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50)
358화. 뇌왕의 후예 (2)
“받아. 그리고 들어가 있어 이제.”
“…송 소저.”
“밥값 다 했잖아, 얼른.”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송영영의 흐릿한 두 눈동자가 파진성과 공손수를 번갈아서 바라보았다.
“…네, 소저. 때마침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덕분에 안 다치고 살았네요. 그렇기는 한데…….”
이내 공손수가 머쓱한 얼굴로 자신에게 내밀어진 비수를 도로 회수했다.
“…케헤헤.”
이어 파진성 또한 머쓱한 웃음을 흘렸다. 송영영이 아니었다면, 공손수의 폭철사에 도리어 자신이 당할 뻔했다.
다시 맹우강을 바라보았다.
송영영이 비무대 위로 올라섰음에도, 팔짱을 낀 채 여유로운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쳇. 예나 지금이나.”
파진성은 혀를 찼다.
허나 그러한 위기를 겪고 나서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파진성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순간.
공손수의 비수가 맹우강의 왼손으로 빨려 들어갔고, 정신을 차렸을 때 그 끝은 이미 자신의 지척까지 다다라 있었던 것이다.
“송영영. 저거 괴물이야 완전.”
이내 어렵사리 할 말을 찾았다.
“아무리 너라도… 혼자서는 힘들걸. 웬만하면 그냥 우리랑 같이 삼 대 일로 붙어보는 게 어때?”
“맞아요, 소저. 뭔가가 이상해요.”
공손수가 맞장구쳤다.
과거, 맹우강은 분명 사파제일의 후기지수였다. 허나 그렇다고 한들 이제 와 자신들이 열세에 처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허나.
파지직, 파직.
공손수는 다시 위화감을 느꼈다.
하물며 지금, 맹우강이 다루고 있는 힘은 흑천방의 비전무공이었던 흑천뇌기와도 ‘무언가’가 달랐다.
돌연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쏟아지고, 대뜸 먼 거리를 점하며 적의 무기를 강탈해버린다.
과거, 흑천방주 맹철극마저 그러한 신기를 지니고 있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이미 천하십대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벽이나 혁대웅의 상대는 아닐 터였다.
‘…아니, 어쩌면.’
공손수가 다시금 침음했다.
접전은 잠깐에 불과했으므로, 맹우강의 힘을 제대로 가늠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다만 분명한 것이 있다면, 조금 전 자신들을 상대로, 맹우강은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괜찮아. 알고 있어.”
그때 송영영이 답했다.
“…네? 알고 있다뇨?”
“저건 흑천방 따위의 힘이 아냐. 그 원류에 해당하는 천축 뢰음사의 무공이야.”
“……!”
“안 봐도 뻔하지. 비렁뱅이 꼴로 새외를 배회하다 우연히 천축의 땡중을 만나 절밥 좀 얻어먹었나 보지.”
공손수의 눈이 흔들렸다.
중원무림의 땅을 벗어난 새외지역에도 물론 이름 높은 무학이나 세력은 있다.
천마신교 또한.
중원을 침공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저 새외무림의 한 갈래로 분류되던 이들에 불과했다.
“거기에다가 마공까지 끼얹었으니… 너희가 저 녀석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해도 이미 너희들이 알고 있던 그 녀석이 아냐.”
“그렇…군요.”
무공이건, 성격이건.
맹우강은 과거의 맹우강이 아니다. 이내 공손수는 위화감의 정체를 막연하게나마 이해했다.
“그리고 나도 저 녀석 못 이겨.”
“…아니, 잠깐만. 그럼 더더욱 안 되잖아? 그러니까 우리랑 같이―”
파진성이 말을 받으려 했다. 허나 이어지는 송영영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담담했다.
“하지만 저 녀석도 날 못 이겨. 그러니까 괜히 ‘쓸데없는 승패’에 집착하지 말고 들어가서 운기나 해. 이 멍청이들아.”
“……!”
그 순간.
공손수는 말뜻을 이해했다.
