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44
544화. 좋은 검이군
‘괜히 예전에 미친개라고 불린 게 아니라니까.’
백수룡은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몰골로 걸쭉한 입담을 쏟아내는 노군상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 번 열린 입은 멈추지 않았다. 백수룡의 공세로 궁지에 몰리고 있던 불사마존의 귀에, 노군상의 독설신공이 쉴새 없이 날아와 꽂혔다.
“사람 피를 빨아먹는 마귀가 인간의 도리를 지껄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짐승도 동족끼리는 잡아먹지 않는다. 네놈은 네발 달린 금수만도 못한 종자라는 뜻이다.”
“인두겁을 쓴다고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다. 고매한 척 학식을 자랑한다고 군자가 되는 것이 아니듯, 잘난 척 위세를 부리다가 이제 와서 살자고 이간질이나 하는 네놈의 행실이 우습고 같잖구나.”
저러다가 불사마존의 귀에서 피가 나는 것은 아닐까.
괜히 도발했다가 본전도 찾지 못한 불사마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닥치지 못할까! 다 죽어가는 늙은이가 청룡신협의 위세를 믿고 혀를 함부로 놀리는구나!”
백수룡만 아니었으면 당장 노군상에게 달려들어서 갈기갈기 찢어 버릴 기세였다.
하지만 그의 상대는 청룡신협이었고, 쏟아지는 공세를 견뎌 내는 것만으로도 급급했다.
“백 선생. 내 대신 놈을 흠씬 두들겨 패 주게. 웬만해선 죽지 않으니 손속에 사정을 둘 필요도 없다네.”
“처음부터 그러고 있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백수룡은 주먹으로 불사마존의 얼굴을 힘껏 후려쳤다.
빠아악!
목뼈가 부러지며 뒤로 돌아갔으나, 불사마공이 가진 재생의 공능은 그 정도로는 깨뜨릴 수 없었다. 덜렁거리는 목이 저절로 제 자리를 되찾았다.
“끄으윽…….”
“꼭 병든 닭처럼 목을 덜렁거리는구나. 하기야 목 위의 그것이 쓸모없기로는 닭이나 네놈이나 마찬가지일 터.”
“그, 그만……!”
혈교의 대장로는 청룡신협이 펼치는 절세신공 연환식과 천수관음의 독설로 심신이 동시에 넝마가 되어 갔다.
이윽고.
콰직!
백수룡은 바닥에 널브러진 불사마존의 목을 밟았다.
웬만해선 죽지 않는다는 것인즉, 얼마든지 험하게 굴려도 된다는 이야기였다.
“컥, 커헉……!”
“엄살 부리지 마. 이 정도로는 죽고 싶어도 못 죽는 걸 아니까.”
백수룡은 스산한 시선으로 숨이 막혀 버둥대는 불사마존을 내려봤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진작 죽고도 남았을 치명적인 상처가 여럿 남겨져 있었지만, 그조차도 천천히 회복되고 있었다.
자신의 최후를 직감한 불사마존이 피를 토하며 웃었다.
“클클. 실로 괴력난신이로다. 사도들의 무공을 한 몸에 품고 있으니 이토록 강할 수밖에. 헌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모르겠구나?”
“질문할 입장이 아닐 텐데.”
백수룡은 불사마존을 끝장내지 않았다.
혈교의 대장로인 불사마존이 지닌 가치는 어마어마했다.
그가 알고 있을 혈교 본단의 위치와 중요한 정보들을 알아낸다면, 혈교와의 전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을 터였다.
‘죽이는 건 전부 알아낸 이후에.’
물론 쉽게 입을 열지는 않겠지만, 백수룡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아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클클. 설마 내게서 본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고작 고문 따위로?”
“…….”
“어디 한번 해 보거라. 내가 느껴 보지 못한 고통이 있는지 나도 궁금하구나.”
생사결의 패자임에도 불사마존은 당당했으며, 웃음에는 조롱기가 가득했다. 상대가 자신을 함부로 죽일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백수룡은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아직은 조심해야 하지만…….’
잠깐이라면 괜찮을 것이다. 백수룡은 내면의 혈마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심호흡을 한 후, 혈마안을 펼쳤다.
키이이잉!
그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며 두 눈에서 광망이 터져 나왔다. 역천의 기운과 마주한 불사마존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어, 어떻게……!”
불사마존은 간신히 숨을 쉬면서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상상조차 못 해 본 불가해(不可解)의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나를 기억하더냐?”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불사마존은 기억 속에 존재하는 아득한 공포와 경외심을 떠올렸다.
눈앞에 있는 존재는 더 이상 청룡신협이 아니었다.
그는…….
“당, 당신은…….”
그 순간, 손을 뻗은 백수룡이 불사마존의 눈을 감겨 주며 나른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다시 부를 때까지, 잠들도록 하라.”
