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05
204화. 찾아다닐 수고를 덜었군“참나…….”
악연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 위에 놓인 가면을 바라봤다. 뒤쪽의 끈 부분이 매끈하게 잘려나가 있었다.
“너무 방심했나.”
허탈하게 웃은 악연호는 방금 전의 싸움을 다시 떠올렸다.
-백수룡 조지기 이십삼 번으로 간다!
-……그거 대체 몇 번까지 있는 거냐?
처음에는 녀석들에게 말을 걸 정도로 여유만만이었다. 헌원강을 간단히 제압한 지 반 시진도 안 됐으니까.
‘셋이 모인다고 별다를 거 있겠어?’
완벽한 오판이었다.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야수혁이 단단한 몸으로 정면에서 압박하고, 여민은 특출난 보법으로 시야를 어지럽히며 빙공을 뿌렸다.
빙공에 의해 악연호의 움직임이 제한되는 순간순간, 헌원강의 칼끝이 예리하게 빈틈을 파고들었다.
합격진을 수년 이상 수련한 고수들이 이러할까.
셋은 서로의 빈틈을 보완하며 각자의 장점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눈빛만으로도 생각이 통하는 듯했다.
‘세 명이 아니라 열 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기분이었어.’
하마터면 과하게 힘을 써서 애들을 다치게 할 뻔했다. 다행히 그 전에 멈추긴 했지만, 그 대가로 가면을 잃었다.
“방심은 무슨.”
악연호 옆으로 다가온 명일오가 코웃음을 쳤다.
“나보고 사천왕 중 최약체라더니, 너도 똑같이 당했구나.”
“그래도 내가 명 형보다는 훨씬 오래 버텼을걸요? 그리고 실전이었으면 이겼어요. 내가 걔들처럼 인정사정없이 창을 휘두를 순 없잖아요.”
“지고 나서 변명하는 것만큼 구차한 것도 없는 거 알지?”
“쩝…….”
악연호는 머리를 벅벅 긁더니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새카만 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잠시, 말없이 밤하늘을 올려보던 악연호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보상도 날아갔고 학생들한테 졌는데 말이에요.”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질 않지?”
“하하하.”
오히려 두 사람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학생들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했다.
어쩌면 조만간 자신들이 따라잡힐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생길 정도로.
하지만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오히려 학생들의 성장한 모습이 대견하고 기뻤다.
악연호가 들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천무제 우승 말이에요. 꿈이 아닐지도 몰라요.”
“나도 방금 그 생각했다. 그 녀석들이라면…….”
단순히 당장의 강함 때문에 그리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싸움에 임하는 눈빛, 태도, 이기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
그 아이들은, 가르치는 사람에게도 열정을 불어넣었다.
‘우리도 지지 않게 분발해야겠어.’
두 사람은 조용히 각오를 다졌다.
그때, 명일오가 깜빡 잊고 있던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나저나 소영이는 어떡하지? 우릴 기다릴 텐데 말이야.”
“뭐, 알아서 잘하겠죠……. 덜렁대긴 해도 실력은 확실한 애니까.”
가면이 벗겨진 두 사람은 이제 퇴장해야 할 시간이었다.
더 이상 시험에 참여하는 것은 반칙이었다.
이제 남은 사천왕은 둘.
혼세마녀와 냉혈수라마왕.
두 사람은 함께 퇴근하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눴다.
“혼세마녀 혼자서는 남은 애들을 상대하기 힘들 텐데……. 결국 보상은 냉혈수라마왕이 가져가겠군.”
“혹시 모르죠. 그 애들이 냉혈수라마왕의 가면까지 벗길지도?”
“상대가 그 냉혈수라마왕인데?”
“……하긴.”
냉혈수라마왕.
그는 명실상부 사천왕 중 최강.
학생들이 넘보기엔 아직은 너무 높은 벽이었다.
