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302
301화 최종장 : 남경 조약 (2)
“전하. 진명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준비되었다고 합니다.”
이소군이 내 집무실에 들어오며 말했다.
“꽤 빠르네. 대명이 이렇게 순순히 평화 협상 제안에 응할 줄은 몰랐는데. 공손하의 수완이 좋은 건가?”
“대명도 역병으로 인해 어지간히 타격이 큰 모양이니까요.”
내가 진명에 ‘인도적 지원’을 하면서 내건 조건.
대명과 진명의 평화 협상.
‘대타협’이다.
물론 말로는 그렇다는 거고.
실은 중국에 영원히 통일 왕조가 나올 수 없도록 원천 봉쇄를 하려는 게 목적이다.
“준비는 되었지?”
“물론입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할까요?”
“데려가야지. 그러라고 오라고 했으니까.”
“알겠습니다.”
현재 대만에는 동맹의 사신들이 모두 모여있다.
내가 그래 달라고 부탁했다.
조만간 큰 협상이 있을 테니, 그때 다들 와서 한 숟가락 해달라고.
같이 뜯어먹어야 어그로가 분산될 테니까.
바다만 연결되어 있다면 북원이나 오이라트도 오라고 했을 텐데.
그 점이 아쉽네.
“그럼 가볼까?”
“예!”
우리는 대보선 10여 척을 이끌고 남경으로 향했다.
다른 것도 아닌 평화 협상을 하는 자리다.
굳이 엄청난 위압감을 줄 필요는 없다.
괜히 겁먹어서 도망가 버리면 이도 저도 안 되니까.
어차피 적에게 수군이 없는 이상 대보선에 제대로 된 타격을 줄 방법은 없다.
“전하. 질문이 있습니다.”
배 위에서 석피가 물었다.
만감이 교차한다.
석피와 함께 처음 남경으로 향할 때와는 입장이 너무 바뀌어서.
명나라와 나의 관계도 그렇고.
석피와 나의 관계도 그렇다.
그때까지만 해도 석피는 킬방원이 붙인 감시자.
믿을 거라곤 쥐뿔도 없는 관심병사였는데.
이제는 어떤 풍랑이 와도 흔들림 없이 편안한 모습이다.
“뭔데?”
“이것으로 전쟁 없는 세상이 올까요?”
“그럴 리가.”
전쟁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으로 있는 한.
“그러면 왜 평화 협정을 맺을 필요가 있습니까? 어차피 지켜지지 않을 약속일 텐데요.”
“교통정리 하자는 거지.”
“……네?”
“이번 내전은 승자가 없잖아.”
정확히는 내가 중간에 가로막아서 승자가 없게 만들었지.
장강을 틀어막으면 너희가 뭘 어쩔 수 있는데.
“승패가 결정되면 승자는 군림하고 강압하지. 패자는 분노와 증오를 곱씹으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하지만 반대로 승자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누군지는 기억 안 나지만, 어떤 이상주의 정치가는 승리 없는 평화만이 진정한 평화라고 했다.
우드로 윌슨이었나?
나는 이 말을 듣고 참 생각이 깊은 분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정당방위를 했다가 쌍방폭행으로 처벌받아 본 경험이 없는 정의로운 환경에서 살아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답은 간단해. 서로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서로 증오를 품겠지. 하지만 증오를 풀 기회는 없어.”
“왜죠?”
“내가 장강을 틀어막을 테니까.”
“그러면 굳이 평화 협정을 맺지 않아도 되지 않습니까?”
“아까도 말했듯이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니까.”
사실 동아시아의 역사는 이런 류의 협정에 그리 익숙하지 않다.
한쪽이 죽을 때까지 전쟁이 멈추지 않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세상이 다 그렇다.
하지만 유럽은 달랐고, 가장 독특한 문명이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말이 있지.
“가장 큰 목적은 우리가 민심을 얻는 거고.”
이 정도 재난이 오면 원수를 갚겠다는 생각보다 살아남을 생각부터 하게 된다.
이때 손을 뻗어 도와주면, 그 도움은 잊지 못하게 될 테고.
평화 협정으로 시간이 흐르면, 원인은 잊히고, 인식만 남을 것이다.
노이즈 마케팅의 원리 아닌가.
“잘 모르겠으면 지켜보면 된다.”
***
“오~ 생각보다 적은데?”
남경에 도착한 나는, 남북을 번갈아 보며 감탄했다.
강 양쪽에 대명과 진명의 군대가 있다.
하지만 그 숫자가 매우 적었다.
얼마 전까지 피 터지게 싸웠던 걸 생각하면 굉장히 과감한 처사라고 할 수 있다.
“역병이 현재 진행형이지 않습니까. 사람이 많이 모이면 역병이 쉽게 퍼진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벌써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실천되고 있다니.
원 역사보다 600년 앞선 위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작은 배를 양쪽에 보내. 평화 협정은 바로 이곳, 대보선에서 할 테니까.”
이제는 대보선급 전함이 많지만, 지금 내가 탄 대보선은 정화가 처음 원정대를 떠날 때 기함이다.
상녕공주가 타고 와서 원정대와 함께 인수인계했지.
“이쪽으로 오려 할까요?”
“당연히 오지.”
아쉬운 건 내가 아니니까.
어차피 황태손 주첨기가 직접 오지도 않았을 테니, 안전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지도 않을 테고.
양쪽의 대표를 데려오기 위해 작은 배가 양쪽으로 출발했다.
다행히 오늘 장강은 무척이나 평화로워서 별일은 없을 것 같았다.
