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98
197화. 얼마나 더 강해지려고?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백무흔은 홀로 정자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쪼르르…….
맑은 술이 잔으로 흘러내리는 소리가 어쩐지 구슬펐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며 술을 마시던 백무흔의 얼굴은, 말 못 할 사연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뭇 여인들이 보면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고 감탄할 모습이었지만, 지금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방금까지는 말이다.
“쯧. 달밤에 웬 청승이란 말이냐.”
못마땅함이 가득한 혀 차는 소리와 함께, 정자의 반대편에서 백발의 노인이 나타났다.
백무흔은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의 장인어른에게 물었다.
“안 주무셨습니까? 피곤하다고 일찍 들어가시더니.”
“잠이 오지 않는구나. 너는 여태 안 자고 뭘 하는 게냐?”
“보시다시피 한잔하는 중이었습니다. 저는 원래 이 시간에 안 잡니다.”
“그 나이를 먹고도 제멋대로 사는 게냐.”
“늦게 잔다고 타박할 마누라도 없지 않습니까.”
“…….”
“…….”
대화가 끊기고, 두 남자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흘렸다.
매극렴은 백무흔은 앞에 놓인 술병을 가져가 빈 잔에 따랐다. 백무흔이 놀란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술은 입에도 대지 않으시던 분 아닙니까?”
“요즘은 종종 마신다. 얼마 전에는 술친구도 하나 생겼지.”
“장인어른도 많이 변하셨군요.”
“…….”
“…….”
또다시 둘 사이의 대화가 끊기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수십 년 동안 쌓인 오해를 풀고 어설픈 화해를 했지만, 수십 년 만에 만난 사이인지라 말 몇 마디를 이어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두 사내는 공통의 화제를 찾아 드문드문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약빙의 기일에는 무엇을 하느냐?”
“예전에는 아들을 데리고 유람을 다녔습니다. 제사는 지내지 말고 놀러 다녀라, 그게 아내의 유언이었습니다.”
“……그 아이답구나. 어릴 적에 내게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장인어른께선 뭘 하십니까?”
“학관을 돌아다닌다. 그 아이가 걷던 길, 밥을 먹던 식당, 공부하던 강의실. 삼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흔적이 남아 있지.”
“…….”
“…….”
“그, 마침 저도 내일 학관을 돌아다닐 예정이었는데, 장인어른께서 안내 좀 해 주시겠습니까? 이것저것 많이 바뀌었던데요.”
“……알았다.”
매극렴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미우나 고우나 이제 매약빙을 기억하는 사람은 세상에 둘뿐이었다.
잠시 또 대화가 끊겼지만, 이번에는 어렵지 않게 대화 주제를 찾을 수 있었다.
“……하나만 묻자. 수룡이 말이다.”
“절 닮아서 여자 문제가 좀 많지요? 어쩌겠습니까. 여인들이 잘생긴 사내를 놔두지 않는 것을요.”
매극렴은 취했는지 쓸데없는 말을 해대는 사위 놈을 한심하게 바라봤다.
“흰소리하지 말고. 언제부터 무공을 익혔느냐?”
“…….”
백수룡은 아직 채 서른이 되지 않았다
무림의 기준에서는 아직 후기지수로도 불릴 수 있는 나이.
헌데 그 나이에 이미 초절정에 이르는 경지에 도달했다.
백무흔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그 녀석이 절 닮아서 무공에도 재능이 뛰어납니다.”
“현 무림의 십대고수, 혹은 그에 근접한 고수들은 대부분 서른 전에 초절정에 이르렀다. 아주 드물지만 불가능한 경지는 아니지. 하지만,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잠시 말을 멈춘 매극렴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처음 청룡학관에 왔을 때만 해도, 그 아이는 일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몸도 완성되어 있지 않았어.”
수십 년간 청룡학관에서 학생들을 보아온 매극렴이었다. 손에 박힌 굳은살만 보아도 무공의 경지를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 백수룡을 보았을 때, 그 경지는 일류라고 부르기도 모자란 수준이었다.
“헌데, 지금은 절정을 뛰어넘어 초절정에 이르렀다. 불과 몇 달 만에 말이야. 이것은 무림의 역사를 다 뒤져 봐도 찾기 힘든 기사(奇事)다. 너는 이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느냐?”
