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10
910회. 인정사정 보지 말고 밟아라
닷새 전.
하남성 정주 칠리하촌.
호천맹.
숙소에서 쉬고 있던 신입 무사 주천교는 총사부의 호출에 현천각으로 향했다.
현천각 앞마당에서 그는 자신과 함께 선발된 문유범을 만나 눈인사를 건넸다.
“문 형이 여긴 웬일이오?”
“총사부에서 오라 하여 왔소만. 주 형은?”
“나도 총사부의 부름으로 왔소.”
그러자 문유범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주천교를 보았다.
주천교 역시 같은 눈으로 문유범을 살폈다.
‘뭐지?’
호천맹의 신입 고수 중에 최고수 열 명을 ‘호천십걸’이라 한다.
그들이 월봉으로 얼마를 받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숫자도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워낙 입들이 무거워 떠벌리지 않아서다.
호천십걸 다음으로 백여 명의 고수가 은자 열 냥을 받았다.
월봉으로 은자 열 냥을 받는 고수들은 ‘호천십걸’에 빗대 스스로를 ‘호천십은’이라 했다.
문유범과 자신은 ‘호천십은’이었다.
무림은 능력제다.
낭인들은 의식주를 제공받지 못하고 한 달에 은자 세 냥을 받는다.
그러니 의식주를 제공하고 한 달에 은자 열 냥이면 특급 대우였다.
우스갯소리로 ‘호천십은’이라 하지만 그들 모두 일류 고수이기에 가능한 대우다.
주천교와 문유범은 서로를 의식하며 현천각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걸?
총사부 사람에게 안내받은 회의실에는 ‘호천십은’이 셋이나 더 앉아 있었다.
중양절의 무림대회를 이끌었던 공손방이 입을 열었다.
“다들 내가 누군지는 알 테고.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호천맹의 주적은 유명교다. 이 말에 이의 있나?”
비록 임시직이지만 현재 호천맹을 이끌어 가는 사람은 오십 대의 공손방이다.
이제 이삼십 대에 불과한 신입 무사들에게 공손방은 까마득히 높은 상관이었다.
다섯 명의 신입 무사들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중양절 무림대회의 목적이 유명교에 맞설 협객들을 모집하는 것이니 이의라고 할 것도 없었다.
“유명교와는 결이 다르지만, 호천맹에는 잠재적인 적이 하나 더 있다. 그게 어디인지 아나?”
공손방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다섯 명의 신입 고수들을 보았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녹림 아닙니까?”
순간 공손방이 피식 웃었다.
녹림이라 말했던 이가 멋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녹림은 그 자체로 맹에 대적한 역사가 없다. 마교나 다른 세력의 조력자에 불과하지.”
한마디로 녹림은 적이 아니라는 소리다.
머리를 쥐어짜는 신입들 귓가로 공손방의 음성이 들려왔다.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적이 있다. 비록 적이지만 나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적과, 나를 말려 죽이는 적이 그것이다. 예컨대 유명교는 전자에 속한다. 존재의 의미를 잃고 유명무실하게 지내던 호천맹이 신입을 뽑고, 웅비(雄飛)하게 만들었으니까. 호천맹의 잠재적인 적은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모르겠나?”
순간 주천교의 눈에서 안광이 번득였다.
‘아하!’
그는 잠재적인 적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오늘날 호천맹과 경쟁이 가능한 곳은 남맹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남맹입니까?”
공손방의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맞다. 같은 정파의 연합을 잠재적인 적이라 말하는 것이 이상한가? 호천맹은 수십 년 만에 신입을 모집했다. 여러분을 먹이고, 입히고, 재워 주고, 월봉까지 주기 위해서는 매달 은자 수천 냥이 든다. 호천맹이 여러분을 뽑은 건 무림을 관리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군소 방파들의 권익을 보호해 주면, 그들은 우리에게 사례비를 지불하고, 우리는 다시 그 돈의 일부를 여러분에게 월봉으로 지급한다.”
