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45
1045회. 너는 못 배워
에스카토스 왕국군 중에서 자존심이 드높은 부대는 ―균열 감시의 최전방에 선― 알파 중대, 디바 중대, 골리앗 중대다.
하지만 기사와 병사 들이 가장 선호하는 부대는 ―마법사를 호위하는― 벨라토스 중대, 에쿼스 중대, 히어로 중대다.
알파 중대, 디바 중대, 골리앗 중대는 왕국군 최정예 부대로 모두의 찬사를 받지만 사망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렇게 위험한 곳인지라 기사들부터 병사까지 자부심 하나만큼은 제국의 코르보 마법 병단 못지않게 강했다.
지휘관들도 ‘실력은 우리가 최고다’라는 생각에 외부의 도움을 바라지 않았다.
사실 다른 부대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각설하고, 균열에서 화이트 울프 떼가 튀어나오자 알파 중대의 총병들이 일제히 마력탄을 쏘았다.
펑! 펑! 펑―!
화이트 울프는 마수들 중에서도 약체에 속한다.
그렇다고 마력탄에 맞아 죽을 정도로 약한 것은 아니다.
마력탄에 직격당할 때마다 화이트 울프 특유의 ‘깽!’ 하는 비명과 함께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마력탄에 맞아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쓰러지는 놈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평소 마력탄이 퍼부어지면 뒤로 돌아 달아나던 화이트 울프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연신 ‘깨갱!’ 비명을 지르면서도 화이트 울프들은 정면으로 달려갔다.
뒤이어 균열 안쪽에서 거대한 체구의 아이스 오우거 두 마리가 빠르게 뛰어나왔다.
쿵! 쿵! 쿵! 쿵!
아이스 오우거들의 발소리가 설원에 울려 퍼졌다.
아이스 오우거의 출현에 알파 중대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놀란 총병들이 아이스 오우거를 향해 총구를 돌렸다.
그 틈에 화이트 울프들이 알파 중대의 빈틈을 파고들었지만 알파 중대는 대응하지 않았다.
지금은 돌진해 오는 아이스 오우거를 맞이해야 했기 때문이다.
롱소드를 뽑아 든 알파 중대장 데니스 로빈 남작이 참모에게 소리쳤다.
“빅터! 지원 요청해!”
말을 마친 그는 정면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아이스 오우거 한 마리라면 알파 중대가 어찌어찌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마리라면 생각할 것도 없다.
전멸당하기 싫으면 균열 최전방에서 퇴각해야 한다.
그러나 마물도 아니고, 고작 마수를 상대로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막아 낸다.’
중대장의 명령에 빅터 아스테르는 가까운 1소대 총병들에게 달려갔다.
“지원 요청이다! 적색 연무탄을 쏴 올려!”
이윽고 알파 중대 위에서 ‘펑!’ 소리와 함께 붉은 연기가 피어났다.
주디와 함께 알파 중대를 살피던 파비안이 급히 중대장에게 돌아갔다.
“중대장님! 알파…….”
파비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난 엘리오가 말했다.
“내가 뒤쪽 놈을 맡는다! 너는 중대를 지휘해 화이트 울프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
화이트 울프를 놓치면 히르헤라 인근 거주민의 희생이 커지니 이곳에서 처리해야 했다.
지시를 내린 엘리오는 바람처럼 앞으로 달려 나갔다.
파비안은 준비된 참모답게 3개 소대로 모든 길목을 틀어막았다.
곧이어 루퍼스 중대와 화이트 울프들이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엘리오는 달려가던 기세 그대로 설원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오랜만의 경신술이라 그런지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이세계에 온 뒤로 눌려 있던 답답한 마음이 한순간 폭발했다.
순간 그는 무심결에 ‘야아아아아―!’ 하고 장소성을 내질렀다.
경천동지할 굉음이 균열 일대를 뒤흔들었다.
그 어마어마한 외침에 날뛰던 아이스 오우거들이 한순간 움찔하고 멈출 정도였다.
이윽고 까마득한 하늘에서 천둔검을 치켜든 엘리오가 떨어져 내렸다.
모든 것은 찰나지간에 일어났다.
엘리오의 천둔검이 육지 최강의 마수라는 아이스 오우거를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깨끗하게 양단했다.
촤아아악―!
뒤이어 살 갈라지는 파열음과 함께 아이스 오우거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아이스 오우거와 싸우다 무심코 뒤쪽을 돌아본 알파 중대장 데니스 로빈 남작의 입이 헤 벌어졌다.
