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64)
66화. 낙검신룡 (2)
웅성웅성.
“지, 진짜야! 진짜 나타났어!”
“낙검신룡…! 하아, 어쩜 좋아! 가까이서 보니 얼굴까지 잘생겼잖아!”
“소, 소협께서 이쪽을 보셨어!”
“아냐! 날 보신 거야!”
“…….”
동정호는 바다처럼 넓다.
선착장에 묶인 커다란 배의 내부를 가로지르며 이벽은 파도처럼 밀려드는 시선을 느꼈다.
배의 내부에는 언뜻 보기에도 수십을 넘기는 후기지수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걸음걸음마다 양쪽에서 쏟아지는 눈빛으로 온몸이 질척하게 젖어드는 듯하다.
“…이렇게 잔뜩 모여있다고는 들은 적이 없다만.”
“케… 케헤! 아무렴 어때? 자고로 술자리는 대가리 수가 많고 시끄러울수록 즐거운 법이라고!”
“…….”
이벽은 파진성을 돌아보았다.
이벽의 뚱한 얼굴이 향하자 파진성이 머쓱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시선을 피한다.
그 뒤를 따르는 언미희와 공손수 역시 이벽과 마찬가지로 다소 얼이 나간 듯했다.
앞서 철면개가 처소를 다녀간 뒤, 이벽과 언미희, 공손수는 충격 속에서 각자의 생각에 잠겨 들었다.
숭산의 소림.
강호무림에 몸을 담근 이 치고 그 이름이 지니는 무게를 모르는 이는 없다.
수백 여년 전 하남 숭산에 자리한 이래 소림은 달리 태산북두라 일컬어지며 정파무림의 상징과도 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그 상징성은 정파 무림맹이 유명무실해지고 정도맹과 의혈맹으로 양분된 현재에 이르러서도 결코 퇴색하지 않았다.
—꼭 지금 당장이 아니어도 좋네! 우선 자네들의 ‘할 일’이 일단락되고 나면 개방에 연락을 넣어주시게. 내 언제라도 달려갈 테니 말일세!
“…….”
다만… 이벽의 머리를 어지럽히는 고민은 함께 소림으로 가자는 철면개의 제안 그 자체는 아니었다.
보다 근본적으로, 그런 제안을 받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현재 자신의 처지에 대한 것이었다.
드르륵.
“엥? 뭐야? 분위기 왜 이래?”
그리고 한발 늦게 처소에 나타난 파진성이 침중한 기색의 일행들을 둘러보았다.
어디서 술을 한잔 걸치고 온 듯, 파진성의 안색은 이미 콰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공손수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이후에도 파진성의 안색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덥석, 이벽의 팔을 붙들었다.
“헹! 방구석에서 머리 싸매고 있으면 뭐 하냐?! 생각은 나중에 하고 다 같이 술이나 마시러 가자!”
“….”
이벽은 뿌리치려 했다.
그러다 문득, 술을 떠올렸다.
얼마 전 만월무변심공의 깨달음을 얻을 때에도 결국은 파진성과 술의 도움을 받았음을 기억했다.
지금처럼 마음이 어지러울 때에는 한껏 취해보는 것도 어쩌면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파 소협, 분위기 파악 못 해요?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구요.”
“저는 술은 잘 못 해서… 시간도 이미 늦었는데 다음번에 다시 날을 잡는 게 어떨까요?”
공손수와 언미희가 말리려 했지만.
“너희들, 이 녀석이 취하면 어떻게 되는지 본 적 있냐? 응?”
움찔.
“케케케, 나는 본 적 있지롱! 궁금하지 않냐? 엄청 재밌어진다고. 평소에는 철벽같지만 의외로 빈틈이 나온다니까? 케헤헤!”
“…가끔은 괜찮겠죠, 언니?”
“그… 그러네요. 아하하, 그러고 보면 여태껏 그런 자리가 한 번도 없었으니까.”
이내 두 사람 역시 못 이긴 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비룡대 일행은 파진성의 뒤를 따라 금강회의 처소를 나섰다.
파진성은 일행들을 이끌고서 망설임 없이 밤길을 앞장섰다. 동정호의 어느 선착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퍽 호화로운 배가 준비되어 있었다.
대낮처럼 훤히 밝혀진 등불.
그 아래 즐비한 술상과 요리들.
그리고… 호남 사파의 후기지수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비룡대 일행을 바라보는 얼굴들이 등불을 받아 번들거린다.
모양새를 보아 이미 한참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듯했다.
이벽과 언미희, 공손수는 다소 어색한 걸음으로 배의 내부를 가로질렀다. 뱃머리의 비어진 상석에 앉았다.
그렇게 현재에 이르렀다.
“저, 정말로 모셔오셨군요……!”
“아, 고럼! 말했잖아? 내가 저기 비룡대주랑 그… 아주 막역한 사이라니까?!”
