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44
944회. 어차피 꼴리는 대로 하실 거 아닙니까?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오자 청류신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안일이나 하는 자기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자 심통도 덩달아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심 노인은 앉아 있어.”
“저는 왜요?”
“내가 말주변이 없잖아. 분위기 썰렁할 것 같으면 한마디씩 하라고.”
“공자님쯤 되면 말주변 좀 없어도 됩니다. 공자님이 불편할 일은 없잖습니까?”
“쯧쯧! 사람이 이기적이야. 다른 사람들 생각도 하면서 살아야지.”
연적하와 심통이 티격태격하는 동안 청류신은 조용히 객청을 떠났다.
곧이어 소삼이 무극문 제자들을 데리고 왔다.
“장주님, 무극문의 손님들을 모시고 왔습니다.”
소삼의 소개가 끝나자 장경수와 양소백이 공수(拱手)와 더불어 인사를 올렸다.
“남천 대협!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무극문의 소문주 장경수라 합니다.”
“순찰당의 양소백이에요.”
“어서 오세요. 소 아저씨는 주방에 가서 여기 다과 좀 내 달라고 해 줘요.”
“예!”
소삼이 안채로 사라졌다.
그러는 동안 장경수와 양소백은 연적하의 맞은편에 조용히 앉았다.
억지로 붙들려 있던 심통이 장경수를 향해 물었다.
“너는 풍뢰도와 무슨 관계냐?”
풍뢰도 장강호는 유명교와의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심통은 무극문의 소문주라는 말에 그를 떠올리고 관심을 보였다.
“백부님이십니다.”
“허면 네가 천공도 장학의 아들이냐?”
“예.”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연적하가 끼어들었다.
“심 노인, 천공도 장학을 알아?”
“모릅니다. 무극문의 새 문주라는 소문만 들었습니다.”
“아하! 난 또, 하도 진지하게 물어서 아는 사람인가 했네.”
“녹림이나 하오문이면 모를까? 호천맹의 사람을 제가 무슨 수로 알겠습니까?”
“알 수도 있지. 예전에는 많이 두드려 맞고 다녔을 거 아냐.”
“대체 언제 적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저 그렇게까지 동네북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
“그렇다고 해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알았다니까 왜 그렇게 집착해? 혹시 천공도 장학에게 된통 당한 적 있는 건 아니지?”
연적하가 자신을 물고 늘어지자 심통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무극문의 사람들이 석경장에 찾아온 이유는 무엇이냐?”
그제야 연적하는 말장난을 멈추고 장경수를 빤히 보았다.
확실히 심통을 남겨 두기를 잘했다.
그가 대화를 끌어 나가는 동안 한 걸음 떨어져 보고 있으니 한결 여유로웠다.
“저희 무극문은 삼백 년 전 남경에서 개파를 한 이래 정도무림의 한 축을 담당해 왔습니다. 유명교와의 전쟁에서 입은 피해로 봉문을 했지만, 최근 황성으로의 진격에도 참가를 했었지요.”
연적하는 벌써부터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장인에게 남직례성 이외의 지역에서 철수하라고 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다른 지역을 잠식해 간 장인과 달리 무극문은 자신의 본래 자리에서 살아가는 것뿐이지 않은가!
자신에게는 그들에게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건 장인에게 한 행동 때문이다.
문득 낮에 만난 설화인의 말이 떠올랐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젊은이로군. 순리가 뭐야? 자연의 이치대로 흐르게 내버려 두는 거라고. 남천 대협이 힘으로 순리를 거스르면 자기 인생도 피곤해지고, 다른 사람의 인생도 피곤해진다는 걸 왜 몰라?
그의 말이 맞았다.
이 모두가 자신이 남맹의 활동을 남직례성으로 제한한 까닭에 생긴 일이다.
자신이 결정한 일의 결과니 호천맹도 남맹도 계속 자신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래서는-딱히 한 일도 없이-누가 봐도 군림이다.
