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touch Eldmia Ega RAW novel - Chapter (589)
‘비스탈 가문에서 마법사가 나오는 날이 오다니, 역시 오래 살고 볼일이구나. 네가 자랑스럽다 타네벨로.’
빛 바랜 과거의 기억이 수면으로 올라온다.
수백 년을 살아오면서도 한 번을 떠올릴 일이 없었던, 무한한 가능성과 미래 그리고 영광이 함께 할 거라 여기던 시절의 기억이 이제 와서 떠오른 원인은 세닛히구아가 던진 로켓에 있었다.
젊다 못해 어리던 시절. 연구와 공부에 매진하기 위해 마탑으로 향하기 전의 그를 담아낸 초상화가 들어간 로켓은 부모님의 유품이었다.
‘아버지… 아니, 어머니였던가?’
모난 곳 하나 없는 이상적인 부모였기에, 둘 중 누구의 유품이었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저도 모르게 집중한 탓에 기억을 끄집어내 종이 위로 옮기고자 펼친 마법이 제멋대로 부모였던 이들의 얼굴을 그려내는 것을 본 비스탈의 손가락이 까딱이자 두 종이는 금방 불에 타 사라졌다. 이미 수 차례 반복된 행위였기에 곁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는 침입자들도 이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마냥 편리하기만 한 마법은 아니군.”
그나마 입을 연 것은 엘드미아였다. 의외로 마법을 시전하는 내내 어떠한 불만도, 불편한 기색도 내비치지 않으며 평온하게 기다리는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기 때문에 괜히 찔린 비스탈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어 변명을 쏟아 냈다.
“기억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머릿속에서는 또렷하고 생생하다고 착각하고 사고思考를 제 의지대로 다룰 수 있다고 믿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지.”
그러면서 슬쩍 눈치를 봤지만 그저 솔직한 소감을 입에 담은 것에 불과했는지 다른 반응이 돌아오진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낙관적인 태도를 지니기엔 현 상황 자체가 최악이었다.
놈들의 의사 결정권을 쥐고 있는 엘드미아에게, 자신을 살려둘 이유는 없었으니까.
머리가 있다면 당연히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다. 자신의 연구에 관심이 있었다면 특작부의 신상 정보를 원하는 게 아니라 그것부터 강탈했을 것이니, 정보를 다 뱉어낸 순간 이용 가치가 사라진다고 보는 게 맞다.
심지어 죽을 놈에게 자기 소개를 하지 않는다고 했던 스스로의 선언을 지키려는 것인지 놈은 아직도 정체를 밝히지 않는 중이다. 세닛히구아의 부름을 듣지 못했다면 지금 이 순간까지도 비스탈은 놈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을 것이란 소리다.
상대는 악마 둘을 수족을 넘어 노예처럼 부리는 자다. 비스탈의 자의식이 아무리 비대하다 한들 스스로의 능력과 가치가 악마보다 높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니 정녕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성물함을 전부 돌려받자마자 최후의 발악을 해야 한다.
‘할 수 있을… 아니, 해야만 한다.’
유일하게 남은 수단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종이 위에 그 형태가 그려진다. 하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반응인지라 비스탈은 당황하는 일없이 침착하게 그림을 태워 없앴다.
다행히 이를 이상하게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기억을 추출해서 몽타주를 그려내는 돌팔이의 마법이 스무 명의 얼굴을 모두 완성하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그 여자가 마지막이다.”
당시 암막공이라 불리는 마족이 입은 의상을 포함하여 21장의 몽타주를 완성한 녀석은 가벼운 손짓으로 종이를 정갈하게 모아 내게 건넸다. 이를 받아 하나하나 살펴보는 사이 어지럽혀진 주변을 가볍게 정리하던 돌팔이는 이내 내 의중을 떠보려는 듯 조용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네가 내 말을 믿는 건 별개의 문제지.”
맞는 말이었다. 아예 하나부터 열까지 전혀 연관없는 사람들일 수도 있고, 교묘하게 정보를 바꿔 나를 엿먹이려는 수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초부터 실마리 하나 없던 흑막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된 거였으니, 그 정도 리스크는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
“마법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지.”
그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답하며 캬루베로스에게 받아 뒀던 유물함을 전부 건네자 놈은 헛웃음 비슷한 걸 내며 조심스럽게 물건들을 받아들였다.
“네놈도 마법사인가?”
“네 뇌내 망상을 끄적인 책 때문에 접을 뻔하기도 했지만 일단 턱걸이로나마 어디 가서 마법 좀 배웠다고 할 정도는 될 거다.”
“범재는 천재를 이해할 수 없는 법이지.”
마법사라는 직업 자체가 자기만의 세계를 확실하게 구축하는 편이라고는 하지만 돌팔이는 그게 많이 과하다. 면전에다가 네 이론이 쓰레기라고 말해 줘도 당최 들어 먹질 않으니 굳이 입 아프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어쩔 셈이지?”
자신의 유물함을 조심스럽게 한데 모아 마법으로 뭉쳐 띄우면서 돌팔이가 질문한다. 나 역시 종이들을 곱게 말아서 품에 갈무리해 넣으려다가, 이어질 전투에서 뭐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캬루베로스에게 넘기며 대답했다.
“알잖아?”
“그래, 돌려준다고만 했을 뿐. 놓아 준다고는 하지 않았지.”