“형님… 존경합니다! 크흑!”
비룡대 일행들이 자리에 앉기 무섭게 파진성은 일행들을 뒤로한 채 후기지수들의 한복판으로 파고들었다.
탕탕! 가슴을 두드렸다.
금세 이곳저곳을 오가며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분위기를 주도하기 시작한다.
이내 배 안은 왁자지껄해졌다.
“…당했네요.”
공손수가 중얼거렸다.
“보나 마나 뻔하죠. 저 인간, 술김에 허세란 허세는 다 부리면서 오라버니랑 친분을 과시하다가 급기야는 직접 데려오겠노라고 호언장담까지 해버렸겠죠.”
“…아하하.”
“은근히 괘씸한데요? 선을 살짝 넘은 것 같은데. 콱 짐꾼으로 다시 강등시켜버릴까 보다.”
움찔, 파진성의 등이 흔들렸다.
“아… 저기, 파 소협? 가능하면 낙검신룡께 인사라도 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될까요?”
“아, 아니! 그러지는 말고! 저 녀석, 워낙에 검에 미친놈이라… 모르는 녀석들이 귀찮게 굴면 말보다 칼이 먼저 나온다니까?!”
“힉! 저, 정말요?”
“뭐, 뭐, 하지만 내가 있으면 갑자기 흥분해서 슥삭 하진 않으니까! 저쪽은 신경 쓰지 말고, 자, 마셔 마셔!”
“…….”
이벽은 약간의 두통을 느꼈다.
복잡한 생각을 해소하려 따라 나왔건만, 오히려 머릿속이 더욱 번잡해지는 기분이다.
“…그래도 나쁘진 않네요.”
그때, 언미희가 작게 말했다.
밤의 호수는 덥지도, 춥지도 않다. 바람 속에는 어느덧 봄의 기운이 조금씩 섞여들고 있었다.
배는 잔잔하게 흔들린다.
하늘에는 달이 떠 있고, 호수에도 달이 떠 있다.
“생각해보면 공자와 처음 만난 지 벌써 삼 개월 정도가 되었는데 그간 술 한 잔 올린 적이 없었네요.”
“…….”
“어쨌거나 모처럼 마련된 자리인데, 제가 한 잔 올릴 테니 부디 받아주실래요?”
“…알겠소.”
언미희가 작게 웃었다.
술병 하나를 집어 든 뒤, 고요한 몸짓으로 잔에 술을 따른다. 그 기품있는 모습에선 교육의 흔적이 느껴졌다.
이벽은 언미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과거에 대해서라면 이전에도 어렴풋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말해주지 않는 것을 묻지는 않는다.
누구에게나 과거가 있으므로.
“앗, 언니. 치사하게!”
그때, 공손수가 질세라 다른 술병을 집어 들었다. 콸콸콸, 잔 안으로 급하게 쏟아붓는다.
탁, 탁.
그리고 다음 순간, 양쪽에서 두 개의 술잔이 거의 동시에 이벽의 앞에 내밀어졌다.
“자 오라버니! 마침 좋은 기회가 됐네요! 언니와 저, 누구 거부터 마실 거예요?”
“아, 아하하…….”
“…….”
이벽은 양쪽을 번갈아 보았다.
언미희와 공손수는 웃고 있다.
허나… 그 교차하는 눈빛들 속에서 이벽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긴장감을 느꼈다.
섣불리 어느 쪽을 우선하여 집어들 수 없다. 그러나 다음 순간, 교착상태는 의외로 쉽게 해소되었다.
“…케헤, 어때? 가끔은 이런 떠들썩한 자리도 의외로 나쁘지 않지? 응? 근데 두 잔이나 따라놓고 안 마시고 뭐 하냐?”
덥석, 벌컥!
쭐래쭐래 일행에게로 다가온 파진성이 두 잔 중 하나를 냉큼 집어 들었다. 말릴 새도 없이 들이킨다.
“앗……!”
“크으, 죽이네!”
“…이 새끼가.”
공손수가 이를 악물었다. 파진성이 집어 든 것은 공손수의 잔이었다.
“응? 왜, 왜 그렇게 쳐다—”
퍼억!
“케헤헥!”
* * *
“소림이라니, 미친 것 같네요.”
문득 공손수가 말했다.
그것은 술자리를 시작한 지도 꽤 시간이 지나 어느덧 세 사람 주위로 두어 병의 빈 술병이 굴러다니던 즈음이었다.
맥락을 무시하고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이야기였지만, 물론 의미를 모르지는 않는다.
“…그렇군요. 냉정하게 생각하면 정파무림의 한복판이니까요. 아무리 철면개 대협의 이름이 높다 해도 무턱대고 따를 수는—”
“그런 거 말구요 언니.”
“…네?”
“출세했다 싶어서요. 사파 집안 딸내미로 태어나 언제 소림에서 초청을 다 받아보겠어요? 이히히!”
