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99
198화. 예. 아버지. 콰콰콰콰콰콰!
휘몰아치는 기의 폭풍으로, 방 안의 집기 중엔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 벽에 할퀸 자국이 점점 늘어났고, 천장이 위험하게 흔들리며 곧 무너질 듯했다.
“…….”
하지만 폭주하는 기의 중심에 있는 백수룡의 표정은 지극히 평온했다.
과도한 기의 운용으로 안색이 다소 창백하긴 했으나,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다.
“너희는 물러나 있거라.”
학생들을 물러나게 한 매극렴과 백무흔은 방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우우우웅!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기막을 펼쳐 천장과 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보호했다.
이대로 내버려 뒀다가는 필시 천장이 무너질 것이고, 무아지경에 빠진 백수룡이 중요한 깨달음의 순간에 방해를 받을 수도 있었으니까.
“혹시 모르니 우리도 밖에서 호법을 서자.”
“예!”
거상웅의 지휘하에, 밖으로 나온 제자들도 마당에 넓게 벌려 서서 주변을 경계했다.
무인에게 깨달음의 순간은 흔치 않다.
특히 그 경지가 높아질수록, 작은 실마리 하나를 잡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그 작은 실마리를 찾기 위해 동굴에서 몇 년간 면벽 수련을 하고, 일부러 절벽에서 몸을 날리는 자들도 있었다.
‘선생님은 얼마나 더 강해질까?’
학생들은 부러움과 경탄의 시선으로 백수룡이 있는 방 안쪽을 힐긋거렸다.
하지만 그중에는 소심한 반항을 꿈꾸는 목소리도 있었다.
“지금 못 때리면 평생 못 때리지 않을까?”
“아서라. 지금 한 대 때리고 평생 처맞는 수가 있다.”
“그것도 그래…….”
“근데 선배는 어차피 매일 처맞잖아요?”
“…….”
전부 실없는 농담에 불과했다.
학생들은 백수룡이 깨달음의 순간에 방해받지 않도록, 무기에 손을 올린 채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경계했다.
그렇게 여섯 무인이 호법을 선 채로 약 일 각의 시간이 지났다.
콰콰콰콰콰…….
거셌던 기의 폭풍이 규모를 줄이더니, 이내 백수룡의 몸 안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가 완전히 흡수된 순간, 백수룡의 머리 위에는 혈화(血花)가 피어났다.
한 송이. 두 송이. 세 송이.
세 송이 혈화가 꽃봉오리를 반쯤 꽃피우더니, 이내 신기루처럼 푸스스 흩어졌다.
매극렴이 작게 감탄하며 말했다.
“삼화취정(三花聚?)의 경지에 이르렀구나.”
정·기·신이 하나로 합일되어, 상단전에서 뿜어진 기가 꽃의 형상으로 피어나는 경지.
강기의 입문을 넘어, 강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경지였다.
‘그런데…… 꽃이 완벽하지가 않구나.’
완벽한 삼화취정에 경지에 이르면 세 송이 꽃이 활짝 피어난다고 들었는데, 백수룡의 그것은 반쯤 피어나다가 사라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깨달음이 부족하다면 애초에 삼화취정에 이르지 못했을 것인데…… 마치 도중에 무언가에 가로막힌 것 같았다.
그때, 마른침을 삼키며 아들을 지켜보던 백무흔이 말했다.
“이제 깨어나려나 봅니다.”
가부좌를 튼 채로 허공에 한 자쯤 떠 있던 백수룡의 몸이 바닥에 천천히 내려오더니, 이내 숨을 길게 내쉬며 눈을 떴다.
“후우…….”
백수룡은 몇 번 눈을 깜빡거렸다.
방금 전까지 현실과 구분하기 힘든 꿈속에 있었다.
아직 몽롱한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서 온몸의 감각에 집중했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떠올렸다.
“……괜찮은 것이냐?”
백무흔이 다가오며 말했다. 아들의 멍한 눈동자를 본 그의 표정에 걱정이 가득했다.
“…….”
백수룡이 그를 빤히 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행히도 그의 눈동자에 서서히 정광이 돌아왔다.
“……아버지?”
“그래! 나다!”
“……아버지가 제 방에서 나가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어요?”
“두어 시진?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두 시진…….”
적어도 며칠, 어쩌면 열흘 이상은 지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 수많은 일들이 고작해야 두 시진짜리였다고?’
백수룡은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꿈속에서 그는 수백, 수천 번의 생사결을 벌였다.
과거에 알았던 혈교의 여러 신공, 마공을 다시 경험하면서 견문을 넓혔다.
혈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고, 과거 존경했던 혈룡대주를 만나 끝내 검으로 그를 꺾었다.