두려움에 떨던 불사마존의 몸이 깊은 잠에 빠져들며 축 처졌다.
단순하게 점혈이나 힘으로 기절시킨 것과는 달랐다.
뇌리에 새겨진 혈마의 절대적인 명령으로 의식을 꺼뜨렸다.
새로운 명령이 아니라면, 불사마존은 영영 깨어나지 못할 터였다.
“후우…….”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역천신공의 여파에 백수룡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잠깐이지만 심연에 다녀온 대가는 컸다.
“자네…… 괜찮은 겐가?”
어느새 곁에 다가온 노군상의 질문에, 백수룡은 다소 창백해진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조금 피곤해서요.”
백수룡은 축 늘어진 불사마존을 허공섭물로 들어 올렸다. 그다음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잠시 후, 여민이 경공을 펼쳐서 백수룡에게 달려와 보고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어요. 전부 한쪽으로 몰려간 모양이에요.”
여민은 오는 도중에 의식을 차렸다. 백수룡은 그녀에게 높은 곳에 올라가 주변을 경계하라고 당부한 뒤, 곧바로 이곳으로 날아와 불사마존을 상대했다.
“세상에, 관주님! 상처가!”
노군상의 부상을 확인한 여민은 상처를 깨끗이 닦아 내고, 금창약을 바른 후 무복을 찢은 천으로 상처를 동여맸다.
“허허. 민이의 솜씨가 아주 야무지구나.”
“이렇게 다쳐 놓고도 웃음이 나오세요? 제가 부축해 드릴 테니 기대기나 하세요.”
“흠흠……. 그럼 부탁 좀 하마.”
그러나 반가움에 해후를 나누기도 잠시였다.
쿠르르릉-!
뇌성벽력이 울리는 방향으로 세 사람의 고개가 돌아갔다.
빛이 번쩍일 때마다 그 아래에서 벌어지는 광경이 드러났다.
수백의 무인들이 충돌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맹렬한 공력의 파동이 느껴지고, 비명과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극도로 발달한 백수룡의 기감에는 전장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지금 갈 테니, 조금만 더 버텨라.”
간신히 역천신공의 기운을 진정시킨 백수룡이 말했다.
그 순간 백수룡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검, 뇌굉이 부르르 진동했다.
* * *
“남궁수 선생님! 부상자들은 전부 통로로 들여보냈습니다!”
숨이 거칠어진 명일오의 외침에 남궁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가 전면으로 뇌기를 뿌리며 말했다.
“……이제 저학년 학생들부터 순서대로. 일 학년은 명일오 선생이 직접 인솔해서 나가시오.”
“예? 저는 아직 더 싸울 수 있습니다! 차라리 제갈소영 선생님을…….”
“부탁이 아닙니다.”
냉정하면서도 단호한 말투에 명일오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머리에 감은 붕대에서 피가 배어나고 있었다.
그때, 남궁수가 명일오를 돌아보며 한 번 더 말했다. 더 단호하고 명확하게.
“명일오 선생.”
“……알겠습니다. 밖에서 뵙겠습니다.”
명일오가 일 학년 학생들을 인솔해 비밀통로로 들어갔다.
그다음은 제갈소영과 이 학년이 빠져나갔고, 그다음은 곽두용과 삼 학년이었다.
힐긋 그 모습을 본 곽철우가 남궁수에게 말했다.
“신입 강사들부터 밖으로 내보낸 건 잘한 결정일세.”
“……부관주님이 제게 전음으로 일러 주시지 않았습니까.”
“강사들이 나보다 자네를 더 무서워하지 않나.”
피식 웃은 곽철우는 화염도를 휘둘러 적들을 물러나게 했다. 그의 왼쪽 눈에 있는 안대는 핏물로 붉게 물든 지 오래였다.
모두가 이곳에서의 싸움이 마지막임을 알고 있었다.
비밀통로를 등 뒤에 두고, 싸울 수 있는 자들은 전부 무기를 들었다.
악가의 무인들, 청룡학관과 주작학관의 강사들. 그리고 학생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그들은 방벽을 만들고 부상자들과 무공을 익히지 않은 악가의 식솔들이 통로로 빠져나갈 시간을 벌었다. 학생들은 그다음으로 보낸 참이었다.
전장에 익숙해진 코는 더 이상 피 냄새를 맡지 못했다. 하지만 동료의 죽음만큼은 무뎌지지 않았다.
울분에 찬 고함과 끅끅대며 오열을 삼키는 무인들의 기척을 느끼며, 남궁수는 가장 선두에서 검을 휘두르고 뇌기를 뿌렸다.
……얼마나 많은 적을 베었을까.
귀살대와 혈랑대의 대주도 남궁수의 검에 고혼이 되었다. 혈강시들을 조종하던 마령혼의 대주는 혼비백산해 도망쳤다.
