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68
468회. 읽을 책이 많으면 좋잖아
남궁세가
천람소축(天覽小築).
정오를 조금 지난 시간.
연적하는 십전무후 남궁연의 거처인 천람소축으로 발걸음도 가볍게 걸어갔다.
“누님!”
그가 전각 앞에서 소리치자 남궁연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남궁연은 식당으로 가려는 그를 붙잡았다.
“식사는요?”
“그보다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뭔데요?”
연적하가 궁금해 했지만 남궁연은 쉽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녀는 ‘월락정’에 도착해서야 입을 열었다.
“이곳은 남궁세가에서 어머니를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곳이야. 어머니가 좋아하던 곳이거든.”
“아!”
연적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는 이 자리가 남궁연이 하고 싶은 말과 관련이 있음을 깨달았다.
남궁연은 자신을 바라보는 연적하에게 부친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가감없이 전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뭘요?”
“그래도 나와 혼인하고 싶어?”
“당연하죠.”
“괜찮겠어? 유명교와 싸워야 할지도 몰라. 아니, 거의 그렇게 될 거야.”
“괜찮아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고 유명교 별거 아니에요.”
사실 연적하는 유명교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십두마병은 물론 백두마병과 팔황까지 두루 상대해 본 까닭이다.
“한 달 이내에 혼례는 물론 살 곳까지 장만해야 하는데?”
“헤헤, 빨리 혼인하면 나야 좋죠. 살 곳이야 아무려면 어때요.”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그의 모습에 남궁연은 피식 웃고 말았다.
“미안하고 고마워.”
“아니에요. 제가 미안하고 고맙죠. 따지고 보면 다 저 때문에 생긴 일인데.”
연적하가 계면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이 백화상방과 싸우지만 않았어도 남궁연에게 고서가 가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는 남궁세가 사람들이 자신을 힐난하지 않는 게 고마웠다.
연적하가 동의하자 남궁연은 번개처럼 일을 추진했다.
열흘 후로 혼례식 날을 잡고, 여강현 원가산에 있는 석경장(石徑莊)의 구매를 추진했다.
소호(巢湖)에 인접한 원가산은 남궁세가에서 하루 거리라 남궁천이 반대했지만, 그녀는 뜻을 꺾지 않았다.
***
그날 저녁 구주각(九州閣).
저녁 식사 자리에서 청운검 남궁천이 남궁연에게 물었다.
“연아, 소호에는 유명교의 ‘무산소축’이 있지 않느냐? 다른데도 많은 데 왜 하필 범의 입으로 들어가려고 하느냐?”
그러자 남궁연이 무덤덤한 얼굴로 답했다.
“그곳의 풍광이 마음에 들어서요. 합비에서 가장 경치가 뛰어난 곳이잖아요.”
“무산소축은 안 보이고?”
“소호에 무산소축이 있으니까 가는 거예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있는 줄 알면 가급적 피해야지 왜 가까이 가?”
검왕 남궁벽과 남궁세가 사람들이 궁금하다는 듯 남궁연을 보았다.
남궁연이 마지못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무산소축을 통해 석경장에 대한 소문이 유명교주에게 흘러 들어가길 바라고 있어요. 특히 제가 세가에서 가지고 가는 짐이라든지, 살림이라든지 하는 것들요.”
“그게 왜 필요한데?”
“유명교주가 석경장만 보게 만들어야 하니까요. 행여나 남궁세가에 관심을 두면 애써 출가하는 의미가 없잖아요.”
그렇게까지 설명했지만 남궁천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남궁세가에서 가져가는 짐과 살림살이를 알면 석경장만 볼 거라고? 왜?’
하지만 다시 묻지는 않았다.
남궁연이 계획한 일은 범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지금도 분명히 자신이 알지 못하는 뭔가가 숨겨져 있을 것이었다.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남궁천은 연적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적하야.”
“예.”
“너도 석경장이 마음에 드느냐?”
“저야 뭐 연 누님만 옆에 있다면 어디라도 좋죠.”
“연아만 있는 게 아니라 무산소축도 옆에 있다. 그래도 괜찮으냐?”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나요? 저는 신경 안 써요.”
연적하의 말에 남궁벽이 크게 웃었다.
