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182
44. 무당산의 불.
1.
관도를 피해 수림으로만 이동한 목계백과 태웅은 무림맹 무사들이 웅크리고 있는 동랑(東浪) 야지에 도착했다.
장강의 지류 중 하나인 남하(南河)의 북쪽에 위치한 이 장소는 버려진 수변습지다.
한길이 넘게 웃자란 갈대와 억새만 무성한 곳으로 강의 범람이 만든 크고 작은 둔덕들이 밀집한 곳이다. 장강수로채가 찾아낸 이 장소에 사천병력이 숨었다.
무성한 갈대숲을 헤치고 들어간 목계백은 기다리던 이들과 만났다.
“당대문을 만난 거냐?”
초조한 얼굴로 제일 먼저 물음을 던진 함윤은 거구의 태웅이 들고 오는 상자 두 개를 보고 상황을 알았다. 나설 때 없던 물건을 가져온 까닭이다.
“당문이 내놓은 갈혈귀독의 해약이다.”
목계백이 말하자마자 오독문주 장효가 달려들어 상자를 개봉했다.
서두르지만 침착한 장효의 손길은 상자 안에 밀봉된 상태의 유지 하나를 찢어 환약 한 알을 꺼냈다. 그것을 준비한 백자 접시에 놓고 으깨더니 작은 자기 약병을 기울여 불그스름한 약물을 부었다. 그러자 색이 변했다.
“틀림없는 갈혈귀독의 해약이오.”
장효의 확신에 찬 대답을 들은 목계백은 종패와 함윤과 시선을 맞췄다. 빠르고 예리한 시선들이 오고 간 후에 목계백은 당대문과의 접촉을 말했다.
“해약은 천명분을 받아왔다. 무당산을 독으로 도배했다고 하더군. 천주봉으로 오르는 무당산의 앞길만 생로로 두었다고 한다. 오백에서 일천 정도의 정예만을 대동하고 쳐들어가 흔들면 될 것이라고, 그 후는 저희의 독으로 결론 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더군. 나머지 병력은 무당산을 포위하고 기다리라는 말인데, 백혈맹에게 칼을 맞으라는 소리지.”
대검을 힘주어 쥐며 종패가 입을 열었다.
“반 시진 전에 연락을 받았다. 북쪽의 노하(老河)를 넘었다는 전서다. 백혈맹 병력은 지척으로 다가오고 있다. 늦어도 반 시진 안으로 도착할 거다. 그들이 무당산을 돌아오면 접전을 피할 수 없다. 만오천 병력이다.”
종패의 녹림수하들이 은밀히 움직여 정찰한 결과다. 녹림영(綠林影)들이다. 산야에서의 은신과 움직임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 하는 자들로 선발해 그 임무를 맡겼다. 당대문들도 모르게 출발 시부터 따로 움직였다. 그들이 백혈맹의 움직임을 포착해내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보고를 했다.
“당문은 같은 주장을 계속하던가?”
종패의 물음에 목계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내용은 모두가 아는 것이다.
백혈맹이 움직일 것이지만 무당산을 도모한 후에나 도착할 것이란 소리다.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공격을 끝내고 철수할 것이란 주장과 계획이다.
그게 헛소리란 걸 모두가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걸 믿는 척했다.
백혈맹은 무당산과 호북땅에 각별한 연락체계와 이목을 갖추고 있다. 무당파의 땅이니 당연한 일이다. 무한 무영사에 자리 잡은 무림맹이 움직이는 즉시 알았을 터다. 무당산에서도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함윤이 냉소를 품고 입을 열었다.
“당문이 우리를 아주 바보로 알고 있거나 그런 것조차 무시할 정도의 자신감에 차 있다는 소리야. 오시를 기해 진격하자는 거면 우리 공격이 시간상 앞선다는 말은 헛소리지. 백혈맹이 당도할 시간이니까.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꿍꿍이를 꾸미던, 무당산에서의 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인 걸로 보인다. 우리의 효용가치를 여기까지로 본 게 분명해.”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목계백이 말했다.
