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76
75. 뱀의 신전 6
“와아, 대단하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미디암은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경악했다. 집채만 한 괴물, 그것도 한때 인류를 지배했던 지배자 종족인 나가를 아무리 황제의 전령이라지만 마법도 쓰지 못하는 아자딘이 격침시켰다.
“아마도 그는….”
선견조 마법을 유지하고 있던 이스마일은 종탑 위에서 아자딘이 뭘 했는지 볼 수 있었다. 아자딘은 탑 안에서 종치기의 밧줄을 아래쪽 서까래, 그러니까 종탑의 허리 부분 하중을 지탱해주는 부분에 걸고 그걸 당겨서 뽑아 버렸다.
그렇게 종탑을 스스로 붕괴시킨 아자딘은 무너지는 종탑 안에서 달려 옥상까지 당도했다. 그런 다음 그곳에서 부러져 뾰족해진 서까래를 밧줄로 끌어당기면서 백작에게 몸을 던져 그의 머리를 때리고 뾰족해진 서까래를 꽂아 버렸다.
머리에 서까래가 관통하면서 커다란 충격을 받은 백작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종탑에 깔려 버린 것이다.
“…….”
“이, 이럴 게 아니라 구조하러 가야지!”
미디암은 아자딘과 백작이 뒤엉켜 무너진 종탑을 향해 달려갔다.
*********
“크악!”
백작은 입으로 피를 토했다. 그의 몸에서 생명력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쿠르트 신족에게 받은 힘 역시 몸에서 흘러나간다.
“크윽… 이게 무슨!”
“헉… 헉….”
아자딘은 몸을 일으켰다. 종탑에서 뛰어내리며 백작에게 돌진했던 그는 입을 오므리더니 피를 한 웅큼 토해냈다.
“내 승리로군, 카젤 백작.”
카젤 백작은 죽어가고 있었다. 그의 몸이 천천히 줄어들며 다시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미 입은 상처들은 그의 몸이 인간으로 돌아가도 여전히 남아 있어서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리라.
“네가 이겼다, 전령. 놀랍군. 설마 쿠르트 신족의 권속을 이렇게 꺾을 줄이야.”
“…왜 그랬나?”
아자딘은 백작에게 그렇게 물어보았다. 이상한 질문이었다.
“왜? 말한 대로 야심 때문이지. 하지만….”
“보통 타락한 귀족은 주색에 사로잡히고 사치를 탐하지. 야욕 때문에 쿠르트 신족에게 손을 벌리진 않아. 왜 그랬지?”
아자딘은 백작의 행동에서 기이함을 느꼈다. 무작정 힘을 갈망하는 이는 없다. 아라엘처럼 폭군이 되고자 하는 인물일지라도 그 이면에는 그녀가 전령일족의 배신자 자식이며, 힘을 보이지 않으면 먹히는 존재이기에 그렇다는 성장 배경이 있었다.
그렇다면 야에가스 신족의 후손인 백작은 왜 나가들과 결탁했나?
“…절망했기 때문이지.”
“절망?”
“그래. 이 세상은 공허하고 곧 파멸할 것이다. 저기 시장 바닥에서 외치는 종말론자의 말대로 목성의 시대가 오는지도 모르는데… 야에가스 신족의 피는 점점 끊기고 왕화의 빛은 약해지고 있지.”
“…….”
“하지만 뭐 말해봐야 구차한 변명 아닌가. 흐흐흐.”
“신왕진서 사본은?”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은… 내 애인들에게 주었다. 아마 그들의 사도가 지금쯤 나가들의 소굴로 그걸 가져가고 있겠지.”
“…….”
“크윽….”
백작의 숨이 거칠어졌다. 그의 몸이 점차 작아지면서 아자딘이 찔러넣은 화살과 거대한 서까래가 그의 몸에 거대한 개방구를 만들었다.
머리를 열고 뇌수가 흘러나오게 한 상처 때문에 백작은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그대로 숨이 끊어져 버렸다.
아자딘은 중상을 입은 몸을 끌고 무너진 종탑 폐허로 다가가 쓰러진 백작의 시신에서 인장반지를 빼냈다.
영주의 권한을 상징하는 이 인장반지는 공식 명령서에 인장을 찍기 위한 도장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아자딘이 백작을 죽였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이제 와서는 암살 의뢰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이건 필요할 거야.’
