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76)
79화. 등반 (3)
쿠당탕, 풀썩.
일장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벽은 한참을 날아가 쓰러졌다.
그리고 천소진의 일격에 할퀴어진 오른쪽 옆구리의 상처로 백룡강의 독기가 뱀처럼 파고들었다.
부글부글.
피가 굳어가기 시작했다.
쓰러진 이벽은 말마따나 피의 흐름이 조금씩 둔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쿨럭, 피를 토했다.
다시 일어서려 했으나 실패했다.
“….”
저벅저벅.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이벽은 다가오는 백룡강의 발소리를 느꼈다. 서서히 오한이 덮쳐온다.
이대로는 죽는다.
망설일 여지는 없다.
후우욱!
그 순간, 선천의 힘이 휘어졌다. 청강유엽공의 기운이 만월무변심공을 거쳐 이내 적파심공의 기운이 되었다.
그리고.
콰아아아!!
이벽의 주위로 살기가 들끓었다.
‘…이건.’
바로 그 순간, 이벽은 직감했다.
무언가가 다르다.
선천의 힘은 기다렸다는 듯이 적파심공의 경로를 내달렸다. 허나 뿐만이 아니었다.
그 경로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동촌장 목일령이 알려준, 증혈환의 힘을 이끌어 내는 구결이 심공의 경로에 ‘섞여들었다’.
“….”
콰아아아.
그것은 마치 본래부터 하나의 심공이었던 것처럼,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기세는 노도처럼 거세어졌다.
선천의 힘이 미친 듯이 경로를 내달린다. 선천의 힘 그 자체에서도 무언가 위화감이 감돌고 있다.
피 냄새가… 섞여들었다.
‘증혈환.’
이내 오한이 사라졌다.
부글부글.
오히려 들끓는 듯한 열기가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후덥지근하던 공간이 오히려 서늘해졌다.
슥.
이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쿨럭.”
그리고 기침을 했다.
“쿨럭, 쿨럭쿨럭! 커헉!”
피를 토했다. 시커멓게 굳은 핏덩어리가 목구멍을 타고 땅 위로 떨어졌다.
“네, 네놈, 대체 어, 어떻게……?”
“…하아.”
그때, 백룡강이 말했다.
슥, 이벽이 입가를 훔치며 고개를 들었다. 시야를 들어 백룡강을 향했다.
“개운하군.”
“……!”
불현듯, 살심이 치솟았다.
화정촌을 나와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목숨을 베었던 모든 순간들이 일시에 떠올랐다.
퍽 많은 이들을 죽였다.
‘달콤한 기억이군.’
작은 웃음이 스쳤다.
그리고 다시 저만치에서 뭐라 뭐라 지껄이는 백룡강을 보았다. ‘죽일 것’이 저기에 있다.
타앗.
이벽의 신형이 쇄도했다.
도살지도(屠殺之刀).
일 초식, 난(亂).
챙, 채앵!
그 즉시 도살지도가 펼쳐졌다.
황급히 막아선 백룡강의 왼손 위로 두 번의 충돌이 일었다.
“크— 애송이가!!”
백룡강이 그 즉시 반격하려 했다. 허나 이벽의 공격은 끝난 게 아니었다.
챙, 채앵! 챙!
세 번, 네 번, 다섯 번.
이벽의 검 끝에서 일 초식 난(亂)이 끝도 없이 반복해서 펼쳐졌다. 튕겨내면 되돌아오고, 튕겨내면 되돌아온다.
“큭!”
흡사 ‘난도질’ 그 자체.
그것은 겉보기에는 마치 무공도 뭣도 아닌 광인의 칼질처럼 보였다.
허나 상대하는 백룡강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챙, 채앵 채앵!
‘이… 이게?!’
초식과 초식 사이의 간격은 무서울 만큼 짧았다. 파고들 수 없으며, 오히려 튕겨낼수록 점점 더 빨라진다.
벗어날 수 없는 무간지옥.
왼손만으로는 막아내기도 벅차다.
슥, 스걱.
이내 백룡강의 몸 곳곳에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검끝에 피가 묻어나자 이벽은 더욱 유쾌해졌다.
“크핫! 크하하!”
생각보다 한발 먼저 몸이 반응하고 검이 춤을 췄다. 일말의 힘겨움조차 없이, 남의 일을 바라보듯 편안하다.
“크으, 이 괴물 같은 놈!!”
퍼어억!
다음 순간 이벽의 몸이 흔들렸다.
