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59
158화. 구음마녀 (3)
“이, 마녀어……!”
여민의 몸이 서서히 굳으며 피부 위로 새하얀 서리가 내렸다.
구음마녀는 조금씩 얼음으로 변해 가는 여민의 차가운 뺨을 조심스레 쓸어내렸다.
여전히 구음마녀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프지 않을 거야. 너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끝날 거란다.”
“…….”
여민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구음마녀가 손을 뻗어 그녀의 눈꺼풀을 닫아 주었다.
그때였다.
휘익!
날카로운 도풍이 구음마녀의 손목을 노리고 날아왔다.
도풍을 피한 구음마녀가 뒤를 돌아봤다.
도를 뽑아 든 헌원강이 무시무시한 눈으로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떨어져.”
헌원강이 맹수처럼 낮게 으르렁거렸다.
처음 악인곡에 왔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짙은 살기.
악인곡에서 생사를 건 수라장을 거치며 기세가 한층 더 날카로워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하필 강호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 열 명의 악인 중 한 명이었다. 구음마녀는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모습으로 헌원강을 바라봤다.
헌원강이 뿌드득 이를 갈며 말했다.
“어쩐지 이상하게 잘해 준다 싶더니……. 처음부터 이럴 속셈으로 데려온 거냐?”
“너희는 가도 좋아. 아니, 제발 그냥 가다오.”
구음마녀가 슬픈 표정으로 헌원강에게 부탁했다.
그녀의 눈물을 본 헌원강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또 무슨 개수작이야.”
“선배애애!”
헌원강에 이어 야수혁도 도착했다.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야수혁이 붕대가 찢어질 것처럼 전신 근육을 부풀렸다.
성격이 거칠기로는 헌원강보다 한술 더 뜨는 야수혁이었다.
얼어붙은 여민을 본 야수혁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쏟아졌다.
“이 더러운 마녀! 여민 선배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 사지를 찢어 버리겠다!”
“……진정해, 이 자식아.”
자신보다 더 성격 급한 후배 때문에 정신을 차린 헌원강이 신중하게 구음마녀에게 도를 겨눴다.
“당장 내 후배 내놔. 그럼 우리도 얌전히 떠날 테니까.”
“야 이 개 같은 년아! 선배한테 무슨 짓을 하기만 해 봐! 허리를 반으로 접어 버릴 테니까!”
“새끼야, 진정하라고.”
자신 앞에서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두 사내의 모습에, 구음마녀의 표정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너희는…… 죽는 게 무섭지도 않은 거니?”
구음마녀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야수혁도 그제야 그녀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고 당황했다.
“선배. 왜 저쪽이 울고 지랄이래요?”
“아무래도 진짜 미친년한테 걸린 것 같다.”
그때, 구음마녀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하지만 동시에 양손에 새하얀 냉기가 맺혔다.
쩌적, 쩌저적.
“너희를 죽이고 싶지 않아. 하지만 참을 수가 없어. 음기를 섭취하지 못하면 죽을 만큼 괴로우니까. 하지만 죽는 건 싫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한동안 어린애처럼 칭얼대던 구음마녀는 힐긋 여민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헌원강과 야수혁을 바라봤다.
그녀가 빙긋 웃었다. 그 미소는 눈처럼 순수했다.
“저 아이가 덜 외롭도록, 옆에 있게 해 줄게.”
“미친년!”
구음마녀의 신형이 두 사람을 향해 스르륵 미끄러졌다.
그녀의 양손에서 가공할 냉기가 쏟아졌다.
“순순히 당할 것 같냐!”
헌원강과 야수혁이 양옆으로 흩어졌다.
방금까지 그들이 있던 자리에 빙장이 작렬하며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쩌저저적!
헌원강과 야수혁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구음마녀의 양옆으로 돌아가며 눈빛을 교환했다.
압도적인 한 명의 고수를 상대로 합공하는 것.
악인곡을 탈출하면서 치렀던 다수 대 다수의 싸움보다 이쪽이 훨씬 자신있었다.
