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5
115회. 자빠트리라는 말인가요?
소림사 장문인 현백 대사는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오만 가지 잡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유명교가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지도 어언 삼 년.
그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다.
은하장의 혼세검마 척진경에게 의천문주 군자검 이연익은 한쪽 팔을 잃었다.
월하교당의 월하선자와 무산소축의 무산낭랑에게 남궁세가가 멸문당했다.
월하선자는 낙양의 와룡장을 멸문시키고 그 자리에 보란 듯 교당까지 세웠다.
정의맹 낙양 지부와 낙양의 무가들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음은 물론이다.
이젠 유명교 천하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정작 그들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은하장주와 월하교당의 주인들이 백두마군이고, 그 아래 십두마병이 있다는 정도?
은하장에서 한차례 격돌이 있었지만 궤멸 수준의 피해를 입었을 뿐 적에 대한 정보는 모으지 못했다.
고민하고 있는 현백 대사에게 파천마군 석무해가 말했다.
“참고로 알아 두시구려. 우리 총순찰 혼자서도 삼장쯤은 지워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삼장불립을 철회해도 삼장은 살아남기 어려울 거요.”
“삼장이 녹림의 총순찰께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저 사적인 은원이라 하더이다. 나는 모르지만 그들은 알고 있지 않겠소?”
“하아, 나무아미타불…….”
답답해진 현백 대사는 저도 모르게 염불을 외웠다.
세상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것이 개인적인 은원이다. 문파 간의 갈등은 대부분 배상으로 해결된다. 그러나 개인적인 문제는 물질로 해결할 수가 없다.
‘총순찰은 왜 직접 손을 쓰지 않은 걸까?’
현백 대사는 오히려 그게 궁금했다.
녹림도의 잔혹한 성정을 생각하면 삼장은 이미 멸문당했어야 한다. 그런데 삼장불립이라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삼장을 괴롭힐 뿐이다.
‘괴롭힌다? 그렇군. 괴롭히기 위한 것이었군.’
그가 원하는 것은 삼장의 ‘목숨’이 아니라 ‘고통’인지도 모르겠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차라리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어차피 녹림 총순찰에게 찍힌 이상 삼장의 몰락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 대신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꼭 들어 주십시오.”
현백 대사가 간절한 눈빛으로 석무해를 보았다.
그것은 유명교와의 전쟁을 준비하는 칠파이문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찻집 문을 열고 소림사 장문인 현백 대사가 나왔다.
현백 대사는 입구를 막고 있던 무인들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무인들이 몰려와 문을 막고 있다가 사라지기까지 일각(15분)도 걸리지 않았다.
호기심으로 근처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찻집 안으로 들어갔다. 찻집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손님들을 받아들였다.
***
정의맹 정주 지부.
지부장 승운검객 마천덕이 수하의 부름을 받고 객청에서 빠져나갔다.
잠시 후 다시 돌아온 그는 곤혹스러운 눈으로 삼장(백가장, 양가장, 와룡장)의 가주들을 보았다.
마침 그와 눈이 마주친 무천검 백승호가 급히 물었다.
“마 대협, 새로운 소식이 들어온 게 있소? 소림사 장문인과 파천마군이 만났다고 하오?”
머뭇거리던 마천덕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나도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들은 대로 전해 드리리다. 현백 대사께서 파천마군과 만나신 뒤 숭산으로 돌아가셨다 합니다.”
“삼장불립에 관해서는 어쩌기로 했답니까?”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럼 무립첩이라도 돌려야 하는 것 아니오! 우리보고 이대로 문을 닫으라는 겁니까!”
“무림첩은 맹주님께서 결정하실 일이라 제가 뭐라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어제 총단에 전서구를 보냈으니 수일 이내로 회신이 올 겁니다. 며칠만 더 참고 기다려 주십시오. 어떻게든 가주님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화신창 양주환이 버럭 소리 질렀다.
“헛소리! 며칠을 더 참고 기다리라니! 이미 제자들이 쫓겨났고 상권까지 죄다 빼앗긴 마당에, 뭘 더 기다리란 거요! 똑똑히 말해 보시오! 정의맹이 지금 우리 삼장을 버리겠다는 거요?”
“버, 버리다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정의맹은 혈맹들과 생사를 함께할 것입니다. 총단의 회신이 오기까지 며칠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순간 분노한 백승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삿대질했다.
