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50
249화. 영물 사냥 실습 (4)캬아아!
털뭉치가 바동거리며 앞발로 야수혁을 할퀴려고 들었다. 하지만 외공을 단련한 팔에는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
“쬐그만 게, 콱! 가만히 있어.”
야수혁이 인상을 쓰며 위협해 봤지만, 털뭉치도 나름 맹수라고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래 봤자 꼼지락거리는 느낌에 손이 간지럽기만 할 뿐이었지만.
옆에서 백수룡이 털뭉치를 자세히 살피며 말했다.
“고양이는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호랑이 새끼 같은데.”
“…….”
호랑이라는 말에 야수혁이 순간 움찔했다.
동시에 털뭉치를 바라보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얼핏 살기마저 내비치고 있었다.
‘이 녀석 왜 이래?’
백수룡은 야수혁이 갑자기 왜 이러나 의아해하다가,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고는 야수혁의 반응을 이해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호환(虎患)에 당했다고 했지.’
나중에 야수혁은 아버지를 물어간 대호에게 복수하는 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호랑이에게 대한 증오는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야수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호랑이가 이렇게 새하얄 수도 있어요? 몸에 줄무늬도 없고…….”
“은호(銀虎)라는 녀석이다. 백호보다 더 보기 힘든 녀석이지. 나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야.”
은호라면, 영물 중에서도 아주 희귀한 종이었다.
보통 호랑이와 다르게 성격이 온순한 편이고,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또한 기에 예민하고 지능이 무척 높아서, 옛날부터 신선들이 벗 삼던 영물이라는 전설이 전해질 정도였다.
‘그런데 왜 새끼가 혼자 다니는 거지?’
이렇게 작은 새끼 호랑이가 혼자서 돌아다니는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거다.
어미가 죽었거나, 살아 있어도 새끼를 보호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건데…….
백수룡이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던 중, 야수혁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죽일까요?”
“왜?”
“크면 사람을 잡아먹을 게 뻔하잖아요.”
“은호는 그런 짐승이 아니라……. 일단 그거 나한테 줘라.”
가만 내버려 두면 야수혁이 새끼 은호를 손으로 으스러뜨릴 것 같아서, 백수룡은 야수혁에게서 영물을 건네받았다.
백수룡의 손에 들어오자, 야수혁의 손에 있을 때는 온몸으로 바동거리던 은호가 신기하게도 얌전해졌다.
끼잉…….
마치 백수룡의 눈치를 보는 듯한 그 모습에, 야수혁이 짜증 난다는 듯 투덜거렸다.
“짐승 주제에 사람을 가리네.”
“어딘가에 어미가 있을 거다. 어미를 한번 찾아봐야겠다.”
“어미까지 찾아서 같이 죽이려고요?”
“…….”
개인적인 감정이 가득 실린 질문에, 백수룡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은호 정도 되는 영물이 갑자기 죽었다면, 우선 왜 죽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자신처럼 내단을 노리는 무림인에게 죽은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일단 찾아서 알아낸 다음에 이 쬐그만 녀석을 죽이든 살리든 결정할 생각이었다.
“일단 동굴에서 나가자.”
“예.”
백수룡은 얌전해진 새끼 은호를 품에 안았다.
그때, 야수혁과 다시 눈이 마주친 은호가 하악질을 했다.
캬아아!
“이게 콱!”
“조용히 해라.”
백수룡의 한마디에, 으르렁거리던 둘이 고개를 반대 방향으로 홱 돌렸다.
* * *
두 사람은 풀숲에 숨어서 몰래 은호를 지켜보고 있었다.
야수혁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선생님.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쉿.”
동굴 밖으로 나온 뒤, 백수룡은 은호를 풀어주었다.
물론 진짜로 풀어준 것은 아니었다.
일단 풀어주는 척하고, 어디로 가는지 쫓아가 보기로 한 것이다.
끼이잉…….
불안한 듯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은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은밀히 그 뒤를 쫓았다.
아직 어린 새끼라 해도 영물은 영물이었다. 마음먹고 달리기 시작하자, 웬만한 사람이 달리는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
그러나 아직 혼자서 산속을 많이 달려 보진 않은 것인지, 한 번씩 발을 헛디딜 때가 있었다.
퍼억!
튀어나온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진 은호가 철퍼덕 넘어졌다. 머리부터 넘어진 녀석이 낑낑거리며 일어났다.
