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66
866회. 서결은 뭐 하는 사람이야?
연적하는 협객(俠客)이 아니다.
본인은 내심 그렇게 불리기를 바라지만 그는 단지 정사지간의 고수일 뿐이다.
그것도 아주 괴팍한 고수다.
녹림에서 강호를 배운 그는 남궁연을 만나 중도로 돌아섰지만 괴팍함은 떨치지 못했다.
아니, 언법(言法)과 제멋대로인 그의 성격이 조화를 일으키면서 괴팍함은 배가됐다.
자신의-들쭉날쭉한-도덕 기준에 어긋난 것을 보면 참지 못하지만, 말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호협(豪俠)함의 끝을 보였다.
대악마라는 별명도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정파의 대협객으로 알려진 신기수사 제갈승운부터 사파의 거마까지 모두 그에게 피를 봤다.
그는 심지어 혈족까지 짓밟아 멸문에 이르게 할 정도로 잔혹했다.
그를 두고 정사파에서 하는 말이 있다.
-앳되고 어리바리해 보이는 얼굴에 속지 마라. 당신이 누구라도 그의 눈 밖에 나는 순간 대악마의 진면목을 보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남천 연적하에 대한 올바른 평가인지도 모른다.
연적하가 기괴하게 웃자 후왕수채의 부채주 반수명은 일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아기를 안고 있던 모습에 그만 대악마의 본성을 깜빡하고 말았다.
‘헉!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반수명은 급히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퍼퍼퍼펑-!
연적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에 폭발음과 함께 범선 주위의 물이 솟구쳤다.
하늘로 올랐던 강물은 이내 폭포처럼 갑판 위로 쏟아져 내렸다.
쏴아아아-.
한순간 호광성 무림인들과 후왕수채 수적들은 물에 빠진 생쥐처럼 젖었다.
“크크크큭!”
연적하의 웃음이 더욱 커졌다.
콰콰콰콰쾅-!
또다시 강물이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솟구쳐 올랐다.
이번에는 운 없게 후왕수채 수적들이 타고 왔던 목선까지 휘말려 들었다.
콰드드득- 꽈광!
가공할 압력을 견디지 못한 목선이 바스러졌다.
산산조각이 난 목선의 잔해가 강물과 함께 하늘로 솟구쳤다.
쏴아아아- 후두두득- 콰직-!
강물과 함께 목선의 잔해 일부가 갑판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중 몇 개가 신녀궁 제자들과 후왕수채 수적들을 강타했다.
퍽! 퍼억-!
그러나 신녀궁 제자들과 후왕수채 수적들은 지은 죄가 있는지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진소월은 뜨끈한 뭔가가 이마를 타고 내려왔지만 감히 확인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조금 전 배의 잔해가 떨어질 때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그래도 자신은 해어화 이진보다는 나았다.
그녀의 어깨에는 팔뚝만 한 널빤지 조각이 박혀 있었으니까.
콰콰콰콰쾅-!
또다시 범선 주변에서 폭발음이 일며 물과 목선의 잔해가 하늘로 솟구쳤다.
쏴아아아- 후두득- 콰직-!
갑판 전체에 떨어지는 강물과 달리 목선의 잔해는 공교롭게 신녀궁과 수적들 위로만 떨어졌다.
날카로운 목선의 잔해가 다시 신녀궁과 수적들을 강타했다.
마른 널빤지 조각에 맞으면 그래도 다행이다.
물에 젖어 무거운 목선 하부 조각에 맞은 사람들은 ‘악!’ 소리와 함께 널브러졌다.
내력이 무한한지 연적하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쉬지 않고 강물이 폭발했고, 신녀궁과 수적들 머리 위로 목선의 잔해가 떨어졌다.
쏴아아아- 후두둑-!
팔뚝만 한 널빤지 조각 몇 개가 갑판 위로 맥없이 떨어졌다.
물살에 다 떠내려가고 남아 있던 마지막 잔해였다.
갑판에 서 있던 신녀궁 제자들과 수적들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제야 연적하는 웃음을 뚝 그쳤다.
