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3
93회. 난 반댈세
육신통은 불가에서 말하는 여섯 가지 특별한 능력이다.
신족통, 천이통, 타심통,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이라 불리는데 가히 반신의 경지에 들지 않으면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다.
“예? 어디가 아프시다고요?”
“됐어, 이 무식한 인간아.”
연적하가 자리를 털고 침상에서 내려왔다.
꿈에 풍연초의 다 죽어 가는 얼굴을 봐서 그런지 마음이 편치가 않다.
“심 노인.”
“예.”
“산채에 사람 좀 보내서 별일 없는지 알아봐. 우리가 머무는 곳 알려 주고.”
“그 정도로 찜찜하신 겁니까?”
“어차피 낙양에 도착하면 소식 전하려고 했잖아.”
“알겠습니다.”
구천노도 심통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연적하를 바라보았다.
그와 같은 경지에 도달하면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된다. 어쩌면 오봉십걸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아무 일도 없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
평범한 사람들도 물고 뜯으며 살아 가는데 하물며 혈기왕성한 무인임에야.
식당으로 내려가는 길에 심통이 물었다.
“공자님, 그런데 낙양에는 언제까지 머무르실 생각입니까?”
“왜? 벌써 오봉산이 그리워?”
“만약 오래 계실 거면 객점보다 사합원이 낫지 않을까 싶어서요.”
“사합원?”
“낙양에서 많이 보셨잖습니까. 정원을 중심으로 사방에 방이 있는 집요. 그걸 사합원이라고 합니다. 그런 집을 얻어서 지내는 게 어떨까 해서요. 지내시기에 객점은 너무 좁지 않습니까?”
“그러든지.”
연적하는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남궁세가가 정주로 떠난다는 말을 들은 뒤로는 모든 게 시들했다.
***
개봉.
용희루.
후원을 가르는 긴 담장 뒤에서 한 남자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죽방의 살수 육살 공진단이다.
풍연초의 숨통을 끊기 위해 용희루에 숨어든 지도 벌써 이틀째.
그런데 도무지 기회가 나지 않는다.
탁고명이라는 텁석부리 호위가 풍연초의 곁을 지키고 있어서다.
답답한 마음에 수하들을 보내 기루를 뒤집어 봤지만, 소용없었다.
놈은 뒷간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어쩌다 뒷간에 갈 때는 다른 호위들을 불러 풍연초를 지키게 했다.
검붉게 타들어 가는 노을을 보던 공진단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풍연초의 숨통을 끊으려 해도 도통 기회가 나지 않으니 미칠 노릇.
오늘도 빈손으로 돌아가면 삼 공자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머리를 쥐어짜던 그는 결국 지금 끝장을 보기로 결심했다. 삼 공자에게 깨지는 것보다 탁고명을 상대하는 게 훨씬 나으니까.
덜컹.
멀리서 방문 열어젖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느낌상 뒷간에 가려고 내다보는 것 같다.
그러나 아직 다른 호위무사들이 돌아올 시간은 아니다.
공진단은 진기를 일 주천시킨 뒤 양손에 단검을 하나씩 쥐고 천천히 일어섰다.
담장 너머로 인상을 찌푸리며 돌아서는 텁석부리가 보인다.
뒷간이 급한데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으니 괴로운 모양이다.
텁석부리가 도로 들어가며 문을 닫았다.
스슥.
그 순간 공진단의 신형이 담장을 타고 넘었다.
살수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이제는 죽든지, 죽이든지 둘 중 하나다.
파파팟.
공진단은 망설임 없이 가볍게 지면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그리고 굳게 닫힌 방문을 온몸으로 들이받으며 벼락 치듯 뛰어들었다.
콰앙! 하고 문짝이 터져 나갔다.
은밀한 것도 좋지만, 때로는 이렇게 무식한 방법이 나을 때가 있다.
역시나 당황한 텁석부리의 얼굴이 눈에 한가득 들어왔다.
얼마나 놀랐는지 놈은 살수 앞에서 ‘으헉’ 하고 비명까지 내질렀다.