“…….”
“말을 못 하는 걸 보니 뭔가 알고 있긴 한 모양이로구나.”
“그게…….”
잠시 입술을 달싹이던 백무흔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큰 기연을 얻은 모양입니다.”
천장에서 발견한 아들의 일기장을 떠올리며, 백무흔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아들이 기억을 잃기 전에 남긴 일기장을 먼저 읽어 보았다.
온통 믿기 힘든 이야기뿐이었다.
‘전생에 혈교의 무공교관이었다니, 처음에는 정신에 문제가 생긴 줄 알았지.’
하지만 그 일기를 모두 읽고 나자, 죽었다 살아난 아들이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바뀐 이유가 모두 설명되었다.
“혹시…….”
심각해진 사위의 얼굴을 본 매극렴이 덩달아 표정을 굳힌 채로 물었다.
“그 기연에 문제는 없는 것이냐? 노력 없이 큰 힘을 얻으려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거늘…….”
백무흔은 매극렴이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았다.
그 역시 한때 의심했던 것이니까.
“마공을 익힌 것은 아닙니다.”
간혹 백수룡은 내비치는 살기나 투기는, 정파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날카롭고 사나울 때가 있었다.
하지만 마공을 익힌 후유증은 아니었다. 아마도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며 성격이 다소(?) 나빠진 것일 테지.
백무흔이 확신을 담아 말하자, 매극렴도 조금은 안심한 것처럼 보였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문제 될 것이 없다면 되었다.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은 듯하니, 나도 이 이상은 묻지 않으마.”
“……감사합니다.”
백무흔은 고개를 들어 달을 올려봤다.
그의 입에서 짙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매극렴이 사위의 어두운 얼굴을 보곤 눈썹을 찌푸렸다.
“아까부터 표정이 왜 그렇게 죽상인 것이냐? 청승맞게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것도 그렇고, 누가 보면 네놈이 세상 다 산 노인네인 줄 알겠다.”
뭔가 고민이 있으면 말해 보라는 이야기를 빙빙 둘러서 하는 매극렴이었다.
턱을 긁적인 백무흔이 조금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들놈이 저 없이 혼자서도 너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조금 분합니다.”
“허어?”
“……지금까지 해 준 것도 없는데, 앞으로도 해 줄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속이 상하고요.”
지난 몇 달간 무공이 몰라보게 강해진 백무흔이었다.
하지만 아들을 다시 만나고 보니, 백수룡은 상상 이상으로 강해져 있었다.
천형인 줄 알았던 체질도 완전히 극복한 것처럼 보였다.
‘녀석이 작정하고 덤비면…… 서른 합이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군.’
무공뿐만 아니라, 백수룡 주변에는 장인어른을 비롯해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백무흔은 그 사실이 대견하면서도, 부모 품을 완전히 떠나 버린 듯한 자식에게 섭섭한 마음에 들었다.
“이제 그 녀석 옆엔 제가 있어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씁쓸한 감정이 들었다.
다른 사람에겐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백무흔은 장인어른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몸이 약했던 시절엔 성격이 날카롭긴 해도 귀여운 구석이 있었는데……. 요즘엔 능구렁이처럼 변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본 애비를 반기긴 하는 것인지…….”
“쯧쯧.”
혀를 찬 매극렴은 백무흔의 잔에 가득 술을 채워 주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백무흔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라보자, 매극렴이 자신의 잔에도 술을 채우며 말했다.
“부모가 왜 필요가 없단 말이냐. 부모란 오래된 집이다. 자식이 언제든지 와서 쉴 수 있는 안식처 같은 것이지.”
“장인어른…….”
“무공이 강해져서? 그럼 천하제일인에겐 부모가 필요 없을 것 같으냐? 천하제일인도 사람이다. 감정을 느끼고,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할 일들도 겪는다.”
백발이 성성한 노고수의 인생이 담긴 말이, 백무흔의 답답했던 마음에 와닿았다.
“언젠가 그 아이에게도 너에게 기대고 싶은 날이 올 것이다. 그때도 지금처럼 맥아리 없는 표정으로 맞아 줄 것이냐?”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장인어른의 진심이 담긴 질책과 조언에, 백무흔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고개를 숙였다.
