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2
72회. 이기어검 어떻게 하는지 알아?
보봉현.
오봉산채.
유명교의 등장으로 칠파이문과 오대세가는 발칵 뒤집어졌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오봉산채다. 오봉산채는 전에 없이 평화로웠다.
유명교라는 어마무시한 존재 덕분에 녹림의 작은 산채는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도적들도 더 이상 낙양 무가들의 복수를 걱정하지 않았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갔다.
가을이 되자 오봉산채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오봉십걸들의 무위는 어느새 독심낭인 황요명을 추월했다. 진정한 현급 고수가 된 것이다. 그걸 아는지 황요명의 자세는 더욱 낮아졌다.
연적하의 경우 검이 박도만큼이나 손에 익숙해졌다.
사실 그가 곧 검에 적응할 거란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더구나 그가 익힌 구천세법은 몸을 다루는 무공이라 병기를 바꾸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검이 손에 붙자 연적하는 본격적으로 구천구검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첫눈이 내리던 날.
오봉산채의 천덕꾸러기인 구밀복검 심양각이 삼백 자 법문을 연공하다가 선정(禪靜)에 들었다. 잠깐 그러고 말았으면 별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무려 사흘 만에야 선정에서 깨어났다.
깨어나기 직전 그의 머리 위로 유형화된 금꽃[金花] 세 송이가 피었다. 그것은 도가에서 말하는 삼화취정(三花聚顶)의 경지였다.
정기신이 섞여 하나가 되면 몸 내부에서 탈태환골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이때 금꽃 같은 조각이 머리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걸 삼화취정이라 한다.
심양각은 삼화취정에 들면서 잃었던 내력까지 되찾았다. 마기로 물들었던 그의 내력은 삼백 자 법문을 거쳐 순정화평(純正和平)한 공력으로 거듭났다.
성급 고수였던 심양각의 경우 이제는 가히 절정고수 소리를 들을 만큼 강해졌다. 아무렇게나 유엽도를 휘둘러도 도풍이 일 장(약 3미터)이나 뻗어 갈 정도였다.
심양각이 공력을 되찾자 연적하는 그에게 구천세법의 육 식까지 가르쳤다.
폐인이었던 심양각의 부활로 나락에 떨어진 사람은 황요명이다. 그는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심양각의 눈치를 살폈다.
과거의 심양각이라면 당장 황요명의 팔 하나쯤 잘랐을 것이다.
그러나 심양각은 어찌 된 일인지 황요명을 건드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열심히 해라’라는 짧은 한 마디를 건넸을 뿐이다.
그제야 황요명은 끊었던 식사를 다시 하고, 부지런히 산행을 다녔다.
새해가 됐다.
오봉십걸은 심양각에게 자극이라도 받았는지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심양각은 심양각대로 구천세법의 수련에 푹 빠져 추위 속에도 뒷마당에서 살았다.
오후 느지막이 뒷마당을 돌아가던 연적하가 문득 멈춰 섰다.
다 늙은 심양각이 땀을 뻘뻘 흘리며 유엽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연적하는 우두커니 서서 그를 지켜보았다.
구천세법의 일 식에서 육 식까지 물이 흐르듯 펼쳐졌다.
지난여름까지 박도를 써서 그런지 그의 움직임이 세세하게 느껴진다.
호쾌하면서도 유려한 심양각의 도법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유명한 마두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공자님, 뭘 그렇게 보십니까?”
심양각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아 내며 연적하에게 다가갔다.
“그냥, 다 늙은 노인네가 참 열심이다 싶어서.”
심양각은 내공을 되찾은 뒤에도 여전히 연적하를 공자님이라 불렀다. 연적하도 심 노인이라는 호칭이 입에 붙어 바꾸지 않았다.
“흐흐, 어디 저만 그런가요. 오봉십걸은 물론 공자님도 해가 질 때까지 검법을 수련하시지 않습니까?”
“우리는 젊잖아. 살날이 창창하게 남았고. 심 노인은 언제 불려갈지 모르는 사람이 뭘 그렇게 땀을 빼?”
“늙은이가 힘이 없다고 구박받으면 더 슬픈 거 모르십니까? 죽기 직전까지 후배들에게 대접받으려면 평소에 땀을 좀 흘려야 합니다.”
“어이쿠! 누가 감히 심 노인을 구박한다고 그래. 죄다 심 노인 눈치 보면서 살더구먼.”
“바로 그겁니다. 제가 강하니까 제 눈치를 보는 거죠. 제가 골골거렸으면 똥밭에 뒹구는 자갈처럼 이리저리 치이며 살았을 겁니다.”
“특이한 정신세계이야. 참 부러워.”
