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21
721회. 설마 선지안(先知眼)이 실수라도 한 건 아니겠지?
일반 선원들과 선장은 흑운(黑雲)이 철선(鐵船) 위를 빙빙 돌자 기겁을 했다.
“마! 마귀다!”
그들은 저 괴상한 흑운을 마귀라 믿었다.
사천포가 가까운 데다, 마천의 배를 피하는 중에 생긴 일이니 당연했다.
하지만 종문의 고수들은 기이한 눈으로 볼 뿐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흑운에서 마기가 감지되지 않은 까닭이다.
경험 많은 태상종의 고송 제군이 주변의 노조와 진인 들을 위해 한마디 했다.
“청명한 기운을 보니 신수(神獸)의 화신(化身)이다. 마기를 피해 강을 건너려는 모양이다.”
“아!”
“오오!”
노조와 진인 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들 모두가 신수를 처음 보는지라 흑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두방정을 떨던 선원들이 뻘쭘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신수라는 말을 듣고 다시 보니 과연 불길한 느낌은 없고, 대신에 가슴이 푸근했다. 아마도 저 신수가 은연중에 내뿜는 기운 때문이리라.
목이 뻐근하도록 올려다보던 선장 고해운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옳거니! 이래서 신수, 신수 하는구나!”
마귀인 줄 알고 숨었던 선원들이 슬금슬금 나와 대놓고 흑운을 구경했다.
연적하는 흑운이 낯익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과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흑운이 높게 솟은 돛대를 타고 빙그르르 내려오더니 연적하의 앞에서 멈춰 섰다.
이윽고 바람 소리와 함께 흑운이 흩어졌다.
스스스스-.
흑운이 사라진 자리에 거대한 흑마가 도도한 자태를 드러냈다.
흑마를 본 연적하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린 듯 균형 잡힌 몸과 칼에 맞은 듯 길게 찢어진 한쪽 눈, 그것은 몇 번을 다시 봐도 월악산의 독안귀마였다.
한때 조양성을 공포에 떨게 했던 독안귀마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독안……귀마?”
그러자 흑마가 아니라는 듯 투레질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푸르륵!
이윽고 연적하의 머릿속으로 맑은 음성이 들려왔다.
-아니, 신수 화풍이다.
“헉! 신수의 모습을 되찾은 거냐?”
-그렇다. 그대가 심어 준 공허의 씨앗이 결실을 맺었다.
“축하해. 정말 잘됐다. 그러니까 내가 준 영기로 혼탁해진 영기를 정화했다는 거지?”
-비슷하다.
“야아! 대단하다. 주화입마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데.”
연적하는 화풍의 주위를 한 바퀴 돌며 꼼꼼히 살폈다.
화풍은 자랑이라도 하듯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연적하가 신수와 대화를 나누는 듯하자 종문 고수들의 얼굴에 경외감이 떠올랐다.
저렇게 대단한 신수를 거느리다니!
그들은 흑마를 대종사의 신수로 생각했다.
경외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특히나 신수를 갖는 게 일생일대의 꿈인 고송 제군은 흑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연적하가 화풍의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사천포에서 따라오던 목선들이 되돌아갔다.
소형 목선들은 처음부터 대형 철선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목선들을 떨쳐 낸 철선은 홀가분하게 옥천항 방면으로 전진했다.
연적하가 화풍과 함께 선수(船首)로 자리를 옮겼다.
갑판 한복판은 보는 눈이 많아 대화를 나누기가 조금 불편했기 때문이다.
전방을 보던 연적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와아! 한참을 갔는데 아직도 수평선이네. 진짜 징그럽게 넓다. 그런데 어쩐 일이야? 강을 건너다가 나를 발견하고 와 본 거야?”
-너의 영기를 따라왔다.
“그래? 왜?”
-잊었느냐? 보답을 하겠다고 말한 것 같은데.
“보답? 그때처럼 영지 선초가 있는 곳이라도 알려 줄 거야?”
연적하가 옛일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영지 선초 한 뿌리가 소중하던 그 시절을 생각하니 괜히 웃음이 났다.
화풍은 실없는 소리에 대답하지 않았다.
-마천의 마물들과 싸우고 있다지?
“그런데 왜?”
-마천의 마물들이라면 나도 빚이 있으니 너를 도와 싸우겠다.
“마천과 싸우겠다고?”