앞서 청강유엽검식에 의해 곤죽이 된 백룡강의 오른손이 옆을 파고든 것이다.
비틀.
이벽의 신형이 흔들렸다.
“크—”
백룡강의 인상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짓뭉개진 오른손은 더 이상 손의 형체조차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오냐, 잘 알겠다! 내 오늘 반드시 네놈의 사지근맥을 발라내고 신경을 남김없이 가닥가닥 끊어내고 말리라!!”
겨우 끊어낸 빈틈을 놓쳐선 안 된다. 백룡강의 왼손이 다시 이벽을 파고들었다.
채앵, 챙!
이벽의 검이 막아섰다.
허나 기세를 빼앗기고 말았다.
한 번의 공격을 허용한 대가로 다시 독기가 파고든 것이다. 일순 이벽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퍽, 퍼억, 퍼억!
그리고 성난 백룡강의 왼손이 이벽의 몸을 몇 번이고 두드렸다. 움찔움찔, 이벽의 몸이 경련했다.
“하! 어떠냐, 이노옴!! 어떻게 독을 토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디 한 번 다시 잔재주를—”
치이이익!
그러나 그때였다.
별안간 이벽의 전신 상처에서 연기가 일었다.
토해낼 필요조차 없이, 핏속에 스며든 독기가 빠르게 불타 없어진다. 그리고.
도살지도(屠殺之刀).
삼 초식, 참(斬).
채애앵!
이벽의 움직임이 회복되었다.
번뜩이는 일섬을 막아선 백룡강의 몸이 충격에 밀려나 몇 걸음 물러섰다.
치켜뜬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 말도 안 되는! 본가의 비독을 어찌, 네, 네까짓 놈이 만독불침이라도 된단 말인가?!”
만독불침(萬毒不侵).
그것은 천하에 존재하는 그 어떤 독조차 감히 해할 수 없다고 전해지는 전설상의 경지를 일컫는다.
“…….”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다.
증혈환의 힘을 더한 적파심공의 힘은 놀라웠다. 의식하지 않아도 내력은 스스로 독을 태워버린다.
뿐만이 아니다.
그 밖에도 이벽에게는 선천의 힘이 있다. 비록 내력 운용과 해독을 동시에 해내긴 어려울지라도… 독에 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크하하핫!”
이벽은 다시 웃었다.
그리고 백룡강을 향했다.
“뭐하나? 다시 안 오고.”
“……!”
“별거 아니군, 그래. 그 아비에 그 자식이야.”
독공의 고수는 위협적이다.
그것은 초식과 초식의 승부가 아니며 독기에 침입당한 순간, 막았어도 막은 게 아니게 된다. 허나.
반대로 독을 극복한 순간, 초식만 남은 그들의 무공은 반쪽만도 못한 것이 된다.
“이, 이이… 감히, 감히이이!!”
백룡강의 안색이 붉어졌다.
후욱.
백룡강의 왼손에 강기가 어렸다.
더 이상 ‘아들의 복수’나 ‘죽이는 방법’ 따위에 연연할 때가 아니다. 자칫 죽이기는커녕… 당한다.
“크아아아아!!”
타앗, 백룡강이 달려들었다.
한계까지 일으켜진 강기에 둘러싸인 왼손은 새하얗다. 가공할 독기가 느껴졌다.
“…….”
이벽은 인상을 찌푸렸다.
강기 만큼은 만만치 않다.
절정고수의 강기는 강기로써 상쇄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허나… 과연 지금의 상태로 가능할 것인가? 이벽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 즉시 대답이 돌아왔다.
‘안 될 게 뭐지?’
후욱, 부르르르.
이벽의 검이 거칠게 진동했다.
그리고 백룡강의 공격이 지척까지 다다른 순간이었다. 우우웅, 마침내 이벽의 검에 강기가 일었다.
피처럼 붉은 강기.
그것은 본래의 이벽이 다루던 청강유엽공의 내력이 모여든 푸른 강기가 아니다. 전혀 다른 종류의 강기였다.
“……!”
크, 이벽이 웃었다.
일순 백룡강은 두려움이 스쳤다.
대체 어떻게 되먹은 괴물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그보다 저 강기는… 불길하기 짝이 없다.
본능이 경종을 울렸다.
‘…이따위 애송이에게!’
허나 백룡강은 이를 악물었다.
온 힘을 다해 일장을 내뻗었다.
도살지도(屠殺之刀).
삼 초식, 참(斬).
콰아아아앙!!
닿은 순간, 두 강기가 폭발했다.
