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301
300화 최종장 : 남경 조약 (1)
“이부상서 공손하가 타이중 항구에 왔다고?”
“예. 전하.”
이부상서 공손하라면 현재 진명의 핵심.
전권 대리라 할 수 있다.
건문제는 무창성 전투에서 죽었고, 그의 장남은 10년 전 정난의 변 이후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차남은 남경에 연금되어 있다가 황태손 주첨기가 탈출하면서 북경으로 끌고 갔기에 진명에 없고.
사실상 권력의 공백 상태지만 사대부들이 연합 정권을 세워 통치하고 있었다.
황태손 주첨기는 건문제의 차남을 앞세워 항복을 권유하는 모양이지만, 그동안 수많은 대숙청을 겪었던 사족들은 절대 항복에 응하지 않고 있었다.
항복하면 멸문지화를 당한다는 공포가 확실하게 각인된 탓이다.
대명이 전염병 때문에 함부로 군대를 일으키지 못할 거라는 계산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거고.
사실 이 상태에서 또 전쟁이 일어나면 명나라가 아니라 중원이 멸망한다.
“어찌할까요?”
“방역에 예외는 없다. 다른 이와 마찬가지로 3일 동안 격리하라.”
이번 역병은 잠복기가 보통 하루.
최대 2일 정도로 추정되었다.
“괜찮겠습니까?”
“황제가 온다고 해도 예외는 없다. 다만 모욕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최선을 다해 정중히 대접하라.”
“예!”
관리가 사라지자 나는 안심하고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미끼를 물었구나.”
“미끼…… 입니까?”
이소군이 의문을 드러냈다.
그녀는 항해 때와는 달리, 대만에 오면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심지어 나에게도.
이유는 간단했다.
최소 대만에 있을 때는 내가 정실인 허신애에게 집중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 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해가 안 된다.
질투 역시 본연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억제할 수 있다는 게.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의문을 드러내는 건 굉장히 생소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사람은 평소에 소중한 것에 대해 고마움을 잊고 살아.”
빛도.
물도.
공기도.
“그러다 없어지면 애타게 찾게 되지.”
이번의 경우 희망이다.
“절망의 늪 속에서 희망의 등불을 애타게 찾는 이들은 분명 우리를 찾을 거라 생각했지.”
놀랍게도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중국은 언제나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했고.
자신들이 무너지면 세상이 무너진다고 생각했으니까.
이는 중국 주변국이 대부분 가상의 적국으로 분류된 탓이기도 했고.
송나라 때는 거란을 물리친 고려를 의지하려다가 학을 뗐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들이 보기에 대만은 독립 국가가 아니라 명나라 안의 자치구 정도로 생각하니까.”
실제 대만의 인구 대다수는 본토에서 건너온 이들이기도 하고.
“그래서 책을 편찬하셨군요. 상대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책을 마구 찍어내는 건 생각보다 쉬웠어. 이미 포르투갈의 하모니아에서 경험이 있었잖아.”
그때보다 더 발전했다.
인쇄술을 위한 유럽의 기계공학 기술은 이미 습득했고.
금속활자나 종이를 만드는 기술은 동아시아가 위니까.
발전된 동아시아의 금속활자 기술.
발전된 유럽의 기계공학 기술.
이 두 기술을 접목하여 한 차원 높은 인쇄술을 얻은 상태.
덕분에 여론전이 쉽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전하의 책은 저도 보았습니다. 책 내용은 역병을 방지하는 내용이 아니었습니까?”
“겉에 드러난 핵심은 그렇지.”
“다른 의도가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문장과 문장 사이. 행간에는 다른 의도가 있지.”
갈라치려는 의도가.
“예를 들어 나는 이 역병의 범인을 알아.”
누구겠어.
건문제지.
혹은 건문제 밑에 십사인지, 천안문인지 하는 애들이 그랬겠지.
“하지만 일부러 범인을 지목하지 않고 모호하게 표현했어. 그래야 멋대로 상상하고 멋대로 증오할 테니까.”
“진명이 대명을, 대명이 진명을 증오하게 한 것입니까?”
“그런 것도 있지.”
장강을 기준으로 하여 남북을 갈라치려는 속셈이다.
서로 역병을 퍼뜨렸다고 생각하게끔.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야. 예를 들면 사대부와…….”
놀랍게도 사대부들은 착취당했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 한정으로는 틀린 말도 아닌 게, 홍무제의 방침 때문이다.
그는 툭하면 사대부들을 잡아다 죽였으니까.
일명 문자의 옥이라고 하여 한 글자만 잘못 써도 죽인다.