아자딘은 백작의 인장반지를 챙기고 뒤돌아섰다.
백작의 궁성 입구에서는 겁을 집어먹고 도망쳤던 병사들과 기사들이 제어를 잃고 풀려난 미이라 병사들과 싸우고 있었다. 이스마일과 미디암이 아자딘에게 다가왔다.
“이 틈에 피신하지요.”
“설마 당신, 저들을 구하자고 하진 않겠지요?”
“그럴 리가. 미디암, 이스마일. 고맙다.”
“네?”
“아, 뭘요. 전령을 보필하는 게 종사의 의무잖아요.”
“아니 의무 이상을 해주었어. 고맙구나.”
아자딘은 진심으로 둘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그들과 함께 무너진 후원 별관으로 향했다.
“어… 여기로 탈출하시게요?”
“지하도로 내려가서 조사를 마저 해야지.”
“미이라들이 남아 있으면요?”
“무너질 때 깔렸으니 괜찮을 거다. 하지만… 윽.”
아자딘이 신음했다. 몸 여기저기가 만신창이다.
“끄응. 조심해서 내려가 보자.”
“네!”
아자딘과 미디암은 밧줄을 준비해서 단단히 걸고 지하로 내려갔다.
*********
다시 지하도로 내려오니 과연, 아자딘이 말 한대로 위에서 바윗덩이들이 떨어지며 미이라 병사들을 많이 깔아뭉갰다.
“이스마일, 이 완드를….”
“아 네!”
이스마일은 뼈 완드를 잡고 시전해 보았다. 그러자 과연 매우 가까이에 신왕진서 사본이 있음이 알게 해주었다. 아자딘이 가보니 바위에 깔려 죽어 있는 나가 여성이 있었다.
“신왕진서 사본인가.”
아자딘이 알디스에게 받은 팔찌를 내밀자 두 장의 신왕진서 사본이 그에게 흘러들어왔다.
“나머지 세 장은?”
“저쪽입니다.”
이스마일은 아직 마법의 빛이 남아 있는 완드를 들어 굳게 닫힌 철문을 가리켰다. 미디암이 다가가 보니 철문의 잠금장치가 풀려 있었다. 그리고 문손잡이 부분에 피가 묻어 있는 걸 발견했다.
“하나는 살아서 도망쳤군. 큰일인데?”
아자딘은 걸어서 철문을 열었지만, 잠시 후엔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윽….”
전투의 흥분이 가시고 아드레날린이 사라지자 몸이 그간의 혹사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아으윽.”
아자딘은 미처 추적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저희가 추격할까요?”
“부, 부탁한다. 너희 둘이 함께 가.”
아자딘은 이스마일과 미디암에게 신왕진서를 들고 도망친 나가의 추격을 요청했다. 그러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으윽.”
아자딘은 그대로 의식을 잃고 기절해 버렸다.
*********
미디암과 이스마일은 지하도를 따라 이동하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결국 메말라 버린 강변, 난민들이 들끓는 난민촌까지 나왔음에도 나가를 찾을 수 없었다.
나가 술자는 이미 인간으로 변해서 이곳을 빠져나간 것이다.
“사람들 보는 데서는 완드를 쓸 수 없습니다.”
이스마일은 뼈 완드를 숨겼다. 누가 봐도 흉흉하게 생긴 이런 마법 물품을 사람들 보는 곳에서 사용하면 바로 왕의 교회의 성직자나 성기사들에게 걸리게 된다.
“여기까지인가. 사람들에게 물어보자니….”
미디암과 이스마일이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이 밤에 난민촌을 돌아다니는 것은 쓸데없는 화를 자초하는 일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아자딘이 신경 쓰인다.
“돌아가자.”
“이렇게 멋대로 포기해도 되겠습니까? 신왕진서 사본을 가져간 것인데다가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상대는….”
이스마일은 신왕진서 사본에 대해서 미련을 끊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역시 전령일족이다. 신왕진서 사본은 일족 모두의 염원, 일족을 복무의 저주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열쇠다.
그것을 손에 넣을 기회를 눈앞에서 놓치다니.
“뭐 그보다는 아자딘을 안전히 지키는 게 낫겠어. 빨리 돌아가서 아자딘을 보호하자.”
