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21
120화. 혈교의 방식 (5)
“……제가 아는 것은 전부 말씀드렸습니다…….”
소살귀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눈동자는 탁 풀려 있었고, 입에서는 허연 거품이 흘러나왔다.
백수룡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대로 두면 백치가 되겠군.’
하지만 동정심조차 들지 않았다.
소살귀가 말한 내용 중에는 혈교의 명령으로 아이들을 납치하고, 마공의 실험을 위해 화전민 마을을 몰살시켰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지존이시여. 저를 무림정복의 선봉에 세워 주십시오. 당신의 검이 되어 적들을 도륙해, 펄떡펄떡 뛰는 심장을 지존께 바치겠나이다…….”
미치광이가 돼 버린 소살귀는 백수룡의 신발을 핥았다.
백수룡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뒤통수를 내려다보았다.
‘혈교 놈들. 실력은 예전만 못하지만 더 은밀하고 잔인해졌구나. 게다가 금기였던 마공을 무분별하게 익히게 하고 있어.’
아마도 짧은 시간 안에 힘을 키우기 위한 방법일 것이다.
어쩌면 혈교의 발호가 생각보다 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수룡이 물었다.
“한 가지 더 묻겠다. 아까 네 직속상관이 혈룡이라고 했지? 거상웅에게 절혼마장을 심고, 금룡상단을 집어삼킬 계획을 세운 놈 말이다.”
“예. 맞습니다…….”
“놈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 봐.”
소살귀가 몽롱한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혈룡은 장로들의 공동제자로, 교에서도 기대가 큰 후기지수입니다. 무림에서의 별명은 권패(拳覇). 작년 천무제에서 용봉에 들 만큼 출중한 실력에, 심계 또한 뛰어난…….”
권패(拳覇) 초일.
현 천무학관 사학년으로, 미래의 십대고수가 될 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도유망한 후기지수 중 한 명이라고 했다.
권법에 있어서는 이미 내로라하는 고수들과 자웅을 겨룬다 했다.
‘권패 초일. 기억해 둬야겠군.’
당장 혈룡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천무제가 되었든 그 전이 되었든, 백수룡은 기회가 닿는다면 녀석을 따로 만날 생각이었다.
물론 만나서 이야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상입니다…….”
“아는 것이 그리 많지는 않구나.”
“본단의 정보는 저에게도 제한돼 있어서…….”
“그렇겠지. 네 실력을 보면 딱 쓰고 버리는 말에 불과하니까. 본단 사정까지 아는 게 이상하지. 이 정도면 됐다.”
백수룡은 손날을 세워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그의 천령개를 내리쳤다.
“혈마앙복! 혈세천하……!”
자신을 내려치는 혈마의 손을 바라보며, 소살귀는 희열에 차서 소리쳤다.
퍼억!
소살귀의 몸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백수룡은 주변의 소리를 차단해 두었던 기막을 거두며 중얼거렸다.
“그거.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야.”
어쨌든 혈교에 관한 정보를 적지 않게 얻었다.
소살귀에 말에 의하면 도박장에 증거가 될 만한 문서들이 있다고 하니, 오늘 안에 가서 서류들도 챙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백수룡은 반쯤 찢겨나간 인피면구를 다시 뒤집어 썼다. 찢어지긴 했어도 얼굴을 가리는 용도로는 충분했다.
금룡장주가 멀리서 무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다 끝난 것이오?”
금룡장주의 눈빛이 심상치 않은 걸 보니, 떠나기 전에 잠시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았다.
* * *
금룡장주의 방.
호위들을 모두 물린 금룡장주가 진지한 표정으로 백수룡과 마주 앉았다.
“선생께 평생을 갚아도 갚기 힘든 은혜를 입었소. 내 아들을 구해 주고, 가문에 닥칠 화까지 모면하게 해 주었으니. 이를 어찌 다 갚아야 할지 상상하기 힘들 정도요.”
“필요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백수룡은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폐인이 되어 가던 거상웅이 재기하도록 돕고, 금룡장에도 도움을 주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백수룡이 얻은 것도 적지 않았다.
‘혈교에 관한 정보를 얻은 것만으로도 큰 성과지.’
거기에 더해, 금룡장주에게 은혜를 입혔다.
천하십대상단 중 한 곳의 주인과 독대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이후로, 백수룡이 언제든 청하기만 하면 금룡장주가 버선발로 달려 나올 것이다.
“장주님. 이번 일은 저희끼리만 아는 것으로 해 두었으면 합니다.”
금룡장주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수룡은 그에게 ‘혈교’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 되는 사내라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또한 제 이름이 이번 일과 연관돼 언급되는 일도 없었으면 합니다.”