밥값을 다 했으며, 승패는 쓸데가 없다. 즉.
‘진법을 위한 시간을 번다’는 본래의 목적이 이미 달성되었거나 혹은 거의 근접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훗.”
이내 공손수가 웃었다.
어찌 되었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더 이상 자신들의 영역이 아니다.
조금 전 우학과 덕수가 비무대를 떠난 것과 마찬가지로, 다음 사람에게 차례를 넘길 때가 된 것이다.
“파 소협, 이만 들어가죠. 한 판 붙어보니까… 잘못하면 외려 우리가 방해될 수도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스륵.
공손수의 비수가 소매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일순 파진성의 표정에 못마땅한 기색이 스쳤다.
“…헹, 알겠다. 잘 해봐라.”
철컹.
허나 이내 검을 거두었다.
저벅.
그리고 두 사람은 돌아섰다.
나란히 비무대 바깥을 향해 멀어지다 말고 공손수가 흘끔 뒤를 돌아보았다.
“송 소저, 근데요… 소저는 새외무림의 무공 같은 걸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예요?”
“난 알아. 나니까.”
“…아, 네. 아하하.”
이내 파진성과 공손수가 비무대를 떠났다. 고로 비무대 위에는 송영영과 맹우강만이 남았다.
저벅.
그리고 그 즉시.
송영영이 걸음을 떼었다.
말 그대로 맞은편의 맹우강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산책이라도 하듯 태연한 걸음걸이였다.
“…….”
물론, 맹우강 또한 가만히 있을 이유는 없었다. 재차 손을 뻗었고 손가락을 튕겼다.
콰르르릉.
다시 벼락이 쏘아졌다.
후욱, 파지지직.
허나 그 즉시 송영영의 검이 원을 그었고, 태극에 가로막힌 벼락은 산산히 분해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
맹우강의 미간이 흔들렸다.
저벅.
콰르르르릉, 콰르르릉!
이후, 송영영의 걸음걸음마다 계속해서 벼락이 내리쳤다. 허나 매 순간 송영영의 검은 이미 한발 먼저 원을 긋고 있었다.
파지지직.
태극의 벽은 굳건했고.
벼락은 송영영에게 닿지 못했다.
저벅. 탓.
그리고 마침내.
검을 뻗으면 맞닿을만한 거리에서 송영영이 걸음을 멈춰 섰다. 맹우강을 올려다보았다.
“…태극무봉 송영영.”
마침내 맹우강이 말했다.
“인상 깊군. 그 정도의 실력이라니. 심지어 내 무공의 연원을 짐작할 만큼 식견이 깊은 이가 적진에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
“허나 네 말대로 지금의 나는 불가의 진전을 이은지라… 너 역시 가능하면 죽이고 싶지는 않다. 용건이 있다면 오로지 이벽―”
“흥, 주접 싸고 있네, 마인 주제에.”
훅.
다음 순간, 태극에서 실타래가 풀려 나오듯 송영영의 검이 일직선으로 뻗어졌다.
파지지지지직!
그러나 동시에 텅 빈 허공에서 뇌기의 벽이 모습을 드러내며 검의 전진을 막아섰다.
후욱.
허나 송영영은 당황하지 않았다.
뻗어진 검끝이 작은 원을 그었다.
파지지직, 후우욱.
뇌기의 벽에 구멍이 뚫렸다.
그 즉시 검이 다시 파고들었다.
푸우욱, 파지지지직!
맹우강의 명치를 관통했다. 허나 다음 순간, 맹우강의 신형은 뇌기의 잔상이 되어 흩어졌다.
“…….”
그리고.
섬전처럼 일 장 뒤로 물러선 맹우강이 자신의 복부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 새겨진 작은 생채기를 확인했다.
“…핫, 하핫.”
이내 마른 웃음을 흘렸다.
“이거 실례했군. 적잖은 수행을 쌓았음에도… 나 역시 아직까지 과거의 오만함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던 모양이다.”
“알았으면 됐어.”