“하하핫! 천아. 어째 동생들보다. 네 배포가 더 작은 것 같구나. 두 사람이 좋다니 더는 뭐라 하지 마라. 그보다는 네 녀석 앞길이나 걱정해. 모용가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사람을 보낸다. 너는 항아검을 어떻 게 생각하느냐? 네가 싫어하지 않는다면…….”
“싫습니다.”
“항아검이 싫다고?”
“예.”
“아니 왜? 항아검은 합비에서도 소문난 미녀 검사인데.”
머뭇거리던 남궁천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실은 마음에 둔 사람이 있습니다.”
“창인문의 진 소저를 말하는 게냐?”
남궁천이 뜨악한 얼굴로 부친을 보았다.
“헉! 어떻게 아셨습니까?”
“쯧쯧! 그렇게 티를 내고 다녔으면서 놀라기는. 남궁세가 사람들이 눈뜬장님인 줄 알았느냐?”
“아니, 아시는 분이 왜 그렇게 모용가의 초대에 응하셨습니까?”
남궁천의 입이 튀어나왔다.
그런 줄도 모르고 보름 가까이 속앓이를 한 게 억울했다.
“가칭 ‘남맹(南盟)’이라고, 남직례성의 정도 문파 연합체를 만들고 있다. 호천맹은 멀리 떨어져 있어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가 어렵다는 말들이 있어서.”
“예? 호천맹에서 나오시게요?”
“그건 아니다. 호천맹과 별개로 남맹은 남직례성 문파의 모임일 뿐이다.”
“호천맹에서 좋아할까요?”
“어차피 남맹의 대부분은 호천맹에 들지 못하는 군소 방파들이다. 호천맹은 남맹에 신경도 쓰지 않을 게다.”
“남맹의 맹주는 아버지가 하시는 건가요?”
“나에게 해 달라는 분위기인데 아직 맹주를 뽑지 않았다.”
“왜요?”
“남맹의 맹주는 비무를 통해 선출하려고 한다. 그래야 말들이 없으니까.”
“아!”
남궁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비무로 맹주를 선출하는 게 가장 뒷말이 없기는 하다.
세력으로 맹주를 정하면 앞에서는 따르지만 항상 뒤에서 말이 많다.
강호에는 자기가 천하제일 고수라 믿는 사람들이 널려 있다.
절정급 고수들은 주위에서 조금만 떠받들어 주면 그런 착각에 쉽게 빠진다.
그들은 자기가 맹주가 되지 못한 걸 세력의 부족함으로 믿는다.
그런 사람들이 많으면 맹이 산으로 올라가게 된다.
물론 거기서 호천맹은 예외다.
칠파일문과 무림 세가들은 오랜 세월에 걸친 교류로 상대의 기량을 아는 까닭이다.
“비무대회는 언제쯤 여시게요?”
“이번 대안탑의 고서 문제가 수습되는 걸 보고 나서 열 생각이다.”
“늦어도 여름에는 열리겠네요.”
“왜? 너도 생각이 있느냐?”
남궁벽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아들을 보았다.
남맹의 비무대회를 통해 남궁천의 무위가 알려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남궁천은 부인하지 않았다.
“뭐, 기회가 주어지면 도전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솔직히 맹주 자리에는 관심이 없다.
그보다 십 대 때 얻은 ‘청운검’이라는 별호를 갈아치우고 싶었다.
설마하니 절대지경의 고수를 ‘청운검’이라 부를까!
“뭐, 그것도 좋겠지.”
남궁벽은 아들의 참가를 간접적으로 지지했다.
남궁세가의 힘을 드러낼수록 남궁세가는 물론 남직례성도 안정될 테니까.
***
남궁세가는 즉시 남직례성과 인근 방파에 혼례식 초대장을 보냈다.
십전무후 남궁연과 녹림 태상호법 연적하의 혼례는 ‘설화인’들에게 좋은 이야깃거리였다.
덕분에 두 사람의 갑작스러운 혼례는 예상보다 빠르게 퍼져 나갔다.
혼례식 날.
남궁세가는 두 사람의 혼인을 축하하러 온 하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정파는 물론 사파의 고수들도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찾아왔다.
누가 보면 세력 대결이라도 펼치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호천맹과 녹림은 상대에게 눌리지 않기 위해 고수들을 동원했다.
그런데 정작 혼례식장에서 정사파 무림인들보다 더 대접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다.
