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43
543화. 뭐가 문제라는 것이냐
천지를 멸할 것처럼 휘몰아치던 소용돌이가 돌연 사라졌다.
노군상은 서서히 날이 밝아오는 새벽하늘을 씁쓸한 얼굴로 바라봤다. 염왕의 최후를 직감한 표정이었다.
“형님. 이 동생을 두고 먼저 가셨소?”
노군상의 몸은 만신창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무복은 갈기갈기 찢어져 원래의 형태를 짐작하기 어려웠고, 전신은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평생 단련한 굵은 손가락은 대부분 부러져 덜렁거렸고, 근육이 뒤틀린 팔은 기이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뼈가 성한 곳을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할 만한 모습.
그러나 노군상은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이, 지독한 늙은이…….”
그 맞은편의 불사마존이 치를 떨었다.
불사마존 역시 무복이 갈가리 찢겨 나간 데다, 격렬한 싸움으로 봉두난발이 된 머리가 사방으로 뻗쳐 있었다.
하지만 노군상과 비교하면 기이할 정도로 몸에 난 상처가 적었는데, 그것은 불사마공이 지닌 재생의 공능 덕분이었다.
스르륵…….
조금 전에 난 상처들이 거짓말처럼 아물었다. 찢어진 상처가 저절로 달라붙고, 바닥에 흘러내린 피는 꿈틀거리며 불사마존의 발밑으로 모여 피 웅덩이를 이루었다.
철벅. 철벅.
불사마존이 걷는 걸음마다 피 웅덩이가 함께 움직였다. 그것은 마치 의지를 지닌 영물처럼 주인을 따르는 듯했다.
“네놈 때문에 노부가 귀한 진혈(眞血)을 얼마나 흘렸는 줄 아느냐?”
“푸흐흐. 우습구나.”
갑자기 노군상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어 대자, 불사마존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엇이 그리 우습지?”
“사람 피를 빨아 먹는 마귀 주제에 권문세족 흉내를 내니 우스울 수밖에. 네놈은 혈교에서나 대장로라 불리지, 밖에 나오면 잡아 죽일 마두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 어울리는 언행을 하거라.”
“……그 세 치 혀부터 진작 찢어 놓았어야 했거늘.”
불사마존은 눈에 서슬 퍼런 살기를 띠고 노군상을 노려봤다.
그가 익힌 불사마공은 파괴력은 다른 절세신공에 비해서 다소 떨어지지만, 흡혈을 통해 타인의 내공과 선천지기를 취해 불사(不死)라는 단어에 걸맞는 재생의 공능을 얻는다.
즉, 단기 결전에는 적합하지 않아도 싸움이 길어질수록 유리해지는 무공이었다. 때문에 불사마존의 생존력과 지구력은 절세고수라 해도 깨뜨리기 쉽지 않았다.
‘헌데…… 왜 노부가 지치는 게냐.’
불사마존은 질려 버린 표정으로 노군상을 바라봤다.
노군상은 불사마존과 달리 다칠 때마다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뼈가 부러지면서도 전력으로 부딪치는 육박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노구를 이끌고 애쓰는 모습이 가소로웠으나, 이제는 마음속에 스멀스멀 두려움 비슷한 감정이 치밀 정도였다.
하지만 불사마존은 애써 그 감정을 지우며 사납게 웃었다.
“하여간 염왕 늙은이가 드디어 삼도천을 건넌 모양이로군. 사도가 오랜만에 만난 장난감을 희롱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모양이다.”
자신을 심리적으로 흔들려는 불사마존의 도발에, 노군상은 코웃음으로 대응했다.
“천하의 염왕이 저승길에 혼자 갈 것 같으냐. 분명 사도를 길동무로 데려갔을 것이다.”
“클클. 늙은이의 꿈이 참으로 허황되구나. 염왕의 길동무는 네놈으로 충분할 것이다.”
불사마존의 발밑에 모여 있던 피 웅덩이가 꿀럭꿀럭 다리를 타고 올라와 그의 전신을 뒤덮었다.
잠시 후, 전신이 핏물로 뒤덮인 혈인으로 변한 불사마존이 시뻘건 이빨을 드러내며 흉측하게 웃었다.
“인정하마. 본교가 이만한 전력을 동원했음에도 너희를 쓸어버리는 데 꽤나 애를 먹었다는 것을. 그러니, 이 자리에서 모조리 멸절시켜야겠다.”
“내가 살아 있는 한 어림도 없을 것이야.”
“클클. 우선 네놈부터 남김없이 피를 빨아 주마.”
괴소를 흘린 불사마존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지며 혈향이 후욱 끼쳐 왔다.
노군상은 아래로 늘어뜨렸던 두 팔을 들어 올렸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팔이 기적처럼 움직였다.
스스스슥.
