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98)
# 61장 극(極) (1) #
천마기(天魔氣).
그것은 천마검에 있었던 흉폭한 검은 기운을 명칭화한 것이다.
단순한 기운이라고 치부하기에 천마기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천여운의 단전에 잠들어있었다.
천마기는 보통의 기운들과 다르게 파괴적이면서도 흉폭하다.
그렇기에 다루기 힘든 부분이 있어서 천여운 역시도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천마기를 개방하지 않는다.
‘크으윽!’
기를 폭증시키는 능력이 전부라고 여겼던 이 천마기는 놀랍게도 포식자였다.
그것이 반대 성향에 가까운 음기라고 할지라도 전부 먹어치우려고 들었다.
천여운은 이 천마기가 먹어치운 음기를 제어하기 위해서 원래 가지고 있던 양기를 배출시켰는데, 음기가 끝없이 들어오면서 오히려 균형이 어긋나버렸다.
-털썩!
막혀있던 모든 절맥이 뚫린 왕여군이 쓰러졌다.
‘됐다. 큭!’
이제는 그 자신을 얼어붙게 만들려고 하는 음기를 제어해야 했다.
천여운은 양기를 북돋게 하기 위하여 천마검공을 운기했다.
-고오오오오!
음기를 배출하는 편이 오히려 더 빠르지만 천마기가 그것을 먹어치우면서 체외로 배출시킬 수가 없었다.
천마기가 성향이 다른 음기를 천여운에게 맞게 변화시키고 있지만 그것을 기다렸다가는 기의 불균형으로 주화입마를 입을 판국이었다.
“쿨럭!”
운기를 하던 천여운의 기침에 피가 묻어났다.
천여운은 몸 안에 버티고 있는 음기만큼의 기운을 생성해냈다.
그런데 문제는 절대로 공존할 수 없는 두 기운이 체내에 있는 것도 모자라서, 천여운이 감당할 수 있는 범용치마저 넘어섰다.
내상을 입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스스스스!
[오장육부의 손상을 자가수복하고 있습니다.]넘치는 기로 인해 입는 내상을 나노머신들이 수복시키지 않았다면 진즉에 쓰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회복된다고 해도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천여운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균형을 맞추는 것만으로 턱도 없다…..기운들을 완전히 조화시켜야 해.’
음기를 버릴 수가 없다면 선택권은 오직 하나였다.
어떠한 무림인들도 시도하지 않은 극양과 극음의 기운의 조화.
‘어느 한 쪽을 비울 수 없다면 공존시켜야 한다. 상반된 기운이 부딪치지 않고 공존하게 된다면…..’
조화에 대한 고민에 사로잡혀 있던 천여운은 이윽고 무아의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아아!”
그렇게 공존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구음절맥의 음기와 천마기가 체내에서 부딪치지 않고 태극을 이루듯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오른손의 천마검에 흑색 강기와 왼손 백룡도의 새하얀 강기가 그것을 증명했다.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쳐다보고 있었다.
“처, 천 교주! 정신을 차린 겐가?”
그때 그의 앞에 다섯 보 정도 떨어진 곳에 대치하고 있던 무쌍검 왕전이 물었다.
그를 바라보는 천여운의 눈빛에 이채가 띠었다.
조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기운이 폭주하는 것을 발산할 때 누군가가 그것을 받아주었는데, 왕전이 틀림없었다.
‘감사할 일이구나.’
본능적으로 기의 방출을 도울 자를 찾았던 천여운이다.
오대 고수인 그가 없었다면 주위에 더욱 여파가 커졌을 지도 모른다.
천여운이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려 했다.
“왕전 공. 고맙….크윽!”
그때 천여운에게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났다.
그가 발산하고 있는 한기를 풍기고 있는 새하얀 도강이 검게 물들어갔다.
심지어 검은 검강에서는 차가운 한기가 발산되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왕전이 다시 한 번 놀라워했다.
방금 전까지 천여운은 공존할 수 없는 상반된 기운을 동시에 배출했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했는데 지금 일어나는 현상은 그 상반된 기운이 공존이 아닌 완전한 조화를 이루려고 하고 있었다.
“와, 왕 대협! 교주님께서 왜 저러시는 거죠?”