어떤 유생은 빛 광(光) 자를 썼다가 주원장에게 살해당했다.
한때 승려였던 자신을 비꼬려는 속셈이라는 이유다.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소나기를 피해 낙향하면 되지 않나 싶지만, 사직서를 내도 죽인다.
황제의 도구가 멋대로 도망가려고 했다는 이유다.
영락제도 정난의 변 때 엄청난 사대부들을 죽였고.
“환관을 갈라치려는 속셈도 있지.”
사대부에게 불만이 쌓이자 반란을 우려한 두 황제는 사대부를 견제하기 위해 환관을 키웠다.
홍무제는 환관을 경계하여 가르치지 말고, 환관이 공부하면 죽이라는 방침을 세웠음에도 결국 나중에는 환관을 중용했다.
사대부들에게 있어 환관에 대한 증오는 역사상 어느 때보다 심할 것이다.
진나라의 조고나 한나라의 십상시 때보다 더 심할걸?
환관도 사대부를 싫어한다.
그들이라면 역병을 누가 일으켰는지 알 테니까.
그 이전에 사대부들이 건문제에 호응하여 반란만 안 일으켰더라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으리라 생각할 테니까.
“백성들은 권력자들을 증오할 테고, 동시에 이 혼란을 틈타 폭리를 취하는 상인을 증오할 테고.”
그렇다고 상인이 편한 상황도 아니다.
“상인들은 열심히 벌어놨더니, 도적으로 변한 백성, 진명의 사대부, 대명의 환관들에게 죄다 뺏기는 상황이고.”
“상인과 사대부의 사이는 어떻습니까?”
“상인은 정보가 밝지. 일부러 우리가 방법을 노출한 것도 있고. 하지만 상인들이 방법을 알아낸들, 관료제는 변화를 그리 빨리 반영할 수 없어.”
이건 구조적인 문제다.
게다가 현재는 최고 수장이 죽거나 자취를 감춘 상태인 만큼 더더욱 더뎠다.
“상인들이 보기엔 사대부는 현실을 모르는 머리 굳은 꼴통으로 보이겠지.”
“그럼 사대부가 보는 상인은 어떻습니까?”
“사대부는 근본적으로 상인을 멀리할 수밖에 없어. 그들에게 상인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주제에 백성을 등쳐먹는 기생충이거든.”
근면하게 노동하여 농작물이나 공산품을 생산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옳게 된 백성의 삶이었으니까.
어디까지나 사대부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또, 나라가 어려운 와중에 재물을 움켜쥐고 있는 부자의 모습이 좋아 보일 리 없겠지.”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간단한 이야기야. 인간은 본래 상대의 화려한 면만 보고 질투를 하고, 어둡고 힘든 면은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니까.”
누군가가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둘 중 하나다.
비참해지거나.
교만해지거나.
그렇게 질투와 시기, 무시와 비하가 판을 치게 된다.
“이부상서 공손하가 찾아올 정도니까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겠어.”
“다음 단계요?”
“나는 지역, 신분, 계층 등에 따라 각기 다른 혜택을 줄 거야.”
그것이 제국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악랄한 전략인 ‘Divide & rule’이다.
“꼭…… 그러셔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들은 이미 희망의 불씨조차 없을 정도로 절망적인 상태입니다.”
“절망의 끝에 서야 분노와 증오의 불길이 타오를 테니까.”
프랑스 대혁명처럼.
“중국은 더더욱 많아져야 해. 그래야 결핍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자극이 발생하니까. 경쟁도 생기고, 진화도 일어나겠지.”
이는 고향인 조선을 위한 마지막 배려다.
중국의 그늘에서 숨죽이지 말고, 자립하고 활로를 모색하라고.
평화에 젖지 말고 강하게 크라고.
나 자신만 생각했다면 굳이 머리 아프게 계략을 짜내지 않아도 된다.
대만을 버리고 본진을 벵골 술탄국이나 유럽으로 옮겨도 되니까.
유럽이 더 좋겠네.
아예 터를 잡고 본격적으로 아메리카 개척에 몰빵하게.
“그게 전부입니까?”
“다시는 절대 권력자가 탄생하지 못하도록 본능적인 혐오감을 심어주려고.”
이번에는 진짜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아직 영락제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다시 돌아오더라도 전쟁은 꿈도 못 꾸도록 자체적으로 견제하게끔 할 필요가 있다.
영락제가 아니더라도, 다시는 절대 권력의 황제가 등장하지 못하게끔 원천 봉쇄해야 한다.
“백성들이 권력자를 의심하고 견제할 때, 국민의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될 테니까. 그리되면 무의미한 전쟁도, 억울하게 짓밟히는 민초도 줄어들겠지.”
