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82
281화 종횡 (3)
이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실소를 터뜨렸다.
대명.
진명.
천명.
왜 이러는지는 알 것 같다.
황태손 주첨기는 본인이 정당한 후계자인 만큼 본래 국명인 대명을 바꿀 필요가 없다.
건문제는 자신의 제위를 찬탈당했으니, 자신이 진짜 명나라라고 주장하고 싶어서 진명이라고 했겠지.
마치 카톨릭에 교회라는 단어를 선점당해서 정통 교회, 정교회라고 지은 비잔틴 제국처럼.
한왕 주고후는…….
아, 이건 잘 모르겠네.
뭔 생각으로 하늘 천(天) 자를 붙인 건지 모르겠다.
천책상장의 명나라라고 해서 천명인가.
나였다면 한명(漢明)이나 명한(明漢)이라고 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내게 중요한 건 셋 다 빈틈을 보였다는 것.
빈틈이란 명나라의 민심은 매우 좋지 않은데도 정통성을 위해 ‘명’의 국호를 가져다 썼다는 점이다.
민심이 어찌나 안 좋은지, 영락제가 자리를 비운 틈을 노려 곳곳에서 끊임없이 민란이 일어나고 있을 정도인데도 말이다.
잦은 전쟁과 방대한 토목공사, 그리고 무리한 원정이 그 이유다.
게다가 중국인들은 국가보다는 자기 지역에 충성하는 경향이 짙다.
삼국지에서 장비가 괜히 ‘나는 연인 장비다!’라고 외치는 게 아니라고 할까.
연나라가 있던 지역 사람들은 스스로를 연나라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분열의 시기가 오면, 항상 지역을 기반으로 위, 촉, 오, 진, 초, 제, 오, 월 등등 옛 이름을 가져다 쓴다.
그리고 패권 경쟁에서 이기고 나면 다시 국호를 바꾸지.
한반도로 치자면 후삼국 시대 같은 것이다.
혈연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후백제, 후고구려를 칭하잖아.
아무튼, 덕분에 큰 틈이 생겼다.
다들 어떻게든 명나라 황위를 갖고 싶고, 그에 따른 이득이 있는 것도 알겠다만, 중국을 분열시키려는 내 처지로선 그야말로 쾌재를 부를 만한 일이다.
“왜 다들 말씀이 없으시오. 가져온 조건이 없소? 단순히 충성을 요구할 것이라면 황위가 확실히 정해진 뒤에 오시오.”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사와요?”
병필태감 문루가 분노하여 말했지만, 목소리가 가늘어서 딱히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저 거무튀튀한 손가락은 계속 거슬리지만.
“대만 국왕께서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황제 폐하께서 전폭적으로 지지해준 덕에, 그리고 정화 제독께서 이끌어주셨기 때문이 아니와요?”
“그래서?”
“예?”
“본왕을 지원해주셨던 폐하께서는 어디 계시오?”
영락제가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어필했다.
“나는 그리 배웠소. 천자는 하늘이 정하는 것으로, 신하는 이 일에 함부로 끼어들면 안 된다고.”
“하지만 황태손 주첨기 전하는 누구보다 정당한 황위 계승자여요.”
“본 왕은 정당한 천자께서 충성을 바치오. 하지만 황태손 전하는 말 그대로 황태손일 뿐, 천자는 아니지 않소.”
“폐하께서 부재중이실 때는…….”
“바로 그것이오!”
일부러 문루의 말을 잘랐다.
정정당당하게 팩트로 승부하면 내가 밀린다.
원칙으로 따지면 황태손 주첨기를 따르는 게 옳으니까.
내가 반기를 들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다시 묻겠소이다. 폐하께서는 지금 어디 계시오?”
“…….”
“폐하께서는 말씀이 없으시고, 현 상황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상황이오. 만약 폐하께서 이런 상황을 예측했다면 무예로 이름 높은 한왕 주고후 전하를 후계로 생각하셨을 수도 있소.”
따라서 선동과 날조로 승부한다.
이게 왜 선동과 날조냐면 영락제는 주고후를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병약하고 뚱뚱한 황태자 주고치 대신, 용맹하고 야심 찬 주고후를 후계로 생각한 적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접혔다.
한왕 주고후가 상상 이상으로 난폭하고 오만하다는 점.
그리고 황태손 주첨기가 어려서부터 문무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팩트는 황태손 주첨기가 정당한 후계자가 맞다.
하지만 분열과 획책을 위해서는 절대 이 사실을 인정하면 안 된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이어요. 폐하께서 분명 황태손 전하께서 정당한 후계자라고 공언하셨는데!”
“어허. 지금이라면 폐하의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다니까.”
“어찌 그것을 확신한단 말이어요?”
“간단하지 않소. 폐하께서는 이럴 때 용맹하게 일어나 천하를 바로 잡으셨으니까.”
정난의 변.
조카인 건문제를 몰아내고 영락제가 황위에 오른 사건.