쉬쉬쉬쉭.
공진단의 두 손이 쾌속하게 움직였다.
날 선 쌍단검의 희뿌연 잔영이 노도처럼 텁석부리에게 밀려갔다.
살수의 난입에 탁고명이 기겁을 한 것은 사실이다.
어찌나 놀랐던지 비명과 함께 참고 있던 변까지 찔끔 지렸을 정도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산적으로 굴러먹던 그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 방어에 나섰다.
물론 박도를 뽑을 틈이 없어 맨손이다.
스걱. 스걱.
단검이 팔뚝을 스칠 때마다 피가 튀었다.
탁고명은 치명적인 공격을 피하며 옆으로 돌았다.
집요하게 상대를 몰아붙이던 공진단이 잠시 멈칫했다.
얼핏 발밑에 시커먼 얼굴의 풍연초가 누워 있는 게 보였던 것이다.
목표물은 텁석부리가 아니라 풍연초다.
공진단은 앞으로 찔러 가던 단검을 회수하는 동시에 허리를 숙였다.
하지만 그 짧은 머뭇거림이 문제였다.
슈각.
칼집을 긁는 무지막지한 소리와 함께 차가운 도풍이 훅 밀려왔다.
공진단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머리를 살짝 틀었다.
빠각.
날카로운 타격음과 함께 공진단의 머리에 구멍이 뚫렸다.
“헉헉! 씨부럴 놈이 죽으려고! 어디서.”
숨이 찬지 어깨를 들썩거리고 있는 탁고명의 귓가에 작은 소리가 들렸다.
“……냄새난다.”
***
낙양.
천년의 고도 낙양에서 연적하는 누가 봐도 한량이었다.
그는 점심 무렵에 일어나 객점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명승지를 돌아다니다가, 분위기 좋다는 주루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보통의 주택에서 살았다면 그에 관한 소문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객점은 특성상 일어나는 시간과 먹는 시간,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공개될 수밖에 없다.
부스스한 모습으로 먹는 걸 보인다거나, 늦은 밤에 잠긴 문을 열어 달라고 소란 피우다 보면, 주변에서 하나둘씩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무진객점의 한량 연적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무렴 어떤가.
어차피 작정하고 노는 중인 것을.
남궁세가가 정주로 떠난 뒤로는 매일 술을 입에 달고 살았다.
심통은 그런 연적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확실하게 보필했다.
해가 떨어지자 연적하는 심통을 앞세워 주루 골목으로 들어섰다.
며칠째 계속된 탐방으로 어지간한 곳은 이미 다 거쳐 본 상태.
까탈스럽게 주루를 고르던 심통이 한 곳을 가리켰다.
“공자님, 오늘은 저곳이 어떻겠습니까?”
“풍월루?”
“예, 술맛이 그중 괜찮았던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저긴 안주가 별로던데…….”
“공자님, 술이 우선이지 안주가 우선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 진짜. 저긴 숙수가 마음에 안 들어.”
투덜거리면서도 연적하는 풍월루로 걸음을 옮겼다.
근처에 달리 갈 만한 곳이 없어서다.
주루에 들어서자 스무 살의 점소이, 홍적소가 얼굴을 알아보고 알은체를 했다.
“어이쿠! 공자님! 어서 오십쇼! 잘 오셨습니다. 오늘은 제가 책임지고 맛있는 요리를 내오겠습니다! 저 한 번 믿어 주십쇼!”
말하다가 흥분한 홍적소는 제 가슴을 펑펑 두드렸다.
그러자 지난 며칠간의 유흥으로 얼굴이 두꺼워진 연적하가 그를 타박했다.
“홍 형, 당신이 숙수야? 정말 책임질 수 있어? 아무 말이나 막 던지지 말자. 나 섬세한 남자라고.”
“형님! 정말입니다. 숙수가 바뀌었다니까요. 제가 형님 생각 많이 했습니다. 그 정성이 하늘에 닿았나 봅니다. 오늘 다시 오신 걸 보니.”
