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58
258회.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총사 신기수사 제갈승운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군웅들을 둘러보았다.
유명교 교주라는 말에 다들 잔뜩 긴장한 얼굴이다.
하지만 저들은 모르리라.
조직적인 움직임이니, 어느 교당에도 속하지 않은 절정고수가 등장했다느니 하는 건 모두 지어낸 소리다.
유명교는 처음부터 서열이 확실한 조직이었고, 간자들은 유명교 고수를 모두 알지 못한다.
그러니 필요한 대로 가져다 붙인 것에 불과하다.
지대(地隊)의 대주인 혈천진군이 가장 먼저 낚였다.
“각개격파라니? 백마사에 있는 적들을 어떻게 각개격파한다는 거요?”
제갈승운은 지도가 걸려 있는 한쪽 벽으로 다가갔다.
“백마사에서 한 시진(2시간) 거리인 호두산으로 십두마병 중에 일부가 이동했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백마사가 좁아 주둔지를 옮긴 것이지요. 현재 우리 제마대의 수준이면 수월하게 처치할 수 있습니다.”
“빈도는 찬성이오. 최근 천지맹의 결속을 해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소. 유명교와 싸워야 할 고수들이 상잔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뭔가 조치가 있어야 할 거요.”
전진파 장문인 무종상인이었다.
그는 자파 고수인 태을검 공산의 팔이 부러진 일로 예민한 상태였다.
청성파 장문인 원양 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제자인 정명진검 운학의 일로 무종상인의 말에 공감했다.
“빈도도 무종상인과 같은 생각이오. 이 기회에 우리의 적이 누군지 명확하게 하는 것도 좋을 거라 생각하오. 공동의 적과 함께 싸우다 보면 결속도 단단해질 테고.”
뒤이어 의천문주인 군자검 이연익과 팽가 가주인 벽력도 팽만호가 동의했다.
구천노도 심통에게 당한 문파들의 적극적인 지지 속에 제갈승운의 의견이 통과됐다.
이제 남은 건 누가 가느냐다.
칠파이문과 오대세가, 육마군은 눈치만 살필 뿐 선뜻 나서지 않았다.
십두마병과의 싸움은 워낙 변수가 많아 자칫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아무도 지원하지 않자 제갈승운이 운을 뗐다.
“한 달 전 산서성 임분에서 정체불명의 괴인들이 만수방을 몰살하고 사라졌습니다. 객잔에서 시비가 붙은 일로 방도 이십 명을 죽인 것이었지요. 때마침 임분에 있던 개방 제자가 그들을 미행했는데, 교구현에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뜬금없는 제갈승운의 말에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호두산으로 가느냐?’에 대해 논하다 말고 임분으로 화제를 옮기니 그럴 만도 하다.
팽가 가주 팽만호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총사, 임분에서 일어난 일이 그렇게 중하오? 호두산의 일도 마무리 짓지 않았는데 그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무엇이오?”
“알고 보니 만수방은 산서성의 팔주령을 수집하여 유명교에 판매하는 방파 중 하나였습니다. 개방의 보고에 의하면 그날의 시비도 팔주령 때문이었다고 하더군요.”
팔주령이 거론되자 팽만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명교와 관계된 문제임을 깨달은 까닭이다.
더 이상 반문하는 사람이 없자 제갈승운은 말을 이어 나갔다.
“은밀하게 팔주령을 구매하던 유명교 지부가 교구현 어딘가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확실한 정체나 규모는 아직 알려진 바 없습니다만, 최소한 방파 하나 정도는 몰살시킬 정도의 전력이지요.”
침음성을 흘러던 소림사의 무법선사가 말했다.
“그러니까 총사의 말씀은 각개격파할 대상이 두 곳이라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십두마병이 있는 게 확실한 ‘호두산’과 정체나 규모가 불분명한 ‘교구현의 지부’. 그 두 곳이 우리의 일차 목표입니다.”
칠파이문과 오대세가, 육마군이 술렁거렸다.
목표가 두 곳이라면 최소한 세 개 이상의 부대가 동원될 게 분명했다.
이제는 눈치껏 빠질 수준이 아니라, 누가 차출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제갈승운이 먼저 치고 들어갔다.