“……무극문이 봉문한 동안 이문사방은 유명교를 등에 업고 세를 넓혀 왔습니다. 대부분 저희 무극문의 관할 구역 내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무극문이 봉문하면서 내놓았던 지역을 치고 들어간 게 이문사방이었다.
유명교가 이렇게 빨리 무너질 줄 알았다면 무극문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하튼 유명교와 함께 이문사방이 해체되자 무극문은 재빨리 봉문을 풀고 나왔다.
문제는 이때부터다.
과거와 달리 현재 남직례성은 남맹의 관할로 굳어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무극문은 엄청난 반발에 직면했다.
그 선두에는 남맹 맹주의 친우로 알려진 환우검 선우담이 있었다.
“선우세가는 남경에서 무극문보다 우위에 서려고 남맹을 끌어들였습니다. 최근에는 ‘무극문은 남직례성에서 나가라’고까지 하더군요. 이 일에 남맹이 끼어들면 우리는 호천맹을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어서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심통의 물음에 장경수가 답했다.
“남천 대협께서 남맹과 호천맹의 구역을 정해 주셨지요. 하지만 저희 무극문은 비록 호천맹에 속해 있지만 남경의 유서깊은 문파입니다. 선우세가와 무극문의 분쟁에 남맹과 호천맹이 관여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무극문은 이번 싸움에 외세가 관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심통이 연적하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는데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장 소문주님의 말은 알겠는데 나도 입장이 좀 복잡해요. 남맹의 지부를 철수시킨 일로 장인어른에게 의절까지 당했는데……. 남직례성에서 호천맹 산하의 무극문이 세를 키우겠다는 거잖아. 그걸 허락하면 나는 진짜 개후레자식 소리를 들을 거라고.”
그러자 양소백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무극문은 남맹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남경에서 활동하던 문파입니다. 무극문의 행사를 호천맹과 관련지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아!”
연적하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가 있을까?
인생이 너무 피곤했다.
자신은 무림의 일에 하등의 관심도 없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다 맞는 말인데요. 내가 쉽게 뭐라고 답을 할 입장이 아니네요. 양 소저도 나와 남맹의 관계를 아시잖아요. 여기서 내가 삐끗하면 진짜 병신 소리 듣기 딱 좋아요. 그러니까 시간을 좀 줘요.”
고금제일인이라 불리는 연적하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양소백은 입을 다물었다.
심통이 장경수와 양소백에게 말했다.
“우리 공자님의 입장을 들었으면 이제 그만 물러들 가라.”
아직 다과가 나오기도 전에 심통은 축객령을 내렸다.
어차피 무극문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 봐야 연적하의 머리만 더 아픈 까닭이다.
장경수와 양소백은 감히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떠났다.
멍하니 앉아 있는 연적하에게 심통이 말했다.
“공자님. 그냥 꼴리는 대로 하십쇼. 그러려고 무공을 갈고닦은 거 아닙니까?”
“뭘 꼴리는 대로 해? 모든 사람이 다 심 노인 같은 생각으로 무공을 익히는 줄 알아?”
“어차피 꼴리는 대로 하실 거 아닙니까?”
“알았는데, 좋은 말 두고 왜 자꾸 그런 저속한 말을 쓰고 그래?”
“요즘 천리정을 드신다면서요? 그래서 자꾸 그 말이 나오나 봅니다.”
깜짝 놀란 연적하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서 천리정이 왜 나와? 그리고 나 그런 이상한 거 안 먹어.”
“안 드신다고요? 당가가 공자님에게 서른 알을 줬다고 하던데요?”
“받기만 했지 먹지는 않았어.”
연적하는 입이 싼 당운망을 원망했다.
천리정을 얻은 지 하루 만에 그 소식이 심통의 귀에까지 들어가다니!
“드시지 않을 거면 저에게 주십쇼.”
심통의 탐욕 어린 눈을 보던 연적하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심 노인이 그걸 어디다 쓴다고?”
“아무리 공자님이시라도 다른 사람의 허리 아래 사정은 묻는 게 아닙니다.”
“먹지 않았다고 했지 먹지 않겠다고는 하지 않았어. 필요하면 당 노인에게 부탁해서 얻어 써.”