그 어떤 보물로도 환산할 수 없는 값진 기연을 얻어 나온 것이다.
‘그 꿈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
갈 수 있다고 해도 지금 당장은 아니다.
백수룡은 가부좌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어지러움을 느끼며 몸이 휘청거렸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과 함께였다.
“수룡아!”
백무흔이 손을 뻗어 아들을 부축했다. 매극렴이 손자의 등을 받치고 따듯한 기운을 몸 안에 불어넣었다.
“기력이 많이 쇠했구나. 쉬면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
“……잠시 찬바람을 좀 쐬고 싶습니다.”
“허나…….”
“장인어른이 바람 좀 쐬게 해 주십시오. 제가 방을 정리하겠습니다.”
“……그리하자꾸나.”
어차피 방이 엉망진창이어서 그대로 쉴 수도 없었다. 백수룡은 매극렴의 부축을 받아 방밖으로 나왔다.
“선생니임!”
“괜찮으세요?!”
그가 방 밖으로 나가자,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하나같이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괜찮다.”
백수룡은 손을 뻗어 소란스럽게 떠드는 녀석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겁먹은 강아지 같은 얼굴들이 퍽 우스웠다.
학생들을 안심시켜 방으로 돌려보낸 후, 백수룡은 아버지와 외조부가 마주 앉아 술을 마시던 정자에 앉았다.
“스읍…… 후우…….”
맑은 공기를 몇 차례 들이마신 백수룡은, 옆에서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매극렴에게 지나가듯이 말했다.
“꿈을 꾸었습니다.”
“…….”
백수룡의 말에 매극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의 깨달음은 저마다 다른 형태로 찾아온다.
누군가는 머릿속에 벼락이 쳤다고 표현하고, 무아지경에 빠져 검을 휘두르다가 갑자기 펼칠 수 없었던 초식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 형태가 꿈이라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었다.
……물론 백수룡의 꿈은 매극렴이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른 종류였지만.
“지랄 맞게 생생한 꿈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온갖 고수들과 싸웠습니다. 결국 다 이기긴 했는데, 저도 꽤 많이 다치고 몇 번은 진짜 죽을 뻔했습니다.”
“기연이로구나.”
밤의 찬 공기를 들이마시자 두통이 조금 가셨다. 꿈속의 경험이 하나하나 선명하게 떠올랐다.
백수룡은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올려보며 말했다.
“예. 덕분에 제 무공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가진 것을 잘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백수룡은 특히 마지막 혈룡대주와의 싸움을 되새겼다. 얻은 것이 무척 많았다. 그의 심장을 찌른 감각이 아직도 손끝에 선명했다.
‘얼마나 구현할 수 있을까?’
현실과 꿈은 다르다.
꿈속에서 아무리 무공이 성장했다 한들, 꿈속에서 펼쳤던 무공을 지금 당장 현실에서 펼칠 수는 없다.
당장 십대고수 수준의 고수를 만난다면 아직은 이길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필요한 것은 시간뿐이었다.
꿈속에서 얻은 것들은 결국 현실에서도 펼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다시 그 꿈속에 들어가고 싶었다.
-다음에 또 오너라.
혈마는 자신더러 다음에 또 오라고 했다.
원하는 것을 다 못 보지 않았느냐며, 다음을 기약했다.
실제로 백수룡이 꾼 꿈은 전생의 삼 분의 일도 진행되지 않았다.
아직 단전을 잃지도 않았고, 교관이 되지도 않았으며, 사부들도 만나지 않았다.
‘지금의 경험을 모두 수습하고 전생의 꿈을 끝까지 진행하면, 혈마와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다시 만나 보아야 알 것이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른 후 마주한 혈마는, 또 다른 모습일 테니까.
꽈악…….
백수룡은 주먹이 새하얘지도록 꽉 쥐었다.
비록 꿈이었지만, 반드시 그 빌어먹을 꿈의 결말을 바꾸고 싶었다.
이를 악문 그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음엔 반드시 죽인다.’
매극렴이 손자의 살기 가득한 옆얼굴을 살피다가 손을 뻗어 그의 주먹을 말아쥐었다.
“바람이 차구나.”
그 순간, 백수룡은 정신을 차렸다.
하마터면 분노에 휩싸여 심마에 뒤덮일 뻔했다.
무인들은 깨달음 직후에 감정적으로 격렬해지곤 하는데, 경험이 많은 매극렴이 지켜보고 있다가 적절히 대처해 주었다.
“이만 들어가자꾸나.”
“……예.”
그 사이, 백무흔이 어지러워진 방을 치우고 이불을 펼쳐 놓았다.
하지만 백수룡은 바로 쉬지 않으려고 했다.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아버지. 할아버님. 잠시 드릴 말씀이…….”