끼이잉…….
은호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앞발에 난 상처를 혀로 핥았다.
야수혁은 그 모습조차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찼다.
“어휴. 멍청한 고양이 새끼.”
그렇게 둘이서 은호를 쫓기를 한 시진, 녀석이 속도를 줄였다.
은호가 산속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는 본 야수혁이 당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긴 산채인데…….”
목책으로 둘러싸인 녹림의 산채였다. 관군의 눈을 피하기 위한 건지 골짜기 안쪽으로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는데, 은호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순간, 산채를 바라보는 백수룡의 표정이 굳었다.
“안에서 피 냄새가 난다.”
“예? 설마…… 이 자식이!”
콰앙!
포탄처럼 쏘아져 나간 야수혁이 산채를 둘러싼 목책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백수룡이 곧바로 그 뒤를 쫓았다.
빠르게 산채 안을 훑은 백수룡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처참하군.’
산채를 둘러싼 목책의 절반 이상이 부서져 있었고, 안에는 수십 구의 시체가 보였다.
대부분의 시체가 거대한 바위에 눌려 짓이겨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야수혁의 눈이 반쯤 돌아 버렸다.
“이 더러운 짐승이……!”
그 순간, 야수혁의 눈에는 참혹하게 죽은 시체들과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그리고 그 분노는, 시체들 사이에서 웅크린 채 자신을 노려보는 은호에게로 향해졌다.
녀석이 작은 몸을 떨며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죽인다!”
살기를 피워올리며 걸어가려는 야수혁의 앞을 백수룡이 가로막았다.
“진정해. 이건 저 녀석이 한 짓이 아니야.”
“저 녀석 어미가 했겠죠!”
“시체들을 자세히 봐라. 저건…….”
“저리 비켜! 이건 녹림의 일이야! 방해하면 그 누구도 가만 안 둬!”
빈말이 아니라는 걸 보여 주려는 듯, 야수혁은 백수룡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후우웅!
순식간에 다가오는 거대한 주먹을 바라보며 백수룡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화난 건 알겠는데, 일단 정신부터 차리자.”
그 순간, 백수룡이 손이 벼락처럼 움직였다.
짜악!
야수혁의 고개가 옆으로 홱 돌아갔다. 온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위력이었다.
덕분에 머리끝까지 치솟았던 분노가 조금 가라앉았다.
하지만 야수혁은 여전히 원망스러운 눈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왜…….”
야수혁은 백수룡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작은 짐승을 노려보며 한 자씩 씹어 뱉듯 말했다.
“왜. 저딴 짐승을. 감싸요?”
“네가 괜한 데 화풀이하니까 그렇지.”
“…….”
“흥분 좀 가라앉히고 저길 봐라.”
백수룡은 턱짓으로 시체들을 가리켰다. 야수혁의 시선이 함께 움직였다.
“시체들의 상태를 잘 봐. 호랑이한테 당한 게 아니야. 이빨 자국이 작고, 대부분 몸이 으스러져 죽었어. 독에 당한 흔적도 있지. 네 눈에는 저게 호랑이가 한 짓 같냐?”
“…….”
겨우 이성을 되찾은 야수혁이 시체들을 살피곤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혼란스러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호랑이가 아니라 뱀이 한 짓이에요. 하지만 저렇게 큰 구렁이는 본 적이 없는데…….”
“영물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백수룡이 보기에도 시체들을 으스러뜨린 건 뱀이었다. 이빨 자국과 온몸에 퍼진 푸르스름한 독.
게다가 바닥에는 거대한 몸통이 이동한 흔적들까지 남아 있었다.
“자세한 건 사람들한테 물어보자.”
“다 죽었는데 누구한테…….”
백수룡이 고개를 돌려 목책이 무너져 내린 곳을 바라보자, 그 뒤에서 초라한 행색의 중년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누구신지…….”
전멸한 줄 알았던 산채에 생존자가 남아 있었다.
* * *
중년의 사내는 자신을 산채의 부채주라고 소개했다. 그의 뒤로 살아남은 산적 몇 명이 주눅 든 모습으로 서 있었다.
“채주님은 얼마 전에 돌아가셔서 지금은 제가 이곳을 책임지고 있습니다요…….”
산적들은 야수혁의 장대한 기골에 기가 죽은 눈치였다. 한눈에 보아도 고수처럼 보였던 것이다.