“맞아. 당문은 우리와의 연수를 이 이상은 이어갈 생각은 없는 게 분명하다. 오늘 이 자리, 무당산에서의 일만으로 끝낼 생각이야. 우리와 백혈맹을 상잔시키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한 거다. 우리 예상대로다. 당연히 우리는 우리 계획대로 한다. 어때? 손님맞이 준비를 제대로 끝낸 건가?”
강한 안광을 뿜으며 종패가 대답했다.
“완벽하다곤 못해도 훌륭하게 준비했다. 바로 여기, 강변습지가 우릴 해치려는 자들의 무덤이 될 거다. 수공과 화공과 독공, 진수성찬을 준비했지.”
시선을 돌린 목계백은 갈대숲 너머 남하 쪽을 응시했다.
숨어 있는 장강수로채 무사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들이 숨겨놓은 배도 보이는 것 같다. 항주에서부터 명세기와 흑호단을 태우고 온 배다.
거기에 더해 더 동원했다. 밤에만 은밀히 이동해 이곳에 정박한 배가 사십 척이다. 백 명씩의 인원을 태우면 사천 명이 탈 수 있는 막강한 준비다.
그런 배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이 일대의 무성한 갈대와 수변수림으로 인해서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최대한 이용해 숨긴 장강수로채의 능력이다.
강을 따라 밤에만 이동한 그 행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간다.
장강수로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큰 힘이 될 것이다.
다시 시선을 돌린 목계백은 장효와 눈길을 맞췄다. 기다린 듯 대답이 나왔다.
“해독약을 제조하는 일은 한 시진 전에 끝마쳤습니다. 당문의 해약이 없어도 상관없을 일이었지만, 그들의 해약을 가지고 있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겁니다. 그들의 해약보다 본문이 제조한 해약이 훨씬 약효가 좋습니다. 갈혈귀독뿐만 아니라 여타의 독들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효과를 냅니다.”
이미 들은 대로다. 그래서 목계백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시작합시다.”
목계백과 종패와 함윤과 장효가 차가운 미소로 시선을 나눈 뒤 행동이 개시됐다. 사천 인원 전부가 지급 받은 해독약을 복용했고 분담한 역할을 위해 위치를 잡았다. 분주하고 은밀한 그 움직임 속에 해는 점점 올라갔다.
* * *
무당산에서 온 전서를 받은 무경진인은 공료대사에게 내밀었다. 그 내용을 읽은 공료대사는 저 너머로 보이는 무당산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무당산에서 파악한 특별한 동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놈들은 이곳에 와 있음이다. 공격을 때를 정하고 기다리는 것이지. 우리가 여기서 숨돌리는 것처럼.”
“맞다. 뭔가 수를 쓰려는 중인 게야. 오독문이 합세했으니 독을 쓰려는 게 분명하다. 그자들의 독이 당문보다 못하다곤 하지만 독은 독이지.”
“제독환은 다 복용한 거지?”
“염려마라, 쉬는 동안 다 복용했다. 몸에 지닌 것들도 있으니 약효가 떨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야. 당문의 독만 아니라면 죽진 않는다.”
“빌어먹을 타불이로다. 독나부랭이와 상대하는 건 싸움이 아니야.”
“원시천존, 왜 아니겠냐?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지. 종내에는 당문과 상대해야 하니까.”
푸른 하늘을 올려다본 공료대사는 문득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서두른 덕분에 때를 놓치지 않아 다행이다. 무림맹놈들에게 인사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됐어.”
“왜 아니겠냐, 발칙한 놈들. 감히 무당을 넘보다니, 맹호와 종패란 놈들을 제대로 손을 봐 줄 터이다. 이곳에서 무림맹이란 이름을 지워버려야지.”
