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lithic Hunter RAW novel - Chapter 280
280화
“모두 돌아간다.”
내 외침에 무릎을 꿇고 있던 200여 명의 전사들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이빨만이 그대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설마…….’
이빨은 할아버지의 충신이다. 그러니 할아버지와 같이 죽으려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안 일어나는 겁니까?”
“저도 이곳에서 끝을 내고 싶습니다.”
나를 올려 보고 있는 이빨은 내게 부탁을 하는 눈빛을 보였다.
“안 됩니다.”
“저는 족장님을 모시던…….”
“제 할아버지께서 부탁하셨습니다. 하셔야 할 일이 많습니다.”
이빨까지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면 내가 내 하늘 부족을 이끌고 악어머리 부족이 사는 곳으로 갔을 때 또다시 피를 흘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를 도와야 합니다.”
나는 이빨에게 손을 내밀었고 내 손을 이빨이 한참이나 보다가 결심이 섰다는 눈빛으로 내 손을 잡고 일어섰다.
‘나 대신에 하실 일이 많습니다.’
* * *
“족장님께서 돌아오셨다.”
목책을 지키던 단단히의 외침이 내 귀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동시에 목책의 문이 열렸고, 연꽃과 제비꽃이 급히 뛰어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 아버…….”
제비꽃은 내게 악어머리 족장을 묻는 연꽃의 손을 지그시 잡고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어머니이신 제비꽃은 어떤 결과가 나올지 짐작하고 계신 눈빛이었다.
“흑, 흑흑흑…….”
제비꽃의 제지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는 연꽃은 울기 시작했다.
“울 거면 혼자 조용히 울어라. 승리하고 돌아오신 족장님 앞에서 우는 것은, 우는 것은…….”
어머니도 더는 연꽃에게 말하지 못하시고 울지 않으시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연꽃은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는지 바로 동굴 방으로 들어갔고 그 모습을 어머니께서 잠시 보시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셨다.
“또 한 번 하늘 부족을 지켜내시느라 고생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제가, 제가…….”
“족장님이 아니더라도 누구도 말리지 못했을 겁니다.”
이미 어머니께서는 외할아버지가 어떤 행동을 하실지 짐작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참 가여운 분…….’
어머니야말로 가장 가여운 분이실 것이다.
내가 전쟁에 승리한다면 동생과 아버지가 죽게 될 것이고, 내가 패한다면 아들이 죽는 모습을 볼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으니까.
“그래도!”
“악어머리 족장이셨어요. 족장의 외할아버지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것을 지킨 겁니다.”
어머니이신 제비꽃의 눈빛이 먹먹하게 변했다.
“……예.”
더는 어떤 말도 필요치 않을 것 같다.
“이제는 모두가 하늘 부족입니다. 족장은 이제 저들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니 마음을 다잡아야 합니다.”
여자는 약하다. 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 * *
땅속에서일어서의 하늘 부족은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누구도 웃는 사람이 없었다.
땅속에서일어서는 동굴에 있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안에서 잠그고 나오지 않았고, 땅속에서일어서를 위로하던 제비꽃도 저 멀리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빛이 걱정스러운 빛이 먼발치에서 그녀를 따를 뿐이었다.
“흑흑흑!”
아무도 없는 곳까지 온 제비꽃이 그제야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빛은 그제야 발걸음을 멈추고 제비꽃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리고 제비꽃은 한참을 울고 나서야 돌아서서 천천히 빛에게 다가왔다.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가슴이 아프다. 그랬었다.”
“……예.”
“가자, 울 만큼 울었다.”
제비꽃은 애써 슬픔을 감추고 하늘 부족 목책으로 걸어갔고, 빛은 그런 제비꽃을 말없이 따라 걸었다.
* * *
“엄마-!”
침울하기 짝이 없는 하늘 부족의 목책 밖에서 늑대발톱과 함께 2,000여 명의 씨족 사람들을 데리고 온 큰바위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엥? 너희들은 뭐냐?”