그 대가로 남궁수도 부상을 입었다. 늘 깨끗하던 백의무복은 핏물로 젖어 들었고, 악비와 싸우면서 생긴 내상은 점점 더 심해졌다.
왼손은 언제부턴가 움직이지 않았다.
남궁수는 개의치 않았다. 묵묵히 검을 휘두르며 단 한 번도 물러서지 않았다. 간혹 고개를 돌려 강사들과 학생들의 안위를 살필 뿐이었다.
문득 그의 시야에 청룡오망과 학생회 일부 학생들, 그리고 낯익은 학생들이 들어왔다. 비밀통로로 피하라는 지시에 따르지 않고 아직도 남아 싸우고 있었다.
“……스승을 닮아 고집이 센 녀석들이군.”
전부 다 백수룡, 그리고 남궁수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었다.
남궁수는 한숨 섞인 표정으로 학생들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돌아가면 너희 모두 벌점이다.”
그러니 그 누구도 다치지 말고, 죽어서도 안 된다.
“너는 목숨이 아깝지도 않은 것이냐?”
옆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남궁학이 검을 휘둘러 혈교도의 검을 쳐 내고 있었다.
“형님?”
남궁가주의 첫째 아들이자 한때는 주작학관의 일타강사였던 무인.
남궁학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배다른 동생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축 늘어져 움직이지 않는 그의 왼팔을.
“왼팔의 상처. 뼈가 보일 정도로 중한데 어째서 치료하지 않는 것이냐?”
“지혈이라면 했습니다.”
“제대로 된 치료 말이다! 네 목숨보다 학생들의 목숨이 중요하다는 것이냐!”
남궁학의 외침에 남궁수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제 목숨보다 학생들의 목숨이 더 중하지는 않습니다.”
“허면?”
채앵!
남궁수는 옆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쳐 낸 후, 덤덤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팔 하나쯤이라면 학생들의 목숨보다 가볍습니다. 그뿐입니다.”
그의 말에 강사들 중 일부가 입술을 꽉 깨물었고, 일부는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남궁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팔 하나쯤 내어줄 각오는 얼마든지 되어 있다고.
절세고수가 되어 강호를 질타할 남궁세가의 미래가, 학생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너는 본가의……. 아니, 아니다.”
남궁학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고 한숨을 푹 쉬었다. 부끄러움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역시 최선을 다해 싸웠다. 하지만 동생과는 각오부터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으득.
이를 악문 남궁학이 배다른 동생의 좌측을 지키며 말했다. 다친 왼팔이 있는 쪽이었다.
“만약 여기서 살아나가면……. 가주님께 말씀드리겠다. 나는 이제 소가주 경쟁을 포기하겠다고.”
“…….”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남궁수는 그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저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늦었군.”
찌푸린 미간으로 먼 곳을 노려보았으나, 그의 입가에는 보일 듯 말 듯 한 안도감이 맺혔다.
작은 점 하나가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며 커지고 있었다. 아직 그 정체를 깨달은 사람은 남궁수뿐이었다.
그 순간, 남궁수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무슨 짓이지?”
작은 점에서 나뉜 더 작은 점 하나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쏘아졌는데, 이 자리에 떨어졌다간 주변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았다.
그때, 창룡신검도 상대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수룡이구나! 그리고 저건…… 또 웬 검인 게야!]배신감에 부르르 떠는 창룡신검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남궁수는 바닥을 박차고 높이 뛰어올랐다.
‘뇌기?’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에서 몹시 친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허공에 창룡신검을 띄우고 날아온 검의 손잡이를 낚아채는데, 검면에 새겨진 이름이 보였다.
“뇌굉(雷轟).”
한 번 그 이름을 되뇐 남궁수는 뇌굉을 낚아채자마자 지상으로 뇌기를 쏟아 냈다. 천뢰제왕검형의 뇌기가 검을 통해 증폭되며 벼락이 신벌처럼 내리꽂혔다.
파지지지지지직!
시커멓게 탄 혈교도들의 시체가 털썩털썩 쓰러졌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뇌신을 죽일 수 있다고 큰소리치던 자들의 입을 다물게 만든 한 수였다.
“……좋은 검이군.”
중얼거린 남궁수는 허공에서 몸을 한 바퀴 휙 돌리더니 발등으로 창룡신검을 차서 백수룡에게로 쏘아보냈다.
“어쭈?”
마찬가지로, 백수룡도 허공에서 창룡신검을 낚아챘다. 그리고 지상으로 추락하듯 뚝 떨어지며 바닥에 검을 내리꽂았다.
콰콰콰콰콰콰콰콰쾅!
지반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땅이 뒤집혔다.
해일 같은 충격파가 사방으로 번져 나가면서 그 일대의 혈교도들을 모조리 휩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