“암 그래야 하고 말고, 그러고자 온 길이니 당연히 해야지. 만독비경도 되찾고 말이다.”
“그래, 그래야 당문을 상대하기가 수월해지지. 오독문주는 사로잡자고.”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던 그때, 무당산의 지척에서 푸른 색 신호화살이 하늘로 솟구쳤다. 선명한 그 빛이 무엇인지는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놈들의 공격신호다!”
“때가 됐다! 모두 일어서라!”
공료대사와 무경진인의 명령 속에서 백혈맹 만오천 대군은 무당산을 향해 진격했다.
* * *
푸른 하늘 속에서 더욱 푸른 빛으로 선명한 궤적을 남기는 신호화살을 응시하다 당대문은 무당산으로 돌아섰다.
천주봉으로 오르는 정로, 앞길이다.
그 길 외엔 무형지독을 살포해 빠져나갈 길이 없는 도가의 성지, 그 안으로 발을 들이며 가죽 수투 낀 손으로 무형지독을 움켜잡았다.
“이제 이산에 살아 숨 쉬는 것들 모두에게 본가의 은총을 베풀 시간이다.”
당대문과 일백 명의 독귀자들은 무당산을 오르는 질주를 시작했다. 뒤이어 무림맹의 선봉병력이 오는 것을 확인한 질주다. 그들이 일으키는 먼지가 자욱하다.
적어도 일천 명의 병력을 동원했다. 기특하게도 말한 대로다.
저들 일천은 무당산에서 무형지독에 죽을 것이고, 나머지는 산아래서 백혈맹과 싸우다 죽을 터다. 그걸 보며 이산을 빠져나갈 것이다.
득의의 미소와 생각을 품고 당대문은 무당산을 오르며 무형지독을 뿌렸다.
* * *
흑호단 일천을 이끌고 비호처럼 질주하던 목계백은 휘파람을 불었다.
신호를 받은 조승과 하대구와 태웅은 좌우로 갈라졌다.
흩어지는 그들과 떨어져 무당산으로 달리는 것은 목계백과 일백 명의 특별대 뿐이다. 갈라진 흑호단은 뒤이어 오는 녹림대호들과 합세해 진형을 이뤘다.
‘좋아, 이제 놀아보자!’
강렬한 안광을 뿜으며 목계백은 특별대와 같이 달렸다.
어느새 무당산의 초입이다. 먼저 올라간 당대문과 독귀자들의 자취가 보인다.
산 중턱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그들이 돌파하며 만든 살육의 현장이리라.
일천병력을 기다리고 있을 그들에겐 미안하지만 지금부턴 각자도생이다.
“싸움은 지금부터다! 만독신공의 운기를 잊지마라!”
흑호단 특별대에게 소리쳐 독려하며 목계백은 무당산을 차고 올라갔다.
* * *
“놈들이다!”
“무림맹놈들이다!”
뒤에서 들려오는 분노의 외침들을 들으며 공료대사와 무경진인은 무당산의 앞으로 달려갔다. 삽시간에 도달할 거리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끌고 온 백혈맹 병력과 함께하며 그들의 선두에서 한 무리로 나갔다. 사기를 고조시키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젠 그 정점을 보여줄 때다.
“아미타불!”
“원시천존!”
불호와 도호를 장중하게 뱉어낸 두 전대기인은 도약했다.
백혈맹 무리의 선두로부터 이탈해 나가는 그 충천의 도약은 거짓처럼 무림맹 병력의 앞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의 손에선 소림과 무당의 절기가 퍼져 나왔다.
가공할 무위, 공료대사와 무경진인의 공격에 무림맹무사들은 가랑잎처럼 날렸다.
언월도를 잡은 녹림대호들과 요도와 등패를 지닌 흑호단, 장강수로채의 수룡들도 피떡이 되어 흩어졌다.
