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20
620회. 진짜 신령스러움[眞靈]은 스스로 찾아온다
‘따라잡을 방법이 있다’는 스승의 말에 은소선의 눈이 빛났다.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건 하고 싶었다.
어렵게 종사의 제자가 되었는데 평생 남의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는 않았다.
“스승님, 방법이 있다면 알려 주세요. 연적하의 그늘에 묻힌 채로 살고 싶지는 않아요.”
착잡한 표정으로 은소선을 보던 태을 존자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은소선이 어떤 선택을 할지 알고 있었다.
위험하지만 어쩌면 그건 연적하와 같은 날 입문한 은소선의 운명인지도 몰랐다.
“소요종에 전해져 오는 공법 중에는 금지된 것이 두 개가 있다. ‘신마멸겁공(神魔滅劫功)’과 ‘빙하소류공(氷下小流功)’이 그것이다. ‘신마멸겁공’이 마천의 마기를 몸에 심어 원영(元嬰)을 단련한다면, ‘빙하소류공’은 영석(靈石)을 삼켜 강제로 ‘원영지체’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
은소선이 황망한 눈으로 스승을 보았다.
‘마기’와 ‘영석’ 모두 보통의 인간에게는 극약보다 더한 것이었다.
‘마기에 조금만 오염돼도 마인이 되는데, 아예 마기를 몸에 심는다고?’
영석은 좋을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신수(神獸)의 영기가 결정화된 영석은 노조도 감히 복용하지 못한다.
현인쯤 되면 모를까?
그 아래의 경지에서 영석을 취했다가는 몸이 터져 죽고 만다.
‘혼석도 위험한데 영석을 먹으라고?’
방사에 불과한 자신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
설사 영석을 복용하고 운 좋게 살아남는다 해도 언제 몸이 터질지 모른다.
그건 마기를 몸에 심는 것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태을 존자의 잔인한 설명이 이어졌다.
“‘천애불문비’가 파괴되었으니 누구도 연적하와 같은 기연을 얻지 못할 것이다. 지금 네가 연적하를 따라잡으려면, 목숨을 거는 수밖에 없다.”
은소선은 이를 악물었다.
안전하게 용의 꼬리로 사느냐?
목숨을 걸고 용의 머리가 될 기회를 노려 보느냐?
이제 와서 겁을 집어먹고 뒷걸음질 칠 마음은 없다.
“어차피 둘 다 위험하다면, 가장 확실한 것으로 가르쳐 주세요.”
“‘신마멸겁공’보다 ‘빙하소류공’이 더 위험하다. ‘신마멸겁공’은 평정심을 유지하면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다. 그러나 ‘빙하소류공’은 화약을 삼킨 것과 같아서, 자칫 방심하면 자다가도 몸이 터져 죽고 말 게다. 하지만 강제로 육체를 ‘원영지체’로 만들어 주니 효과는 확실하지. 너는 ‘빙하소류공’을 수련하겠느냐?”
“예.”
그녀가 답하자 태을 존자는 품에서 목갑을 꺼냈다.
“‘빙하소류공’을 연성하기 위해서는 음의 기운이 필요하다. 순음(純陰)의 영기를 지닌 너에게 유리한 점이지. 이 말을 처음에 하지 않은 건 너의 각오를 보기 위해서였다.”
“아…….”
희망적인 말에 은소선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영석 또한 음의 기운이 담겨 있을수록 좋다. 이 안에는 백설시랑(白雪豺狼, 여우처럼 생긴 신수)의 영석이 담겨 있다. 자정에 복용하고 ‘빙하소류공’을 연성하도록 해라.”
“예.”
“‘빙하소류’란 얼음 아래로 흐르는 물을 말한다. 여기서 ‘얼음’은 ‘영석’이다. 영석을 조금씩 녹여 흡수하는 공법이 ‘빙하소류공’의 요체라 할 수 있다.”
태을 존자는 은소선에게 ‘빙하소류공’까지 가르쳤다.
영석과 그것을 이용한 공법까지 한 자리에서 모두 내어준 셈이다.
***
천주봉을 터덜터덜 내려가던 연적하가 ‘아차!’ 하고 제 머리를 툭 쳤다.
‘추도영법’에 대해 알아보는 걸 깜빡했다.
‘하늘의 문’을 본 충격에 다른 건 다 잊고 있었다.
“태을 존자님에게 물었어야 하는데 아깝네.”
지금이라도 돌아가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개인적인 용무로 태을 존자를 찾아갈 정도로 친분을 쌓지 못해서다.
솔직히 은소선의 일로 추궁당하지 않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인 상황이었다.