알 수 없는 현상에 문규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서 유일하게 천여운에게 일어나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자는 왕전뿐이었다.
왕전이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상반된 기운을 완전히 조화시키고 있네.”
파괴적인 성격의 천마기가 한기를 내뿜고 있었다.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도강과 검강에 오대 고수인 왕전조차 전율을 느낄 정도였다.
저 위력이 과연 어느 정도일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발산되는 기운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저게 인간이 가질 만한 내공이란 말인가?’
얼핏 느껴지는 기운이 아까 전에 대치했을 때보다 훨씬 강해졌다.
어쩌면 순수한 내공만으로는 천여운이 자신을 능가할 지도 몰랐다.
‘나조차 밟지 못한 영역으로 가고 있다.’
천여운에게 벌어지는 현상은 그것이었다.
-댕그랑!
바로 그때 천여운이 자신이 들고 있던 백룡도와 천마검을 떨어뜨리고서 좌선을 취했다.
갑자기 마당에 주저앉은 그의 몸에서 검은 아지랑이와 서리가 일어났다.
엄밀히 말한다면 검은 서리들이 주위를 두르고 있었다.
“아아아!”
모두가 그것을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천여운이 새로운 경지로 올라서고 있는 중요한 기점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우르르르!
객당 쪽에서 들려오는 굉음들과 거대한 기운에 지부에 있는 교인들이 몰려들었다.
허봉과 호상화가 객당 전각 쪽으로 가서 그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교주님께서 대공을 이루고 계십니다. 사람들을 물리세요.”
“그, 그게 정말이오?”
“중요한 대공에 방해가 되어선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소름 끼칠 만큼 강대한 기운에 놀라서 부리나케 달려온 지부장 대원이 객당으로 데려온 지부 무사들을 전부 물리게 했다.
가부좌를 틀고서 대공을 이루는 것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호법을 설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제 일 객당에 있는 모든 이들이 물러났다.
모두가 물러난 후에 왕전은 신의 감로수를 보채어 쓰러져 있는 왕여군의 상태를 살피게 했다.
“왕 대협. 성공이오! 체내에 폭주하던 음기가 가라앉았소.”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소. 일단은 경과를 지켜봐야 겠지만, 일단은 따님을 노부가 약당으로 데려가 상태를 더 확인해보겠소.”
“아아!”
간단한 진맥으로 딸의 무사함을 확인하자 왕전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눈시울이 붉어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게 긴 세월 동안이나 딸을 치료하기 위해 고생한 것을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이곳에 있는 약당으로 데려갈 터이니, 같이 가시겠소?”
“…..아! 저는 잠시 할 일이 있습니다. 신의 공. 제 딸을 부탁드립니다. 분아 네가 도와주거라.”
“네? 그럼 아버지께서는?”
“애비는…..천 교주에게 조금이라도 빚을 갚아야 겠구나.”
“아아! 알겠습니다.”
왕전은 아들인 왕분에게 신의 감로수를 도와서 왕여군을 약당으로 옮기게 했다.
딸의 상세가 괜찮아진 것을 확인하고 나니, 고마운 마음에 호법을 자처한 것이다.
객당에 남아있는 자라고는 무쌍검 왕전, 호상화, 허봉, 문규뿐이었다.
-쩌저저저적!
마당 바닥이 검은 빛 서리로 얼어붙었다.
‘소름끼칠 정도로 무섭고 차가운 기운이다.’
천여운을 중심으로 제 일 객당 전체가 흉폭하면서도 차가운 진기로 가득해졌다.
호법을 서고 있는 이들조차 견디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여기서 유일하게 영향을 받지 않는 자는 왕전뿐이었다.
“앗!”
-휘리리리릭!
그때 천여운의 몸에서 검은 아지랑이와 서리들이 회오리를 치더니 이내 밖으로 발산되던 기운들이 일제히 그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공존하던 모든 기운들이 조화를 이루는데 성공한 것이다.
-파스스스슥!
‘교주님의 몸이?’
‘갈라지고 있어!’
호법을 서면서 이를 지켜보던 수하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메마른 사막이 갈라지듯 천여운의 전신의 피부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현상을 모르는 자가 있겠는가.
‘환골탈태!’
환골탈태(換骨奪胎).