협객이라 하는 자들이 산적을 파리 죽이듯 죽이는 일은 흔했다. 때문에, 잔뜩 긴장한 부채주는 두 사람이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했다.
백수룡이 먼저 물었다.
“습격을 당한 것 같은데. 누가 이런 짓을 했지?”
“이마에 뿔이 달린 커다란 구렁이였습니다.”
“……독각사로군.”
백수룡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역시 영물의 습격이었다.
독각사는 이마에 뿔이 달린 뱀으로, 극독을 지닌 뱀이었다.
하지만 독각사라 해도 그 크기가 천차만별인데, 이곳을 습격한 녀석은 몸통 두께가 사내 허벅지만 하고, 길이는 다섯 장이 넘는다고 했다.
과장된 것이 아니라면 어마어마하게 큰 놈이었다.
“저희 채주님도 나름 일류고수였지만, 손도 못 쓰고 당했습니다. 나머지는 오금이 저려서 움직일 수도 없었고요.”
독각사에 대한 공포가 떠오르는지 산적들이 덜덜덜 떨었다.
부채주가 침을 꼴깍 삼키며 말을 이었다.
“다행히 그때 은호가 나타나서 독각사와 싸워 주지 않았다면, 저희 모두 죽었을 겁니다.”
야수혁이 놀라서 질문했다.
“은호가 왜?”
“그게…….”
부채주의 시선이 새끼 은호를 향했다. 녀석은 자기 이야기라는 걸 아는 건지, 당당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래 봤자 털뭉치가 조금 부푼 느낌이었지만.
“예전에 저희가 덫에 걸린 저 녀석을 구해 준 적이 있는데, 그때 이후로 어미 은호가 가끔 멧돼지나 꿩을 물어다 주곤 했습니다.”
“…….”
새끼를 구해 준 은혜를 어미가 갚으려고 했다는 말이었다. 이야기를 듣는 야수혁의 표정이 조금 묘하게 변했다.
“하지만 어미 은호도 독각사랑 싸우는 게 버거워 보였습니다. 한 시진을 넘게 싸웠지만, 결국 감당하지 못하고 독각사를 유인해서 도망쳤습니다.”
털뭉치가 혀로 자신의 몸을 열심히 핥았다. 자세히 보니, 털 안쪽에 작은 상처가 가득했다. 부채주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새끼 은호를 바라봤다.
“저 녀석도 도망치는 어미를 따라가려고 했는데, 제가 억지로 붙잡았습니다. 어미도 그걸 바랄 것 같아서…….”
“…….”
모두의 시선이 새끼 은호를 향했다.
아마도 어미 은호는 독각사에게 죽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벌써 새끼를 찾으러 왔을 테니까.
그때였다.
끼이잉.
은호가 갑자기 백수룡에게 다가오더니, 그의 다리에 몸을 비벼 댔다.
백수룡이 녀석을 안아 들자, 은호가 품에 쏙 들어와서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하암-
백수룡의 품이 편한 것 같았다.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하더니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본 부채주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허어. 쪼그마해도 자존심이 대단한 녀석인데……. 아무튼, 이 모든 게 어제 있었던 일입니다. 그 녀석이 혼자서 어미를 찾으러 나갔다가 대협들을 만난 것 같습니다.”
“…….”
백수룡의 머릿속에서도 대충 상황이 정리되었다.
“한 가지만 더 묻고 싶은데. 그 독각사의 뿔 색깔이 어땠지?”
“검은색이었습니다만…….”
“…….”
백수룡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가 알기로 독각사의 뿔은 흰색이나 금색이었다.
뿔이 검은색인 경우는 한 종류였다.
‘마물이 된 놈이구나.’
맹사부의 당부가 다시금 떠올랐다.
-하루아침에 보금자리를 잃은 영물들은 마물(魔物)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놈들은 더 조심해야 한다.
영물과 달리 마물은 눈앞에 있는 걸 닥치는 대로 잡아먹고, 보이는 대로 죽인다.
마물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독각사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괴물이었다.
-놈들은 유달리 사람 고기를 좋아하거든
‘빨리 놈을 찾지 않으면 산에서 내려가 민가를 덮칠지도 모른다.’
지금도 산속을 뛰어다니고 있을 제자들에게로 생각이 미쳤다.
자칫하면 독각사와 만나서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고로롱 고로롱…….
백수룡의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그의 품 안에서 잠든 털뭉치가 부풀었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