휙, 송영영이 검을 털었다.
잠시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혔다.
“헌데… 식견도 식견이지만, 뇌기를 상대하는 데에 있어서 퍽 익숙한 것 같군.”
맹우강이 다시 말을 꺼냈다.
송영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 소림에서 겪어봤거든.”
“…뭐?”
“죽은 흑천방주의 시신이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사방으로 벼락을 쏘아대던데… 꽤 성가시더라.”
꿈틀.
맹우강의 표정이 흔들렸다.
“아 미안, 혹시 네 아버지였니?”
“…잘 알았다. 널 죽이지 않고서는 이벽에게 도전할 자격이 없다는 뜻이로군.”
콰드드득.
맹우강이 두 손을 움켜쥐었다.
콰르르르르르르릉!
그리고 그 순간.
흡사 하늘에 구멍이 뚫리듯 열 가닥 이상의 벼락이 일거에 송영영을 덮쳤다.
후욱.
물론, 송영영의 검은 이미 머리 위로 태극을 펼친 후였다. 태극의 우산이 벼락을 막아섰다.
콰르르릉, 콰르르르르르르릉!
허나.
앞선 벼락이 태극에 의해 흩어지지기도 전, 이미 새로운 벼락이 그 위를 내리쳤다.
휘청.
송영영의 무릎이 흔들렸다.
과거, 흑천뇌왕 맹철극이 온 힘을 끌어모아야 간신히 펼칠 수 있던 ‘벼락의 소나기’가 맹우강의 손짓 한 번에 펼쳐진 것이다.
타아아앙.
허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음 순간, 뇌기의 잔상과 함께 쏘아진 맹우강의 신형은 이미 송영영의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철커덩.
그리고 마침내.
맹우강이 등에서 도를 꺼내 들었다. 머리 위로 검을 뻗은 송영영의 허리를 그대로 베어버리려 했다.
“흥.”
허나 다음 순간.
후우우우우욱.
송영영 또한 검을 내려찍었다.
뇌기를 흩어내는 한편 태극 안에 한껏 응축된 힘이 맹우강의 머리 위를 짓눌렀다.
콰아아아아아앙, 파지지지직!
* * *
“어때, 놀랍지 않소, 소저?”
황보준이 말했다.
“맹 아우가 나선 이상, 더는 소저가 나설 차례 따윈 없을 거요. 무얼 한들 끼어들 여지조차 없을 테니까.”
“…….”
제갈소미는 침묵했다.
말마따나 갑작스레 다가선 맹우강이란 자에게 비무대에 오를 기회를 빼앗기고 말았다.
콰지직, 콰르르르르르릉!
또한 말마따나.
강호에서도 보기 드문 뇌기를 통해 송영영과 박빙의 접전을 이어가는 그 모습은 쉬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박빙?’
아니, 심지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수세에 몰리는 것은 송영영 쪽이었다.
미세한 우열의 차이였으나, 제갈소미의 눈은 그와 같은 차이를 알아보지 못할 만큼 무디지 않았다.
“맹 아우의 힘은 이 황보준조차 감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니… 시대에 뒤처진 구 무림의 후기지수들 따위가 뭘 어찌할 수 있겠소?”
“…그렇군요.”
핫핫, 황보준이 유쾌하게 웃었다.
기실 그에게 있어 조금 전의 남궁환을 비롯한 몇몇 후기지수들의 죽음은 더는 기억에 남아있지조차 않은 일이었다.
“뭐, 그나마 상대할 가치가 있다면 저쪽의 잘난 ‘천하제일 후기지수’나 그 옆의 덩치 정도가 있겠소만. 무슨 꿍꿍이인지 별로 나설 생각이 없는 것 같군 그래.”
황보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은 물론, 맞은편의 권좌에 앉아 있는 이벽이었다.
낙검신룡 이벽.
기실 아버지 권왕이 놈에게 ‘황보의 성씨’를 하사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살려둘 생각 따윈 그다지 없었다.