평생 무술만 연마한 신입들은 자세한 설명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데 무림의 방파들이 우리가 아니라 남맹에 의지하면 어떤 일이 생기겠나? 그들이 지불하는 사례비도 남맹으로 가게 된다. 무림의 돈이 전부 남맹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는 소리다. 남맹이 부유해지는 만큼 호천맹은 가난해진다. 호천맹에 들어오는 돈이 줄어들어 여러분의 월봉을 지급할 수 없게 되면, 우리는 여러분을 정리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남맹을 호천맹, 특히 너희 신입들의 잠재적인 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알겠나?”
“예!”
다섯 명의 일류 고수들은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공손방의 설명을 들으니 다소 애매하던 적의 개념이 분명해졌다.
앞뒤 분간 못 하고 멍하니 앉아 있던 신입들의 눈에서 안광이 번득였다.
“대충 말귀를 알아들은 것 같으니 이제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주겠다. 낙양에 금와상방이라고 있다. 대륙의 십대상방으로 우리 호천맹의 강력한 우군이지. 그곳에서 지원을 요청했다. 남맹을 후원하는 상조상방이 금와상방의 사업에 분탕질을 친다고 한다.”
신입 중에 누군가 성급하게 나섰다.
“가서 그놈들을 밟아 주면 되는 겁니까?”
그러자 공손방이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그렇다. 금와상방과 상조상방은 대륙의 십대상방으로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람들은 호천맹과 남맹의 대결로 인식할 것이다. 그냥 밟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밟아 남맹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게 만들어라. 이후로 우리 호천맹과 관계된 일에 도발할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주천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철저하게 밟으라는 것은 피를 보라는 말입니까?”
“상대의 저항이 어느 정도냐에 달려 있겠지. 그건 너희들이 현장에서 결정해라. 목숨까지는 그렇고, 사지 중에 하나 정도는 날려도 좋다.”
“남맹의 지원이 있을지 모르는데 저희 다섯으로 가능하겠습니까?”
“너희들은 십인장이다. 너희들 아래로 각각 열 명씩 배정해 주겠다. 금와상방의 호위도 있으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낙양에서 너희의 신분은 금와상방에서 고용한 무인이다. 일을 마치는 즉시 대원들을 이끌고 호천맹으로 복귀하면 된다. 질문 있나?”
문유범이 손을 들었다.
“본디 칼날에는 눈이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싸움이 격해지면 사지 중에 하나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괜찮은 겁니까?”
신입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난전이 벌어지면 누군가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었다.
공손방이 뱀처럼 차가운 눈으로 문유범을 직시하며 답했다.
“이것은 단지 상방 간의 이권 분쟁이 아니다. 호천맹과 남맹의 싸움이고, 너희들의 생존이 달린 일이다. 호천맹에서 호의호식하고 싶다면, 인정사정 보지 말고 밟아라. 뒷일은 호천맹이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다.”
노골적인 그의 말에 ‘호천십은’들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그리고 현재.
상월정.
정오가 되자 금와상방과 진평상방, 일심상방의 대표들이 모여들었다.
때가 되자 금와상방의 곽양인 대행수가 나서서 회의를 진행하려 했지만, 진평상방과 일심상방 방주들의 반응이 어째 영 미지근했다.
그 모습을 본 금와상방의 구본웅 방주가 손을 들어 회의를 중단시켰다.
“곽 대행수, 두 분 방주님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것 같으니 잠시 멈추게.”
“예.”
곽양인이 슬그머니 한 걸음 물러났다.
구본웅 방주가 진평상방과 일심상방 방주를 지그시 볼 때다.
마당에서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상조상방의 손월 방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뒤로 오십여 명의 무인들이 질서 정연하게 뒤따르고 있었다.
손월 방주를 본 진평상방과 일심상방 방주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허허허! 급한 일을 정리하다 보니 조금 늦었소이다. 구 방주, 나도 진평상방과 일심상방의 인수에 관심이 있어서 염치 불고하고 달려왔소.”
“쯧! 남이 차린 밥상에 젓가락 올리는 버릇은 여전하구려.”
구본웅 방주가 못마땅한 눈으로 손월 방주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손월 방주는 태연자약하게 빈자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자아, 어디까지 이야기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계속해 보시구려.”
사회를 보던 곽양인이 구본웅을 보았다.