그리고 한왕 주고후와 황태손 주첨기도 조카·삼촌 관계다.
그 일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지.
“…….”
문루는 입을 다물었다.
내 논리를 부정하면 영락제를 부정하는 일이 되는 것이기에.
“그렇다면 전하. 천명을 따르시겠습니까?”
주고후의 적장자, 주첨학이 말했다.
하늘의 명을 뜻하는 천명과 발음이 똑같아서 헷갈리네.
아니라고 하면 천명을 거부하는 것 같은 느낌이잖아.
“세자 저하. 조건을 제시하시라는 말. 듣지 못했소이까?”
“그것이…….”
주첨학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 밴댕이에 소인배에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주고후가 하는 일이다.
자존심 때문이라도 큰 조건을 말하지는 않았겠지.
“흠흠. 조금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 내 시선은 예부 상서 마인환에게 향했다.
전에 봤을 때는 나름 영락제에게 충성하는 것 같더니만.
건문제가 나타나니 홀라당 갈아탔나 보다.
아마 다른 사대부들도 건문제에 호응했겠지.
남경이 쉽게 함락된 것도 그 때문일 테고.
남경의 사대부은 기본 영락제와 사이가 좋지 않다.
방효유를 비롯해 수많은 사대부를 죽이거나 괴롭혀서.
황위에 오른 뒤에도 민생을 살피기보단 무리한 대외원정에 돈을 쏟아부었으니, 위민사상을 중시하는 사대부로서는 화날 만했다.
“광동성과 복건성을 주겠네.”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볼 때, 예부 상서 마인환이 먼저 선빵을 갈겼다.
“상당한 조건이군. 하지만 현재 광동성과 복건성은 진명의 땅이 아니지 않은가?”
“장강 이남은 진명의 땅이야. 대체 누가 장강 이남에서 진명에 칼을 겨누겠나?”
“있을 수도 있지.”
“그런 일 없네.”
“만약 누군가가 광동성이나 복건성을 공격한다면 책임질 수 있는가?”
나로서는 대체 왜 마인환이 이렇게 호언장담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런 극악무도한 일이 일어난다면 진명을 지켜보게.”
“지켜보라고?”
“진명군은 이를 좌시하지 않을 테니까. 그야말로 단호하고 강력한 대응을 하겠지.”
외교와 의례를 총괄하는 이가 예부 상서인데 감이 많이 떨어지셨네.
협상을 못 하시는 걸 보면.
하긴.
예전에도 나이가 충분히 많았는데, 지금은 더 많아졌으니까.
감이 떨어질 때도 되었다.
“그래서 어떤 조치를 취할 생각이란 말이냐. 광주와 천주는 제대로 된 수군이 없으면 공격도, 방어도 매우 어려울 것 같네만.”
“기다리고 지켜보시게. 그런 녀석이 등장한다면 대만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재앙을 보여줄 테니까 말이야.”
솔직히 말하면 전혀 신뢰가 가지 않았다.
진명은 현재 세 명나라 중 최약체니까.
명 사대부들의 도움과 내통으로 황태손 주첨기와 동창을 손쉽게 몰아내고, 남경을 손에 넣었긴 했다.
하지만 급하게 정권만 차지한 것이라 장병이 부족했다.
그것도 매우.
진명에게 유리한 것은 정통성과 장강 유역에서 나오는 막대한 생산력이지 결코 군대가 될 수 없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뭐, 알겠네. 생각해 보지.”
일단 제안 하나 킵.
“제안을 할 사람은 더 없나?”
“천명은 옛 비단길을 복원하여 다시 활발하게 무역을 재개하고 있습니다.”
천명의 왕세자가 말했다.
“만약 육상(陸商)을 지배하는 천명과 해운을 쥐고 있는 그대와 손을 잡는다면 천하의 모든 물건은 우리에게로 모일 것입니다.”
일대일로냐.
“모여서 어떻게 할 생각인가?”
“그 모든 이권을 전하께 드리겠습니다.”
상업을 독점하게 해준다는 건가?
얼핏 들으면 대단한 조건이지만, 현실은 별거 아니다.
이 시대 상인이라는 건 파리 목숨.
누명을 뒤집어씌워서 재산 몰수하는 건 일도 아니니까.
그래도 나니까 그리 쉽게 뺏기지는 않겠지만, 바다나 강과는 달리 육지는 변수가 많아서 어렵다.
“그것도 생각해 보지.”
마지막으로 문루를 보았다.
이제 이쪽만 제시하면 끝이다.
“대명에서는……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사와요.”
“……진심인가?”
“니예. 대신이라고 하면 뭐하지만, 다른 걸 말씀드리지요.”
문루는 고개를 들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불장난하면 반드시 불타 죽을 수 있다는 점을요.”
전생 때도 느꼈는데 얘네는 불을 참 좋아해.
이것도 종특인가?
***
이방원의 명을 받고 곧바로 대만으로 뒤따라온 장영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항구에는 온갖 배가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다 뭔 일이래?”