“정신세계야 공자님을 따라갈 만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상인과 무관의 돈은 빼앗으시는 분이, 도둑놈들에게는 그 귀한 무공을 그냥 막 퍼 주다시피 가르쳐 주시고.”
“돈이야 먹고살려다 보니 그렇게 된 거고. 그럼 뭐 굶어 죽어야 돼? 사흘 굶으면 남의 집 담을 넘는다는 말이 있잖아. 나도 그런 것뿐이야.”
“그럼 그 귀한 무공은 왜 도둑놈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겁니까?”
“의형제들과 심 노인이 밖에 나가서 칼 맞고 와 봐. 내가 복수해 주러 힘들게 돌아다녀야 하잖아. 알고 보면 다 나 편하자고 하는 일이야.”
“흐흐. 역시 제가 범접할 수 없을 만큼 특이하십니다. 존경합니다, 공자님.”
“존경은 무슨. 거 이상하게 웃지나 마. 이제 눈빛은 제법 신선 같은데 웃음소리가 그래서야 되겠어?”
“입에 배서 그렇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제 심 노인이 원하던 벽은 넘은 거야? 그거 때문에 주화입마로 개고생 했잖아.”
“헐! 벽을 넘었느냐고요? 이전에 저의 소원이 뭐였는지 아십니까? 오기조원(五氣朝元, 신체의 오행 즉, 심간위폐비의 기운이 하나로 합해지는 것으로 내단술의 상급 단계)의 경지에 드는 거였습니다. 그거 때문에 안 해 본 짓이 없었지요. 내공에 좋다는 건 뭐든 집어 먹었습니다. 젊어서는 멋모르고 독초도 많이 처먹었지요. 그 부작용으로 삼십 대부터 얼굴에 검버섯이 피었더랬습니다.”
“상당히 조숙했었구나.”
“그러던 제가 오기조원보다 더 높은 삼화취정을 이룩했습니다. 솔직히 백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도 이루지 못할 경지지요. 모두 공자님 덕분입니다. 평생 은혜를 갚으며 살겠습니다.”
“얼마나 더 산다고 평생이래. 그건 그냥 말로 하고 입 싹 닦겠다는 소리야. 알지?”
“푸흐흐”
실소를 흘리던 심양각이 물었다.
“그런데 공자님은 검법에 진전이 좀 있으십니까?”
“그냥저냥. 심 노인 말대로 했더니 이제 겨우 박도나 검이나 비슷해졌어.”
“검으로도 무상의 신위를 보이실 수 있게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뭘 그렇게 띄워. 아주 입에 꿀 바른 사람 같아.”
“그래서 사람들이 저를 보고 ‘입에 꿀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사실 구밀복검의 구밀(口蜜)은 심양각이 입에 발린 말을 잘해서 붙은 것이었다. 물론 복검(腹劍)은 ‘흉중에 칼을 품고 있다’는 뜻이고.
“입으로도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 왜 도둑이 됐데?”
“칼로 뺏는 게 더 쉬우니까요. 남들 기분 좋게 하는 건 엄청 피곤한 일이거든요.”
“야아. 참 대단한 노인네야. 아주 혈기가 넘쳐.”
“아닙니다. 이제 혈기 다 죽었습니다.”
심양각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어렸다.
그건 일정 부분 맞는 말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황요명의 팔 하나쯤은 잘렸을 테니까.
문득 연적하가 궁금하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말야. 심 노인은 이기어검 같은 거 어떻게 하는지 알아?”
“이기어검요?”
뜬금없는 말에 심양각이 눈을 끔뻑였다.
“있잖아 왜, 검을 던져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거. 작년에 의천검존 할아버지가 나한테 검을 던졌는데 아주 깜짝 놀랐다니까.”
“헐! 의천검존의 이기어검을 상대하셨군요?”
“어,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냥 달아났다니까. 검이 벌처럼 막 날아온다고 생각해 봐. 놀라지.”
“일단 이기어검은 어떤 특별한 초식 같은 게 아닙니다.”
“초식이 아니다?”
“예를 들면 검기상인은 몸속의 기운을 검 밖으로 뽑아내는 거잖습니까.”
“그렇지.”
“그렇다고 검기상인이 초식은 아니지요. 이기어검도 그와 비슷합니다. 기운을 잘 다룰 줄 알아야 가능한 것이지요. 공자님은 혹시 허공섭물(虛空攝物)이라는 경지에 대해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몰라.”
“그건 몸 안의 기운으로 사물을 움직이는 걸 말합니다. 내기를 방출해서 물건을 움직이는 수법이지요. 내공이 노화순청(爐火純靑)에 이르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들 합니다.”