연적하가 의아한 눈으로 화풍을 보았다.
신수가 어떻게 마천과 싸우겠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는군. 나는 분명히 너를 도와 싸우겠다고 했다.
“나를 돕겠다고? 어떻게?”
-떠먹여 줘야 알아듣는다는 건가. 그렇다면 떠먹여 주지. 마천의 마물들과 싸우는 너를 나의 고결한 등에 태워 주겠다는 소리다.
순간 연적하는 화들짝 놀랐다.
“뭐라고? 너를 타고 싸우라고?”
신수가 흑운으로 변해 날아다니는 것은 여러 번 보았다.
그걸 어떻게 타라는 건지 모르겠다.
-나를 타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정말 어려운 것은 신수인 내가 누군가를 등에 태우겠다고 마음먹는 것이다.
말과 함께 화풍이 연적하의 옆으로 바싹 다가갔다.
그리고 타라는 듯 옆구리로 연적하를 툭 건드렸다.
연적하는 영 자신이 없었지만 차마 신수의 제안을 거부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신수와 함께 다닌 사람은 있지만, 신수를 타고 다닌 사람은 없었다.
멋있는 말을 보면 타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게 신수라면 말할 것도 없다.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신수를 타는 게 어검비행이나 운종술보다 적과 싸우기 편하기도 할 터였다.
연적하가 훌쩍 몸을 띄워 화풍의 등 위에 앉았다.
일 장(약 3미터)여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은 또 달랐다.
화풍이 연적하를 배려하듯 천천히 ‘따각 따각’ 걸었다.
그러자 연적하가 생각 없이 말했다.
“이런 속도로 싸우자고?”
-그럴 리가. 떨어질 것을 염려하지 마라. 네가 나를 탄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등에 태운 것이니.
“그래, 너는 걱정 없겠지. 떨어지는 건 나일 테니까.”
-역시 이번에도 떠먹여 줘야 알아듣겠군.
말을 마친 화풍이 스르륵 한 줄기 흑운으로 변했다.
찰나지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예상치 못한 변화에 연적하가 흠칫 몸을 떨 때, 흑운이 둥실 떠올랐다.
순간 깜짝 놀라 두 발로 벌떡 일어서려던 연적하는 뻘쭘한 얼굴로 다시 앉았다.
엉덩이로 여전히 화풍의 부드럽고 탄력 있는 등이 느껴져서다.
이건 그야말로 구름을 타고 앉은 모양새다.
이윽고 흑운이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빠르게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쓰아아아- 쓰아아-.
흑운은 하늘에서 자유자재로 방향을 바꾸거나, 아무런 예고도 없이 위아래로 오르내렸다.
그래도 연적하는 중심을 잃지 않고 처음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건 그의 노력으로 된 일이 아니다.
화풍이 연적하가 중심을 잃지 않도록 배려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제야 화풍의 말뜻을 깨달은 연적하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검비행이든 운종술이든 자신이 모든 움직임을 제어해야 했다.
하지만 화풍은 스스로 판단해 움직인다.
자신은 적과의 싸움에만 집중하면 되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허공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던 흑운이 다시 갑판에 내리꽂혔다.
휘리리릭. 척.
연적하를 태운 화풍은 언제 날아다녔냐는 듯 ‘따각 따각’ 갑판을 걸었다.
태상종의 금선 진인이 고송 제군에게 바싹 붙어 속삭였다.
“제군님, 신수가 사람을 태우기도 합니까?”
“그럴 리가. 명색이 신좌(神坐)에 오른 존재가 인간을 태울 리 없지 않으냐.”
“그럼 저건 뭡니까?”
“뭐긴 대종사님을 등에 태운 신수지.”
“신좌에 오른 존재가 왜…….”
“나도 오늘 처음으로 신수가 사람을 태우고 다닐 수도 있다는 걸 알 게 됐다.”
“지금까지 우리가 신수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대종사님이라서 가능한 걸까요?”
“글쎄다. 나는 전자이기를 바란다.”
고송 제군은 흑마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도 저렇게 타고 다닐 수 있는 신수를 꼭 가지고 싶었다.
그의 목표가 ‘어떤 신수라도 좋다’에서 ‘타고 다닐 수 있는 신수면 좋겠다’로 바뀌었다.
***
웅천주 북단.
십자성.
주온현.
백리하 서쪽 편의 십자성은 황천주에 붙었지만 행정구역상 웅천주다.