‘왜냐면, 백룡장에서 수없이 해 봤거든!’
이럴 때 쓰는 학생들만의 용어도 있을 정도였다.
“백수룡 조지기 삼 번으로 간다!”
“예!”
헌원강과 야수혁.
항상 티격태격하지만, 의외로 성격은 가장 잘 맞는 둘이었다.
후우웅!
야수혁이 거대한 몸으로 돌진해서 구음마녀의 시야를 가리고, 헌원강이 그 뒤에 숨어 있다가 벼락처럼 도를 휘둘렀다.
“너희들. 그 무공은 어디서…….”
둘의 무공을 본 구음마녀는 잠시 굳어 있다가, 급히 손을 휘둘렀다.
퍼어엉!
“커헉!”
구음마녀의 몇 배는 될 법한 야수혁이 장풍에 맞아 날아가고, 냉기를 얼음처럼 두른 구음마녀의 손톱에 헌원강의 도가 튕겨 나갔다.
“아직이다!”
그 순간 헌원강이 허리를 틀어 몸을 회전시키더니, 혼신의 힘에 얼마 남지 않은 내공까지 쥐어짜서 강하게 휘둘렀다.
촤촤촤촤촤!
칼끝에 맺힌 사나운 도기가 구음마녀를 난도질할 기세로 날아왔다.
구음마녀도 그 공격은 경시하지 못하고 두 손을 펼쳐 빙공을 펼쳤다.
퍼어엉!
“커헉!”
충돌의 여파로 벽까지 튕겨 나간 헌원강이 바닥을 굴렀다. 그의 입에서 울컥울컥 피가 쏟아졌다.
반면, 구음마녀는 소맷자락이 아주 조금 베인 것이 전부였다.
“끄으으…….”
“비, 빌어먹을…….”
빙공에 적중당한 두 사람이 스며드는 오한에 몸을 덜덜 떨었다.
구음마녀를 상대로 둘은 반 각도 버티지 못했다.
애초에 수준 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하지만 헌원강은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도 히죽 웃었다.
싸움에 지긴 했지만, 최소한의 목표는 달성했으니까.
“반 각이면 시간은 충분히 벌었어. 지금쯤이면 충분히 멀리 갔을 거야.”
“설마…….”
구음마녀는 한 명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독에 중독당했던 작은 소년.
기감을 확장하자, 빠르게 멀어지고 있는 위지천의 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구음마녀는 그 사실에 신경 쓰지 않았다.
“너희가 시간을 끄는 동안 그 아이를 도망치게 했구나.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지? 악인곡에는 너희를 도와줄 자들이 없고, 악인곡 밖에는 문지기들이 지키고 있어. 한 명이 도망쳐 봤자 아무것도 할 수 없단 말이다.”
구음마녀는 안타깝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왜…… 할 수 있는 게 없어?”
쓰러져 있던 야수혁이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헌원강이 공격할 시간을 벌어 주려고 정면에서 빙공을 얻어맞은 탓에, 그의 몸에는 하얗게 서리가 맺혀 있었다.
그럼에도 몸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그동안 부단히 수련한 녹림십팔식 덕분이었다.
“그 자식이 선생님을 부르러 갔는데.”
“선생님? 백수룡이라는 그자 말하는 거냐?”
구음마녀는 여민이 아까 재잘재잘 떠들던 와중에 들었던 이름을 떠올리며 물었다.
헌원강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웬만하면 우리끼리 해결하려고 했는데……. 이건 상대가 너무 안 맞아서 말이야. 어른 싸움엔 어른이 와야지.”
손등으로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은 헌원강이 이어서 말했다.
“우리 선생님 진짜 강하거든. 난 아직까지도 대련 중에 옷깃 한 번 스쳐 본 적이 없단 말이지.”
헌원강은 그렇게 말하면서 구음마녀의 소매를 보았다.
아주 약간이지만 잘려나간 소매.