“오셨습니까.”
장영실을 보자 항구 관리자가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는 자각이 없지만, 장영실은 사실 대만에서 꽤 유명인사다.
이유는 간단하다.
왕의 제자니까.
제자는 상속권 없는 자식 같은 느낌으로 보기에 장영실은 일종의 왕자 취급을 받는 것이다.
“아시겠지만 요즘 시대가 하 수상해서 말입니다. 본토에서 세력마다 사람을 보낸 모양입니다.”
“전하도 많이 힘드시겠구나.”
남 일이라는 듯.
장영실은 가볍게 넘겼다.
실제로 남 일이기도 했다.
웅성웅성.
쿠당탕!
“이건 또 무슨 일이지?”
느긋했던 아까와는 달리, 이번에는 싸한 느낌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이 타고 왔던 배에서 뭔가 소동이 일어났으니까.
“대호군 나리!”
건장한 선원들이 장영실에게로 다가왔다.
누군가를 옆에 끼고.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장영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놔! 놔! 이거 놓으란 말이다! 네 이놈들!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세자 저하!”
그는 다름 아닌 조선의 왕세자, 원 역사에서는 양녕대군인 이제였다.
여기에 있으면 절대 안 되는 사람이다.
“어허. 대호군. 이 무뢰배들에게 한마디 해주게.”
이제의 나이는 만으로 열일곱.
아직 앳된 티가 있기는 하지만 어엿한 성인으로 보이는 외모다.
그렇기에 더욱 공포스러웠다.
어렸을 때도 끊임없이 사고를 쳤는데, 이제는 그 규모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진 듯하다.
“그보다 먼저 여쭤야겠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동입니까. 궁궐이 다 뒤집힐 것이옵니다.”
“이야. 대만은 가깝다고 해서 쉽게 생각했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멀더구나. 으으윽!”
이제는 온몸을 비틀었다.
화물칸에 숨어서 온 듯한데, 덕분에 온몸이 찌뿌둥한 모양이었다.
장영실이 보기엔 몸을 푸는 척하면서 구속을 풀고, 그대로 도망치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대만은 조선의 우호국이지 않나. 내 세자로서 꼭 한 번 와봐야겠다고 생각했다네.”
“……참으로 총명하신 생각이옵니다. 하오나 대만을 방문하려면 전하의 허가를 받으셔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금방 돌아갈 거야. 거참 되게 땍땍거리네. 아버지와 동생의 총애를 받는다고 해서 왕세자가 우습게 보이나?”
“그런 말씀이 아니지 않사옵니까.”
“어허! 알았으니까 이것들부터 좀 치우래도!”
“…….”
장영실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은 세자 저하께서 대만에 밀입국한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
그동안 조선의 세자는 언제나 대만에 오고 싶어 했다.
그가 말한 대로 우호국인 대만과의 친교를 위해서가 아니다.
대만에는 온갖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만큼.
또,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각국의 공주님이나 양갓집 규수가 모여든 만큼, 미녀가 많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소문이 하나 더.
대만 국왕이 구라파에 다녀오면서 한 미녀를 선물 받았는데, 이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니라더라.
여러 사실을 종합해 본 결과 장영실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설마…… 그 여인을 보쌈하려고 온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첩으로 들이지는 않았어도 엄연히 타국 왕의 여인인데.
“하…… 하하.”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엄청난 모욕이 된다는 걸 알기에 장영실의 입에서는 마른 웃음이 흘러나왔다.
“세자 저하. 진솔하게 말씀해주십시오.”
“뭘?”
“사샤라는 여인을 보쌈하러 온 것은 아니시지요?”
“……하하하하하하하! 설마 내가 그러겠나! 그저 아바마마께서 탐낼 정도면 엄청난 미녀임이 틀림없다는 뜻이 아닌가. 얼굴 한번 보러 온 것일세.”
수상하다.
매우 수상하다.
“아. 대호군. 혹시 그대는 본 적이 있나? 사샤라는 금발벽안의 미녀 말일세.”
“예. 보았지요.”
“정말로 경국지색의 미녀던가?”
“……지금 생각해 보니 경국지색인 것 같기는 합니다.”
대만이 아니라 조선을 말아먹을 것 같다는 게 함정이지만.
“또, 머리는 작고, 흉부는 옷을 뚫고 나올 지경이고, 둔부는 달덩이 같은 것이 다산할 상이라던데.”
“저하.”
“뭐 하는가! 이 더러운 남정네들을 치우고 어서 대만을 안내하게!”
장영실은 속으로 천불이 끓었지만, 이건 자신의 손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빨리 왕궁으로 가서 이 짐덩이를 강해인에게 넘겨야겠다.
“예. 안내하겠습니다.”
그렇게 장영실과 조선의 왕세자 이제는 대만 왕궁으로 향했다.
이 우연한 사고가 어떤 폭풍을 일으킬지 상상도 못 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