“제 생각에는 현무대가 교구현을 조사하고, 주작대와 인대(人隊)가 호두산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현무대를 끼워 넣은 건 ‘주작대만 사지로 밀어 넣는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제갈가가 현무대에 속해 있으니 살을 주고 뼈를 취하려는 속셈이다.
솔직히 제갈승운은 교구현의 위험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팔주령을 매매하는 곳이라 해도 적의 주력이 백마사에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호두산은 사지 중의 사지였다.
대외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백두마군에 십두마병도 열 명이나 된다.
그런 속마음과 달리 밖으로는 교구현의 위험성을 더 강조했다.
“교구현의 적들은 정체가 불분명합니다. 어쩌면 최근 백마사에서 목격된 자들과 관계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것 역시 억지로 가져다 붙인 것이다.
그의 속도 모르고 회의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들이 백마사에서 목격된 정체불명의 고수들이라면 교구현은 호랑이 굴인 까닭이다.
현무대 대주인 무상도제 장무덕이 한마디 했다.
“총사, 그런 곳에 정말 현무대만 가도 되겠는가?”
“제갈가의 능력이라면 그들을 찾아내는 것은 물론, 정체도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적의 규모와 수준에 맞게 움직인다면 큰 어려움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와중에도 그는 깨알같이 제갈가를 띄웠다.
천재 전략가로 알려진 제갈승운의 장담에 장무덕은 고개를 끄덕였다.
“총사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알겠네. 나는 총사의 지시에 따르겠네.”
그가 동의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검왕 남궁벽과 경혼사군에게로 향했다.
남궁벽보다 빠르게 경혼사군이 말했다.
“그럽시다. 녹림은 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소.”
경혼사군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어차피 천지인 삼 대 중에 하나가 움직여야 할 때라는 것을 알아서다.
제갈승운이 야릇한 눈으로 남궁벽을 보았다.
남궁벽은 그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지만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키지는 않지만 거절할 명분이 없어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리다.”
“그럼 호두산의 적은 주작대와 인대가 격멸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현무대는 교구현으로 가서 정체불명의 적들을 조사해 주십시오. 가능하면 그들이 가진 팔주령도 파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갈승운이 확인하듯 재차 말하자 세 명의 대주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제갈승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는 이것으로 남궁세가와 연적하가 몰락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서비하 토벌 때 연적하는 주작대에 이름을 올렸고, 그건 아직도 유효했으니까.
***
숙소로 돌아간 남궁벽은 곧바로 화용독심 남궁연과 청운검 남궁천을 불러들였다.
영특한 딸에게 등용각에서의 회의 결과를 알려주고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다.
물론 남궁천은 후계자 교육의 일환으로 끌어다 앉힌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주작대가 호두산으로 가게 되었구나. 등용각에서는 분위기를 따라 그러겠다고 했지만,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네 생각은 어떠냐?”
남궁연은 즉답을 피하고 한동안 뭔가를 생각했다.
그런 딸의 모습에 남궁벽은 큰 실수라도 한 것 같아 속이 타들어 갔다.
한참 만에 남궁연이 입을 열었다.
“권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거절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총사가 육참골단(肉斬骨斷,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의 수를 썼으니까요.”
“허면 그가 주작대를 사지에 밀어 넣었다는 뜻이냐?”
“현무대를 움직이면서까지 벌인 일이니 꽤나 위험한 작전일 거예요.”
“…….”
남궁벽의 얼굴에 고소(苦笑)가 떠올랐다.
하기야 제갈승운이 언제 자신에게 좋은 일을 한 적이 있던가!
생각해 보면 월하선자가 남궁세가를 무너뜨린 이후로 계속 그런 식이다.
그전까지 어떻게 그런 적의를 감추고 지냈는지 존경스러울 정도로.
듣고 있던 남궁천이 볼멘소리로 한마디 했다.
“연아, 못 하겠다고 하면 안 되냐? 배 째라고 버티면?”
“오라버니, 적하라면 가능하겠지만 우리는 그럴 수가 없어요. 무림 세가라면 그 이름에 걸맞게 중한 책임을 져야 해요. 총사도 그걸 알기에 아버지에게 떠넘긴 거고요.”
“위험하다면서? 뻔히 알면서 사지에 들어가자고?”
문득 남궁연이 부친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난밤에 천기를 보았어요. 두 개의 흉성(凶星)이 빛을 발하더군요.”