이윽고 그가 반수명에게 손을 뻗자, 반수명이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호광성 무인들과 수적들은 이제 놀라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연적하가 보여 준 것들에 비하면 허공섭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캑!”
목이 잡힌 반수명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연적하가 그를 자신의 얼굴 앞까지 바짝 끌어당기고 물었다.
“네가 고정하라고 하면 내가 고정해야 되냐?”
“아, 아닙…….”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명령을 해. 내가 네 부하냐?”
“죽을죄……. 캑! 캑!”
용서를 빌던 반수명은 갑자기 숨통이 조여 오자 버둥거렸다.
하지만 연적하는 손아귀의 힘을 풀지 않고 그를 지그시 보기만 했다.
버둥거리던 반수명이 축 늘어졌다.
그제야 연적하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그의 몸을 옆으로 툭 던졌다.
갑판 위로 정적이 흘렀다.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던 연적하가 후왕수채 채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야.”
“예?”
후왕 황보력이 얼빠진 얼굴로 연적하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뭔지 몰라 그냥 시키는 대로 할 생각이다.
“살고 싶어?”
뜬금없는 질문에 황보력의 얼굴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그건 이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계집들을 팔겠다’는 말이 죽을죄라니 기가 막혔지만 어쩌겠는가!
강호에서는 강한 사람의 말이 법이었다.
“살려 주십쇼!”
그는 후왕(猴王)의 체통도 잊고 수하들 앞에서 갑판에 넙죽 엎드렸다.
채주가 그러니 보고 있던 수적들이 일제히 오체투지(五體投地) 하며 소리쳤다.
“살려 주십쇼!”
그러자 연적하가 손으로 강을 가리켰다.
“가.”
“…….”
한순간 황보력은 멈칫했다.
그들이 타고 왔던 목선이 박살 나서 강물에 떠내려간 까닭이다.
그러니 가라는 말은 즉, ‘강물에 뛰어들라’는 소리였다.
‘아아! 실로 잔악한 놈이로구나! 왜 저놈이 대악마로 불리는지 알겠다.’
피차간에 아무런 은원도 없는데, 조만간 녹림의 일원이 될 후왕수채의 배를 박살 내더니, 이제는 이 깊은 양자강에 뛰어들란다.
“싫어?”
연적하의 물음에 황보력은 미친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가겠습니다!”
그는 연적하가 다른 소리를 할까 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양자강에 뛰어들었다.
연적하가 상황 파악을 못하고 아직 남아 있는 수적들에게 말했다.
“살고 싶으면 가라고.”
그제야 수적들도 앞다퉈 강물에 몸을 던졌다.
갑판 위에 있던 수적들이 사라지자 연적하는 신녀궁을 향해 돌아섰다.
그와 얼굴을 마주하게 되자 해어화 이진은 수적들처럼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그녀는 연적하가 무서웠다.
같은 식구가 될 수적들에게도 저렇듯 잔혹한데 하물며 아무런 관계도 없는 신녀궁이야 오죽할까!
게다가 신녀궁의 제자들은 그의 부인에게 입에 담지 못할 말까지 했다.
분노한 그가 이 자리에서 쳐 죽인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이진의 행동을 본 신녀궁 여제자들도 황급히 바닥에 무릎 꿇었다.
이진은 유구무언의 상황인지라 조용히 바닥에 이마를 가져다 대고 처분만 기다렸다.
연적하가 이진의 뒤통수를 내려다보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사람들이 참 못됐어. 일면식도 없는 우리 누님에게 왜 그런 소리를 하나 몰라.”
“천녀(賤女)들이 십전무후 님을 몰라뵙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들어 댔습니다. 아무쪼록 갱생의 기회를 허락하여 주신다면…….”
“살려는 줄게.”
순간 신녀궁 여제자들이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살려 준다는 말에 희색이 만연한 그녀들을 보며 연적하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당신들은 사람이 덜됐어. 당신들을 보면 개돼지가 떠올라.”
“…….”
