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48
247화. 영물 사냥 실습 (2)선배! 원강 선배! 일어나요!
먼 곳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에, 헌원강은 잠결에 몸을 뒤척이며 대답했다.
“으음……. 조금만 더…….”
며칠 동안 하루에 한 시진도 못 자고 미친 듯이 경공을 펼쳤다.
혈교가 남궁세가를 공격했다는 말에, 백수룡이 걱정돼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으니까.
다행히 어젯밤에 다시 만난 백수룡은 얄미울 정도로 멀쩡했다.
그 순간, 안도감과 동시에 얼마나 허탈했는지 모른다.
아니, 저 인간은 혈교와 싸우고도 멀쩡해?
잠에 취한 헌원강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젠장……. 한 방은 꼭…… 패 줘야 하는데…….”
대체 언제쯤 괴물 같은 스승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을까?
어쨌든 그 후로 조금 대화를 나누다가, 긴장이 탁 풀려서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선배! 일어나라니까요! 우리 큰일 났다고요!
익숙한 목소리가 또다시 헌원강을 불렀다.
처음에는 목소리뿐이더니, 이제는 누군가가 몸을 흔드는 것 같았다. 선배라고 하는 걸 보니 후배 놈 중 하나겠지.
“일 각만 더…….”
헌원강은 몸을 흔드는 손을 밀어내며 중얼거렸다.
이상하게 몸이 평소보다 훨씬 무겁고 축축 처졌다.
아마도 잠자리가 불편해서 악몽을 꾼 탓일 것이다. 졸업 후에도 백수룡에게 쥐어터지는 악몽이었는데…….
찰싹!
뺨에 느껴지는 얼얼한 통증에 헌원강은 움찔했다.
자는 사람의 뺨을 때려?
‘대체 어떤 자식이야?’
치미는 분노와 황당함에 헌원강이 반쯤 눈을 떴다.
안 일어나면 또 때릴 것 같아서 급하게 입을 열었다.
“야. 나 일어났…….”
하지만 한발 늦었다. 이미 눈앞에 손바닥이 와 있었다.
“일어나라고!”
짜아악!
눈이 번쩍 뜨이는 통증에 헌원강이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빨갛게 부어오른 뺨을 붙잡고 자신에게 불따귀를 날린 상대를 노려봤다.
“야! 이게 뭔 짓이야!”
여민이 두 손을 허리에 척 올린 채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헌원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몇 번이나 깨웠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니까 그렇죠.”
“이게 선배한테…… 어? 너 왜 그래?”
여민의 표정이 평소보다 더 창백했다. 이마에 땀이 몇 방울 흐르고, 호흡이 조금 가쁜 듯했다.
“선배 찾으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더니 숨이 차서 그래요. 왜 이렇게 오래 자요? 짐승한테 잡혀가도 모르겠네.”
“……어? 뭐?”
멍청하게 되묻는 헌원강을 향해, 여민이 한숨을 내쉬며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일단 잠부터 확실하게 깨워 줘요?”
“다 깼어! 깼다고!”
정신이 번쩍 든 헌원강이 주위를 홱홱 둘러봤다. 그리고 곧 이상함을 깨달았다.
“……여기가 어디야?”
잠들기 전에는 분명 선생님들이 함께 있었다.
관주님이 며칠 동안 고생했으니 푹 자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아주 인자하게 ‘허허허’ 웃으면서…….
그래서 아무 걱정 없이 곯아떨어졌는데, 일어나 보니 낯선 숲속에서 눈을 뜬 게 아닌가?
“선생님들은?”
“깨어났을 때는 저 혼자였어요. 반 시진이나 돌아다녀서 선배를 찾았다고요. 설마 아직까지 자고 있었을 줄은 몰랐지만…….”
“그렇다고 선배 따귀를 때려? 나 때는 말이야. 선배님 그림자도 안 밟으려고 삼 장 밖에서부터 조심을…….”
“시끄럽고. 내공 한번 끌어올려 봐요.”
“내공은 왜?”
헌원강은 투덜거리면서도 시키는 대로 했다. 그리고 곧 표정이 굳었다.
“……어? 이거 왜 이래?”
단전이 꽉 막힌 것처럼, 몸 안에 기가 움직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몸이 평소보다 무겁고 뻣뻣했다.
며칠 동안 쌓인 피로라고 하기엔, 뭔가 인위적인 힘이 작용한 듯했다.
“선배도 안 되죠? 역시 점혈에 당했나 보네.”
여민의 한숨이 깊어졌다. 그녀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헌원강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점혈? 누가? 왜?”
“우리한테 이런 짓을 할 사람이 누구겠어요?”
“야. 설마…….”
헌원강의 눈에도 불안과 불신이 스며들었다.
에이. 아니겠지.
