 꼬여들며 뼈가 으스러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무, 무슨?!”
당황한 철면개가 걸음을 멈춰 섰다. 어느 누구도 남궁하연을 공격하거나 상처를 입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돌연 아무 이유도 없이 몸부림치며 땅을 뒹굴기 시작했다.
저벅.
그리고 그때였다.
마침내 송영영이 걸음을 떼었다. 피를 토하며 몸부림치는 남궁하연에게로 천천히 다가섰다.
“멍청이.”
“…커어억, 허억! 헉…….”
그리고 남궁하연의 충혈된 눈이 송영영을 올려다보았다. 서늘한 눈빛을 마주한 순간, 이내 남궁하연은 패배의 원인을 이해했다.
무당의 검이란.
단순히 적의 힘을 흩어버리는 게 아니라, 그 힘을 고스란히 이용하여 적에게 되돌려주는 데에 묘리가 있다.
능유제강(能柔制强).
허나 자신은… 그러한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쉴 새 없이 공세를 몰아붙였다.
아니, 심지어는 몰랐던 게 아니라… 스스로의 직감을 계속해서 부정했다.
그리고 그 결과.
심신이 붕괴에 이른 것이다.
“…커헉, 쿨럭!”
남궁하연은 재차 피를 토했다.
허나 육체와 기혈이 이러한 지경에 이르기까지, 남궁하연은 아무런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다.
가랑비에 젖듯, 충격은 고요했다.
허나 그렇게 심신에 쌓인 충격이 임계점을 넘어선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고 말았다.
‘괴물… 괴물이야.’
부르르, 덥석.
“헉… 허억!”
부들거리며 힘겹게 뻗어진 남궁하연의 손이 송영영의 옷자락을 쥐었다.
그녀가 토해낸 피가 도복의 흰 옷자락을 붉게 물들였다. 허나 송영영의 표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자… 잠깐, 소, 소저……!”
“걱정 마. 죽이는 법도 제대로 잘 배웠으니까.”
“……!”
어떻게든 목숨을 구걸해보려던 남궁하연은 송영영의 차가운 목소리 앞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리고 돌연, 표정이 옅은 그 얼굴이 소름이 돋을 만큼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허나 그것은 여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무인으로서, ‘압도적인 존재’를 향한 경외감이었으며.
동시에 일찍이 절대지경의 경지를 이룩한 가주 남궁천승에게조차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커억, 헉! 당신은… 그렇군요. 어쩌면… 이런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요. 호홋!”
남궁하연이 피를 토하며 웃었다.
“자… 어서요 소저! 허억, 헉! 나를… 이 목을 예쁘게 베어주세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헉, 나에게 새겨주세요! 오호홋!”
“…기분 나빠.”
서걱, 툭.
송영영의 검이 휘둘러졌다.
남궁하연의 목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