남궁벽와 남궁천의 목울대로 마른 침이 꿀꺽 넘어갔다.
천기니 흉성이니 하는 말은 지금까지 남궁연이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이 없었다.
“북살(北殺)과 서흉(西凶)의 기운이에요. 총사는 육참골단을 노리는지 몰라도, 결과는 그 반대로 나타날 거예요.”
남궁벽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교구현이 북쪽, 호두산은 서쪽에 있다.
둘 다 나쁘지만 그래도 ‘살’보다는 ‘흉’이 낫지 않은가!
그야말로 불행 중 다행이었다.
“연아야. 그런 건 노인네들이 하는 말 아니었냐?”
남궁천의 실없는 소리에 남궁벽은 속으로 ‘쯧쯧’하고 혀를 찼다.
***
산서성.
교구현.
풍지산 선녀암.
석양 무렵의 신당.
신모가 반신반의한 얼굴로 붉게 타들어 가는 하늘을 응시했다.
청류신의 대답은 너무 의외였다.
그녀의 손에 들린 방울에서 간헐적으로 짤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니까 내세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냐?”
-어머니. 나는 이곳에 대해 아직 잘 몰라요.
허공에서 들려오는 대답에 신모가 눈을 찌푸렸다.
과거 소천은 묻는 말에 그때그때 답했다.
그런데 청류신은 시간을 달라면서 대답을 미루고 있었다.
염매가 술사의 명에 토를 달기는 처음이다.
영기가 세서 더 많은 비밀에 접근할 수 있는 만큼 다루기도 쉽지 않은 것 같다.
“허면 얼마나 기다리면 되겠느냐?”
대답은 바로 들리지 않았다.
이것 역시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 중에 하나였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어째 머리를 굴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답답해서 한마디 하려는 순간 음성이 들렸다.
-사십구일요.
순간 신모는 저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사십구일은 꽤나 의미가 있는 날수다.
사람이 죽으면 사십구일 동안 중음(中陰, 삶과 죽음의 중간)의 상태에 들어간다.
그 사십구일 동안 망자의 다음 생이 결정되니 염매와는 전혀 무관한 날들이다.
영원히 방울에 귀속된 그녀가 사십구일 타령을 해 대니 신모는 울컥하고 말았다.
“왜 사십구일이지? 너와는 관계가 없지 않으냐?”
-어머니, 육도와 삼계의 비밀을 알려면 그 정도는 기다려 줘야 해요.
신모의 입에서 ‘끙’하고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더 큰 비밀을 알기 위해 이십 년이나 기다렸다.
그 오랜 세월에 비하면 사십구일은 그야말로 찰나와도 같았다.
청류신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못 기다릴 것도 없다.
본래 염매에 갇힌 영은 술사에게 거짓을 고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어리고 순진한 영이 그렇다는 것이다.
청류신처럼 닳고 닳은 술사도 그럴까?
그런 신모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청류신이 말했다.
-혹시 저를 못 믿어서 그러는 건 아니죠? 제가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흑흑.
청류신은 처량하게 울기까지 했다.
그녀의 울음소리에 신모는 와락 짜증이 밀려왔다.
염마왕과 합일하고도 염매 하나 온전히 다루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알겠으니 그만 울어라. 사십구일을 기다려 주마.”
-고마워요, 어머니. 은혜를 잊지 않을게요.
“…….”
나지막이 한숨을 쉬던 신모는 서탁 위에 방울을 내려놓았다.
청류신의 마지막 말이 어쩐지 마음에 걸린다.
은혜를 잊지 않는다니?
그건 혹시 염매로 만든 걸 잊지 않겠다는 뜻일까?
“쯧! 육명진언을 너무 오래 외우게 했나?”
그것으로 청류신의 영기가 강해진 건 좋은데 속을 알 수가 없어 문제다.
“그래 봐야 염매지만.”
신모는 방울을 헝겊에 둘둘 말아 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신당 밖으로 나가자 여덟 명의 무인들이 유령처럼 나타났다.
묵묵히 그들을 둘러보던 신모가 말했다.
“앞으로 사십구 일간 선녀암에 머물 것이다. 풍지산에 잡인들이 오지 못하게 해라.”
“존명!”
여덟 명의 무인들이 다시 사라졌다.
산등성이에서 불어온 서늘한 바람이 선녀암을 쓸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