자기를 구하겠다고 며칠 밤을 달려온 제자들이 잠든 틈에, 점혈로 내공을 못 쓰게 해서 산속에 버려 뒀다고?
그게 진짜면 완전 쓰레기 아니냐?
헌원강이 눈으로 욕을 하자, 여민은 단박에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하면, 그녀도 여기까지 오면서 수없이 했던 욕이니까.
“뒤에 한번 봐요.”
“뒤?”
“선배가 누워 있던 자리.”
헌원강은 여민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방금까지 자신이 누워 있던 바닥. 머리맡에 적힌 글귀가 보였다.
오늘부터 야외 실습수업이다. 산속에서 딱 일주일만 생활해라.
뭘 하든 자유지만, 산 아래로 내려가는 건 금지.
정 못 버티겠으면 거기 있는 신호탄을 쏘아 올려. 내가 구하러 갈 테니까.
추신. 맹수 조심해라. 내공 없이는 상대하기 힘들걸?
글귀 옆에는 구조용 신호탄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백수룡이 남긴 유일한 구명줄이었다.
“뭐 이런 미친 선생이 다 있어?! 잠든 제자들을 산속에 버려? 미리 말이라도 해 주든가!”
울컥한 헌원강이 바닥에 적힌 글귀를 퍽퍽 걷어찼지만, 그럴수록 자기 발만 아플 뿐이었다.
다행히 오래지 않아 헌원강은 침착을 되찾았다.
하루 이틀 당해 본 것도 아니고, 결국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상황을 정리해 보면…….”
둘 다 점혈을 당해서 내공을 쓸 수 없는 상태인 데다가, 무기도 전부 백수룡이 가져갔다.
그들에게 남은 건 튼튼한 몸뚱이와 백수룡이 남긴 구조용 신호탄뿐.
“이 상태로 산속에서 일주일 동안 버티라는 거지?”
“여기, 뭔가 이상해요.”
두 사람은 주위를 둘러봤다.
안개가 끼어 있어서 십 장 이상은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
게다가 산 전체에 묘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귀기? 영기?
강호 경험이 적은 두 학생으로선 설명하기 어려운 기운이었다.
“일단 다른 녀석들부터 찾자.”
“알았어요.”
내공을 사용할 수 없으니, 오감을 최대로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오감을 최대한 확장했다.
눈을 부릅뜨고, 피부와 발에 닿는 촉감에 집중하고,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사소한 냄새도 놓치지 않기 위해 코를 킁킁댔다.
킁킁-
콧구멍을 벌름대던 헌원강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코가 놀랍게도 본인의 겨드랑이로 향했다.
“야. 나한테서 좋은 냄새 나지 않냐?”
“…….”
여민이 말없이 자신을 벌레 보듯 바라보자, 헌원강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아니, 진짜 좋은 냄새가 난다고!”
“더러워…….”
“내 말을 좀 들어 보라니까. 이게 무슨 냄새냐면, 뭔가 달달한…….”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주위나 잘 살펴요.”
퉁명스러운 여민의 반응에 헌원강이 입을 삐죽거렸다.
“……진짠데. 그러고 보니 너한테도 비슷한 냄새가…….”
“가까이 오면 죽인다.”
“미, 미안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산을 탐색했다.
헌원강은 선배랍시고 가슴을 탕탕 치며 불안해하는 후배를 안심시켰다.
“야. 나만 믿어. 웬만한 짐승은 내공 없어도 때려눕힐 수 있으니까.”
“…….”
녹림십팔식으로 단련된 헌원강의 신체는 웬만한 외공 고수 못지않았다.
실제로 웬만한 짐승이라면 맨주먹으로도 충분히 때려잡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웬만한’ 녀석이라면 말이다.
크르르르…….
거대한 그림자가 머리 위로 드리워진 순간, 헌원강과 여민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에이 설마…….”
“아, 아닐 거야…….”
두 사람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커다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샛노란 눈과 정확히 마주쳤다.
헌원강이 식은땀을 삐질거리며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호랑이는 선 넘는 거 아니냐고…….”
“서, 선배. 이제 어떡해요?”
“일단 천천히 뒤로 물러나 보자. 아직 거리가 꽤 되니까…….”
두 사람은 호랑이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그 모습에 호랑이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코를 씰룩이며 둘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혀를 내밀어 입가를 핥았다.
저 반응을 해석하면 ‘햐. 고것들 참 맛있겠네.’ 정도가 아닐까?
“……튀어!”
헌원강이 몸을 돌리더니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여민이 황당하다는 듯 그 옆에서 달리며 소리쳤다.
“아깐 자기만 믿으라며!”
“네 눈엔 저게 웬만해 보이냐!”
“치사하게 선배가 후배보다 먼저 도망이나 가고!”