노화순청이란 연단술에서 화로 안의 불꽃이 청색으로 변하는 최종 단계에서 나온 말이다. 무공이 완벽한 경지에 도달했음을 뜻하는 말로, 보통 오기조원의 경지를 넘어가면 ‘노화순청에 들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니까 허공섭물 같은 거라는 거야?”
“예, 기운을 두 개로 나누는 겁니다. 몸 안의 기운과 몸 밖의 기운으로. 몸 밖의 기운을 검에 담고 몸 안의 기운과 연결하여 움직이는 게 이기어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몸 안과 밖에 있는 두 개의 기운이라 이거지?”
“예, 사실 저도 돌아가신 스승께 들은 거라 자세히는 모릅니다. 제 스승도 이기어검의 경지와는 거리가 먼 분이시라 그 이상은 모르셨고요.”
“아니야. 그래도 상당히 좋은 설명이었어. 일리가 있네. 두 개의 기운이 연결돼야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 확실히 초식 같은 게 아니라는 건 알겠어.”
“신검합일의 경지에 도달해야 이기어검도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먼저 검과 하나가 돼야, 그다음에 둘로 나눌 수 있을 테니 그런 것이겠지요?”
“심 노인은 정말 유식한 것 같아.”
“흐흐, 강호에서 지내 온 세월이 있지 않습니까? 대부분 귀동냥으로 들은 것들입니다. 공자님께서는 곧 그런 경지에 오르실 겁니다.”
“그럴까?”
“그럴까가 뭡니까? 무학에서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지금이야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지시겠지만, 물고기가 물속에서 숨을 쉬는 것처럼 공자님께서도 당연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진지한 심양각의 충고에 연적하는 머리를 끄덕였다.
스승 없이 홀로 터득한 연적하에게 심양각의 말은 상당히 좋은 자극이었다.
“알았어. 믿음.”
“그렇습니다. 사람은 상상하고 믿는 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말이지요.”
“상상하고 믿으라 이거지?”
연적하는 그것이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과 비슷하다고 받아들였다.
상상하고 믿으라고?
얼마든지. 거울 속에서도 살아 보고, 구천현녀까지 봤는데 그 정도야!
“예, 공자님께서 가 보지 않은 길이니 상상할 수밖에요. 따지고 보면 기(氣)라는 것도 그렇지 않습니까?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해서 현실세계로 끌어낸 게 내공이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닙니다. 상상하는 대로 이루어질 거라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좋은 얘기해 줘서 고마워.”
“별말씀을요. 우선은 허공섭물부터 연습해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내기를 신외발출(身外拔出)하여 사물을 움직일 수 있어야, 이기어검이든 뭐든 가능할 테니까요.”
“아하!”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는 동안 오봉십걸들이 하나씩 뒷마당으로 나왔다.
연적하는 그들과 눈인사를 나눈 뒤에 오봉산 제일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봉산 제일봉.
연적하는 널따란 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지만 이미 한서불침의 경지에 든지라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허공섭물이라…….’
연적하는 품 안에서 단검을 꺼냈다.
지난해 포씨 사당에서 납치범이 던지고 달아난 것이다.
단검을 한 걸음쯤 앞에 툭 던져 두고 검결지를 뻗었다.
뜻을 세우자 단전에서 일어난 내력이 손끝으로 노도처럼 밀려 나갔다.
퍽.
‘응?’
손끝에서 뻗어나간 기운에 단검이 맞아 멀리 날아갔다.
‘이런!’
뒤늦게 연적하는 자신의 문제를 깨달았다.
기운을 신외발출 함에 있어 자신은 오직 강하게 내보내기만 할 뿐이었다.
구천여일진경에 기운은 여러 종류가 있다고 했다. 당장 오행의 기운만 해도 불, 물, 나무, 쇠, 흙의 성질이 있지 않던가.
어디 그뿐인가!
원기(元氣), 정기(正氣), 종기(宗氣, 흉부 위의 기), 위기(衛氣, 혈관 밖의 기), 영기(靈氣), 장기(陽氣, 각 장부의 기), 경기(經氣, 경락의 기), 사기(邪氣), 양기(陽氣), 탁기(濁氣), 음기(陰氣)…….
마른 기운이 있는가 하면 끈적한 기운이 있고, 밀어내는 기운이 있으면 잡아당기는 기운이 있다.
연적하는 오랫동안 허공섭물에 필요한 기운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했다.
끌어당겨야 한다.
그런 기운을 상상하고 또 상상한 뒤에 검결지로 밀어냈다.
검결지로 거미줄 같은 기운이 흘러 나갔다.
연적하가 상상한 것도 거미줄이었다.
스르륵.
단검이 연적하의 손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마침내 단검을 움켜잡는 데 성공한 연적하의 입에서 시원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