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84
1484회. 이변이 없는 한, 너는 곧 죽게 될 것이다
샤이틴의 신전에 침묵이 흘렀다.
엘리오는 아스트랄 소드를 다른 차원으로 보내 버린 존재가 누군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지켜본 악신도 모르는 걸 그가 알 리 없다.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엘리오가 물었다.
“당신은 티탄족이 찾아다니는 우주의 절대자가 존재한다고 믿나?”
“모른다. 하지만 우주의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겠는가?”
샤이틴은 도리어 엘리오에게 반문했다.
아스트랄 소드는 신들조차 감당하지 못할 궁극의 병기다.
티탄족 신들조차 파괴 본능만 남은 아스트랄 소드를 통제하지 못했다.
그 아스트랄 소드를 누군가 단번에 끌고 간 것이다.
아스트랄 소드가 차원 너머로 사라진 직후 티탄족은 이 세계를 떠났다.
우주의 절대적인 존재가 남긴 흔적을 따라갔으리라.
엘리오는 샤이틴의 질문에 눈만 끔뻑였다.
처음 티탄족과 우주의 절대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러려니 했다.
무엇보다 자신과 티탄족은 하등의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폭주하는 아스트랄 소드를 데리고 간 게 우주의 절대자일지도 모른다는 말은, 의외를 넘어 충격이었다.
그때 사라진 아스트랄 소드가 자신이 가진 구천검령인 까닭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신은 티탄족이나 우주의 절대자와 무관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문득 엘리오의 시선이 구천검령들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구천검령들이 이러는 건 처음이네.’
몸 밖으로 나온 구천검령들의 상태는 이전과 확실히 달랐다.
그들은 마치 흥분한 야수처럼 검명을 흘렸다.
존재감만으로 상대를 압살하던 구천검령들이 울부짖고 있는 것이다.
그때 샤이틴이 다시 물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다 말했다. 더 원하는 것이 있는가?”
“있다.”
“마력석을 제외하고 무엇이든 들어주겠다.”
샤이틴은 먼저 선수를 쳤다.
힘의 원천인 마력석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다고 흔들릴 엘리오가 아니다.
“이미 알고 있을 텐데. 내가 이곳까지 온 것은 마력석을 파괴하기 위해서다.”
엘리오의 말에 샤이틴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인간들은 너를 배신했다. 그런 배신자들을 위해 나와 싸울 생각인가?”
“그쪽이 인간을 꼬드겨서 그렇게 된 거잖나. 그리고 나를 배신한 건 제국이지 인간이 아니다.”
“왕국도 언젠가 너를 배신할 것이다. 인간은 본래 악하고 천박한 생명체거든.”
“그런데 너는 그렇게 악하고 천박한 생명체와 맹약을 맺었지. 내 눈에는 그쪽도 인간과 별로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이런, 한 방 맞았군. 인정한다. 황제와 맺은 맹약은 전적으로 나의 실수다.”
샤이틴의 입가에 씁쓰름한 미소가 떠올랐다.
모두가 엘리오 라고아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되어 벌어진 일이었다.
“실수건 뭐건 상관없어. 다시 말하지만 나는 마력석을 부술 거다.”
“너에게 아스트랄 소드가 있지만…… 그것만은 용인할 수 없다.”
“유감이군. 미리 말해 두는데 나는 그쪽에게 딱히 감정은 없어. 마나 프트라스처럼 무조건 배척할 생각도 없고.”
“그러면서 마력석을 파괴하겠다는 건가? 말과 행동이 다르군. 역시 악하고 천박한 인간다워.”
을컥한 샤이틴은 화를 냈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의 시선은 거대한 세 자루 아스트랄 소드에 못 박혀 있었다.
엘리오는 손가락으로 누르면 죽을 것처럼 약화된 상태였다.
크나우프 대공이 제국군에 엘리오를 공격하라 명한 것도 그래서다.
그는 엘리오만 죽으면 마법검도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샤이틴은 아스트랄 소드가 엘리오의 생사와 무관함을 알고 있었다.
아니, 엘리오를 잃으면 그 옛날처럼 폭주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엘리오를 죽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샤이틴의 머릿속은 아스트랄 소드의 처리로 꽉 차 있었다.
아스트랄 소드 하나 정도는 어찌어찌 해 볼 수 있다.
어쩌면 둘까지도.
하지만 아스트랄 소드가 셋이면 자신에게 승산이 없다.
물론 소멸까지 각오하고 전력을 다한다면 결과는 모른다.