“도망치는 데 선후배가 어딨어! 그리고 경공은 네가 나보다 빠르잖아!”
“나중에 선생님한테 이를 거야!”
“그 인간이 이 일의 원흉이야!!!”
크허어어엉-!
대호의 포효가 산천초목을 뒤흔들었다.
힐끗 뒤를 돌아보자, 바위에서 뛰어내린 호랑이가 무서운 속도로 쫓아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비명을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으아아-! 살려 줘어어어!”
“백수룡 이 개자식아아아!”
천주산 일대에 두 사람의 비명이 길게 울려 퍼졌다.
* * *
“……헌원강 넌 나중에 뒈졌다. 그래도, 둘 다 몸놀림이 좋아졌네.”
백수룡은 팔짱을 낀 채, 호랑이에게 쫓기는 헌원강과 여민을 멀리서 지켜봤다.
콰직! 콰지직!
대호가 휘두른 앞발에 나무가 부러졌다.
내공을 사용할 수 없기에 주변 지형지물을 최대한 활용해 싸워야 하는 상황.
다행히 둘은 처음에는 무작정 도망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름대로 싸우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쪽이야, 이 멍청아!”
경공이 빠른 여민이 대호를 좁은 골목으로 유인하고, 그 사이 헌원강이 옆으로 돌아가며 기습했다.
바닥에 떨어진 두꺼운 나뭇가지를 창처럼 만들어 대호의 옆구리를 찌른 것이다.
크허어어엉-!
옆구리를 찔린 대호가 고통에 울부짖었다. 헌원강은 몸을 굴려 대호의 앞발을 피한 후,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화가 난 대호가 몸을 돌려 헌원강의 뒤를 쫓으면, 이번에는 여민이 날카로운 돌을 비수처럼 날려 눈을 노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헌원강과 여민의 합이 맞아가고 있었다. 둘은 내공도 없이, 맨몸으로 천천히 대호를 공략해 나갔다.
그들이 마주한 대호가 영물이었다면 어림도 없었겠지만, 다행히 덩치만 클 뿐 영물은 아니었다.
“저쪽은 이제 문제없을 것 같고.”
백수룡은 고개를 돌려 다른 제자들이 있는 곳을 살폈다.
“우어어어!”
크워어어어!
한쪽에서는 곰과 곰, 아니 곰과 거상웅이 싸우고 있었다.
인간과 곰이 순수하게 힘과 힘으로 부딪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거상웅은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았다. 다 찢어진 옷 사이로 바위처럼 단단한 근육이 보였다.
그워어어?
설마 인간 따위에게 힘으로 밀릴 줄은 몰랐는지, 거상웅에게 양손에 앞발을 붙잡힌 곰이 당황한 눈치였다.
황당하기로는 백수룡도 마찬가지였다.
“저 녀석은 점점 인간에서 벗어나는 것 같은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백수룡이 이번에는 위지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스르륵…….
위지천이 나무 위에서 커다란 뱀과 대치하고 있었다. 입을 쩍 벌리면 웅크린 위지천 정도는 단번에 삼켜 버릴 만큼 큰 뱀이었다.
하지만 뱀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는데, 위지천의 살기에 만만치 않다고 느낀 듯했다.
“천이도 당장 별일은 없을 것 같고.”
산속에서의 생존 훈련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 번째는 야전에서 학생들의 실전 감각을 키워 주는 것.
“지금은 내가 원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는 나한테 고마워하게 될 거다.”
두 번째는 영물을 사냥하기 위한 밑 작업.
백수룡은 과거 녹림투왕 맹호악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영물 잡는 법 말이냐? 크흐흐. 내가 특별히 알려 주마.
맹호악은 스스로를 ‘고금을 통틀어 가장 많은 영물을 잡아먹은 사람’일 거라고 자랑했다.
과장이 조금 있을 수도 있지만, 평생 수십 개가 넘는 산을 제집처럼 드나든 사람이니 완전히 허풍은 아닐 것이다.
-영물을 잡는 건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다. 괜히 사람 눈을 피해서 수백 년 넘게 살아온 게 아니란 말이지.
짐승이나 새, 물고기, 곤충, 식물 따위의 생명체가 긴 시간을 살면서 특별해진 존재를 영물(靈物)이라 부른다.
보통 그 기간은 최소 백 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 천 년을 넘는 것도 존재한다.
-놈들이 얼마나 영악하냐면, 자기보다 강한 기가 느껴지면 절대 가까이 가지 않는다. 위기를 감지하는 능력이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거든. 기는 또 얼마나 잘 숨기는지…….
-그런 놈들을 어떻게 잡는다는 거요?
백수룡의 질문에, 맹호악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미끼를 써야지.
백수룡의 시선이 산속을 열심히 뛰어다니는 제자들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