한 번 무공을 펼치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손그림자가 생긴다 하여 붙은 별호가 천수관음(千手觀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작해야 십여 개의 손그림자만 생겨날 뿐이었다. 그 위력은 여전히 바위를 부술 만큼 위력적이었으나, 불사마존과 같은 고수에게는 한낱 허우적거림으로 보일 터였다.
‘이번이 마지막이겠구나.’
몸은 말을 듣지 않았고, 내공도 한계까지 쥐어짰다. 지금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으나, 청룡학관을 지키겠다는 일념이 노구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러나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노군상의 마음은 고요해졌다. 잡념과 번뇌가 사라지고 명경지수의 상태에 도달한 것이었다.
“……무량광불(無量光佛).”
시뻘건 손이 눈앞에 도달한 순간, 노군상은 자신도 모르게 부처를 찾으며 손을 뻗었다.
흰 기류에 휩싸인 천수여래장과 불사마존의 쌍장이 부딪쳤다. 그 순간, 빛이 번쩍였다.
“끄아악!”
비명을 지르며 물러난 것은 불사마존이었다. 마공과 상극인 소림 무공의 신령한 기운 탓에, 타는 듯한 통증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노군상의 두 팔도 완전히 쓸 수 없게 되었다. 거듭된 충격으로 뼈가 완전히 부러졌다.
그러나 노군상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물러나는 불사마존의 품으로 파고들며 섬뜩하게 중얼거렸다.
“여기서 끝을 보자꾸나.”
지금은 존경받는 정파의 어른이지만, 과거의 노군상은 혈교도들에게 마귀라 불렸고, 정파에서도 미친개로 불렸을만큼 과격한 무인이었다.
두 팔을 쓸 수 없다고 해도 개의치 않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싸우면 될 일이 아닌가?
“끄아악! 이 미친 늙은이가!”
목덜미를 물어뜯긴 불사마존이 괴성을 지르며 노군상을 떨쳐 내려 했다. 평생 남의 목덜미에 이빨을 박아 넣기만 했던 대마두는 자신의 목덜미를 물어뜯은 상대의 행동에 대경실색했다.
“떨어지지 못할까!”
노군상을 바닥에 패대기친 불사마존이 숨을 몰아쉬었다. 손바닥으로 살점이 뜯겨 나간 목덜미를 단단히 틀어막은 채였다.
“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노군상이 입 안에 머금은 피와 살점을 토해 냈다. 그가 섬뜩하게 웃자 피로 물든 이빨이 드러났다.
“늙어서 그런가 피부가 질기구나. 나무껍질을 씹는 줄 알았다.”
“……맹세컨대, 내 너를 천 갈래 만 갈래 찢어 죽일 것이다.”
불사마존의 목덜미에 난 상처가 천천히 아무는 것이 보였다. 처음보다는 확실히 느려졌지만, 여전히 재생의 공능은 건재했다.
노군상은 그 모습에서 절망이 아닌 희망을 보았다.
‘조금이라도 재생하는 속도를 느려지게 해야 한다. 그리해야만…….’
비록 이 늙은 육신은 이곳에서 쓰러지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저 마두를 쓰러뜨릴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 아닌가.
“계속 해 보자꾸나. 아직 내 이빨은 멀쩡하니.”
노군상이 사납게 웃으며 다가오는 불사마존을 노려볼 때였다.
콰아앙!
붉은 장포를 입은 사내가 그들 사이에 내려섰다.
바람에 세차게 펄럭이는 선혈빛 장포를 본 순간, 노군상은 평생 만나 본 무인들 중 가장 기이하고 강력한 존재를 떠올렸다.
‘혈마?’
그러나 이내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노군상이 반가움 가득한 얼굴로 외쳤다.
“……백 선생!”
반면, 만신창이가 된 노군상을 바라보는 백수룡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관주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백수룡은 노군상의 부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한 눈에 알아보았다.
특히 팔과 손의 뼈마디가 으스러지다시피 해, 어쩌면 무인으로서 노군상의 수명은 이제 끝났을지도 몰랐다.
분명 스스로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노군상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평온한 표정이었다. 오히려 껄껄 웃으며 농까지 건넸다.
“좀 더 늦어도 괜찮았을 게야. 내가 지금 막 저 마두 놈의 목을 이빨로 뜯어낼 참이었거든.”
“……그렇습니까.”
백수룡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노군상의 농담에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마치 평소처럼 능글맞게 말했다.
“그래도 관주님 체면이 있지. 이런 잡일은 저한테 맡기시죠?”
“허허. 그렇게까지 말하니 어쩔 수 없군. 그럼 부탁 좀 할까.”
개구쟁이처럼 웃은 노군상이 고개를 끄덕이자, 백수룡은 몸을 돌려 불사마존을 노려봤다. 즉시 그의 눈빛이 돌변했다.
“청룡신협? 윤회연옥진에서 빠져나왔다고? 장로란 것들은 대체 뭘 하고……!”