고민하던 연적하는 스승을 찾아가기로 했다.
스승이 소요종에서 보낸 세월을 생각하면 사실상 최고의 조언자였다.
마음이 급해진 연적하는 검을 타고 관음봉으로 건너갔다.
관음봉.
무상각.
검을 탄 연적하가 앞마당에 떨어져 내리자, 오가던 진인과 노사들이 그를 힐끔거렸다.
이제 이십 대 초반의 청년이 어검비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니 놀란 것이다.
무상각으로 들어간 연적하는 마침 지나가던 노란 띠의 여방사를 불러 세웠다.
“잠시만요.”
그러자 이십 대로 보이는 여방사가 급히 다가왔다.
“무슨 일이신지요?”
“스승님을 찾아왔는데 어디 계신지 몰라서요.”
“스승님의 함자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한, 마 자, 관 자를 쓰세요.”
“아! 한마관 진인님의 제자세요?”
여방사, 신소혜가 웃으며 연적하를 살폈다.
무상각에서 한마관 진인은 무골호인(無骨好人)으로 알려져 있기에 경계심을 푼 것이다.
“네.”
“본래 무상각은 진인님들 위로만 출입하게 되어 있어요. 한마관 진인님을 모시고 나올까요?”
그녀는 청년을 노사라 지레짐작했다.
청년의 나이대와 한마관 진인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뇨. 나도 진인이니까 스승님에게 안내해 줘요.”
순간 신소혜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청년을 보았다.
소요종에 입문하고 이 년 동안 이십 대 초반의 진인은 처음이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신소혜가 허둥지둥 말했다.
“지, 진인이셨군요. 한마관 진인님이 계신 곳까지 안내해 드릴게요.”
말을 마친 신소혜 방사는 잰걸음으로 앞장서 걸어갔다.
그녀는 연적하를 이 층 끝의 방으로 안내한 후에 왔던 길을 돌아갔다.
연적하는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벽마다 서가가 빽빽이 세워져 있어서 마치 서각(書閣)에 온 듯했다.
다만 서각과 달리 서가에 꽂혀 있는 것은 장부 같았다.
어마어마한 양의 장부를 보니 소요종의 유구한 역사가 느껴졌다.
창가 옆에 한마관 진인의 모습이 보였다.
“스승님.”
한창 장부를 정리하고 있던 한마관 진인이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찌 이곳까지 들어왔느냐? 무상각의 출입은 진인만 가능하거늘. 나가자.”
무상각에서 한마관 진인의 위치는 낮은 편이다.
자연히 그로서는 윗분들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무상각의 진인들 중에 성질이 고약한 사람들도 있어서 더 그랬다.
“괜찮아요.”
연적하는 오히려 의자 하나를 들어 한마관 진인의 맞은편에 턱 하니 놓고 앉았다.
“말씀드릴 것도 있고, 여쭤 볼 것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들렀어요.”
“알겠으니 나가서 이야기하자꾸나.”
한마관 진인은 마음이 불편한지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제자라도 방사를 무상각에 들였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서다.
“저 어제 진인이 됐어요.”
“…….”
한마관 진인은 영 실감이 나지 않는지 한동안 눈만 끔뻑거렸다.
종문에서 승급은 속이거나 감출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진인이 됐다’는 말은 사실일 터, 그래서 더 기가 막혔다.
“며칠 전까지 방사였는데 진인이 되었다고?”
“예, 실은 ‘천애불문비’가 부서지던 날 기연을 얻었는데, 그 덕을 좀 봤어요.”
“허! 잘됐다. 잘됐어. ‘천애불문비’의 기연이라니, 천운이 따랐구나.”
기막힌 듯 탄성을 흘리던 한마관 진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한마관 진인은 연적하가 ‘원영 일 성’이려니 생각했다.
사실 방사에서 ‘원영 일 성’을 이룬 것만 해도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참! 물어볼 게 있다고?”
“아, 예. 스승님 혹시 추도영법에 대해 잘 아세요?”
“추도영법? 알다마다. 상급의 공법으로 영기를 보는 안법(眼法)이 아니냐.”
“그냥 안법이 전부인가 해서요.”
“왜 그런 생각을 했더냐?”
“아까 무궁전에서 ‘추도영법주해’를 읽었거든요. 추도영법을 두고 말하기를 ‘신령스러움에 도달하는 것이다’라고 하더라고요. 안법을 두고 그렇게 말하지는 않잖아요?”
“…….”
잠시 묘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던 한마관 진인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 나왔다.
“흐음! 이것도 인연이려나.”
“뭐가요?”
“내가 젊었을 때 잠시 스승으로 모신 진인이 계시다.”