하지만 두 사람은 대화를 거부했다.
“일단 자라.”
“누워라.”
“예? 아, 아니, 잠깐만요. 제 얘기를 우선…….”
휘익!
백무흔은 다짜고짜 다리를 걸어 아들을 쓰러뜨렸다.
탈진 상태인 백수룡은 변변찮은 저항도 하지 못하고 이불에 드러누웠다.
그가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했다.
“왜 환자 취급을 하고 그래요. 지치긴 했어도 잠깐 얘기할 시간 정도는…….”
“나중에 들으마.”
이번에는 매극렴이었다.
그가 손을 뻗어 손자의 수혈을 가볍게 짚었다. 잠이 잘 오게 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아니이이…….”
백수룡의 눈꺼풀이 닫히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이 정도 점혈에 꿈쩍도 하지 않았겠지만, 탈진 상태인 데다가 정신적으로 크게 지쳐 있었다.
“쿠울…….”
결국, 백수룡은 이불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다음날까지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중간에 깨지도 않고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
그리고 잠든 백수룡의 머리맡에서는, 두 사내가 오래도록 앉아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었다.
“다 커서 자기 싫다고 떼를 쓰다니. 이럴 때는 아직도 애인 것 같습니다.”
“봐라. 우리가 할 일이 있지 않느냐.”
“그나저나 참 잘생기지 않았습니까? 누구 아들인지 원……”
“외탁이다.”
“…….”
* * *
“달마다 서찰 보내라. 안 보내면 다음에는 아예 올라와서 눌러앉아 버릴 거다.”
“예예.”
백무흔은 백룡장에서 사흘을 더 머물렀다.
그는 아내의 기일을 장인어른, 아들과 함께 청룡학관을 둘러보며 보냈고, 남은 이틀은 추억이 깃든 도시를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그리고 미련 없이 짐을 쌌다. 백무관에서 꼬맹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했다.
“올 때도 멋대로더니, 갈 때도 멋대로구나.”
배웅을 나온 매극렴은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퉁명스럽게 말했다. 백무흔이 능글맞게 웃으며 대꾸했다.
“제가 간다고 하니 아쉬우십니까?”
“흥. 하는 일 없이 밥만 축내는 놈이 간다니 속이 다 시원하다.”
이제는 둘 사이의 어색했던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진 듯했다.
매극렴은 백무흔의 게으르고 뺀질거리는 점이 옛날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면서 궁시렁궁시렁 욕을 하다가, 결국 그의 봇짐에 말린 하수오 한 뿌리를 챙겨 주었다.
“먹든가 말든가.”
“……잘 먹겠습니다.”
감격한 표정으로 돌아선 백무흔이 다시 아들을 바라봤다.
“…….”
“…….”
작별인사라면 전날 실컷 했다.
하지만 끝내, 백수룡은 일기장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몇 번이나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지만, 백무흔은 그때마다 먼저 화제를 돌리거나 자리를 피했다.
“간다.”
“예.”
아들의 어깨를 툭툭 가볍게 친 백무흔은 웃으며 돌아섰다.
백수룡은 매극렴과 함께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
느긋하고 자유로운 걸음이었다.
장인어른과의 화해로 백무흔의 마음은 더욱 자유로워졌고, 그것은 곧 그의 무공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다음에 볼 땐 훨씬 더 강해져 있겠군.’
그때, 이미 꽤 멀어진 백무흔이 뒤돌아서 손을 흔들었다.
그의 전음이 백수룡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수룡아. 사고가 나기 전의 기억이 있건 없건, 너는 나와 약빙의 아들이다.]“…….”
[내가 설마 내 아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못 알아볼 것 같았냐?]장난스럽게 웃은 백무흔은 다시 돌아서더니, 이내 경공을 펼쳐 순식간에 멀어졌다.
[서찰 꼭 보내라.]백수룡이 미처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말이다.
“나 참…….”
백수룡은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사흘 내내 대화를 피하더니, 이런 식으로 한 방 먹일 줄이야.
작게 한숨을 내쉰 백수룡은 이미 작은 점이 되어 버린 아버지에게 말했다.
“예.”
그동안 백무흔에게 서찰을 보내지 않았던 이유.
바빴다는 것은 핑계였다.
진짜 이유는, 백무흔에게 더 이상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자신은 오십 년 전 혈교의 무공교관이었고, 백무흔과 매약빙의 아들로 살아온 기억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서찰 보내겠습니다.”
꿈에서 깨어나면서, 머릿속에 어린 시절의 기억 일부 또한 함께 깨어났다.
아직은 완전하지 않고, 전생의 기억을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아버지.”
자신은 백무흔의 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