샤이틴이 싸울 결심을 한 것일까?
돌연 샤이틴의 몸 주변으로 어둠의 에테르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휘우우웅―!
그에 호응하듯 마력석에서 어둠의 에테르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콰아아―!
마력석에서 나온 어둠의 에테르는 검은 띠로 응축한 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샤이틴의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았다.
엘리오는 묵묵히 샤이틴을 응시하기만 했다.
지금 그에게는 손가락 하나 까딱일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본신의 힘을 쓸 때마다 아브라나트의 저주로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구천검령이 아니었다면 제국군의 마지막 총격에 목숨을 잃었을지 모른다.
그를 에워싼 세 개의 구천검령이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웅웅!’ 울어 댔다.
일촉즉발의 순간에도 엘리오는 먼저 손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싸우고 싶어 안달이 난 구천검령을 제어했다.
샤이틴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가 샤이틴에게 감정이 없다고 한 것은 진심이었다.
그는 음양의 조화처럼 샤이틴과 마나 프트라스가 공존하기를 바랐다.
‘이 세계 절반의 생명체를 죽여 없애는 것은 과하다’ 생각한 때문이다.
그러려면 ―마력석의 파괴와는 별개로― 샤이틴이 살아 있어야 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샤이틴이었다.
샤이틴의 몸을 돌고 있던 검은 띠가 세 갈래로 나누어지는가 싶더니, 세 개의 아스트랄 소드를 향해 뻗어 간 것이다.
세 개의 구천검령도 이에 질세라 앞으로 쏘아져 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구천검령과 검은 띠가 마주쳤다.
두 개의 힘이 충돌 직전, 검은 띠가 뱀처럼 구천검령을 휘감았다.
구천검령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허공에 멈춰 섰다.
키이이잉―!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굉음이 신전 내부를 뒤흔들었다.
곧이어 구천검령의 주위에 가공할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힘과 힘의 맞대결이 만들어 낸 파괴적인 기류다.
무엇이건 갈기갈기 찢어 버릴 것 같은 기류는 삽시간에 세력을 키워 나갔다.
콰아아아―!
‘엇?’
위기를 느낀 엘리오는 즉시 피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육체가 어둠의 에테르에 잠식당한 탓이다.
광풍이 우두커니 서 있는 엘리오를 덮쳤다.
뒤늦게 샤이틴이 엘리오를 발견하고 ‘아차!’ 했지만 손을 쓸 수 없었다.
아스트랄 소드를 막는 것도 힘에 부치는데 구하긴 누굴 구한단 말인가.
심지어 그는 잠깐 한눈을 판 대가를 치러야 했다.
정중앙의 아스트랄 소드를 감고 있던 검은 띠가 ‘투둑’ 끊어진 것이다.
광풍에 휘말린 엘리오만큼이나 위태로운 순간이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스트랄 소드가 힘차게 돌진했다.
슈아아악―!
샤이틴은 다급하게 손을 들어 아스트랄 소드를 붙잡았다.
아스트랄 소드를 움켜잡은 샤이틴의 손아귀에서 불꽃이 튀었다.
카캉―!
순간 샤이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제는 정말 소멸까지 각오하고 전력으로 아스트랄 소드를 상대해야 했다.
빠드득 이를 갈던 샤이틴의 눈에서 검은 빛줄기가 쏘아져 나갔다.
창조신 샤이틴 고유의 권능인 ‘소멸의 빛’이다.
검은 빛줄기가 아스트랄 소드에 닿자, 아스트랄 소드에서 비명처럼 검명이 울렸다.
우우우웅―!
이윽고 아스트랄 소드가 불길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샤이틴에게 유리한 것도 아니었다.
아스트랄 소드를 움켜잡은 샤이틴의 손아귀에서 검고 진득한 무엇인가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검고 진득한 그것은 허공에서 기체로 변해 사라졌지만, 샤이틴의 손은 조금씩 뒤로 밀리고 있었다.
그래도 샤이틴은 결국 아스트랄 소드가 파괴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같은 신이라 해도 창조신과 일반신은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금방이라도 녹아 버릴 듯하던 아스트랄 소드가 계속 버티고 있다?
그것은 일찍이 구천검령에 깃든 천문(天門)의 힘 덕분이지만, 그걸 알지 못한 샤이틴에게는 놀라 까무라칠 일이었다.
샤이틴이 아스트랄 소드와 한창 힘겨루기를 할 때, 엘리오를 집어삼킨 광풍 속에서 빛줄기가 솟구쳐 올랐다.