목책으로 뛰어온 큰바위는 목책 밖에서 패잔병처럼 앉아 있는 악어머리 전사들을 보고 물었다.
“우, 우린…….”
큰바위에게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전사가 말꼬리를 흐렸다.
“여기다.”
그때 늑대발톱의 목소리도 들렸고, 늑대발톱을 따라온 2,000여 명의 사람을 본 200여 명의 악어머리 전사는 넋이 나간 듯 멍해졌다.
“족장님은 어디에 계시지?”
목책 앞까지 도착한 늑대발톱이 땅속에서일어서를 찾았다.
“동굴 방 안에 계십니다.”
목책 위에서 여전히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던 단단히가 늑대발톱을 보고 뛰어 내려와 보고하였다.
“저들은 누구지?”
찰나의 순간 늑대발톱이 목책 앞 공터에 패잔병처럼 앉아 있는 악어머리 부족 출신 전사들을 보며 단단히에게 물었다.
“악어머리 부족의 전사들이랍니다.”
그제야 늑대발톱은 땅속에서일어서가 왜 그리 급하게 백색 늑대를 타고 떠났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땅속에서일어서가 이끌고 간 전사들보다 10배, 아니 20배 이상 많은 적과 싸워 승리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단하다. 족장…… 아니, 내 아들은 정말 대단하다.’
늑대발톱은 뿌듯한 무엇인가가 마음속으로 느껴졌다.
“모두 잡은 것들이냐?”
“이제 하늘 부족이랍니다.”
단단히의 말에 늑대발톱은 잠시 생각에 빠진 듯 아무런 말이 없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단단히에게 바짝 다가섰다.
“혹시 모른다.”
“예, 제 이름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단단히 지켜라.”
그러고 보니 돌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인지 패잔병처럼 앉아 있는 200여 명의 전사 주변에는 캭과 야수돌격대 그리고 컹과 멍이 포위하듯 앉아 있었고, 목책 위에 설치되어 있는 활들까지 그들이 앉은 공터로 겨눠져 있었다.
언제 가져다 놓았는지 알 수 없는 기름통들이 200여 명의 전사가 앉아 있는 사이사이에 놓여 있는 모습이 늑대발톱의 눈에 보였다.
돌발 상황이 발생하는 순간 목책 위에서 횃불 하나만 던져도 저기 앉아 있는 200여 명의 전사들은 활활 타 죽을 수 있게 준비되어 있었다.
“네가 저렇게 가져다 놓은 것이냐?”
“족장님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아픈 눈으로 동굴로 들어가셨습니다.”
단단히의 말에 늑대발톱은 놀라 인상을 찡그렸다.
“족장님께서 다치신 것이냐?”
“아닙니다. 울 것 같았습니다.”
“으음…….”
늑대발톱은 단단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제가 족장님 대신 저렇게 해 놓은 겁니다.”
“잘했다.”
늑대발톱은 그렇게 말하고 자신만 보고 있는 2,000여 명의 씨족 사람을 바라보다가 거산을 봤다.
“거산! 목장으로 가서 야크 10마리를 끌고 와라. 저들에게 뭐라도 먹어야 하니까.”
“예, 알겠습니다.”
거산이 짧게 대답을 하고 전사 20여 명을 이끌고 야크들이 있는 목장으로 뛰어갔다.
이빨은 늑대발톱이 이끌고 온 2,000여 명의 사람들을 보며 놀라움과 두려움을 느끼며 동굴로 들어간 땅속에서일어나를 떠올렸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악어머리 족장이 왜 땅속에서일어서를 이길 수 없다고 한 말이 이해가 됐다.
“이, 이빨 님…….”
그때 전사 하나가 놀란 눈빛으로 이빨을 불렀다.
“우린 절대 아니 누구도 땅속에서일어서 족장을 이길 수 없다.”
“그, 그렇습니다.”
“역시 족장님께서 옳으셨다.”
“그건 그렇고 저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자신들이 어떻게 되는지가 걱정이 되는 전사들이었다.