불사마존은 뒤로 크게 물러나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리는 그에게 백수룡이 적월을 들고 성큼성큼 다가갔다.
“궁금하면 직접 물어봐. 곧 다시 만나게 해 줄 테니.”
백수룡이 입가에 싸늘한 비웃음을 띠며 달려들자, 불사마존도 더 이상 물러나지 않고 노성을 터트리며 덤벼들었다.
“건방진! 그깟 놈들과 내가 같은 줄 아느냐!”
괜한 허세는 아닌 듯, 그의 전신에서 폭발하듯 뿜어진 기파가 일대를 휩쓸었다. 내공의 양으로는 사도들에게도 밀리지 않을 듯했다.
콰콰콰콰콰!
그러나 불사마존을 바라보는 백수룡의 눈빛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역천신공을 사용하면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겠지만…….’
당장은 그러지 않을 생각이었다. 사호와 있었던 일이 그의 경계심을 극도로 높여 주었다.
만약 역천신공을 펼치지 않고는 이길 수 없는 상대라면 망설이지 않겠지만…….
‘사부들의 무공으로도 충분해.’
백수룡이 왼손으로 적월의 칼등을 가볍게 쓸어 주자, 녀석이 흉포한 살기를 드러냈다.
캬아아아아!
“……수라혈천도?”
붉게 물든 하늘 아래 수라가 포효했다. 심상의 영역에서 유형화된 살기가 불사마존의 심장을 노렸다.
촤아아아악!
쩍 갈라진 가슴에서 핏물이 치솟았다. 아슬아슬하게 몸을 뒤로 뺀 불사마존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의 경악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쩌저저저적……!
맹렬하게 휘몰아치는 새하얀 바람이 백수룡의 왼손에 맺혔다. 아직 가까이 가거나 닿지도 않았는데, 불사마존의 전신에 서리가 맺히고 몸이 둔해졌다.
“빙백……신공!”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불사마존이 호신강기로 공격을 버텨 내며 상처를 재생하자, 거리를 휙 좁힌 백수룡이 그의 팔을 붙잡아 바닥에 메다꽂았다.
콰아아앙!
대지가 들썩일 정도로 커다란 충격에 불사마존이 울컥 피를 토했다.
“쿨럭! 매, 맹호투까지?”
차라리 무극검을 펼쳤다면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청룡신협이 익히고 있다는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수라혈천도와 빙백신공, 맹호투라니?
“궁금한게 많은 얼굴이군.”
백수룡은 윤회연옥진 안에서 혈교의 장로들, 그리고 윤회지옥의 마귀들을 상대로 스승들의 무공을 하나로 정립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 과정에서 스승들의 무공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졌다. 역천신공처럼 당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청룡신협! 네놈이 어떻게 사도들의 무공을 아는 것이냐?!”
불사마존은 몸이 수십 번이나 베이고 찔리고 얼어붙고 부서지면서도 끈질기게 회복했다.
하지만 그 속도는 확연히 느려지고 있었다. 상처가 회복되기 전에 새로운 상처가 생기고, 부러진 뼈가 다 붙기도 전에 다시 부러졌다.
불사마공은 결코 무적이 아니다. 타인의 피와 내공을 취해 괴력난신에 준하는 재생 능력을 얻었다 한들, 백수룡의 손에서 펼쳐지는 절세신공들의 연환식은 견뎌 내지 못했다.
“그, 그만…….”
하물며 노군상과의 싸움으로 재생의 공능이 이미 상당히 약해진 상태.
점점 한계가 드러나자, 겁에 질린 불사마존이 발악하듯 외쳤다.
“정파의 신성이라는 자가! 혈교의 사도들이 익힌 무공을 익혔단 말이냐!”
그 외침은 백수룡이 아닌 노군상을 향하고 있었다.
노군상은 정파의 어른이자 혈교도들을 극도로 증오하는 인물이었다.
둘 사이를 이간질할 수 있다면, 도망칠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으리라고 불사마존은 기대했다.
하지만 불사마존이 기대했던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노군상은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 떽떽거리지 않아도 잘 들리니 그만두거라. 보고 있기에 추하다.”
“뭐, 뭐라?”
이미 그보다 더한 백수룡의 비밀도 알고 있는 노군상이었다.
역천신공도 익혔는데, 사도들의 무공을 익힌 것 정도는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무공의 출처가 뭐가 문제라는 것이냐? 어찌 쓰는가가 중요하지.”
그 태연한 반응에 불사마존이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네놈이 그러고도 소림의 속가제자란 말이냐!”
“……이런 육시랄 놈의 종자를 보았나. 감히 내 사문을 모욕해? 백 선생. 저 염병할 놈의 주둥아리를 당장 찢어 버리게!”
처음 보는 관주님의 걸쭉한 입담에, 순간 백수룡이 멈칫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