* * *
한편, 학생회 건물 안에서는 두 사람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지금쯤 저희 위치가 드러났을 겁니다. 더 늦기 전에 움직여야 합니다.”
“아니, 이곳에서 농성하면서 시간을 끄는 쪽이 낫다.”
독고준과 거상웅.
학생회 건물에서 농성 중인 일행 가운데, 발언권이 가장 강한 두 사람의 의견이 나뉘었다.
다른 학생들의 의견도 그들을 따라 둘로 나뉘었다.
“저희는 회장의 의견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생회의 선도부 쌍둥이, 청룡쌍걸은 독고준의 좌우에 섰고,
“저는 거상웅 선배님 의견이 맞는 것 같아요.”
위지천은 소심하지만 분명하게 거상웅의 편을 들었다.
거상웅, 독고준, 위지천, 청룡쌍걸.
갱생문의 포위망에서 탈출한 다섯 명은 한데 뭉치게 되었고, 한 시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해 오고 있었다.
의견이 갈리기 시작한 건, 멀지 않은 곳에서 기의 충돌이 느껴지고 나서였다.
독고준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적들은 학관 전체를 훑어가며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습니다. 방금 전에는 가까운 곳에서 기파의 충돌이 느껴졌고요. 짐작이지만 사천왕일 겁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적지 않은 싸움을 겪은 듯, 독고준의 무복 곳곳이 찢어져 있었다.
“사천왕 중 두 명 이상이 나서면 저희 전력으로도 당해내기 어렵습니다. 통로가 좁긴 하지만, 그 정도 고수들에겐 벽을 부수거나 천장을 부수는 건 아무 일도 아니니까요. 차라리 나가서 적을 맞이하는 게 낫습니다.”
독고준의 말은 구구절절 틀린 구석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거상웅은 학생회장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독고 후배. 이 시험의 첫 번째 목적은 두 시진 동안 버티는 거야.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라.”
“물론 알고 있습니다.”
“아니, 너는 중요한 걸 놓치고 있어.”
“……후배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존심 강한 독고준은 인정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거상웅을 바라봤다.
자신이 파악하지 못한 것이 있을 리 없다는 태도였다.
씩 웃은 거상웅이 말했다.
“내 예상으론 사천왕 중 셋은 신입 강사다. 아마 악연호, 명일오, 제갈소영 선생님일 거야.”
“……그게 이 시험과 상관이 있습니까?”
“당연히 상관이 있지.”
씨익.
거상웅은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맺혔다.
“창문을 부수고 들어온다고? 그들은 감히 학교 건물을 파손하지 못해. 왜냐면, 신입 강사 월봉으로는 수리비를 감당하지 못하거든. 뿐만 아니라 학관 기물 파손은 훗날 정식 강사 채용에도 치명적이지.”
거상웅은 상인의 아들답게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른 무인들과 달랐다.
상대의 무공뿐 아니라 재력과 권력, 인맥 관계 등을 살피는 것은 상인의 기본이었다.
“즉, 이곳의 지형지물은 모두 우리에게 유리하다 이거야. 우린 부숴도 반성문 정도만 쓰면 되거든.”
수리비쯤이야 내가 내면 되고, 그렇게 중얼거린 거상웅은 히죽 웃었다.
독고준이 입을 떡 벌렸다.
“……선배님.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전략이 매우 치사하군요. 상대의 약점을 이용하겠다는 말 아닙니까?”
“후후후. 이 수업의 이름은 사파 무공의 이해와 실전 대비야. 사파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이길 수 있는 게 당연하지.”
“…….”
혹시 이 수업이 멀쩡한 정파의 후기지수들을 사파로 만드는 건 아닐까?
문득 그런 걱정이 든 독고준이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야.’
지금까지 사천왕이 실내로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까지 한 번에 설명되었다.
‘거상웅 선배. 생긴 것과 달리 의외로 두뇌파로군.’
외모는 녹림의 산도적이라고 해도 믿을 거상웅이지만, 보기완 달리 상당히 머리가 잘 돌아가고 눈치도 빨랐다.