또다른 구천검령이 현세에 출현한 것이다.
세 개의 구천검령이 검끝을 세운 채 엘리오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았다.
그 압도적인 힘 앞에 광풍이 사그라졌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어 잠깐 시선을 돌렸던 샤이틴이 얼어붙었다.
또다시 아스트랄 소드가 등장한 까닭이다.
처음의 세 개와 합치면 그 숫자는 무려 여섯에 달했다.
여섯 개의 아스트랄 소드라니!
절망한 샤이틴은 싸울 의지마저 잃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두 개의 아스트랄 소드를 감고 있던 검은 줄이 ‘투툭’ 끊어졌다.
자유를 되찾은 두 개의 아스트랄 소드가 샤이틴을 향해 날아갔다.
소멸의 위기 앞에 샤이틴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등 뒤에서 귀를 찢는 듯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꽈광―!
뒤이어 온몸에 충만하던 힘이 쑥 빠져나갔다.
샤이틴은 그다음이 자신의 차례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이 붙잡고 있는 아스트랄 소드가 자신을 끝장낼 터였다.
모든 걸 포기한 샤이틴은 손에서 힘을 풀었다.
구질구질한 모습으로 죽기보다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할 생각에서다.
그는 어깨를 펴고 가슴을 활짝 열었다.
‘와라.’
기다려도 아무런 느낌이 없자 샤이틴은 슬며시 눈을 떴다.
어느새 아스트랄 소드들은 모두 사라지고, 자신의 앞에 엘리오가 홀로 서 있었다.
엘리오와 샤이틴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잠시 후 샤이틴의 입이 열렸다.
“무슨 뜻인가?”
“말했을 텐데, 당신에게 유감이 없다고. 나는 마력석을 부수기 위해서 왔다니까.”
“마나 프트라스의 신탁을 받고 오지 않았나? 그가 좋아하지 않을 텐데.”
“나는 마나 프트라스의 종이 아니야. 그의 사도나 사자도 아니고.”
이번에는 샤이틴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크크크크! 크하하핫!”
샤이틴의 웃음이 잦아들자 엘리오가 말했다.
“마력석이 부서졌는데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닌가?”
“마나 프트라스가 실망할 걸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져서.”
“그나저나 이제 세상은 이전으로 돌아가나?”
“그렇다.”
“다행이군.”
긴장이 풀려서일까?
갑자기 밀려오는 현기증에 엘리오가 한차례 몸을 휘청거렸다.
그걸 본 샤이틴이 말했다.
“이변이 없는 한, 너는 곧 죽게 될 것이다.”
“그럴 거라 생각했다.”
엘리오는 놀라지 않았다.
치명적인 부상에도 운기요상을 못 하는 것은 물론, 치료약마저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숨을 쉴 때마다 생기가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구천현녀를 만나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딱히 아쉬움은 없었다.
백 살이 넘게 살면서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본 까닭이다.
엘리오가 마나 프트라스를 믿고 큰소리치는 것으로 오해한 샤이틴이 단호하게 말했다.
“마나 프트라스도 아브라나트의 저주를 풀지 못한다.”
“기대하지도 않았다.”
“너는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아브라나트의 저주 때문에 삶의 질이 너무 떨어졌어. 이런 몸이라면 죽는 게 더 낫다고. 그쪽은 영체라서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삶의 질이라. 재밌는 말을 하는군. 여하튼 잘 알았다. 내가 이변이 되어 주지.”
샤이틴의 말을 미처 알아듣지 못한 엘리오가 되물었다.
“무슨 소리야?”
“아브라나트의 저주를 없애 주겠다는 소리다.”
말과 함께 샤이틴이 엘리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가 허공을 움켜잡자, 엘리오의 몸에서 검붉은 뭔가가 뽑혀져 나왔다.
놀랍게도 그것은 아브라나트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크아아아―!”
샤이틴은 비명을 지르는 아브라나트를 움켜잡더니 그대로 삼켜 버렸다.
끄억―!
보라는 듯 가벼운 트림까지 한 샤이틴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내가 빚지는 걸 싫어해서. 그만 떠나라. 다시 만나지 말기를 바란다.”
샤이틴은 엘리오의 대답을 듣지 않고 보좌로 돌아갔다.
보좌에 앉은 그는 한쪽 손바닥으로 턱을 괴더니, 잠자듯 눈을 감았다.
이윽고 샤이틴은 신전의 다른 석상들처럼 돌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