다시 한번 혀를 차던 구본웅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곽양인이 말을 이어 갔다.
“일단 우리 금와상방은 지난번에 잠정 합의 본 대로 진평상방과 일심상방을 각각 은자 십만 냥에 매입하려 합니다. 추가로 진평상방과 일심상방의 부채까지도 떠안겠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두 분 방주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진평상방과 일심상방 방주들은 ‘부채까지 떠안겠다’는 말에 희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승낙하지는 않았다.
십오만 냥에 팔 것을 제안한 상조상방의 손월 방주가 있기 때문이다.
역시나 손월 방주는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우리 상조상방도 부채를 떠안고 각각 십오만 냥에 매입할 의향이 있소.”
순간 화를 참지 못한 구본웅이 버럭 소리쳤다.
“손 방주! 딴지도 적당히 거시오! 상조상방에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러는 거요!”
그러자 손월 방주가 탁자 위에 전표 묶음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물론 지금 가진 돈은 십만 냥이 전부요. 오만 냥을 선금으로 걸리다. 중도금인 오만 냥은 두 달 안에, 잔금 오만 냥은 내년 봄에 지불하리다. 잔금을 지불하기로 한 내년 봄까지 진평상방과 일심상방은 두 방주님이 지금처럼 운영하시면 되오. 어떻소? 지금 십만 냥을 받고 끝내겠다면 금와상방과 계약하시오. 그러나 올해 십만 냥을 받고, 내년 봄에 오만 냥을 더 받겠다면 나와 계약하십시다.”
“흥! 고작 십만 냥으로 진평상방과 일심상방을 꿀꺽하시겠다?”
“중도금과 잔금의 지급 보증은 남맹에서 서 줄 것이오. 그 정도면 믿을 만하지 않소?”
진평상방과 일심상방의 방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남맹이 지급을 보증한다면 기다려 볼 만도 했다.
“남맹을 등에 업고 맨입으로 진평상방과 일심상방을 집어삼키시겠다? 손월! 우리 금와상방이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더냐!”
악에 받친 소리를 손월 방주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쳤다.
“맨입이라니? 구 방주 눈에는 십만 냥의 전표가 보이지도 않소?”
“상방을 인수하는 데 외상이라니! 그런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 했다! 게다가 남맹이 그때 가서 모르는 일이라고 하면? 어찌할 테냐?”
그러자 손월 방주를 따라온 무사들 중에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본인은 남맹 총사부 소속의 모용각이외다. 상조상방은 남맹의 주요 후원처요. 남맹의 총사부가 상조상방의 지급을 보증해 줄 것이오.”
구본웅은 남맹 고수가 나서자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다 끝났다고 생각한 손월 방주가 전표를 진평상방과 일심상방 방주 쪽으로 밀었다.
진평상방과 일심상방 방주가 막 전표로 손을 뻗어 갈 때다.
열 명의 호위들을 이끌고 주천교가 앞으로 나섰다.
“낙양은 호천맹의 관할 구역이외다. 호천맹의 관할 구역에서 남맹이 보증을 서다니? 모용 대협의 눈에는 호천맹이 바지저고리로 보이나 봅니다?”
갑작스러운 도발에 모용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상대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는 대놓고 남맹을 무시하는 발언이었다.
“귀하는 누구요?”
“나는 금와상방의 호위인 주천교요. 보증을 서고 싶으면 합비에서나 서시오. 이곳 낙양에서 남맹의 보증 따위를 인정하는 사람은 없소.”
“뭐라! 일개 호위가…….”
그러나 주천교는 모용각을 무시하고 진평상방 방주와 일심상방 방주에게 말했다.
“두 분 방주도 잘 생각해서 결정하시오. 낙양에서 머나먼 남맹의 보증이 언제까지 통할지. 나라면 그 돈을 거절할 것 같은데.”
스산한 그의 말에 진평상방과 일심상방의 방주는 손을 거둬들였다.
오만 냥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하남성에서 호천맹과 척을 지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모용각이 살기등등한 얼굴로 소리쳤다.
“주천교! 네놈이 남맹을 욕보이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당장 엎드려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네놈을 포박해 남맹으로 끌고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