“모든 결정은 족장께서 하시겠지.”
이빨은 이 순간 땅속에서일어서를 족장이라고 말했고 그 말에 전사들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가 하늘 부족이다!”
단단히에게 야크를 끌고 오라고 지시한 늑대발톱이 돌아서서 넋을 놓고 보고 있는 2,000여 명의 사람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이제부터 너희들이 살 부족이다! 먹을 것들이 준비될 때까지 쉬어라!”
늑대발톱의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먹을 것을 준데요.”
“여기에서 살기에는 좁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해요?”
사람들이 늑대발톱의 눈치를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쿵! 쿵! 쿵!
그때 모두가 느낄 정도의 지축이 울렸다.
“뭐, 뭐야?”
패잔병처럼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전사들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늑대발톱만 보고 있던 2,000여 명의 씨족 사람도 지축이 울리는 근원지를 찾아 모두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저, 저거……!”
“거, 거대한…….”
지축을 울린 실체를 본 사람들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말꼬리를 흐리며 목책 쪽으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씨족 사람들 틈에 숨어 있던 아르메와 다른 검은얼굴들도 놀란 눈으로 자신들 앞에 나타난 것들을 노려봤다.
“아, 아르메 님…….”
“큰사람들이다. 말로만 들었던 큰사람들이야, 저들이 왜 여기에…….”
검은얼굴인 아르메는 예티의 존재를 아는 듯 중얼거렸다.
“예, 저도 들은 것 같습니다.”
“왜 갑자기 저것들이 나타난 거지?”
“설, 설마 이 사람들을 저 큰사람에게 주려고 끌고 온 것이 아닐까요?”
여전사 하나가 아르메에게 속삭였고 아르메도 인상을 찡그렸다.
“크, 큰사람들이다!”
그때 누군가가 소리를 쳤고 하늘 부족의 전사들이 창검을 겨눴다.
끼오옥!
하늘에서 끼옥의 요란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긴장할 것 없다.”
그때 어느 순간 목책으로 올라선 땅속에서일어서가 잔뜩 겁을 집어먹은 부족 사람들에게 소리쳤고, 모두가 목책 위에 서 있는 땅속에서일어서를 봤다.
“모두가 하늘 부족이다.”
* * *
‘나는 족장이다.’
그러니 내가 느낀 서글픔도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고 이 목책 위에 서 있다.
끼오옥!
내가 목책 위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끼옥이 힘차게 날아들어 내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끼옥!
“수고했다.”
끼옥?
내게서 묘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끼옥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시 한 번 울었다.
“괜찮다, 아무 일도 없었다.”
끼옥!
끼옥은 알았다는 듯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내 얼굴에 부리를 비볐다.
“모두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 이곳이 하늘 부족이다.”
나는 나를 보며 그리고 예티인 설인들을 보며 겁을 집어먹고 있는 2,000여 명에게 소리쳤다.
“큰사람들을 보고 겁을 먹을 것 없다. 저들도 내 부하들이다.”
누군가 설인을 보고 큰사람이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저 사람들은 설인을 큰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럼 큰사람으로 부르면 될 것 같다.
“예, 알겠습니다. 족장님!”
이빨호랑이인 캭도 부하로 쓰고 있는 것을 아는 내 부하들이 제일 먼저 우렁차게 대답을 하며 경계심을 풀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늑대발톱!”
나는 목책에서 힘차게 뛰어내려 늑대발톱 앞에 섰고 그 모습에 다시 사람들이 놀라 넋을 놓고 나를 봤다.
“저것 때문에 급히 가신 거군요.”
“예, 악어머리 부족도 이제는 하늘 부족과 함께할 겁니다. 여기에 있는 모두가 이제는 하늘 부족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어머니를 위로해드리세요.”
“예?”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늑대발톱은 아직 모르기에 어머니이신 제비꽃이 얼마나 슬퍼하고 있을지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들어 말해줬다.
“할아버지께서 죽었습니다.”
내 말에 늑대발톱의 표정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