“좀 더 일찍 찾아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됐다. 낯간지러운 소리는 그만 하고 술이나 마시거라.”
“장인어른. 제가 한 잔 따라드려도 되겠습니까?”
“허. 내가 오래 살긴 했구나. 네놈한테 술도 받아 보고.”
“삼십 년 전에 이랬으면 제 주리를 트셨겠지요?”
“지금도 그만한 힘은 있다만?”
퉁명스레 말하고 잔을 입에 가져가는 매극렴이었다.
백무흔의 그런 장인어른을 바라보며 피식 웃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서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장인어른. 저도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무엇이냐?”
매극렴이 자세를 바로 하며 대답했다.
백무흔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기에, 또 무슨 조언이 필요한 일인가 보다 하고 지레짐작했다.
“여기, 이거 말입니다.”
백무흔이 아직 멍이 가시지 않은 한쪽 눈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표정이 무척 억울해 보였다.
“이거 일부러 때리신 거죠?”
“……겨우 그까짓 것이 궁금해서 분위기를 잡았단 말이냐?”
“그까짓 것이라니요! 잘생긴 사위 눈탱이를 밤탱이로 만들지 않으셨습니까!”
“……네놈은 역시 안 되겠다. 반대쪽도 똑같이 만들어 주마!”
빈 술병을 거꾸로 쥔 매극렴이 사위 놈의 눈탱이를 노리고 냅다 휘둘렀다.
휘익!
백무흔은 그 공격을 정말 간신히 피하며 소리쳤다.
“그럴 줄 알았다니까!”
한동안 옥신각신하던 두 사내는 서로를 마주 보더니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
“푸하하하!”
물론, 백무흔의 반대쪽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이후였다.
“술이 다 비었구나.”
“그럴 줄 알고 미리 더 가져다 놨습니다.”
“……하긴, 네놈이 한 병으로 만족할 놈이 아니지. 나는 몇 잔만 더 마시고 들어가야겠다.”
몇 잔은 금세 몇 병이 되었다.
두 사내는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오랜 대화를 나눴다.
그러면서 조금씩, 둘 사이에 쌓인 오랜 어색함이 녹아내렸다.
쉽게 사이가 좋아지긴 힘들 것이다. 애초에 사이가 좋았던 적이 없었으니.
하지만 분명 변하고 있었다.
“다음에 또 아들놈 보러, 그리고 장인어른과 술 한잔하러 오겠습니다.”
“흥. 마음대로 해라.”
“예전에 약빙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뭐가?”
“자기 아버지는 부끄러우면 코웃음을 친다고 말입니다.”
“콜록! 이놈이…….”
백무흔이 겁도 없이 장인어른을 놀릴 때였다.
콰콰콰콰콰콰!
돌연 터져 나온 강렬한 기의 파동에, 두 사람이 동시에 벌떡 일어나더니 같은 방향으로 내달렸다.
바로 백수룡의 방이 있는 방이었다.
“수룡아!”
콰앙!
두 사람이 문을 부술 듯이 열어젖히자, 그 안으로 허공에 한 자쯤 떠 있는 백수룡의 모습이 보였다.
콰콰콰콰콰콰!
고요히 눈을 감고 있는 백수룡의 몸을 중심으로, 막대한 기가 용권풍처럼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미 방 안의 물건 중엔 남아난 것이 없을 지경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곧 그 기운을 느낀 백룡장 제자들도 잠에서 깨어나 몰려왔다.
“선생님!”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왜…….”
매극렴이 불안해하는 학생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가까이 다가가지 마라. 중요한 순간인 것 같구나.”
“예? 중요한 순간이라니…….”
이 순간, 노고수의 연륜이 빛을 발했다.
침착함을 되찾은 매극렴은 손자의 상태를 찬찬히 살피더니, 이내 감탄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허어.”
깜짝 놀라서 달려오긴 했지만, 전혀 걱정할 상황이 아니었다.
걱정은커녕…….
매극렴은 발을 동동 구르는 학생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의 스승이 깨달음을 얻으려는 모양이다.”
“예에?”
“또요?”
“아 씨! 언제 때려 봐!”
다들 안심하는 한편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보는 가운데, 백무흔이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 녀석. 대체 얼마나 더 강해지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