“물론이오. 내 비록 장사치라고는 하나 어찌 신의를 모르겠소. 호위들의 입단속도 내 단단히 할 테니 백 선생은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시오. 본장 내부의 일로 잘 마무리하겠소.”
저렇게 단단히 약속하니,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나갈 염려는 없을 것 같았다.
‘아직 혈교에 내 이름이 알려져선 안 돼.’
혈교와 계속 부딪치다 보면 언젠가는 알려지겠지만, 숨길 수 있다면 최대한 숨길 생각이었다.
“장주님. 전에 부탁드린 것은……?”
“여기 있소.”
금룡장주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백수룡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소살귀가 전서구에 묶어 혈교 본단에 보내려고 한 서찰이었다.
금룡장주가 씩 웃으며 말했다.
“도시의 매사냥꾼을 모두 동원해 선생이 말한 전서구를 잡게 했지.”
혈교는 특수한 훈련을 거친 전서구를 통신수단으로 사용한다.
백수룡은 당연히 그것을 알고 있었고, 금룡장주에게 부탁해 전서구를 잡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것으로 소살귀가 혈룡에게 보내려 한 서찰도 차단했다.
“내용은 읽어 보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서 읽어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오.”
백수룡이 서찰을 읽는 동안, 금룡장주는 천천히 차를 마셨다.
잠시 후, 백수룡이 서찰을 다 읽고 내려놓는 것을 확인한 금룡장주가 입을 열었다.
“……선생. 나는 상인이오.”
“알고 있습니다.”
“보은과는 별개로, 나는 금룡상단의 단주로서 선생에게 투자하고 싶소이다.”
“……투자라고 하시면?”
백수룡이 미간을 모으며 되묻자, 금룡장주가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나의 사람 보는 눈을 믿고 하는 투자요. 훗날 선생이 금룡상단의 든든한 우산이 되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드리는 제안이오.”
“…….”
“원하는 것이 있다면 기탄없이 말씀해 보시오. 재물, 영약, 보검, 돈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은 다 구해 드리리다.”
금룡장의 재력이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고 해도 좋았다.
누구라도 혹할 만한 제안.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백수룡은 의외로 덤덤한 기분이었다.
‘돈은 지금도 부족하지 않아. 검이야 당장은 월영으로 충분하고, 언젠가 위 노인이 혈마검 이상의 것을 만들어 주겠지. 영약도 당장은 필요 없고.’
백수룡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지금 상황에서 내게 필요한 것이라면…… 무공뿐이지.’
새로운 신공절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감당하기 어려운 절세무공을 다섯이나 알고 있으니까.
귀혈대의 마인들을 상대하면서 백수룡은 자신의 무공에 대한 확신을 가졌고, 또한 아쉬움도 느꼈다.
‘역천신공의 성취를 더 끌어올려야 해.’
그의 역천신공은 현재 중성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하지만 천음절맥이라는 희귀한 체질 탓에, 이 이상 역천신공의 성취를 올리기 위해서는 특수한 대법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대법에는,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의원이 필요했다.
“장주님. 혹시 생사신의의 거처를 아십니까?”
“생사신의라면…….”
자신만만하게 거래를 제안했던 금룡장주의 표정이 곤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때론 돈으로 구할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이다.
“워낙에 신출귀몰한 분이라 거처를 알지 못하오. 아마 개방이나 하오문에서도 모를 것이오.”
“그렇군요.”
백수룡은 그 대답에 실망하지 않았다.
예전에 공손수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같았으니까.
-생사신의 말인가? 내가 그에게 치료를 받은 것은 단지 운이 좋아서였을 뿐이네. 황제 폐하께서 거의 애원하다시피 내 몸을 한번 봐달라고 부탁하셨지.
공손수도 무엄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생사신의는 천하십대고수 중 한 명이었으니까.
금룡장주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내 인맥을 모두 동원해 그분을 찾아보겠소. 소식이 들어오는 데로 알려드리리다. 하지만 그 이상은 도움을 드리기 어려울 것 같은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설령 생사신의를 찾는다고 해도,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혼자서도 천음절맥을 완전히 극복할 수는 있지만…… 위험부담이 크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역천신공의 대성으로 가는 길을 단단히 다지기 위해서는 생사신의의 도움이 필요했다.
금룡장주가 말했다.
“그 외에 달리 필요하신 것은 없겠소?”
“딱히…….”
백수룡은 더는 없다고 거절하려 했지만, 문득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장주님. 백룡상단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오.”
금룡장주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백룡상단의 이름이 아직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의미였다.
“……얼마 전에 시작한 상단입니다. 아직은 객잔, 반점, 기루 등만 운영하고 있지만, 조만간 상행도 꾸리고, 표국도 만들어서 사업을 확장할 예정입니다.”