“저에게 사조(師祖)님이 되는 건가요?”
“그럴 정도로 거창한 관계는 아니다.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잠깐 가르침을 받았으니까.”
“아…….”
진인으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짠했다.
당장 스승인 한마관 진인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분은 평생을 ‘추도영법’의 연구에 매달렸다. 신령스러움에 도달하는 것으로 원영의 벽을 넘으려고 하셨지. 하지만 끝내 신령스러움에 도달하지 못하셨다.”
연적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고개만 주억거렸다.
이름 모를 사조가 왜 ‘추도영법’에 매달렸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런데 스승께서 임종 시에 이상한 말씀을 남기셨다.”
“이상한 말씀요?”
“신령스러움에 ‘진짜’와 ‘가짜’가 있다고 하시더구나. 가짜는 내가 도달하는 것이나, 진짜 신령스러움[眞靈]은 스스로 찾아온다고.”
“스스로 찾아온다고요?”
“그래, 스승님은 ‘그가 오고 내가 기다리는 것이지 내가 가는 게 아니다’라고 하셨다.”
“기다리라고요? 언제 올 줄 알고요?”
“진짜가 오면 범의 소리가 바람을 일으키고, 용의 울음이 구름을 일으킨다[虎嘯風生 龍鳴雲起]고 하셨다.”
“사람이 하는 건 없고요?”
“물론 진실한 믿음[眞信]을 가져야 하지. 스승님은 늘 그 말씀을 입에 달고 사셨다.”
“진실한 믿음. 그것참 애매하네요.”
‘진실’이나 ‘믿음’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인데, 하필 그 둘 다라니!
“그러게 말이다. 여하튼 스승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나도 몇 번 ‘추도영법’에 도전했지만, 얻은 건 없었다. 성공했다면 이 모양 이 꼴로 늙지도 않았겠지.”
“스승님이 어때서요?”
“늙어 죽을 날만 기다리는 뒷방 늙은이.”
“어이쿠! 너무 자신을 비하하지 마세요. 그래도 청출어람한 제자를 두셨잖아요.”
“허허허! 그래.”
한마관 진인이 흐뭇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스물넷의 나이에 진인이 되었으면 청출어람이라는 말도 부족했다.
“누가 까불면 ‘연적하 진인이 내 제자다’라고 하세요. 그럼 싹 다 정리될 거예요.”
“쯧쯧! 이제 막 진인이 된 사람의 말 하고는. 잘나갈수록 겸손해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나 아직 죽지 않았다. ‘원영 사 성’이 무시당할 위치는 아니니라.”
“어이쿠! 당연하지요. 저는 스승님 뒤만 따라갈게요.”
연적하는 열심히 한마관 진인의 비위를 맞췄다.
한참 연적하와 담소를 나누던 한마관 진인이 돌연 축객령을 내렸다.
“장부 정리할 게 있으니 그만 가 보거라.”
“아, 예. 그럼 다시 봬요.”
연적하는 장부 이야기가 나오자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걸어가는 연적하의 뒷모습을 보던 한마관 진인이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숙소는 어디로 정했느냐?”
“백운정요.”
“그래? 용케 좋은 자리를 얻었구나. 백운정은 조건이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시간 나면 놀러도 오고 그러세요.”
“헐! 내가 정말 한가한 뒷방 늙은이인 줄 아느냐? 어서 가거라.”
“예, 예.”
연적하는 실실 웃으며 방을 나섰다.
자신이 칠 층의 천향송실(天香松室)을 사용한다는 건 당분간 비밀로 할 생각이다. 그건 물론 순진한 스승을 놀래 주기 위해서다.
***
천주봉.
천애곡.
석양이 질 무렵.
연적하는 다시 천애곡으로 들어갔다.
이름 모를 노인과 사조의 유훈(遺訓)이 머릿속에서 뱅뱅 맴돌았다.
사조가 남긴 ‘진짜 신령스러움’과 ‘진실한 믿음’은 어찌 보면 자신의 경험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진선(眞仙)인 구천현녀와의 만남과 ‘원영지체’의 초월까지.
문득 ‘하늘의 문’을 여는 게 사명이라던 ‘천애불문비’의 소리가 떠올랐다.
창고에서 구천현녀를 만나고, 구주에 오기까지, 이 모두가 우연일까?
지금까지 모든 건 우연이라고.
꽃이 지고, 물이 흐르듯이, 그냥 그렇게 된 거라고.
‘삶에 특별한 이유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며 좌충우돌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은 왠지 ‘뭔가 더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명이라든가, 운명이라든가 하는 뻔한 소리로 치부했던 말들이 어깨를 짓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