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lithic Hunter RAW novel - Chapter 312
312화
“사방을 밝히는 도구.”
모닥불을 피우면 천막이나 움막, 통나무집 안이 밝아진다. 하지만 연기 때문에 눈이 아플 때가 많다. 내가 지은 통나무집은 벽난로와 굴뚝까지 만들었기 때문에 연기로 고생하는 일이 드물다.
“모닥불이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연기가 나잖아. 하여튼 이게 심지야. 이 작은 호리병에 고래 기름을 넣고 심지를 꼽아 불붙이면 이렇게 되지.”
나는 천막 중앙에 피워 놓은 모닥불에서 불씨를 꺼내 기름이 스며든 심지에 불을 붙였다.
-등잔을 완성했습니다.
짧은 메시지가 떴다.
‘이건 새치기당했군.’
인류 최초라는 메시지가 뜨지 않는다면 레드가 먼저 만들었을 확률이 높다.
그게 아니면 검은얼굴 부족의 여왕이 먼저 만들었거나.
등잔에 불을 밝히자 주변이 조금 환해졌다.
“아주 조금 밝아졌습니다.”
밝기로 따진다면 모닥불보다 밝을 수 없다. 하지만 등잔불도 많이 밝히면 따뜻하고 구석구석 밝아진다.
많이 불 피우면 된다. 고래 기름은 엄청나게 많으니까.
“불꽃이 작아도 연기는 없다.”
“그런 것 같습니다. 정말 폐하께서는…….”
“대단한 줄 알아요. 알아. 하하하!”
그때 천막 안으로 한기 때문에 눈썹이 하얗게 변한 단단히와 흑수말갈, 퉁가가 함께 들어왔다.
“고래를 다 잘랐습니다. 살점들은 꽝꽝 얼었고 기름은 계속 짜고 있습니다.”
“정말 수고했다. 그럼 이제 일꾼들도 좀 쉬게 해라.”
“알겠습니다.”
“단단히! 현무함이 박살이 났으니 배를 다시 만들어야겠다. 이번에 배를 만들면 그 이름을 거북선이라 해야겠다.”
배도 다시 만들기 전에 나는 이름부터 지었다.
“그리고 퉁가. 너를 고래잡이 조장으로 임명한다. 앞으로 네가 책임자가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고래 잡는 모습을 잘 보고 배워야 할 것이다.”
퉁가의 눈동자가 커졌다.
“마지막으로 흑수말갈. 그대를 군장으로 임명한다. 이곳에 검은고래 부족 출신의 정착촌, 고래 부족을 건설하라.”
내 말에 흑수말갈이 감격한 눈빛으로 바짝 엎드렸다.
“감, 감사하옵니다.”
“가진 재주를 펼치면 모두가 흑수말갈이나 퉁가처럼 된다.”
이것은 본보기다. 나와 조선 왕국에 더 충성하려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거북선이 만들어지면 바로 출항할 것이다. 그리 알고 준비하라.”
납작 엎드려 있던 흑수말갈과 퉁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급히 밖으로 나갔다.
‘오늘은 참치라도 한 마리 잡았으면 좋겠다. 하하하!’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지리라.
노력하면 무엇이든 거두리라.
* * *
땅속에서일어서의 본진 목책 위.
땅속에서일어서가 고래와 크라켄을 잡은 지 3일이 지났고 땅속에서일어서는 1차로 확보한 고기와 기름을 본진에 보냈다.
“엄청납니다.”
전사들은 고기의 양을 보고 기겁하며 연꽃 왕비에게 말했다.
“폐하께서 추운 바다에서 고생이 많으신 것 같군.”
“예, 물에 빠지시기도 했습니다.”
고기와 기름을 가지고 온 전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폐하께서 그리 고생을 하시고 계시는데 나만 편하게 지내고 있네.”
연꽃이 바다에서 고래를 잡고 있는 땅속에서일어서를 생각하며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왕비님!”
빛이 연꽃에게 말했다.
“그래도 걱정이 되네요.”
“그러시겠죠.”
빛은 전사를 쳐다보며 물었다.