“…….”
“이것도 다… 히끅! 오라버니를 잘 둔 덕이겠죠. 그쵸? 히끅!”
이벽과 언미희가 동시에 바라보자 이히히, 공손수가 웃었다.
덥석, 다음 순간 공손수의 두 손이 이벽의 뺨을 붙들었다.
문질문질.
“이히히, 잘생겼다! 이히히!”
“…….”
“…소, 소저?”
히끅, 공손수가 딸꾹질을 했다.
“졸리다. 잘래요.”
푹, 공손수가 이벽의 어깨에 달아오른 뺨을 묻었다. 스르륵, 그대로 미끄러졌다.
풀썩, 이벽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채 공손수가 이내 고른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푸우, 음냐음냐…….”
“…….”
곯아떨어진 모양이었다.
“…아하하.”
언미희가 애매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공손수를 내려다보는 눈빛은 퍽 따뜻했다. 앳된 기색이 남아있지만, 공손수는 어엿한 무림인이다.
술에 취해 잠든다는 건, 함께 있는 이들에 대해 어지간한 신뢰가 없고서는 있을 수 없는 행동이다.
신뢰는 시간 속에서 자라난다.
다만… 이벽은 무게를 느꼈다.
“그러네요. 제안을 수락한다고 결정을 한 것은 아니지만… 괜찮다면 공자의 생각을 여쭈어도 될까요?”
“…아직은 잘 모르겠소.”
언미희가 물었다.
그러나 이벽 역시 결정을 내리지는 못한 상태였다.
대체 소림에 누가 있어 그를 찾는단 말인가?
아니, 그것보다도.
‘…사파무림을 넘어 장강 이북까지 나아가야만 하는 이유가 나에게 있나?’
이벽의 고민은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한 채 여전히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것은 마음을 퍽 답답하게 했다.
벌컥.
이벽은 술잔을 들이켰다.
그러나 마시면 마실수록 오히려 마음은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한 번 눈을 뜬 생각은 사라지는 일 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너무 부담 갖지는 말아요, 공자. 어떤 선택을 하건, 저희는 공자의 뜻을 따를 테니까요.”
언미희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러나 이벽은 그녀의 말에 오히려 가슴이 더욱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다시 잔을 채우려는 찰나였다.
텁, 손 하나가 어깨에 얹어졌다.
“케헤헤! 뭐 하는 거야? 이 많은 사람들을 놔두고서 왜 궁상맞게 혼자 자작을 하고 있냐? 앙?”
콸콸콸!
어느새 다가선 파진성이 술병을 거꾸로 뒤집었다. 이벽의 술잔을 넘치게 채워 넣는다.
“…우리가 이렇게 돈독한 사이였는지 내가 미처 알지 못했군.”
“에, 에이, 그러지 말고. 다들 널 보러 모인 거라니까? 저렇게 보고 싶어 하는데 한 번 어울려줘서 나쁠 거 없잖아? 앙?”
“…….”
이벽의 불편한 기색을 눈치챈 파진성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후기지수들을 향해 외쳤다.
“케케케, 자! 모두들!! 잔을 채워라! 비룡대주 낙검신룡 이벽을 위해 건배!!”
“건배!!”
“비룡대 만세!!! 비룡대주 만세!!”
“천하제일 후기지수 낙검신룡을 위하여!!”
기다렸다는 듯 아우성이 일었다.
잔을 들며 이벽을 향하는 수많은 눈빛에는 온갖 감정이 뒤섞여있다.
호의를 넘어선 동경.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기대감.
문득 이벽은 현기증을 느꼈다.
“자, 한마디만 해주라고!”
“…피곤하군. 먼저 가보겠다.”
탁, 이벽은 파진성을 뿌리쳤다. 다리를 베고 드러누운 공손수를 언미희에게 맡겨놓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 공자?”
“취, 취했냐……?”
“취하지는 않았다.”
탓.
다음 순간, 이벽은 배의 난간 밖으로 뛰어내렸다. 당연하게도 바깥에는 호수가 있다.
선착장에 메어 있는 배라고는 해도, 육지와는 서너 장 정도의 거리가 있다.
그러나 문제 될 것은 없다.
타다닷.
“오, 오오오!!”
“신룡께서 물 위를 달리신다!!”
“여… 역시 동정호의 용!!!”
이벽의 발끝이 수면 위를 디뎠다.
선우세가의 신법인 청강유엽신법은 강 위에 흘러가는 나뭇잎을 밟듯 표홀한 신법이다.
그리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내력의 운용이 능숙해지면 잠깐 동안 물 위를 달리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다.
물론, 술만 안 마셨다면.
탁, 풍덩—!
세 발자국이나 나아갔을까.
이벽이 물속으로 자빠졌다.
“으아악! 동정호의 용이 물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