‘하긴, 예전에는 방백현 선배와 청룡쌍절로 불리던 사람이었으니…….’
하지만 식도락과 도박에 빠져 방탕한 세월을 보냈던 거상웅은, 백수룡을 만나면서 다시 옛날에 총기를 되찾았다.
“조급해진 사천왕은 결국 여기로 올 거야. 우린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덮치면 돼.”
“……선배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독고준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는 자신보다는 거상웅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낫다는 것을.
“양보해 줘서 고맙다.”
말을 마친 거상웅은 주위를 둘러봤다.
자신과 독고준, 위지천, 여기에 선도부의 쌍둥이까지.
이 전력이면 사천왕 중 두 명까지는 충분히 상대할 만하지 않을까.
‘반격에 나서는 건…… 마지막 이 각이면 충분해.’
이건 단순히 무공을 확인하는 시험이 아니라, 인내력과 더불어 상대와의 수 싸움이 필요한 시험이다.
‘숨어서 버티기만 해도 되지만, 그렇게 끝내는 건 이 시험을 치르는 큰 의미가 없어. 최선은 사천왕의 가면을 벗기는 것, 그다음은…….’
거상웅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고민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시험 종료까지 이 각쯤 남았을 무렵.
딸랑.
학생회 건물로 들어오는 문에 설치한 방울이 울렸다.
그 순간, 학생들이 일제히 몸을 긴장시켰다.
‘누가 들어왔다!’
일행은 기척을 죽였다. 숨소리마저 줄이고, 상대의 움직임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삐걱. 딸랑. 삐걱.
적은 곳곳에 설치해 둔 간단한 기관에 걸리고 있었다.
기관에 걸릴 정도로 조심성이 없거나, 무시할 정도로 자신감이 있다는 의미였다.
학생들은 당연히 후자로 보았다.
독고준이 거상웅에게 전음을 보냈다.
[선배님. 한 명이 아닙니다.] [갱생문은 아닌 것 같지?]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둘…… 아니 셋인 것 같습니다.] [사천왕 중 셋은 친분이 있어. 힘을 합쳤을 수도 있지.] [넷이 아닌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승산이 아주 없는 건 아니야. 수업에서 배운 온갖 비열한 방법을 다 동원해 보자고.]“…….”
거상웅은 독고준 외에 다른 학생들과도 전음을 주고받았다. 각자의 숨어 있을 위치를 정해 주고, 상황에 따른 대처 방안을 설명했다.
일행은 복도를 가운데 두고 양쪽 방에 몸을 숨겼다.
[독고 후배. 첫 기습을 부탁해. 크고 화려한 거로.] [알겠습니다.]독고준이 선두에 자리를 잡았다.
학생회 건물 지리에 가장 익숙하면서, 가장 빠르고 강하기 때문이었다.
[천이는 독고준 뒤에 숨어 있다가 기습해.] [네!] [청룡쌍걸은 나와 함께…….]시시각각으로 적의 기척이 가까워졌다.
어둠 속에서 울리는 방울 소리, 기관이 부서지는 소리.
각도 탓에 실제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벽에 희미하게 일렁이는 상대의 그림자가 보였다.
스읍-
독고준은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상대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천천히, 그리고 이내 멈춘 후.
폭발적으로 숨을 내뱉으며 보법을 밟았다.
휘익!
문 안쪽에서 복도 쪽으로 몸을 회전시키며 검을 뽑았다. 벼락같은 발검과 함께 상대의 모습이 보였다.
“!!”
순간, 두 사람의 얼굴에 똑같이 놀라움이 어렸다.
까앙!
검과 도가 부딪친 후, 두 사람은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헌원강?”
“깜짝 놀랐잖아, 이 새끼야!”
버럭 소리치는 헌원강의 뒤로 야수혁, 여민의 모습도 보였다.
“원강 선배?”
“원강이였어?”