알파 중대와 싸우던 아이스 오우거도 충격을 받았는지 멈칫했다.
급히 정신을 차린 데니스 로빈 남작은 마나 포스가 실린 롱소드로 멍하니 서 있는 아이스 오우거의 뒤꿈치를 베었다.
‘콰직!’ 소리와 함께 아이스 오우거의 뒤꿈치가 갈라졌다.
“크아!”
비명과 함께 아이스 오우거가 절룩거리며 물러났다.
동료의 처참한 죽음에 이어 뒤꿈치 힘줄이 잘린 아이스 오우거는 전의를 잃었는지 계속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알파 중대가 ‘와아!’ 함성을 지르며 벌 떼처럼 아이스 오우거에게 달라붙었다.
궁지에 몰린 아이스 오우거가 반격하자 데니스 로빈 남작이 총병들에게 소리쳤다.
“눈을 쏴! 눈을!”
펑! 펑! 펑! 펑―!
마력탄이 눈에 집중되자 아이스 오우거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사이 알파 중대장과 기사들의 검이 궁지에 몰린 아이스 오우거의 몸을 조금씩 찢어 나갔다.
“우워어어어!”
어느 순간 눈처럼 하얗던 아이스 오우거의 몸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이스 오우거가 광포화 조짐을 보이자 데니스 로빈 남작은 이를 악물었다.
한계까지 몰아붙이면 달아날 줄 알았는데 동료를 잃은 아이스 오우거는 끝까지 버티고 있다.
‘여기서 광포화가 되면 안 되는데.’
이쯤 되면 별수 없다.
광포화된 아이스 오우거는 소드 비기너에게 무리다.
어떻게든 그 전에 숨통을 끊어야 한다.
데니스 로빈 남작은 마나를 한계까지 끌어 올렸다.
스으으으―.
그의 검신에 희미한 빛이 맺혔다.
소드 익스퍼트의 마나 오라에 미치지 못하지만 소드 비기너의 마나 포스를 상회하는 선명함이었다.
아이스 오우거는 마력탄이 집요하게 안면 부위를 노리자 얼굴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기회를 엿보던 데니스 로빈 남작이 아이스 오우거의 무릎을 밟고 위로 솟구쳐 올랐다.
뭔가 얼굴 앞에서 어른거리자 아이스 오우거는 가리고 있던 손을 치웠다.
순간 데니스 로빈 남작의 롱소드가 두툼한 목줄기로 파고들었다.
콰직―!
롱소드에 깊게 베인 아이스 오우거의 목에서 붉은 피가 솟구쳤다.
“쿠억!”
마치 인간처럼 제 목을 부여잡고 어쩔 줄 몰라 하던 아이스 오우거의 무릎이 꺾였다.
아이스 오우거의 활짝 열린 얼굴로 마력탄이 쏟아졌다.
펑! 펑! 펑―!
눈알이 터지고, 코가 날아갔다.
붉게 달아올랐던 아이스 오우거의 몸이 본래의 색깔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제 몸에서 흘러나온 피로 아이스 오우거의 몸은 새빨갛게 물들었다.
곧이어 아이스 오우거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데니스 로빈 남작은 아이스 오우거의 죽음을 확인한 뒤에 엘리오에게 다가갔다.
“감사합니다. 엘리오 경이 계시니 든든합니다. 화이트 울프는 죄송하게 됐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요 뭘. 괜찮아요. 그럼 이만.”
말을 마친 엘리오는 루퍼스 중대 쪽으로 돌아섰다.
루퍼스 중대도 싸움이 끝났는지 정리에 들어간 모습이다.
엘리오가 터벅터벅 걸어 돌아오자 루퍼스 중대원들은 송사리 떼처럼 재빨리 자기의 자리로 돌아갔다.
처음으로 맞닥뜨린 실전에서 큰 피해 없이 대승을 거둔 부대답지 않게 루퍼스 중대는 고요했다.
지금 루퍼스 중대원들은 자신들의 지휘관인 엘리오 중대장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로 날아오른 믿지 못할 도약력과 일검에 아이스 오우거를 양단한 검술.
그들은 뒤늦게 자신들의 중대장이 어떤 인물인지 알아차렸다.
소드 비기너가 아닌 소드 익스퍼트!
아니 중대장은 소드 익스퍼트라고 부르는 게 미안할 정도로 뛰어난 검사였다.