“이보시오! 며칠이라니! 아까는 현백 대사가 잘 해결해 줄 거라 하지 않았소! 현백 대사는 왜 소림사로 그냥 돌아간 거요? 현백 대사가 그냥 돌아갔으면 다 끝난 거 아니오! 우리를 어린애 취급하는 거요? 녹림과 무슨 꿍꿍이인 줄은 모르겠으나, 혈맹을 개 취급하고 정의맹이 잘될 줄 아시오! 천만의 말씀! 정의맹이 얼마나 가는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리다!”
“배, 백 대협, 그 무슨 섭섭한 말씀을. 현백 대사께서 그냥 가신 이유는 모르겠으나, 총단에서는 좋은 소식이 올 겁니다. 정말입니다.”
치밀어 오르는 노기에 부르르 떨던 백승호가 양주환과 연무백을 보며 말했다.
“양 가주, 연 가주, 가십시다. 이곳에 있어 봐야 뻔한 소리뿐이니, 나가서 우리끼리라도 대책을 세워 보십시다. 이대로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소.”
양주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정의맹을 믿고 있다가는 집안이 거덜 나게 생겼다.
“사위, 함께 가세. 어차피 이곳은 말뿐이라 우리가 직접 발로 뛰어야 할 것 같네.”
“예.”
연무백은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얼굴을 들지 못했다.
백가장과 양가장은 삼장불립이 녹림 총순찰 연적하의 명이라고만 알고 있다.
만약 연적하가 자신의 배다른 동생이며, 그를 와룡장에서 십 년간이나 학대한 것이 이 사달의 배경이라는 게 밝혀지면 어떻게 될까?
아니 그보다 삼장은 연적하에게 용서나 받을 수 있을까?
지난번에 연설주가 찾아왔을 때 좀 더 적극적으로 연적하를 찾지 않은 게 후회스러웠다.
‘하아! 어떻게든 그때 적하를 만났어야 했는데……. 내가 어리석었다.’
어차피 지난 일이고, 자신이 관여된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무심히 넘겨 버렸다. 십사 년 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수수방관한 것이다.
***
남직례성.
남경.
정의맹 총단.
하남성 정주 지부에서 하루의 차이를 두고 두 개의 전서구가 날아왔다. 하루 앞선 것은 정주 지부장 마천덕이 보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림사 장문인의 것이었다.
두 개를 나란히 바라보던 맹주 풍뢰도 장강호가 붓을 들어 일필휘지로 적어 나갔다.
[세 사람을 차출하여 녹림 총순찰 연적하에게 보내고, 십두마병의 정보를 모으라.]맹주인 장강호의 입장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정의맹은 지금 암암리에 유명교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유명교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십두마병의 무위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었다.
백두마군에 대해서는 혼세검마 척진경, 월하선자, 무산낭랑 이매화를 통해 그들의 무위가 십대고수에 육박했음을 확인했다.
문제는 그들의 수족이랄 수 있는 십두마병이다.
고작 현급 고수였던 그들이 초능으로 어느 정도나 변화되었는지에 대한 자료가 없었다. 그들이 칠파이문의 일대제자 수준인지, 장로에 육박하는지, 혹은 장문인 급인지를 알아야 대책을 세울 게 아닌가!
그러던 차에 현백 대사가 ‘녹림 총순찰 연적하와 동행해 십두마병의 정보를 얻어내야 한다’는 조언을 했다.
장강호는 ‘녹림이 정말 유명교와의 전쟁에 나선 것인지 감시하기 위해서라도 사람을 딸려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혈맹(삼장)을 포기하면서까지 하는 일이니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
정주.
정의맹 정주 지부.
“……그런 이유로 너희 셋에게 중책을 맡기고자 한다. 녹림 총순찰 연적하와 동행하면서 십두마병의 무위를 알아내는 것이 너희의 임무다. 이번 일에서 빠지고 싶은 사람 있느냐?”
정주 지부장 승운검객 마천덕의 말에 이 남 일 녀가 서로를 힐끔거렸다.
천도문의 설차수, 금검문의 유근식, 창인문의 진설하다.
소림사 속가제자인 마천덕과 달리 세 남녀는 정주 무관 출신이었다.
설차수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저어, 그런데 특별히 저희를 선발하신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야 너희가 가장 젊으니까. 연적하의 나이가 이제 스물이라니 함께 어울리기 쉬운 사람들로 선발했다. 왜? 무슨 문제 있나?”