기습을 준비하던 다른 학생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긴장이 풀렸는지 허탈한 표정이었다.
거상웅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너 살아 있었냐? 성격상 제일 먼저 죽을 줄 알았는데.”
“죽긴 누가 죽어? 말하자면 긴데…….”
헌원강은 오면서 겪은 이야기를 빠르게 설명했다. 결론 부분에 이르러서는 어깨에 으쓱 올라갔다.
“사천왕 중 둘은 우리가 쓰러뜨렸어. 가면을 벗기고 빼앗긴 명찰을 되찾았지.”
덕분에 건물 안에 있던 학생들도 현재 상황을 알게 되었다.
거상웅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러니까, 남은 사천왕은 둘뿐이라 이거지?”
거상웅은 주위를 둘러봤다.
한자리에 모인 백룡장의 제자들 전원과 독고준, 청룡쌍걸.
이 전력이라면…… 남은 사천왕 둘을 충분히 노릴 수 있었다.
“나가자.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겠어.”
“서두르자!”
시험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일 각.
학생들은 망설이지 않았다.
남은 두 명의 가면만 벗기면 학생들의 완벽한 승리니까.
“갱생문에 들키면 귀찮으니까 기척을 죽이고 움직이자.”
거상웅을 필두로 여덟 학생은 학생회 건물을 빠져나왔다.
헌원강과 독고준이 그의 양옆에 따라붙었다.
헌원강이 물었다.
“선배. 그런데 말이야. 사천왕 중 세 명은 누군지 알겠는데 나머지 한 명은 누굴까?”
“나도 마침 그 생각 중이었다. 떠오르는 후보가 몇 명 있긴 한데…….”
악연호. 명일오. 제갈소영.
사천왕 중 세 명의 정체는 신입 강사 삼인방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남은 한 명, 냉혈수라마왕의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여기 있는 학생들 중에서는 그와 마주친 학생이 없었다.
그와 마주친 학생은 전부 명찰이 떨어지고 감옥으로 끌려갔으니까.
“흐음…….”
거상웅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들을 한 명씩 냉혈수라마왕이라고 가정해 보았다.
누구 하나 만만한 상대가 없었다.
특히 한 명은…….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겠지.’
거상웅이 고개를 저어 불길한 생각을 털어낼 때였다.
“이상하군요.”
독고준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진작 벗어났어야 하는 길인데, 오늘따라 길게 느껴집니다.”
“뭐? 다들 정지!”
흠칫 놀란 거상웅이 일행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자세히 살폈다.
어둠 속이라 인지가 늦었다.
……방금 전에 왼쪽으로 끼고 돌았던 건물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거상웅의 표정이 굳었다.
“진법이다! 조심해!”
즉시 외쳤지만, 한발 늦었다.
우우우웅!
바닥이 진동하기 시작하더니, 공간이 뒤틀리며 주변의 풍경이 흐물흐물하게 변했다.
무기를 뽑아 든 학생들이 등을 맞대고 주변을 경계했다. 다들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제갈소영 선생님이 만든 건가?”
“누구 진법 배운 사람 없어? 해체 좀 해 봐.”
“멍청아. 제갈세가에서 만든 진법을 우리가 어떻게 해체해?”
다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진의 바깥에서 한 사람이 걸어왔다.
저벅. 저벅.
다들 상대가 혼세마녀일 거라고 예상했지만,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곳에 모여 있었나. 덕분에 하나씩 찾아다닐 수고를 덜었군.”
무심하고 딱딱한 말투.
눈처럼 하얀 백의무복에 하얀 가면을 쓴 사내가, 무거운 존재감을 드러내며 걸어왔다.
냉혈수라마왕.
분명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그를 본 순간 모두가 그의 정체를 깨달았다.
학생 중 누군가가 절망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남궁수…….”
“선생님을 붙이도록.”
검을 뽑아 든 남궁수가 학생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치직, 치지지직!
그의 검에 백색의 뇌기가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