고작 이틀 만에 다시 보는 것이건만 그는 몇 년이라도 된 듯 호들갑을 떨었다.
“알았어. 기대해 볼게. 너무 붙지 말고. 홍 형, 땀 냄새 장난 아니거든?”
“예, 예, 이리 오십쇼. 제일 좋은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홍적소가 굽실거리며 이 층으로 안내했다.
다른 건 몰라도 제일 좋은 자리라는 말은 맞았다.
자리에 앉아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자, 붉게 물들어 가는 낙양의 거리가 그림처럼 펼쳐졌다.
연적하가 경치에 심취해 있는 동안 심통이 술과 안주를 시켰다.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잔을 비워 나갔다.
“흐흐, 숙수가 바뀌었다고 하더니, 안주가 제법 입에 맞는 것 같습니다.”
심통의 말에 연적하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틀 전에 먹은 것보다 맛이 좋았다.
이 정도 솜씨라면 그냥 여기서 저녁을 해결해도 될 것 같았다.
“캬하! 술맛 좋다. 공자님, 저는 매일매일이 요즘 같으면 참 좋겠습니다.”
“누가 말려? 그렇게 살아. 그동안 안 쓰고 모아 놓은 돈도 꽤 되잖아.”
“혼자 그렇게 살겠다는 소리가 아니고요. 공자님과 함께 느긋하게 즐 기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배고프면 먹고, 가고 싶은데 있으면 가고, 밤이면 주루에서 늘어지게 술을 마시고, 얼마나 좋습니까?”
“뭐? 심 노인이야 좋겠지만, 나는 무슨 죄야? 내가 왜 심 노인 같은 늙은이랑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난 싫어. 그런 생활 절대로 반댈세.”
“…….”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심통은 반박하지 못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죽치고 있을 때다.
홍적소를 따라 이 남 일 녀가 올라왔다.
그들은 마침 비어 있던 연적하와 심통의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
이 남 일 녀는 자리에 앉기 직전, 슬쩍 연적하와 심통을 훑어보았다. 둘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도검이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무림인에게는 특유의 기도라는 게 있다.
정파가 맑고 담백하며 웅혼하다면, 사파는 음험하고 위험한 느낌을 풍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들은 연적하와 심통에게서 맑고 담백한 기운을 느꼈다.
최소한 사마외도는 아니라는 뜻이다.
세 사람은 서로를 향해 ‘괜찮다’는 눈짓을 보낸 뒤 착석했다.
사실 그들은 의천문의 제자로 모처럼 의기투합해 주루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여자, 비봉 전수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고 사형, 그런데 아까 그건 무슨 소리예요?”
“아까?”
“개봉에서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면서요?”
“아, 그거? 수운상방에 우리 문파 제자들이 많은 건 알고 있지?”
“네.”
“어제 거기 신 행수가 지나는 길에 들렀더라고. 처음엔 인사차 왔다고 하더니, 쓸 만한 사람 좀 보내 달래. 그래서 문 사제를 소개해 줬어.”
“그거 말고요. 재밌는 일.”
“아이고 그놈의 성질머리 하고는. 알았어. 개봉에서 최근 주목받는 낭인 둘이 있다. 너희도 용희루라고 들어 봤지?”
“네.”
“알죠.”
“그 기루의 호위무사들이라는데, 유명해진 과정이 좀 특이해. 한 사람은 비침까지 사용한 고수를, 일도에 반으로 갈랐고.”
“어머, 이렇게 반으로요?”
전수린이 손으로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쭉 내려 보였다.
“어,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쌍단검 쓰는 살수의 머리통에 구멍을 냈대. 그것도 도기만으로.”
“에이, 설마.”
전수린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대체로 칠파이문이나 명문의 제자들은 기루에 진출하기를 꺼려 한다. 당연히 사문의 체면을 고려해서다.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게 낭인이었다.
사람 몸을 세로로 쪼개거나, 도기만으로 머리에 구멍을 내는 건 칠파이문의 일대제자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그걸 기루를 지키는 낭인들이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