또한 조금 전, 제남의 성문에서 놈의 실력을 가늠해본 직후에는 그러한 마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만에 하나라도.
놈이 정말로 투항하여 위대한 가르침을 이어받게 된다면… 그것은 자신에게 있어 그다지 재미있는 일은 아닐 터였다.
“뭐, 나로서는 아쉬운 일이오.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살아있기 어려운 녀석인데… 한 번쯤은 대등하게 손속을 겨뤄보고 싶었소만.”
“…….”
한편, 제갈소미는 생각했다.
마침내 송영영이 비무대 위로 나섰다는 것은, 환야의 진법 준비가 막바지에 다다랐음을 의미한다.
허나.
정작 그 진법을 발동시켜야 할 자신은 여전히 권왕의 지척에 발이 묶여있는 상태였다.
고로 차라리.
지금 이 순간, 의심을 사지 않고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비무대 위로 나아가고자 했다.
물론,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송영영의 도움을 빌린다면, 수많은 시선이 쏠린 비무대 한복판에서도 충분히 들키지 않고 진법을 발동시킬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계속되는 변수로 인해 꼬여버린 지금의 상황 속에서 제갈소미가 찾아낸 최선의 가능성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파지지직.
허나 또다시.
맹우강이란 변수가 나타났고, 자신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송영영 또한 검이 묶이고 말았다.
“…하아.”
이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여전히 방법이 없진 않았다.
즉, 맹우강 혹은 황보준이 문제라면… ‘누군가’가 송영영을 대신하여 비무대 위에서 그들을 적당히 붙들어주면 그만인 것이다.
그리고.
황보준의 말마따나 저편에는 그만한 실력과 자격을 갖춘 후기지수가 공교롭게도 딱 두 명이 남아있었다.
“…….”
허나.
제갈소미는 맞은편에 자리한 자신의 사제들이 ‘얼마나 강한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화정봉의 진법 속에서.
제 힘을 내지 못한 상태로, 태사부인 검선과 찰나의 검을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뿐이었다.
아니, 그러한 사실을 떠나.
좌우간 건방진 사제들에게 가급적 위험한 역할을 떠맡기고 싶지는 않은 것이 그녀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무엇보다도 지금 비무대 위로 나선다면, 진법을 발동시키는 순간, 자칫 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함께 말려들어 버릴 가능성이 있다.
‘…쯧, 쪽팔리네 정말.’
허나 현재의 모든 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그나마 최선의 방향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생각과 마음의 갈등 속에서 이내 제갈소미의 시선이 검존과 이벽, 혁대웅을 향했다.
콰아아아앙, 콰지지직!
한편 이벽 또한 고심에 잠겼다.
조금 전, 공손수와 파진성이 남궁환 등을 상대로 위기에 처했을 때에도 섣불리 나서려 하지는 않았다.
지금의 두 사람이라면.
상대가 제아무리 목천의 영역에 접어들었다고 한들, 쉬이 당할 리 없음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맹우강은 달랐다.
송영영의 분전으로 힘의 균형을 맞추는 듯했으나, 맹우강은 아직까지도 전력을 아껴두고 있다.
그리고 놈은.
자신과 싸우길 원하고 있다.
“벽아.”
그때였다.
“사저가 우릴 보고 있어.”
돌연 혁대웅이 말했다.
“……!”
이내 이벽 또한 시선을 돌렸다. 말마따나 제갈소미의 시선이 찰나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 사저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 것 같아. 아마 벽이 너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렇군.”
물론, 이벽 또한 다르지 않았다.
시선이 부딪힌 것은 찰나에 불과했으나, 한지붕에서 함께한 세월은 한두 해가 아니었다.
고로.
두 사람은 제갈소미의 눈빛이 뜻하는 의미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사제인 두 사람에게 좀처럼 ‘내키지 않는 부탁’을 해야 할 때의 눈빛이었다.
“아마도 머릿속이 많이 복잡한 것 같은데… 사저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탈이라니까. 그치?”
철컥.
혁대웅이 창대를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