상대는 무림에서도 손에 꼽히는 고수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적의 옷을 베어냈다는 생각에, 헌원강의 입가에 뿌듯한 미소가 맺혔다.
“당신 옷깃은 스쳤잖아? 즉, 우리 선생님이 더 강하단 소리지.”
“하.”
말도 안 되는 논리였다.
구음마녀는 조금 전에 전력으로 싸우지 않았다.
그랬다면 헌원강은 진작 얼음덩어리로 변해 부서졌을 것이다.
그것을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닐 텐데.
“너희는 그 선생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는구나.”
저런 맹목적인 신뢰를 덧없다고 해야 할까, 불쌍하다고 해야 할까.
뭐가 됐든 구음마녀가 평생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누군가에게 무공을 배우는 건…… 끔찍하도록 고통스러운 기억일 뿐이었다.
“그래도 좋은 친구들을 둬서 외롭진 않겠구나.”
“…….”
여민의 뺨을 쓰다듬은 구음마녀는 쓰러져 있는 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새하얀 냉기가 흘러나와 둘의 몸을 휘감았다.
“으으…….”
“끄윽…….”
아득한 한기에 정신을 잃어가며, 헌원강은 위지천이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랐다.
‘위지천. 서둘러라.’
* * *
“허억…… 헉…….”
위지천은 숨을 헐떡이며 달렸다
너무 오랫동안 중독되어 있던 터라 체력이 바닥이었다.
그럼에도 전력으로 달려야만 했다.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 벌어 준 시간이니까.
‘원강 선배…….’
위지천은 동굴을 떠나기 전 헌원강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곤히 잠들어 있던 위지천을 흔들어 깨운 헌원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어나. 아무래도 일이 터진 것 같다.
-예?
감각이 예민하기로는 백룡장에서도 으뜸인 헌원강이었다. 백수룡도 감각은 위지천보다 낫다고 인정했을 정도였다.
헌원강이 일이 터졌다고 말한다면 틀림이 없었다.
-우린 여민한테 가 볼 테니까. 넌 가서 선생님을 불러와.
-선생님을요? 어디 계신 줄 알고…….
헌원강은 백수룡과 혈수귀옹의 기가 마지막으로 충돌한 장소를 알려 주었다.
-난 다리를 다쳐서 제대로 경공을 펼칠 수 없고, 야수혁은 덩치가 너무 커서 어딜 가든 눈에 띄어. 너밖에 없다.
-죄송해요. 전부 저 때문에…….
-그딴 소리 할 시간 없어. 젠장. 선생님한테 의지 안 하려고 했는데……. 이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야. 빨리 가.
상대는 다름 아닌 십대악인이었다. 학생들이 객기를 부릴 수 있는 적이 아니었다.
이를 악문 위지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선생님을 찾아올게요. 조금만 견뎌 주세요.
위지천은 곧장 동굴에서 나와 전력으로 경공을 펼쳤다.
으득.
위지천이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나 때문이야.”
백발마수에게 납치를 당하고, 독에 당해 선생님과 선배들까지 악인곡에 오게 만들었다.
“나 따위가 뭐라고.”
다들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헌원강은 허벅지에 깊은 상처를 입었고, 야수혁의 등에는 벽력탄의 폭발을 견딘 흔적이 그대로 남았다. 여민은 구음마녀에게 잡혀가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내가 당하지 않았다면, 내가 조금만 더 강했다면…….”
얼마나 이를 세게 악물었는지 잇몸에서 피가 흘렀다.
위지천은 다리에 힘을 줘 바닥을 박찼다.
타닷!
독에 중독돼 있는 동안, 위지천은 꿈과 현실을 수없이 오갔다.
꿈속에서 과거에 자신이 벤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네가 나를 죽였어!’
‘저주받을 살귀 놈!’
‘언젠가 너도 똑같이 당할 거다!’
그들은 아귀처럼 달려들어 위지천을 넘어뜨리고, 베고, 찌르고, 찢어발겼다.
