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05
제205화
진가구는 물보라가 일어나는 걸 보면서 이만수에게 고함을 질렀다.
“만수! 너 수영은 잘하지!”
“어? 수영? 못 하는데!”
“시발 넌 할 줄 아는 게 뭐야! 여자랑 떡치는 거만 잘하냐!”
“어. 그건 잘하지!”
“자랑이다 이 새꺄! 꽉 잡아!”
“진가구! 너 뭐 하려는 거야아아아아아!”
“Let’s keep going go.”
진가구는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대사를 중얼거리며 간이부두로 핸들을 꺾었다.
세단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드럼통과 판자로 만들어진 부두가 무너져 내렸고 차량은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어선과 부두를 연결하는 경사로 철판을 딛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세단의 뒤로 로켓과 중기관총 예광탄이 날아오면서 흡사 2차대전 뇌격기 옆으로 대공포가 날아오는 광경이 펼쳐졌다.
세단의 유광 페인트에 예광탄 빛줄기가 비치고 이만수가 입을 떡 벌리고 공포에 질린 모습이 예광탄 불빛에 언뜻 보였다.
첨벙!
세단이 바다에 빠지는 순간, 진가구는 양옆의 유리를 내렸다.
삽시간에 차량 안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와 두 사람의 목까지 물이 들어찼다.
“야! 너 뭐 하는 거야!”
“숨이나 들이마셔!”
진가구도 숨을 가득 들이마시고 차에 물이 찰 때까지 기다렸다.
이 역시 경찰학교에서 배운 지식이었다.
물이 완전히 다 차자 수압에 눌려있던 문이 덜컥 열렸다.
진가구는 펜 라이트를 켜서 물 위로 올라가려고 했다.
이만수는 감독관은커녕 사고만치는 고문관이었다.
이만수는 정말로 수영을 못했고 정신을 잃었다.
사실 잠입경찰인 진가구 입장에서는 이만수 따위는 죽게 내버려 둬도 상관없다.
그러나 미운 정도 정이라고 진가구는 어쩔 수 없이 차로 되돌아가서 이만수의 멱살을 잡았다.
마침 당해룡의 머리가 둥둥 옆에 떠다니고 있었고 진가구는 당해룡의 머리채와 이만수의 멱살을 잡고 수면으로 올라왔다.
오늘 날씨가 꾸물꾸물하더니 비가 내리는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저쪽 해변에서는 트럭들이 서치라이트를 켜서 두 사람을 찾고 있었다.
진가구는 이만수의 뺨을 때리려다 놈이 기침을 캘룩캘룩하며 물을 토해내는 걸 바라봤다.
억세게도 운이 좋은 녀석이었다.
“쿨럭, 진가구. 네, 네가 구해준 거냐?”
“그럼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서 구해줬겠냐? 이거나 가지고 있어.”
이만수는 눈물을 글썽거리는 것이 꽤나 감격한 모양이었다.
진가구는 한숨을 내쉬며 옆에 둥둥 떠다니는 부표를 이만수에게 줬다.
두 사람은 거의 2킬로미터를 헤엄쳐서 해안도로에 다다랐다.
전에 장현권이 진소홍을 차로 친 사고 현장 근처였다.
쎄잉꺼의 폐차장으로 가는 길은 차가 거의 지나가지 않았고 바닷속에 다이빙하느라 핸드폰은 전부 망가졌다.
사람 머리통을 들고 택시를 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 * *
결국 두 사람은 바닷물에 젖은 채로 비를 쫄딱 맞으며 3시간 만에 체잉꺼의 사무실에 다다랐다.
마침 체잉꺼는 야구 경기를 보느라 아직 사무실에 있었고 비 맞은 생쥐 꼴이 된 두 사람을 보고 킥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니들 꼴이 그게 뭐냐?”
진가구는 이만수를 힐끔 쳐다봤고 이만수가 검은 비닐봉지에 든 당해룡의 머리통과 젖어서 흐물흐물해진 노란 인사카드를 올려놓았다.
“역시 명콤비로군.”
“누가요?”
“이 새끼랑요?”
이만수와 진가구는 서로 불쾌해했다.
“근데 형님 괜찮겠어요? 웡꺼와 잠꺼 쪽에서 항의할 것 같습니다. 해룡상회뿐만 아니라 그쪽 형제들도 많이 다쳤어요.”
“니들 얼굴은 들켰냐?”
“아니요. 얼굴은 못 봤을 겁니다.”
“그럼 됐어.”