더욱 높은 경지에 오르면서 육신의 그에 맞게 변하는 현상이다.
화경의 극에 이르면서 한 번의 환골탈태를 겪었던 천여운이었다.
그런 그에게 두 번째 환골탈태가 찾아왔다.
-우득! 우득!
골격에 변화부터 시작해 피부가 들썩거리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한 번도 환골탈태를 보지 못했던 허봉, 호상화, 문규 등은 놀라움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 변화는 그들에게 진귀한 경험이었다.
한참 동안이나 갈라진 피부 속에서 변화가 일던 천여운의 움직임이 멈췄다.
‘끝나 건가?’
문규가 조마조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과연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파슥! 파슥!
‘아!’
그때 천여운의 몸에 갈라져 있던 피부 조각들이 타오르는 재처럼 허공으로 산화했다.
과거의 허물들이 산화하면서 천여운의 환골탈태한 새로운 모습이 드러났다.
새하얀 피부에 윤기가 있는 탄력 있는 근육.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육신이 있다면 이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만큼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일으키게 했다.
‘어머!’
-화끈!
천여운의 나신을 보았던 문규조차 괜히 얼굴이 더 상기될 정도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호상화는 애초에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허어!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왕전이 진심으로 놀라워했다.
방금 전까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기운을 발산하던 천여운이다.
그런데 이제는 완숙한 현경의 고수인 그조차도 기운을 감지하지 못할 만큼 완벽하게 갈무리하고 있었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반박귀진!’
반박귀진(反樸歸眞).
그것은 도가에서 모든 것이 본래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무림인들에게 있어서 반박귀진은 무공에 있어서 안과 밖의 기운을 전부 거두는 경지를 뜻한다.
천여운의 눈빛에는 강렬한 안광은 없었지만 혜안이 가득했다.
그런 그에게 왕전이 다소 흥이 올라간 목소리로 말했다.
“천 교주! 축하하네! 내 평생 목표로 한 경지에 올라가는 것을 이리 볼 줄이야.”
무쌍검 왕전이 목표로 한 경지.
그것은 완전한 현경의 경지를 말한다.
즉, 천여운은 극음과 극양의 조화를 이루는 도중에 내외의 조화마저 깨닫게 되면서 현경의 극에 오르게 된 것이다.
-팍!
천여운의 수하들이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대공을 이루신 것을 감축 드리옵니다!”
그들의 축하 인사에 천여운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음양 교합을 통해서 치료하려고 했던 것이 그에게 엄청난 기연을 가져왔다.
대단한 행운이라 할 수 있었다.
“천 교주.”
“말씀하시지요. 왕전 공.”
“새로운 경지를 밟았으니 그것을 시험하고픈 마음이 없소? 교주만 괜찮다면 내가 그것을 돕고 싶소만.”
왕전의 눈빛에는 호승심이 가득했다.
지금까지는 딸을 살리고 싶어하는 아버지였다면 이제는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전의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현경의 극에 이른 천여운과 겨루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다.
무림에서 몸을 감춘 후로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한 그에게 천여운은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출구였다.
‘아아!’
무릎을 꿇고 있는 수하들의 몸에 떨림이 왔다.
어찌 보면 이것은 오대 고수 중의 한 사람인 왕전이 비무를 청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환골탈태 전에도 잠깐 손을 섞기는 했지만 그것과는 의미가 완전히 달랐다.
‘오대 고수와 교주님의 대결!’
‘보, 보고 싶다.’
무인으로서 이 엄청난 대결을 보고 싶지 않을 이가 있겠는가.
호승심이 가득한 왕전을 잠시 바라보던 천여운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저도 청하고 싶은 부분이군요.”
마찬가지로 천여운 역시도 새로운 경지에 오르면서 깨달은 것을 시험해 보고픈 마음이 가득했다.
왕전이 고맙다는 듯이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그럼 장소를 옮기겠…”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왕 대협!”
그때 무릎을 꿇고 있던 허봉이 다급히 끼어들었다.
왕전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자 허봉이 진지하게 말했다.
“일단 교주님께 의복부터 드리겠습니다. 흠흠.”
그 말에 무릎을 꿇고 있는 문규와 호상화가 괜히 쑥스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그랬다.
천여운은 지금 실 한 올도 걸치지 않은 나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