“아닙니다.”
설차수가 납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나이 스물셋, 유근식은 스물둘, 진설하는 스물하나. 실제로 정주 지부에서 가장 어린 순서로 세 명을 선발한 것이었다.
이번에는 예쁘장하게 생긴 진설하가 한마디 툭 던졌다.
“후훗! 총순찰하고 잘 어울리라는 말씀은 혹시 기회를 봐서 자빠트리라는 말씀인가요?”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마천덕이 눈을 찌푸렸다.
창인문의 제자인 진설하는 곱상하게 생긴 얼굴과 달리 하는 짓이 왈가닥이었다.
“그럴 리가. 너는 아무 말이나 막 던지는 버릇 좀 고치거라. 맹주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일이다. 다른 분들도 주목하고 있으니 제발 조신하게 하자.”
“피이! 언제는 잘 어울리라고 하시더니. 청춘 남녀가 어울리다 보면…….”
“어허! 그래도.”
마천덕이 질색하자 설차수가 진설하를 쿡 찔렀다.
“진 사매, 그만해. 진담인 줄 아시잖아.”
“아, 네에.”
건성으로 대답한 진설하는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틀며 입술을 삐죽였다.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마천덕이 계속해서 말했다.
“지금 연적하가 머무르는 곳은 정주제일루 칠 층이다. 내일 출발한다고 하니 오늘 저녁에 합류하는 게 좋을 거다. 서로 얼굴도 좀 익힐 겸.”
“예.”
설차수가 일행을 대표해 대답했다.
마천덕은 세 사람에게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더 말한 뒤에 자리를 떴다.
***
정주제일루.
해거름 무렵, 이 남 일 녀가 정주 제일루에 발을 디뎠다.
설차수와 유근식 그리고 진설하다.
세 사람은 아직 기루가 익숙지 않은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위쪽으로 올라갔다.
마침내 칠 층에 도착한 그들은 신기한 눈으로 실내를 한차례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정면 창가 쪽에 기묘한 침상이 눈에 들어왔다.
기루에 침상이라니?
세 사람은 서로를 힐끗 본 후에 침상 옆의 탁자로 시선을 돌렸다.
노인 하나와 아직 소년 태가 역력한 청년.
드넓은 칠 층에 딱 두 사람만 있는 걸 보니 녹림 총순찰 연적하와 그 일행 같다.
설차수가 유근식과 진설하를 이끌고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정의맹 정주 지부에서 온…….”
순간 구천노도 심통이 퉁명스럽게 말을 끊었다.
“거기까지. 소개는 됐으니까 같이 먹을 거면 앉고, 아니면 가라.”
“…….”
설차수가 유근식과 진설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머뭇거리는 유근식과 달리 진설하는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유근식도 분위기에 휩쓸려 고개를 까딱했다.
내일이 출발인데 통성명도 못 하고 돌아가는 것보다는 함께 먹는 게 나았다. 그게 술인지 식사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설차수와 유근식은 노인의 눈치를 살피며 그 옆에 엉덩이를 걸쳤다.
진설하가 당연하다는 듯 연적하의 옆에 척 앉았다.
빈자리가 없으니 그리로 가는 게 맞지만 진설하의 눈빛을 보면 노린 것도 같다.
새 손님을 보고 장보옥이 쪼르르 달려왔다.
심통이 귀찮다는 듯 말했다.
“머릿수대로 음식을 내오거라.”
“네에, 아무쪼록 즐거운 시간 되시어요.”
장보옥은 지난 며칠 동안 해탈이라도 했는지 생글생글 웃으며 돌아갔다.
그때 갑자기 진설하가 훅 치고 들어왔다.
“저쪽은 천도문의 설차수 스물셋이고요, 이쪽은 금검문의 유근식 스물둘, 그리고 저는 창인문의 진설하예요. 잘 부탁드릴게요.”
심통은 뻔뻔한 그녀가 마음에 드는지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왜 너는 나이를 밝히지 않느냐?”
“헤헤, 저는 스물하나예요. 연 소협보다 한 살 많다고 들었어요. 맞죠?”
진설하가 연적하에게 얼굴을 바싹 들이밀었다.
그녀의 접근에 은근 부담을 느낀 연적하가 상체를 슬그머니 뒤로 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