체잉꺼는 쿨하게 손사래를 치며 다시 야구경기를 바라봤다.
진가구는 놈의 행동에서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당해룡이 정말 경찰이라면 체잉꺼는 분노를 터뜨리거나 잘 죽었다는 말 정도는 할 법했다.
“형님, 이놈 경찰 아니죠?”
마침 TV 속에서는 체잉꺼가 돈을 건 팀이 이기면서 중계가 끝났다.
체잉꺼는 고개를 갸웃하며 진가구를 노려봤다.
“우리 사업이긴 하지만 난 야구가 잘 이해가 안 돼. 던지는 놈 따로 있고, 치는 놈 따로 있고. 심지어 잘 달리는 놈만 뽑아서 교체요원으로 써먹질 않나. 왼손 투수는 공 하나만 던지고 교체될 때도 있고.”
“……..”
“하지만 우리 집안이랑 닮지 않았나? 조직 원리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굉장히 효율적이지. 일거리를 던지는 놈, 일거리를 받는 놈. 뒤처리하는 놈. 진가구. 넌 내가 던지는 대로만 받으면 그만이야.”
보스의 명령에 의문을 갖지 마라. 이것은 어느 조직폭력배든 불문율이었다.
“또 하지만 납득이 가는 작전 지시가 아니라면 선수들이 제대로 된 플레이를 할 수 없겠지. 이 시험은 웡꺼와 큰형님의 지시였다.”
“크, 큰형님이요?”
“그래, 야구로 치면 트라이아웃이지. 쓸만한 선수를 뽑는 시험이었어. 마침 이 새끼는 내 사업에 손을 뻗치려던 개자식이었고.”
체잉꺼는 당해룡의 모가지에 딱밤을 먹였고 모가지가 공처럼 데굴데굴 책상위를 굴렀다.
“자, 잠시만요. 형님. 트라이아웃이라면 저 혼자가 아니라는 겁니까? 이런 시험을 받은 것이?”
“너 똑똑한 놈이 왜 그러냐? 이쯤이면 다 눈치채야지. 조직 전체에서 솎아내기가 시작되었고 선수들을 모으고 있다. 우리 집뿐만 아니야. 잠꺼도 웡꺼도 꽛지사우(劊子手)를 뽑고 있어.”
꽛지사우라는 말에 진가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망나니. 혹은 살수.
체잉꺼는 진가구에게 일부러 저격총을 줘서 시험했고 진가구가 살수가 된다면 앞으로 더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형님, 대체 왜 살수를 뽑는 거죠?”
체잉꺼는 잔인한 표정으로 씩 미소를 지었다.
“그건 사인이 유출될 수 있으니 너는 모르는 게 나아. 바늘이 여기에도 있을지 모르니까.”
그 바늘인 진가구는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체잉꺼는 잠입경찰에게 정보가 새는 걸 우려하여 타겟이 뭔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러나 체잉꺼의 말대로라면 지금 모든 조직에서 각양각색의 킬러를 뽑고 있었고 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암살하려는 대상이 뭔지 진가구는 유추할 수 있었다.
요인 암살.
진가구는 침을 꼴깍 삼켰고 체잉꺼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진가구를 바라봤다.
“역시 넌 똑똑한 녀석이야. 벌써 알아챈 모양이군. 알지? 이 일은 보안이 아주 중요해. 네 여자친구에게도 절대로 말하지 마라.”
이만수는 아직 뭐가 뭔지 모르는 표정이었지만 진가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갈 때 그거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고 가고.”
체잉꺼는 당해룡의 머리통을 숫제 쓰레기 취급했다.
이만수는 비닐봉지째로 들고 꾸뻑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야, 진가구 대체 뭔데?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설명해봐라. 이놈이 경찰이 아니었다고? 형님은 왜 우리한테 이놈을 죽이라고 한 건데?”
“형님 말씀 들었잖아. 바늘이 곳곳에 있어. 그러니 나중에 말해줄게.”
이만수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진가구에게 슬쩍 물었다.
“너 지금 내가 바늘이라고 의심하는 거냐? 혹시 니가 바늘인 건 아니고?”
이만수는 의외로 경찰 냄새를 맡는 데는 도사였다.
진가구는 이 질문을 예상했는지 씩 썩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바늘이면 니가 내 목을 따게 해주지.”
“흥, 그거라면 기꺼이 들어주지. 에이 모르겠다. 난 간다.”
이만수는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며 뭐 하러 갈지 알려줬다.
사람 머리통만 안 들었다면 그냥 질 나쁜 친구 같은 모습이었다.