“다른 말을 전하신 것은 없나?”
“폐하께서 검은고래 부족 출신 여자들을 데리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검은고래 부족 출신 여자들을?”
빛이 되물었다.
“고래를 잡는 곳에 고래 부족을 다시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흑수말갈을 부족의 군장으로 삼는다고 하셨습니다.”
“폐하께서 왜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연꽃이 빛을 보며 말했다.
“아마도 폐하께서는 고래를 계속 잡으실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
빛의 말에 연꽃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고래 부족 여자들을 이주시킬 준비해. 추운 곳으로 가니 털옷을 단단히 챙겨 주고 먹을 것도 많이 챙겨서 보내.”
그렇게 악어머리 부족에게 멸망한 검은고래 부족은 땅속에서일어서 덕분에 고래 부족으로 다시 태어났다.
조선 왕국의 값진 고기와 기름을 생산하는 부족이 되기 위한 이주가 시작됐다.
“또 전하신 말은 없는가?”
“기름을 비축하라고 하셨습니다. 고래 고기는 백성들에게 우선 베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건 문어 조각인데 비상식량으로 쓰신다고 하셨습니다.”
얼었는지 딱딱하게 굳은 크라켄 조각을 연꽃과 빛이 봤다.
“이게 문어라고?”
“예. 폐하께서 고래만 한 것을 잡으셨습니다.”
“알았다.”
“그리고 이것을 통나무집에 피워서 주변을 밝히라고 하셨습니다.”
“이건 뭐지?”
전사가 내민 것은 등잔이 많이 든 대나무 통이었다.
“등잔입니다.”
빛이 나직이 연꽃에게 말해 줬다.
“등잔?”
“불을 밝히는 도구입니다. 기름만 있으면 빛을 밝힐 수 있고 연기가 나지 않습니다.”
“폐하께서 또 우리를 위해서 뭔가 만드셨군. 알았다. 너희들도 고생이 많았다.”
“그럼 저희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쉬지도 않고?”
“폐하께서 고래를 잡으러 다시 바다로 가셨습니다. 고래 고기와 기름을 나르는 게 저희 임무입니다. 쉬어도 바다에 가서 쉬겠습니다.”
전사 조장이 연꽃에게 묵례를 하고 조심히 돌아섰다.
“또 오래 걸리시겠네.”
연꽃과 빛은 땅속에서일어서가 떠나 버린 바닷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 * *
“또 왔군.”
목책 위를 지키는 전사 조장은 목책 앞에 선 30여 명의 사람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정말 꾸역꾸역 모여드는 것 같습니다.”
“저것들은 좀 달라 보이는군.”
“그렇기는 하네요. 보통은 납작 엎드려서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 보통인데…….”
전사 하나가 목책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폈다.
“전사인 것 같은데? 뼈로 만든 칼도 차고 있네.”
투항하러 왔다기엔 느낌이 사뭇 다른 30여 명이었다.
그들은 하얀말이 이끌고 남하한 전사들이었다.
* * *
“여기가 악어머리 부족입니다.”
백인전사가 나직이 말하자 하얀말은 살짝 어두워진 표정으로 목책을 바라보았다.
“여기는 살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춥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이곳도 겨울이었다. 하지만 팽창하고 있는 광역필드와 대치한 상태에서 용 부족이 언데드 몬스터와 싸우고 있는 평야에 비한다면 따듯했다.
“그렇군. 이 모든 것이 레드 님 덕분이지. 그걸 저들이 모를 뿐이지만.”
하얀말은 인상을 찡그렸다. 레드의 설명으로 용 부족이 어쩔 수 없이 광역필드의 팽창을 막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저들 부족이 우리만큼 규모가 크군.”
차이가 있다면 레드의 용성은 돌로 쌓아 올렸고 이곳은 목책이라는 점이다.
“그렇기는 합니다. 그런데 저희를 계속 노려봅니다.”
“전사를 30명이나 이끌고 왔으니까.”
하얀말은 목책 위에 서 있는 전사들이 긴장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다.
“살고 싶어 왔으면 엎드려 빌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때 목책 위에서 아래를 내려 보던 전사가 하얀말의 일행에게 소리쳤다.