신녀궁 여제자들은 다시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도저히 맨정신으로 연적하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어서다.
그런 그녀들의 귓가로 연적하의 음성이 들려왔다.
“당신들은 배에서 내릴 때까지 지금처럼 네발로 다녀. 그 전에 사람 흉내를 내면, 온몸에 똥칠을 해 줄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
직립보행을 하지 말라는 소리다.
이진이 신녀궁 제자들을 대신해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답했다.
“……예.”
“가 봐. 내 눈에 띄지 마.”
머뭇거리던 신녀궁 여제자들은 엉금엉금 기어서 선실로 사라졌다.
그 기괴한 광경을 보고도 호광성 무인들은 누구 하나 웃지 못했다.
연적하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신검문이다.
신검문도들은 딱히 지은 죄가 없음에도 잔뜩 긴장한 얼굴로 안절부절 못했다.
신검문의 소문주 화경부 앞에 멈춰 선 연적하가 그를 빤히 보았다.
그제야 화경부는 사색이 되어 철퍼덕 무릎을 꿇었다.
“연 대협! 용서해 주십쇼! 미련하고 둔한 소인이 귀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죄를 지었습니다.”
사실 화경부는 끝까지 시치미를 떼려 했다.
연적하의 얼굴이 과거 오룡궁에서 보던 것과 너무 달라서다.
하지만 변한 것은 그의 얼굴이지 자신이 아니다.
뒤늦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도저히 버티고 있을 수가 없었다.
“화 형. 오랜만이네.”
“……예.”
“일어나. 동문끼리 왜 그래?”
그제야 화경부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까맣게 잊고 있던 오룡궁 시절의 일이 떠오른 그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오룡궁에서의 일은 백번 천번 제가 잘못했습니다. 후에 연 대협의 진실한 신분을 알고 사죄하려 했으나…….”
“됐고. 언제 하산했어?”
“이 년 전입니다.”
연적하가 그를 힐끔 보았다.
처음에는 그렇게 괘씸하더니 반가움의 감정이 밀려왔다.
강호에서 오룡궁 출신의 사람들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닌 까닭이다.
“오룡궁의 스승님들은 건강하시고?”
“예, 오룡육사 스승님들은 항상 남천 대협의 성취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군.”
연적하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따뜻해지기는 처음이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어? 무림인들이 단체로 움직이는 일은 흔치 않은데.”
“혹시 이 배에 탄 사람들을 두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
“아마 의창의 서가장으로 가는 걸 겁니다.”
“서가장? 왜?”
“서가장의 장주인 서결 대협께서…….”
말을 하다 말고 화경부가 연적하의 눈치를 살폈다.
“서결 대협이 뭐? 왜 말을 하다가 말아?”
연적하의 채근에 머뭇거리던 화경부는 어쩔 수 없이 말을 이었다.
“호광성에는 처음으로 의창에 유명교 신당이 세워졌는데, 서결 대협께서 당주로 임명되셨습니다. 그 일로 서가장에서 축하연을 열었고요. 그 축하연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중입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할 겁니다.”
“서가장의 서결이 의창에 생긴 신당의 당주가 됐는데, 그걸 축하하기 위해 가고 있다?”
“예.”
“서결은 뭐 하는 사람이야? 아무나 당주로 임명하지는 않을 거 아냐?”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사람이라서.”
“잘 모르는데 왜 ‘서결 대협’이라고 했어?”
“그게, 남들이 ‘서결 대협’이라고 해서 저도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화경부는 연적하와 유명교 간의 적대적인 관계를 알기에 사죄부터 했다.
“서결이라…….”
유명교에서 신당은 꽤나 중요한 거점이라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았다.
연적하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그런 이름은 없었다.
‘흠! 백두마군은 아닐 테고, 화경부도 모르는 사람이라니…….’
문득 ‘유명교주를 따라다니던 십두마병 중에 하나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정말 십두마병이라면 유명교주의 근황에 대해 알고 있겠지?’
어차피 가는 길이니 한번 들러서 확인해도 좋을 것 같다.
아니, 왠지 반드시 들러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