백리하 서편이니 안전하건만 십자성 사람들은 일찌감치 피난길에 올랐다.
십자성 북쪽에 맞닿아 있는 금산산맥으로부터 언제 마물이 쏟아져 내려올지 몰라서다.
웅천주는 두 개의 산맥으로 감싸여 있었다.
북쪽의 금산산맥, 동쪽의 천관산맥이 그것이다.
지금이야 동쪽의 천관산맥에서 마물이 유입되고 있다지만 사실 금산산맥도 위험지대였다.
금산산맥의 초입에서 멀지 않은 주온현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났다.
주온현에서 사람이 사라지자 인근의 망혼산 야수들이 슬금슬금 영역을 넓혀 나갔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주온현의 거리를 야수들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정오 무렵.
금화루.
금화루는 주온현에서 가장 큰 기루다.
하지만 사람들이 떠난 뒤로 어쩌다 야수들만 오락가락했다.
정오 무렵, 금화루의 화려한 전각 앞에 두 사람이 떨어져 내렸다.
정확히는 사람의 모습을 한 두 존재, 천자마와 우샤스 킨샤사였다.
마천의 군세와 종문 고수들을 이끌고 대치 중인 두 존재가 은밀하게 만나다니?
세상이 알면 놀랄 일이다.
천자마가 전각의 마루에 걸터앉으며 다짜고짜 한마디 했다.
“그대의 예측이 빗나갔다. 지혜의 신이라더니, 지혜가 다한 것인가?”
“무엇이 빗나갔다는 말씀이신지요?”
“천문(天門)을 두고 하는 말이다.”
“혈주종의 천문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그대가 예상치 못한 아주 큰 문제가 생겼다.”
“무엇입니까?”
우샤스 킨샤사가 진의를 파악하려는 듯 천자마의 눈을 직시했다.
“천문이 뽑히지 않는다. 난쟁이들에게 그럼 자르라고 했지만, 돌에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혈주종의 천문을 마천으로 가지고 갈 수가 없게 됐다. 알고 보니 천문에 창조신의 축성이 깃들어 있다고 하더군. 그대는 몰랐는가?”
“금시초문입니다. 천문에 창조신의 축성이 깃들어 있었군요. 축성의 해제가 불가능하던가요?”
“난쟁이들이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요지부동이다. 축성을 푸는 방법이 있다면 알려 주길 바란다.”
“저는 창조신의 축성이 깃든 줄도 몰랐습니다. 축성을 푸는 법은 따로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난쟁이들이 했는데 실패했다면 도리가 없습니다.”
“허면 이대로 끝이라는 것인가?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
우샤스 킨샤사는 즉시 답하지 않고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천문을 대체할 만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우샤스 킨샤사의 침묵이 길어지자 천자마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대의 선지안(先知眼)을 믿고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음을 그대도 알 텐데. 설마 선지안이 실수라도 한 건 아니겠지?”
천자마가 선지안을 의심하자 우샤스 킨샤사는 급히 반박했다.
“저의 선지안은 단 한 번도 잘못된 적이 없습니다. 이 세계는 진실로 멸망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 구원받은 존재는 천자마님과 저밖에 없습니다. 마신의 죽음이 종말의 시작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을 진실입니다.”
단호한 우샤스 킨샤사의 말에 천자마는 더 이상 딴지를 걸지 않았다.
우샤스 킨샤사가 ‘지혜의 신’으로 불리는 것은 그가 가진 선지안 때문이다.
선지안.
말 그대로 우샤스 킨샤사는 미래를 본다.
그가 본 미래에 의하면 우샤스 킨샤사와 자신만이 이 세계를 벗어났다.
천자마 정도의 신격(神格)이면 상대의 말에서 진위를 가려낼 수 있다.
우샤스 킨샤사의 말은 진실이었다.
그 뒤로 천자마는 우샤스 킨샤사와 은밀하게 손을 잡았다.
그러다 예기치 않게 천문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천계가 나서기로 했다니 전쟁은 곧 끝날 것이다. 천문이 아니라면 그대와 내가 무슨 수로 이 종말의 세계에서 벗어났다는 것인가?”
전쟁이 끝나면 마천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전에 어떻게든 천문을 옮기려 했는데 그 길이 막힌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자신과 우샤스 킨샤사는 어떻게 이 세계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