진가구는 이만수가 거리로 걸어가고 바로 담배부터 물었다.
요인암살을 위한 예행 연습.
그게 사실이라면 진가구는 관리관 심 부장에게 거래할만한 꺼리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타겟이었다.
“심 부장은 타겟을 알아 오라고 쪼겠지.”
진가구는 심 부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시계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슬슬 한하린도 퇴근할 시간이고 그녀를 마중하러 나가야 했다.
“조금만 더. 진짜 조금만 더 하면 돼.”
타겟만 알아낸다면 심 부장을 구슬려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
제주도든 아니면 다도해의 섬마을이든 진가구는 별로 상관없었다.
그는 네온사인 불빛이 싫었고 영원한 밤이 계속되는 굴다리도 싫었다.
싸구려 향수와 요리 기름 냄새도 이젠 싫었고 동물원 원숭이 보듯 난민을 바라보는 관광객들도 질색이었다.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진가구는 불교에서 말하는 ‘화차(火車)’ 지옥 속에 있었다.
영원히 돌아가는 불바퀴 속에서 고통을 당해야 하는 신세.
그 속에서 진가구는 계속 같은 말을 중얼거리게 될 것이다.
“조금만 더.”
* * *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앞으로 밀어내는 방식의 과자 자판기에 포테이토칩이 애매하게 걸려 있었고 이진영은 쿵쿵 자판기를 두드려서 과자를 떨어뜨리려고 했다.
– 자판기 부정 사용입니다. 경찰관이시면 법을 준수하셔야지요?
“거 쫘식 빡빡하기는. 요거 정도는 생활의 소소한 이득 정도지 무슨 부정 사용이야.”
이진영은 또 프레임이 새롭게 바뀐 EV-1에게 투덜거렸다.
EV-1은 어빈 프레임을 안에 내장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장갑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아선에서는 벌써부터 EV-1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고 마이크로웍스의 각종 프레임 주문이 들어오자마자 EV-1의 새로운 프레임 설계를 마치고 여러 대를 동시에 만들었다.
EV-1은 테러인질 사건에서 중장 로봇 프레임과 어빈 프레임을 동시에 조종하는 묘기를 보여주며 인질 사건을 싱겁게 종결시켰다.
그 사건은 육군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육군도 공격 로봇을 많이 운용했지만 EV-1과 이진영처럼 유연하게 모든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은 처음이었다.
특히 격투전 상황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EV-1의 모습은 육군이 침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지상전에서는 초근접전 상황도 여러 번 발생했고 간위예 전쟁처럼 시가전에서는 로봇들의 기민한 움직임과 탐색 능력이 필요했다.
때문에 육군이 여러 번 아선 측에 EV-1의 도입을 타진하기도 했지만 아선도 곤란하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아선에서 EV-1을 복제하거나 양산할 수 있다면 진작에 양산했을 것이다.
프레임이 아무리 잘 나와도 그걸 다룰 OS가 없으면 말짱 헛수고였다.
여전히 EV-1의 인공지능 OS는 마이크로웍스 본사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었고 부사장 제이미 킴이 그 담당자였다.
EV-1은 어빈으로서의 실적도 그렇고 로봇치고는 대단한 몸이 되셨지만, 이진영은 예나 지금이나 별다른 바 없이 EV-1을 대했다.
결국 이진영은 동전을 하나 더 넣어 과자 두 개를 손에 넣었다.
“오우, 오늘은 운이 좋군.”
– 축하드려야 할까요? 배당된 사건이 세 개입니다.
“제기랄, 너는 꼭 사람 기분 좋을 때 초를 치더라. 조우아. 일이나 하러 가자.”
이진영은 과자봉지 두 개를 흐뭇하게 들고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강력전담부 행어는 새로 늘어난 식구들 때문에 한창 확장공사 중이었다.
안 그래도 학교 강당만 했던 시설이 더더욱 넓혀지면서 실내 돔구장 같은 느낌이었다.
“어! 팀장님. 저 주시려고 포테이토칩 사오신 거에요?”
“어, 아니야. 내 꺼야. 내가 다 먹을 거야.”
임은혜가 힝하고 귀여운 척을 했지만 이진영에게는 씨알도 안 먹혔다.
그때 누군가 이진영의 겨드랑이로 슉하고 손을 집어넣어 감자칩 봉지를 임은혜에게 패스했다.
이진영은 진저리를 치면서 뒤를 노려봤다.
“김대현. 아오, 여자친구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