그 엄청난 신위를 본 백혈맹무사들은 함성을 질렀다. 지축을 흔드는 그 소리와 더불어 그들이 들이쳤다.
혼전과 격전이 벌어졌다.
피와 살이 튀는 아수라장의 격전은 바로 흐름을 드러냈다. 애초에 무림맹의 병력과 백혈맹의 병력은 세배 이상의 차이가 났던 터, 기세가 오른 백혈맹의 공격에 무림맹은 점점 밀려갔다.
호각소리가 가파르게 울렸다. 그 소리를 따라 무림맹은 퇴각하기 시작했다. 기세를 잃지 않고 전멸하려는 결심인 백혈맹은 함성을 지르며 추적했다. 그 선두를 무당의 원명장문인과 새로운 구파의 장문인들이 맡았다.
공료대사와 무경진인은 눈짓을 주고받고 각자의 역할과 방향을 정했다. 공료대사는 추적대를 따라 나섰고 무경진인은 따로 대동한 무사들 오백과 같이 무당산으로 향했다. 산 중턱에서 치솟고 있는 연기를 봤기 때문이다.
* * *
해검지를 지난 곳에서 목계백은 질주를 멈췄다.
우진궁 앞이다.
불타고 있는 그곳에 무당도사들의 주검이 있었다. 하나같이 눈을 부릅뜨고 피거품을 문 죽음이다. 이유는 독이다. 그런데 갈혈귀독의 증상이 아니다.
‘이건…… 무형지독이다!’
이제 알았다. 당문의 자신감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그들은 무형지독을 대량으로 생산해 낼 기반을 구축한 거다. 그동안 천하가 알던 것은 이제 깨졌다.
무형지독은 그 제조의 난해함과 재료 수급의 어려움으로 인해 제조량이 소량일 수밖에 없다는 정설은 사라진거다. 당문은 그 벽을 넘었다.
그걸 오늘 이곳에 펼쳤다. 갈혈귀독을 살포했다는 건 거짓이다.
‘사지로 들어섰구나.’
등골에 돋는 소름을 어금니의 악묾으로 털어내며 목계백은 생각했다.
‘세상천지 사지 아닌 곳이 아디있나? 내가 발 디뎌 온 곳 모두가 사지였다.’
도사들의 주검을 무섭게 응시하던 목계백은 흑호단 특별대를 향해 돌아서 말했다.
“당문의 독은 갈혈귀독이 아니라 무형지독이다.”
특별대가 술렁거렸다. 확연하게 일어나는 그 동요를 목계백은 제압했다.
“독은 독일뿐이다. 그것으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면 예전에 그렇게 됐을 거다. 하지만 강호가 이어지는 동안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진정한 힘과 기세는 바로 마음에서 나온다. 칼이건 검이건 권이건 모두 수단이다. 두려움을 털어내고 일으키는 마음의 기세, 그것이 진짜 힘이다.”
잠깐 사이에 흑호단 특별대는 동요를 털어냈다. 그동안 목계백과 생사를 함께 하며 보고 배운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목계백이 만들어 내는 결과들을 봤다. 한 번도 틀린 말을 한 적이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오늘 이곳 무당산은 지옥이 될 거다.”
다시 입을 연 목계백은 특별대 전원의 눈을 일일이 맞추며 이야기했다.
“이제까지 경험에 보지 못한 험악한 전투가 우리를 기다린다. 하지만 전투다. 우리가 해온 일이다. 동료를 믿고 자신을 믿는다면 우리가 이긴다.”
특별대는 요도를 등패에 대고 쳤다.
탕, 탕, 하는 그 소리가 무당산을 울렸다. 죽음을 각오하고 따르겠다는 모두의 결의이며 함성이다.
목계백은 미소를 모두에게 뿌렸다.
“자, 이제 우리의 전투를 즐겨보자.”
돌아서 달리는 목계백의 뒤를 흑호단 특별대가 흑호무리처럼 따라 달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