“전하께서는 역시…….”
어라?
이소군이 눈물을 뚝뚝 흘린다.
“하찮은 소첩과의 약속도 잊지 않으셨군요.”
“…….”
내가 무슨 약속을 했지?
“아직도 그때의 꿈을 꿉니다. 아무것도 믿지 못하고 처지만을 한탄하시던 저에게 손을 내미셨지요.”
첫 만남 때 이야기인가?
“믿을 게 없다면 전하를 믿으라고. 잘 모르겠다면 전하를 믿으라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전하의 말만 따르라고.”
아. 기억난다.
첫 원정을 떠나기 전에 그런 말을 했었지.
자칫 건문제와 엮여서 역모로 목이 달아날 수도 있었으니까.
“그리하면 소첩을 낙원으로 데려다주시겠다고 하였지요. 그때는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만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 이소군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전하께서는 가끔 말씀하셨지요.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북미로 본진을 옮길 생각이 가득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거기가 낙원이다.
방장 사기맵.
“그러니 싸우고 투쟁하여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려고 하신 거였군요.”
“그…….”
뭔가 오해가 있는 듯싶은데.
“더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하께서는 늘 자신을 지나치게 낮추시니까요.”
나보다 오만한 사람이 있나?
미개한 중세라고 까는 게 일상인데.
“하나만 더 여쭙겠습니다.”
“그, 그래.”
“혹시 그때부터 지금의 상황을 계획하고 계셨습니까?”
“원정대에 차출될 때부터 명나라를 찢어놔야겠다고 생각은 했지.”
숙청될까 봐 무서웠으니까.
“역시 전하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예. 그런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러니 저도 오해한 채로 준비하겠습니다.”
“뭘?”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 자들을 증오의 구렁텅이 속에 확실하게 밀어 넣겠습니다.”
이소군이 처음으로 의욕적으로 시도하려는 것이다.
뭘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응원해주고 싶었다.
“뭔지 잘 모르겠다만…… 파이팅.”
“예. 저도 낙원으로 향하기 위해 힘껏 파이팅 하겠습니다.”
***
3일이 지나 공손하는 격리에서 해제되고 왕궁에 도착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혹시나 해서 다시금 말씀드립니다만, 이는 백성의 안전을 위한 조치일 뿐 모욕할 의도는 전혀 없었으니 오해가 있었다면 푸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나쁘지 않았네. 잠자리는 좋았고, 음식은 맛있었으니까…… 아니지. 무례를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전하.”
“지금은 공적인 자리가 아니니 굳이 권위를 찾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맙네.”
그동안 주변에서 참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왕이 너무 격의 없이 다른 사람을 대하면, 자칫 내가 대표로 있는 나라들의 격이 떨어질 수가 있다고.
그러니 어느 정도 권위를 세우라고.
알고는 있지만, 솔직히 인제 와서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굳이 억지로 권위를 세우지 않더라도, 이제는 내 권위를 의심하거나 낮게 보는 이가 없으니까.
“처음 오는 대만은 어떠셨습니까?”
“솔직히 왕궁이 멋이 있지는 않아. 중원의 전각이나 별장에 비하면 저택과 폐가 수준의 차이일세.”
내가 생각해도 그렇기는 하다.
사실 중국의 궁궐은 스케일도 스케일이지만, 공사의 클래스가 다르다.
인공으로 거대한 호수를 만들고, 호수를 만들기 위해 판 흙으로 산을 만드는 미친 수준이니까.
“허나…….”
“음?”
“그 화려한 전각은 백성들의 피눈물로 이룩한 것이니 자랑할 일은 아니지.”
춘향가에서 비슷한 내용의 시를 본 것 같은데.
금준미주…… 뭐였지?
“또한, 궁궐의 화려함은 없되, 백성의 삶은 대명이나 진명 백성의 삶보다 훨씬 좋아 보이니, 그것이 진정한 국가의 멋이 아닐까 생각하네.”
“좋게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큰 자랑거리라고 생각합니다.”
전염병이 아니더라도, 대만 국민이 누리는 삶의 질은 명나라 본토보다 훨씬 좋으니까.
“아무튼, 이 먼 길을 찾아오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유학을 배운 사대부로서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상황을 도저히 가만두고 볼 수 없어 찾아왔네.”
그렇게 말한 후.
공손하는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부상서가 아니라 한 명의 백성으로서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를 똑바로 쳐다본 후 그대로 허리를 굽혀 오체투지(五體投地)했다.
“진명의 백성들을 살려주십시오. 요구하시는 조건이라면 무엇이든 따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