미디암은 전령일족답지 않게 신왕진서 사본을 깔끔하게 포기하고 아자딘에게 돌아갔다. 미디암이 먼저 발을 떼니 이스마일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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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이 만들던 언데드 병사들, 미이라 병사들은 제어를 잃고 폭주하며 백작의 궁성을 지키던 병사들, 기사들과 싸우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주의 아우라를 뿌리며 돌아다니는 미이라들인지라 일반 병사들이나 기사들로는 희생이 컸다. 게다가 백작이 사라져 지휘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기 힘든 것도 문제였다.
그때 남문에서 한 기사가 말을 타고 달려왔다.
“나는 왕의 교회의 성기사, 지벡이다!”
지벡 경은 그리 말하고 말 위에서 주문을 시전했다. 그의 머리 위로 눈부신 헤일로가 번뜩이더니 이내 사방으로 퍼져나가 언데드들의 저주의 아우라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앗!?”
“지, 지벡 경!”
“성기사다!”
“와!”
지벡 경이 가세하자 병사들이 환성을 질렀다. 지벡 경은 그대로 달리며 미이라 병사들을 베어 버려 병사들의 교착상태를 해소하고 그들을 구조했다.
“가, 감사합니다.”
“그래, 무슨 일인가? 소문에 의하면….”
“네! 거대한 뱀이! 갑자기 후원 별관에서….”
“후원 별관?”
“네. 백작님이 계시던 곳입니다.”
“이 마물들도 그쪽에서 나왔습니다!”
“그럼 그 거대한 뱀은?”
“저 무너진 종탑에 깔렸다고 합니다!”
“음, 그런가?”
지벡 경은 그 말을 듣고 혀를 찼다. 백작의 거처에서 갑자기 마물들이 쏟아져나오다니. 백작의 궁성에 들어온 수수께끼 마녀들에 대한 소문도 그렇고 아무래도 이건 백작의 소행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백작에게서 지휘권을 이양받아야 할 텐데. 내가 해도 되나?’
백작이 임명한 기사나 장교들은 한 패거리일 수 있다. 그리 생각한 지벡 경이 망설이고 있는데 병사들과 기사들이 오히려 지벡 경에게 부탁했다.
“지, 지벡 경!”
“지휘 부탁드립니다!”
“알겠네! 그럼 부족하나마 내가 힘을 보태겠네!”
지벡 경은 병사들과 기사들을 이끌고 우선 하인들 숙소로 간 마물들을 처단했다. 그러고는 구조한 하인들에게 가구와 짐들로 바리케이트를 치게 해 마물들이 길거리로 나가는 걸 막았다. 그 후 무너진 종탑으로 간 지벡 경은….
“음.”
종탑에 깔려 죽어 있는 백작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 이건….”
“일단 경거망동을 삼가게. 시신을 수습하는 건 마물들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난 뒤의 일일세!”
지벡 경은 당황하는 병사들에게 입단속을 시키고 일부 믿음직한 기사들을 뽑아 백작의 시신을 지키게 하고 나머지 마물들을 소탕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해가 뜨자 대부분의 마물들은 왕화의 빛과 태양 앞에 힘을 잃고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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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자네 말은….”
지벡 경의 보고를 듣는 살라스마의 주교 윌리엄은 혀를 찼다.
“백작이 바로 나가였다?”
“사람들의 증언과 비교해 보면 그렇습니다. 본래부터 나가였다는 것은 아니고 아마도 그 마녀들과 만나서….”
“그렇다면 그대의 말은 백작 곁에서 그의 통치를 관리하던 이 주교가 무능력하고 눈은 옹이구멍이었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아, 아닙니다. 그런 뜻은….”
지벡 경은 얼른 몸을 낮추었다.
밤새 병사들과 하인들을 구조하느라 미이라 병사들과 싸운 지벡 경은 피로로 물먹은 스펀지처럼 변해 있었지만 그래도 주교 앞에서 절도 있는 행동을 유지했다. 그러나 주교는 그런 지벡 경을 혐오스럽다는 듯 내려볼 뿐이었다.
‘사실이잖아? 근데?’
주교 주위에서 입을 닫고 있는 성직자들과 성기사들은 주교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주교가 무능력하고 눈은 옹이구멍인 거 맞지.’
‘주교도 가끔은 현실 파악을 할 줄 아는군.’
다들 그렇게 생각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그저 지벡 경을 불쌍히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