백수룡이 청룡학관 강사가 되어 일하는 동안, 복만춘이 그의 재산을 불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남한테 돈을 받는 것도 좋지만, 역시 내 돈을 불리는 게 더 좋지.’
백수룡은 당장의 이익보다는 더 먼 곳을 내다보았다.
금룡상단이 백룡상단을 앞에서 이끌어 준다면, 백룡상단의 규모도 순식간에 커질 것이다.
“제가 개인적으로 투자한 상단입니다. 혹 금룡상단에 남는 일거리를 백룡상단에 맡겨 주실 수 있을까요?”
금룡상단처럼 거대한 상단은 모든 일을 자체적으로 다 처리하지 못한다.
그 대신 규모가 작은 상단에 하청을 맡긴다.
천하십대상단의 하청을 맡는다는 것만으로도, 이제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한 백룡상단으로서는 엄청난 이득이었다.
금룡장주는 이를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일은 아니군. 내 그리하겠소.”
“감사합니다.”
내일이면 입꼬리가 찢어질 복만춘을 떠올리며, 백수룡은 빙긋 웃었다.
* * *
그날 새벽이 지나기 전에, 백수룡은 소살귀의 도박장에 도착했다.
“누구…….”
퍼억!
도박장에 남아 경계를 서고 있던 귀혈대의 무인들은, 상대의 그림자도 보지 못하고 쓰러졌다.
귀혈대의 최정예 마인들도 상대하지 못한 백수룡이었다.
실력이 떨어져서 도박장에 남은 이들은 그의 일초지적도 되지 못했다.
“사, 살려 주십시오 나으리!”
도박장에 남은 인원 중에는 양진도 있었다.
그는 일부러 살려 두었다. 저항조차 포기한 양진은 백수룡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빌었다.
“살려만 주시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제발…….”
복면을 쓰고 온 탓에, 양진은 백수룡을 알아보지 못했다.
목소리를 변조한 백수룡이 말했다.
“곧장 금룡장으로 가라. 그곳에서 너한테 일을 맡길 거다. 만약 도망친다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예, 예!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잠깐. 가기 전에.”
퍼엉!
백수룡의 일장이 양진의 가슴을 때렸다.
그의 몸 안에 남아 있던 절혼마장의 마기를 일시에 해소시킨 것이다.
“이제 가라.”
“히이익!”
백수룡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양진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금룡장에서 붙여 준 호위가 녀석에게 따라붙었으니, 설령 도망치려고 해도 결국 금룡장에 잡혀갈 것이다.
‘나중에 혈룡이 접촉한다면 저 녀석을 통해서겠지.’
과거에 양진도 거상웅과 함께 절혼마장에 중독되었다.
때문에 인생이 망가졌고, 결국 혈교의 끄나풀이 되었다.
귀혈대와는 경우가 다르기에 죽이지는 않았다.
‘너는 살려 주마. 하지만 잘한 것도 없으니, 미끼가 되어 줘야겠다.’
훗날 혈교가 다시 접촉할 경우를 대비한 안배.
금룡장주에게 양진에게 감시를 붙여 놓으라고 말해 두었다.
양진마저 사라진 후, 백수룡은 복면을 벗고 도박장 안을 스윽 둘러보았다.
“장부를 숨겨 둔 곳은…….”
백수룡은 예리한 눈으로 도박장 안을 살폈다.
잠시 후, 그는 벽에 이음새가 어색한 부분을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여기로군.”
이음새를 만져 가던 백수룡은 벽에 난 작은 구멍을 찾았다.
그리고 도박장 안에서 뾰족한 송곳을 찾아 구멍에 넣고 옆으로 돌렸다.
드르르륵…….
벽이 옆으로 밀리며, 안쪽에 숨겨진 금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백수룡이 씨익 웃었다.
“역시.”
진법과 기관진식의 전문가인 제갈소영 정도는 아니지만, 백수룡도 기관진식에 상당히 해박한 편이었다.
금고 안에는 혈교와 관련된 서류, 장부 따위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어디 보자…….”
백수룡은 두꺼운 서책 하나를 꺼내 빠르게 훑었다. 도시에 암약하고 있는 혈교의 첩자 명단이 기록된 서책이었다.
“무림맹, 세가, 상단, 학관, 곳곳에 많이도 심어 놨네.”
혀를 차며 첩자들의 명단을 쭉 훑어 내려가던 백수룡의 시선이, 하나의 이름 앞에서 멈췄다.
씨익.
백수룡의 입가에 참을 수 없는 미소가 맺혔다.
“찾았다.”
그곳에는 라는 이름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