1소대장 도넌 소위가 가까이 있던 기수 레이 모건 소위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레이. 아까 중대장님 봤나?”
“봤죠.”
“물론 그 소리도 들었겠지?”
“그걸 어떻게 안 들을 수 있습니까?”
“그럼 그 소리를 듣고 아이스 오우거가 경직되는 것도 봤나?”
“그랬습니까? 잠깐 놀라서 멈칫한 게 아니라요?”
“내가 분명히 봤다니까. 소리를 듣자마자 굳어 버리더라고. 경직이 풀리기 전에 중대장님이 두 쪽을 내 버린 거야.”
“기합 소리로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할 리가 있나! 그랬다면 다들 싸울 때 소리부터 질렀을걸?”
“그럼 경직은 뭡니까?”
“몰라. 이상한 것투성이야. 나는 그렇게 새처럼 하늘로 날아오르는 기사는 처음 봐. 그게 무슨 도약이야? 비행이지. 백 미터 높이로 도약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렇기는 합니다. 저도 우리 중대장님 같은 분은 처음 봅니다. 그 정도면 솔직히 플라이 마법이라고 해도 믿을 겁니다.”
“마검사신가?”
“설마요. 마검사라면 이미 소문이 났을 겁니다. 그냥 야인 출신의 기사라고만 듣지 않았습니까?”
“그야 그렇지. 그런데 그건 정말 플라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높이잖아. 아이스 오우거를 경직시킨 이상한 기합 소리도 그렇고.”
“기합 소리는 정말 소름이 오싹 돋을 정도로 충격이었습니다. 마족도 그런 소리는 내지 못할 겁니다.”
두런거리는 그들에게 주디 소위가 다가갔다.
“뭘 그렇게 속삭이고 있어요?”
“주디 경. 파비안 참모에게 더 들은 이야기 없나?”
1소대장 도넌의 물음에 주디가 답했다.
“다들 보신 대로 소드 익스퍼트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또…… 파비안과 함께 균열 너머를 사흘간 정찰하고 돌아온 적도 있답니다.”
“타메이온을?”
“예, 그래서 주둔지에서는 우리 중대장님과 참모를 ‘균열의 기사’라고 부른다네요?”
“타메이온에 들어간 사람도 없는데, 사흘이나 정찰을 했다니! 진짜 무지막지한 분이었군.”
기수인 레이 모건 소위가 고개를 툭 떨구었다.
“이렇게 되면 중대장님의 뒷배가 없다고 지랄을 한 나는 뭐가 되냐고. 내 입이 원망스럽다.”
“이제부터라도 조심하면 되죠. 참, 우리 중대장님의 귀가 그렇게 밝으시답니다. 그러니까 속삭여도 소용없어요. 알고들 계시라고.”
레이 모건 소위가 긴장한 눈으로 주디를 보았다.
“얼마나 밝으시기에?”
“삼백 미터 밖에서 토끼가 눈 파는 소리까지 들으신 답니다.”
“하아! 미치겠군.”
정말 그 정도로 귀가 밝다면 주둔지에서 자신이 한 소리도 들었을 터였다.
중대장에게 찍혔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저녁때까지 균열 부근에 두 차례 더 마수가 출몰했지만, 모두 하위종이라 루퍼스 중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루퍼스 중대가 실전에 투입되고 처음 맞이하는 밤이었다.
균열 감시의 최전방에는 천막이 없다.
눈을 막기 위한 지붕과 방풍벽 정도가 허락된 전부다.
병사들은 십인장의 주도하에 방풍벽을 세우고, 그 안에서 번갈아 가며 휴식을 취했다.
그건 엘리오와 파비안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파이어 스톤 앞에 쪼그리고 앉아 습관처럼 손바닥을 비벼 댔다.
“중대장님.”
“왜?”
“낮에 아이스 오우거가 나타났을 때 말입니다.”
“어.”
“하늘로 날아오르신 건……. 플라이 같은 마법입니까?”
“아니. 그냥 몸을 가볍게 해서 뛰는 기술이야.”
“뛴 거라고요?”
“어.”
“그렇게 높이 뛰는 기술도 있습니까?”
“너는 못 배워.”
“왜요? 그것도 가르쳐 주십쇼.”
“영기를 기반으로 하는 기술이야. 마나를 포기할 수 있어?”
엘리오가 파비안을 빤히 보았다.
자신의 경신술은 구천여일진경(九天如一眞經)을 기반으로 하기에 파비안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