위지천은 망자들에게 몸을 맡겼다. 바보처럼 죄책감에 눈을 뜨지 못했다. 독이 그의 몸을 갉아 먹었다.
그러는 동안, 현실에서는 그의 친우들이 다치고 있었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다.
“어? 저 녀석 아까 그놈들 중 하나 아니야?”
“맞네. 독에 중독됐던…….”
경공을 펼치는 위지천을 발견한 악인들이 접근했다.
몇몇은 좋은 기회라며 소매를 걷고 나섰다.
“혼자인가 본데? 다른 놈들은 안 보여.”
“우리가 잡자. 혈수귀옹 어르신한테 잘 보일 기회잖아.”
“좋아. 한 놈뿐이라면…….”
악인들은 조용히 숨어 있다가 위지천을 기습했다.
앞만 보고 달리는 놈을 기습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죽어라!””
위지천의 좌우에서 네 명의 악인이 동시에 달려들었고, 촤아아악!
일검에 네 개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위지천은 여전히 앞만 보고 달렸다. 기습 따윈 당한 적 없다는 듯, 달리는 속도 또한 변함이 없었다.
“괴, 괴물…….”
“……관두자. 괜히 건드렸다간 우리만 피 보겠어.”
위지천의 기세에 질린 악인들이 뒤로 물러났다.
잠시 후, 위지천은 혈수귀옹과 백수룡이 충돌한 장소에 도착했다.
“후우…… 후우……. 여기인 것 같은데…….”
위지천은 잠시 멈춰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두 사람의 싸움에 휘말린 공간이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다.
하지만 백수룡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선생님! 선생니임!”
답답함에 소리쳐 불러봐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몇몇 악인들만 배고픈 들개처럼 이쪽을 힐끗거릴 뿐이었다.
“어디 계신 거예요. 지금 선배들이, 수혁이가…….”
위지천이 다급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였다.
두근!
심장에 전해지는 어떤 두근거림에, 위지천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리고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한쪽 방향으로 걸어갔다.
마치 누군가와 대화를 하듯 중얼거리면서.
“이쪽? 이쪽이라는 거야?”
잠시 후, 바닥에 난 구멍을 발견한 위지천은 그 안으로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부서지고 망가진 기관진식이 위지천을 맞이했다.
“이쪽? 이쪽이라고?”
위지천은 무시무시한 싸움의 흔적을 따라 경공을 펼쳤다.
저 안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심장의 두근거림은 점점 더 강해졌다.
“넌 누구야? 나를 아니?”
심한 갈증에 목이 말랐다. 자기도 모르게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이미 터질 것 같은 허벅지에 힘을 더했다.
잠시 후, 위지천은 거대한 벽 앞에 도착했다.
“여기야. 여기가 맞는데…….”
심장이 두근거림으로 터질 것 같았다.
저 너머에 백수룡이 있다고, 그리고 자신을 부른 목소리가 있다고 위지천은 확신할 수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
대답은 없었다. 위지천은 검을 뽑아 벽을 베었다.
까가가각!
강기로도 쉽게 베어지지 않는 문이 잘릴 리 없었다. 벽으로 달려간 위지천이 주먹으로 두드리며 소리쳤다.
“선생님! 선생님! 선배들이 위험해요! 원강 선배랑 수혁이가 다쳤어요! 여민 선배는 구음마녀한테 잡혀갔어요!”
쾅쾅쾅쾅!
주먹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지만, 위지천은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빨리 구하러 가야 해요. 도와주세요. 제힘으로는 친구들을 구할 수가 없어요. 제힘으로는……. 제가 너무 약해서……. 저 때문에…….”
털썩.
결국 진이 빠진 위지천이 흐느끼며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다른 악인들이 위지천을 따라왔는지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제발…….”
위지천이 간절하게 벽을 올려다봤다.
그 순간, 가로막힌 벽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뒤로 물러나 있어.”
“선생님!”
너무나 듣고 싶었던, 백수룡의 목소리였다.
“이 벽. 잘라 버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