남직례성에 있는 무당파 도관의 도사들이다.
그들은 강호에서의 위치와 배분과 관계없이 상석으로 안내 됐다.
의아해하는 호천맹과 녹림에게 연적하는 자신이 무당파 속가제자임을 알렸다.
더불어 자신의 도호가 ‘남천’임을 밝혔다.
호천맹에서는 격하게 그의 무당파 입문을 환영했다.
녹림 고수들은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감히 왈가왈부하는 사람은 없었다.
성대한 혼례식이 끝나고 연적하와 남궁연은 사흘 동안 남궁세가에 머물렀다.
그리고 나흘째 되는 날.
신혼부부는 살림살이를 수레에 싣고 원가산의 석경장으로 떠났다.
열다섯 대의 짐수레를 중무장한 창천대 무사들이 호위하니 마치 상행처럼 보였다.
짐수레 중에 무려 열 대가 책 수레다.
사람들은 길게 늘어선 책 수레를 보고 ‘역시 십전무후답다’고 떠들어 댔다.
화려하게 꾸며진 마차를 타고 가던 연적하가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무슨 책이 저렇게 많아요? 누님은 다 외워서 필요도 없잖아요.”
“사람들 기억에 책을 남기려고 준비해 봤어.”
“아하! 책은 우리가 가지고 있으니까 고서를 찾고 싶으면 석경장으로 와라?”
“그런 것도 있고.”
남궁연이 말끝을 흐렸다.
“또 뭐가 있어요?”
“읽을 책이 많으면 좋잖아.”
“뭐가 좋아요? 설마 나보고 읽으라는 건 아니겠죠? 솔직히 나는 유명교보다 책이 더 무서워요.”
“네가 아니어도 읽을 사람 있어.”
“누구요? 일꾼들?”
“훗! 설마 내가 일꾼들 읽으라고 책을 가지고 가겠니.”
“그럼 누구지?”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남궁연은 끝내 가르쳐 주지 않았다.
문득 남궁연이 연적하에게 물었다.
“참, 숙수는 구하지 말라고 했지?”
“네.”
“와 주기로 한 사람이 있어?”
“심 노인이 벌써 하나 데려다 놨을 거예요.”
“혹시 전에 말한 그 사람?”
“네. 심 노인이 써 봤는데 남연객점 숙수보다 실력이 낫더래요.”
“그래? 잘됐네. 실력 좋은 숙수 구하기도 쉽지 않은데.”
“그러게 말이에요. 하늘이 준비한 사람이라니까요. 그러고 보면 세상에 의미 없는 일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제가 뒤통수 맞은 건 숙수를 구하기 위해서였던 셈이죠.”
“좋은 마음가짐이네.”
남궁연은 살짝 웃었다.
매사에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연적하는 그런 부분에 있어 꽤나 선도적(先導的)이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부담스러워했을 갑작스러운 혼례나, 소호 인근의 석경장도, 그는 망설임 없이 웃으며 받아들였다.
“그의 월봉은 어떻게 할까?”
안살림을 책임져야 할 남궁연의 물음에 연적하가 담담하게 답했다.
“속죄할 시간을 먼저 주려고요.”
당분간 공짜로 부려 먹겠다는 소리다.
“언제까지?”
“음, 십 년?”
“인심도 좋네. 그럼 그의 월봉은 십 년 뒤로 미뤄 둘게.”
남궁연은 십 년도 짧다고 생각했다.
연적하와 심통에게 사기를 친 두 사람은 물에 빠져 죽었다.
만약 곡성에게 요리의 재능이 없었으면 맞아 죽었을지도 모른다.
죽음 대신에 십 년의 사역(使役)이면 꽤나 후한 판결이 아닌가.
“그런데 누님.”
연적하가 진지한 눈으로 남궁연을 보았다.
“응?”
“누님이 요즘 읽고 있는 범천 어쩌고 하는 책요.”
“범천욕계왕재천(梵天欲界王在天).”
“네, 그거. 유명교주가 정말 관심 가질 만한 책이에요? 불로불사에 대한 내용도 없다면서요.”
“그렇기는 한데, 어쩌면 ‘왕재천’은 유명교주의 이상향일지도 몰라.”
“왜요?”
“‘왕재천’이라는 곳에 일흔두 명의 왕들이 있는데 그들의 나이가…….”
남궁연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