이벽의 몸이 흔들렸다. 백룡강의 독기가 사방으로 비산하며 다시 이벽의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허나.
그것은 대단치 않은 일이었다.
스윽, 서걱.
“컥, 커헉, 으아아악!”
백룡강이 비명을 내질렀다.
산산조각 난 이벽의 붉은 강기의 조각들이 일순 살아있는 나비처럼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그것은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
허나 그 짧은 순간, 강기는 백룡강의 온몸을 파고들었다. 근육을 베고, 장기를 끊고, 뼈를 으깬다.
왼팔은 고깃덩어리처럼 저며졌다.
“끄으, 으으으으……!”
털썩, 쿠웅.
백룡강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신형이 옆으로 기울었다.
“…….”
이벽의 담담한 눈이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치이익, 이내 이벽의 온몸에서 다시 해독이 이뤄졌다.
큭, 이벽이 작게 웃었다. 그리고 반대로 백룡강의 눈에는 절망이 어렸다.
도살지도(屠殺之刀).
이 초식, 륙(戮).
슥, 스윽.
이벽의 검이 움직였다.
“아윽, 어으으, 어으으으…….”
검이 스치고 지나가자, 과일의 껍질을 벗기듯 백룡강의 살점이 툭툭 깎여나갔다.
더는 저항조차 할 수 없다.
우우우웅.
그리고 이벽의 검이 울었다.
마무리로는 목을 참하고, 그 잘려진 단면으로부터 남은 공기와 함께 피가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남아있다.
훅, 이벽의 검이 휘둘러졌다.
채애앵!
그러나 그때였다.
어디선가 나타난 비수 한 자루가 이벽의 검을 막아섰다.
“……!”
실로 그림자와 같은 움직임.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여기까지만 하지 않겠나?”
비수를 쥔 이가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수의 애비 되는 사람이라네. 이 승부는 소협께서 승리했으니 내 얼굴을 봐서라도 부디 북촌장의 목숨만은 살려주게나.”
* * *
남촌장 공손욱.
사내의 얼굴에는 이렇다 할 특색이 없었다.
어디에나 녹아들기 쉬운 그 모습처럼, 지척에 다가올 때까지 이벽은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
이벽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불쾌함이 스쳤다. 마치 식사 중에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에게 숟가락을 빼앗긴 기분.
우우웅!
검과 비수가 바르르 흔들렸다.
“…자네는 대체.”
공손욱의 인상 역시 굳어졌다.
채앵!
이내 두 날붙이가 튕겨 나갔다.
이벽은 검을 추슬렀다. 그 순간, 훅! 환각처럼 사라진 공손욱이 저만치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단하군. 그래, 그렇게까지 꼭 마무리를 지어야겠다면 내가 상대를—”
탓
“아, 아빠!! 오라버니—!!”
그때였다.
방의 가장 맞은편.
위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훅, 이벽이 시선이 향했다.
“…공손수.”
이벽은 상대를 확인했다.
그 모습은… 다친 곳 없이 멀쩡해 보였다. 최소한 해독만큼은 잘 이뤄진 듯했다.
이벽은 내심 안도했다.
허나 눈이 마주친 그 순간, 공손수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오지 마라!! 물러서!!”
공손욱이 얼른 그 앞을 막아섰다.
‘…왜 그런 눈으로 보지?’
이벽은 작은 위화감을 느꼈다.
공손수는 동료다. 고로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저런 표정을 띨 이유가 없다.
후욱.
그때였다.
만월무변심공의 구결이 떠올랐다.
움찔.
이벽의 몸이 흔들렸다.
휘어지되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만월무변심공의 핵심 묘리였다. 허나… 과연 지금의 자신은 변하지 않았는가?
‘이것은 ‘내’가 아니다.’
우뚝, 이벽은 멈춰 섰다.
이벽은 내력 운용을 멈추었다.
우우웅!
“…큭.”
아니, 멈추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놀랍게도 선천의 힘이 저항했다.
적파심공을 멈추려 하지 않는다.
“…….”
이벽은 인상을 찌푸렸다.
흡, 호흡을 들이켰다. 그리고 온 심력을 다해 강제로 내력의 운용을 멈춰 세웠다.
쿠우웅!
이벽의 몸이 다시 흔들렸다.
“크윽, 우웁—”
털썩, 이벽이 주저앉았다.
“욱, 커헉! 컥!”
그리고 이벽은 피를 토했다. 이내 이벽을 둘러싼 핏빛의 살기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