뭔가 다른 공격 마법이라도 쓰는 시늉을 하면 당장 치고 들어갈 생각이었으나 어째서인지 놈은 덤덤히 대답하며 폐신전 한쪽에 위치한 신단을 향해 걸어갈 뿐이었다. 우리와 거리를 두려는 고전적인 수작이라 볼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굳이 태클을 걸지 않고 그대로 방치했다.
언제든지 놈을 무력화시키고 죽일 수 있다는 자만에서 비롯된 행동은 아니다. 자기가 돌팔이라는 걸 끝끝내 인정하지 않고 정신 승리를 시전하는 놈에게 스스로의 패배에 대한 변명의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함이었지.
“내가 불멸을 연구하지 않았으면 놓아줬을 테냐?”
“지랄 마라. 넌 이미 이 도시를 제물 삼아 리치가 된 그 순간부터 평생 나랑 마주치면 안 되는 거였다.”
이미 몽타주가 완성되는 동안 캬루베로스를 시켜 시간이 지날수록 초췌해지는 잉글라디우에게 돌팔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은 뒤다. 거기에 후회하거나 고심할 여지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고, 놈은 반드시 죽어 없어져야 하는 적성 생명체였다.
놈이 리치가 되기 위해 도시 전체를 저당 잡고 계약했을 당시 거주민만 대략 2만에 달한다. 그만한 사람들을 주저와 가책없이 바치기 위해 계획한 그 순간부터 놈은 사람이 아니었다.
“마법의 발전을 위해 소모될 수백, 수천 년을 단축시키기 위함이었다. 그 정도면 싸게 먹혔다고 생각하지 않나?”
“내가 네 책만 못 봤어도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 그 지랄을 떨었겠구나 싶겠는데 이미 봐버린 탓에 해 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좆이나 까 잡숴밖에… 아, 넌 없지.”
대의를 위한 희생 따위가 아니다. 놈이 세운 이론은 에밋의 말대로 애초에 틀린 이론이었으니까. 놈은 자신의 아집에 사로잡혀 애먼 사람들을 학살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아무튼… 그렇게까지 해서 얻은 힘과 연구가 다 부질 없었다는 후회 속에서 죽도록 방치해 주마.”
“케륵케륵케륵…”
우리를 깔볼 때와는 다른 느낌의 웃음을 터트린 돌팔이의 몸이 빙글 돌며 우리를 주시한다.
해골만 남은 탓에 표정 하나 없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에게서는 묘한 비장함과 각오가 느껴진다. 이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면 모든 게 끝난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결사의 각오로 덤비려고 한다는 게 피부로 와닿는다.
“그리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짧은 의지 표명과 함께 반쯤 무너진 신상에 손을 대는 돌팔이의 모습이 한순간이나마 투명한 유령같은 남성으로 겹쳐보인 건, 내 뒤에서 캬루베로스와 잉글라디우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는 것과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끼에에엑!”
“그에에엑…”
두 년놈들이 갑자기 광증이 도져서 발작을 일으키는 게 아니다. 갑자기 신상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성력에 압도 되어 눈을 까뒤집으며 경기를 일으키는 거였다.
녀석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번엔 나도 놀랐다.
[주, 주인!]이미 모든 능력을 다 동원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육체를 예열했다. 본격적인 교전에 들어감과 동시에 놈을 무력화시키고 잉글라디우에게 강제로 계약을 끊게 협박할 생각이었기에 마력시부터 사용 가능한 수준의 신성력까지 싹 다 끌어모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력은 갑작스럽기 그지없다. 순간 내 감이 흐려진 것인가 걱정했지만, 에스테의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저 신상에 뭔가 특별한 조작이 가해져 있었던 게 맞는 모양이다.
“마법사가 왜 다 무너진 신전을 연구실로 삼았는지 궁금하지 않더냐.”
솔직히 별생각 없었다. 그냥 멀쩡히 남은 건물이 이 정도였으니 그랬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주변에 있던 도시의 잔재들은 제대로 된 지붕조차 남지 않은 수준이었으니까. 놈의 반응을 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따로 있었던 모양이다.
분명 아무런 마법을 시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상 주변으로 수많은 마법진이 생겨나며 넘쳐흐르는 신성력이 돌팔이의 몸으로 휘몰아쳐 들어가기 시작한다. 놈이 두르고 있던 다 낡은 로브는 어떻게든 제 형상을 유지하지만 그 안에 있는 해골은 신성에 피해를 입는 언데드의 그것처럼 바스러지거나 균열을 일으키며 검푸른빛으로 번쩍인다.
그 꼴만 놓고 보면 금방이라도 자폭하고 터질 것 같았지만 터지지 않는다. 다행히 거기서부터는 녀석에게 일어나고 있는 반응이 어떤 것인지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새끼, 마법사보단 도박사에 더 재능이 있었겠네.”
그래서 즉시 에스테를 고쳐 잡으며 전력으로 파고들었다.
[[나는…]]놈의 유물함에 걸려있던 온갖 술식들이 해제되면서 그 안에 담겼던 혼과 마력이 돌팔이에게 스며든다. 그렇게 흘러 들어간 힘은 용서받지 못할 언데드에 불과한 리치의 몸이 신성력에 부딪치며 파괴되는 걸 수복하기 위해 전신을 휘감는다.
아슬아슬한 균형. 완벽하지 않은 조화.
[[나는…! 대마법사, 타네벨로 비스탈이다…!]]돌팔이는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데미리치가 되는 도박수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