“쟤들 뭐라고 하는 겁니까?”
하얀말의 전사 하나가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저들은 우리가 항복하려고 온 줄 알고 있군.”
하얀말도 어처구니없어 피식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나는 북쪽 끝에 있는 용 부족의 전사 하얀말이다. 악어머리 부족의 족장님을 만나기 위해 왔다.”
* * *
“북쪽 끝에서 왔다고 했어. 거기는 긴 강 너머다.”
부하의 대답을 듣고 전사 조장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 하얀말을 내려 봤다.
“얼굴이 하얗군.”
“저렇게 얼굴이 하얀 사람은…….”
“빛 님뿐이었다.”
“정말 강 너머에서 온 모양입니다.”
“그런 것 같군. 용 부족이라고 했나?”
전사 조장이 하얀말에게 소리쳤다.
“그렇다. 우리는 북쪽 평야를 지배하는 용 부족이다.”
하얀말은 레드에게 ‘지배’라는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배웠다.
용 부족의 2인자인 그는 레드의 지시를 받았다. 수많은 부족의 전사를 모아 팽창하는 광역필드를 막기 위해 예전 악어머리 부족의 근거지까지 온 거였다.
“용이 뭐지?”
“잘 모르겠습니다. 강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 맞습니다. 용의 뼈로 만든 검도 있잖습니까.”
“그 용?”
전사 조장이 인상을 찡그렸다.
“예, 그 용을 가리키는 부족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돌아가신 족장님을 찾지?”
“아직 부족이 바뀐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부하의 말에 전사 조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로 온 것이냐?”
“악어머리 족장을 만나려고 왔다.”
“악어머리 족장께서는 없다.”
“사냥을 나간 것이냐?”
“강으로 들어가셨다.”
하얀말은 전사 조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눈빛을 보였다.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다.”
“족장께 말씀을 드릴 일이다.”
하얀말이 소리쳤고 전사 조장은 인상을 찡그렸다.
“족장은 없다. 우린 땅속에서일어서 폐하만 계신다.”
그때 빛이 전사 조장의 외침을 듣고 목책 위로 올라섰다.
“무슨 일이죠?”
“하얀 얼굴들이 자신들을 용 부족이라고 말하고 저기서 저러고 있습니다.”
“용 부족이라고요?”
빛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는 용 부족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았다. 누가 용족을 다스리는지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빛, 빛입니다.”
그때 빛을 알아본 백인 전사가 있었다.
“빛이 여기에 있다고 죽은 와탕카의 부하가 말한 걸 들었습니다.”
“오랜만이다. 나는 용 부족의 하얀말이다. 황제 폐하이신 레드 님의 말을 전하기 위해 왔다.”
하얀말도 빛을 알아봤다.
* * *
“전사들을 모아요.”
빛이 나직이 말했다. 그녀의 명령에 전사 조장은 목책 뒤로 활을 든 전사들을 빠르게 소집하기 시작했다.
“싸우자는 건가?”
빛이 하얀말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싸우자는 것이 아니다. 전할 말이 있어서 왔다.”
“무슨 말을 전하겠다는 것이냐?”
“중요한 일이다. 나는 너희 폐하를 만나야 한다.”
“지금 당장은 만날 수 없다.”
“그럼 누구와 이야기를 해야 하느냐? 다급한 일이다. 너흰 모르겠지만 위대하신 레드 폐하께서 너희들을 지켜 주고 계신다. 지금 북쪽은 시간이 없다.”
“하얀말, 네가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다.”
“빛! 너희 폐하를 만나게 해 다오.”
하얀말이 간절한 눈빛으로 빛에게 소리쳤다.
‘싸우기 위해 온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빛은 목책 앞의 나무 주변에 숨어 있는 손오공에게 신호했다. 손오공과 그의 부하들은 하얀말이 끌고 온 전사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파악이 끝난 손오공이 빛에게 끄덕인 후 하얀말과 다른 전사들을 노려봤다.
‘손오공이 보기에도 저들이 전부라는 거군.’
추가 병력은 없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