연적하는 단칼에 거절했다.
아끼느라 안 먹은 건데 그걸 왜 준단 말인가.
***
그날 밤.
안채.
지안이를 재우고 침상에 남궁연과 나란히 누워 있던 연적하가 운을 뗐다.
“누님. 자요?”
“아니.”
“오늘 무극문 사람들이 왔다가 간 거 알죠?”
“장경수와 양소백? 알지.”
“어떤 사람들이에요?”
“전대 문주인 풍뢰도 장강호가 워낙 유명해서 그의 사촌들은 빛을 못 봤어. 현 문주인 천공도 장학도 그랬으니 그의 자식은 말할 것도 없지. 하지만 주목받지 못한 덕분에 무극문과 유명교의 전쟁에서 살아남았어. 그들은 아예 동원되지 않았거든. “
“전화위복이네요?”
“그런 셈이지. 장학과 장경수는 나름 합리적인 방식을 추구한다고 알려져 있어. 양소백은 순찰당 소속인데 조금 다혈질이고.”
“아하! 그래 보이더라고요.”
“누가?”
“양소백요. 낮에 다관에서 설화인과 말다툼하는 걸 봤거든요.”
“설화인이라면 풍 노사와 시비가 났었나 보구나.”
“풍 노사요?”
“풍수림 노사라고 유명한 분이 있어. 학식이 높아서 성주가 몇 번 모시려고 했지만 끝내 거절하고 설화인으로 살아가는 분이셔.”
“기인이시네.”
“맞아. 그래서 양소백이 풍 노사를 다치게라도 했어?”
“눈치가 보이는지 씩씩거리면서도 참더라고요.”
“훗! 그랬을 거야. 지금 무극문이 합비에서 사고를 치면 감당하기 어렵지.”
“아직 혈기 왕성한 나이인데 두 사람 다 잘 참더라고요? 정파라서 그런가? 녹림 같았으면 상대가 노사건 말건 일단 베었을 텐데.”
“네 소유의 다관에서 녹림이 칼을 뽑는다고?”
“아, 그건 또 그렇네요.”
연적하는 즉시 말을 바꿨다.
녹림이 자신의 다관에서 칼부림을 할 리가 없어서다.
착잡한 얼굴로 어두운 천장을 응시하던 연적하가 말을 이었다.
“무극문과 선우세가의 충돌로 남경이 좀 시끄러운가 봐요.”
“…….”
연적하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한 남궁연은 조용히 기다렸다.
“무극문 사람들은 남맹과 호천맹이 이번 일에 끼어들지 않았으면 하더라고요.”
“그러는 편이 자기들에게 유리하니까.”
“푸우! 역시 그렇겠죠?”
연적하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무극문과 선우세가의 전력만을 놓고 보면 무극문이 월등히 강하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오늘 낮에 풍 노사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순리대로 흐르게 둬야지 안 그러면 나만 피곤해진다고. 그분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생기는 것 하나 없이 너무 피곤하기만 해요.”
“지금 손을 떼면 남맹에서 불공평하다고 들고일어날 거야. 그건 알고 있지?”
남맹이라 했지만 실은 부친인 검왕 남궁벽을 염두에 두고 하는 소리였다.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남맹과 호천맹의 일에 질질 끌려다니고 싶지는 않아요.”
“그야 당연하지.”
남궁연은 연적하의 의견에 동의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지금 그가 남경의 분쟁에서 손을 떼면 의절까지 한 부친만 우스워질 터였다.
그렇다고 연적하에게 ‘계속 관여하라’ 할 수도 없었다.
남맹과 호천맹 양쪽의 눈치를 보며 심력을 소모하는 건 그에게도 좋지 않았다.
결국 언제 손을 떼느냐가 관건이다.
“내버려 두려고요.”
‘아, 적하가 손을 떼면 아버지는 한 번 더 상처를 입으실 테지…….’
거기까지 생각한 남궁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손녀보다 무림 경영에 더 열심인 아버지가 미우면서도 한편으로 안쓰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