“옛날 생각나네.”
전생에 봤던 영화가 떠오른다.
아편 전쟁을 주제로 한 영화였는데, 전쟁의 마지막 내용이 광주 앞바다에 떠 있는 영국의 배 위에서 평화 협상을 하는 거였다.
내용은 기억 안 나고, 딱 한 장면만 기억난다.
청나라 사신이 배에 타자 스테이크를 대접했는데, 청나라 관리가 미디움 레어 스테이크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대들은 이런 야만적인 음식을 먹어서 이토록 야만적인 것이오?’
그러자 영국의 제독이 능숙하게 대답했다.
‘청나라가 음식에 투자할 노력의 절반만 대포에 투자했다면 오늘 같은 꼴을 당하지 않았겠지요.’
영국의 음식과 청나라의 대포를 모두 까버리는 명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양쪽의 대표가 모두 대보선에 올라탔다.
진명의 대표는 이부상서 공손하를 비롯한 사대부들.
대명의 대표는…….
“황태손 전하?”
“오랜만이오.”
진심으로 놀랐다.
아직 공식적으로 공표하지는 않았지만, 영락제가 죽었다고 확실시되는 상황.
주첨기는 사실상 대명의 황제나 다름없었다.
황제가 직접 평화 협상 자리에 올라온다고?
전쟁에서 진 것도 아닌데?
“먼저 고마움을 표하겠네. 그대 덕에 건강이 많이 좋아졌어.”
황태손 주첨기는 피부색이 기묘할 정도로 검었다.
그래서 신장 질환이 있지 않나 의심되어, 신장에 좋은 음식과 약을 보내준 적이 있다.
내가 대명의 내각군보였던 시절의 일이다.
지금 보니 안색이 괜찮다.
전과 비교하면 수척해진 모습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것 참 죄송합니다. 전하께서 오시리라 생각하지 못하여 그만한 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되었네. 심각한 역병으로…….”
주첨기는 잠시 말을 끊었다.
그러면서 이부상서 공손하를 비롯한 대명의 사대부들을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나를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백성의 삶이 도탄에 빠진 지금 사치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참으로 모범이 될 법한 자태 시옵니다. 전하께서 성군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누군가에겐 성군이겠지만, 누군가에겐 폭군이 되겠지. 그보다 빨리 진행하게.”
양쪽이 모두 갑판에 설치된 협상 테이블에 앉자, 중재자인 내가 먼저 입을 뗐다.
“아시다시피 나는 천하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개중에는 구라파도 있지요. 듣자 하니 80년 전, 구라파에도 끔찍한 역병이 터졌습니다.”
흑사병 이야기다.
“구라파 백성의 삼분지 일이 죽었고, 특정 지역의 경우 8할에서 9할에 가까운 백성이 죽었습니다. 내가 구라파에 갔을 때도 흑사병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요.”
“저런. 그 뒤엔 어떻게 되었는가?”
주첨기뿐만 아니라, 다들 궁금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나라의 지도자로서 역병 자체도 걱정이지만, 역병이 지나간 이후도 걱정일 테니까.
“나는 사관으로서 수많은 기록을 접했고, 왕으로서 냉정히 현실을 판단했습니다. 결과는…… 매우 놀라웠습니다.”
“놀랍다?”
“내가 내린 결론은 역사상 가장 지독한 역병이 부흥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뭐라!”
모두가 놀랐다.
역병이 부흥을 가져온다니.
그런 생각은 아무도 한 적이 없었으니까.
물론, 나라고 해서 특별해서 그런 결론을 내린 게 아니고.
전생에 누군가 고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립한 것이다.
“사람이 너무 많이 죽어서 사람을 귀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어지고, 도시에서도 사람을 구하지 못해 구인난이 일어났다.
‘너 말고는 일할 사람이 없어. 제발.’이라는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더 좋은 대가를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흑사병 이후 농노에서 자유 시민이 되는 이가 굉장히 많았다고 한다.
시민권 역시 상승하고 말이다.
“또한,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아 각종 상속을 몰아받게 되어 부유한 백성들이 늘어났습니다.”
상속이라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되면 보통 노인 빈곤 문제에 눈이 가지만, 사실 청년 빈곤도 만만치 않게 높아진다.
옛날에는 2~30대에 상속을 받아 그 돈으로 투자 밑천이나 결혼 자금, 양육비 등으로 사용했지만 그게 막히게 되니까.
상속을 받게 된다고 해도 환갑 이후에 받게 되니 상속의 의미가 많이 없어진다고 할까.
그렇다고 돈 때문에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고.
이러한 이유로 선진국에서는 한 다리 건너뛰어서, 손자나 손녀에게 상속하는 예도 많아진다고 들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지금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불행이 축복이라는 것도 아니요. 아무 대처도 할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저 희망을 품자는 이야기일 뿐이지요.”
내 말에 양국의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미지 메이킹이다.
선한 사람으로 치장하고, 다양한 지식이 있음을 드러내어 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끔 하려는 것.
“서론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이제부터 본 안건입니다. 첫 번째 의제로 10년간 평화 협정을 제안합니다.”
“굳이 10년 제한을 두는 이유가 있소?”
공손하가 물었다.
“영원한 평화란 허상입니다. 허상이기에 그만큼 쉽게 깨어질 가능성이 크지요. 반면 기한을 정한다면 상대적으로 더 엄격하게 지키게 됩니다.”
“10년으로 한 이유는?”
주첨기가 물었다.
“역병을 걷어내고, 어느 정도 회복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계산했습니다.”
“회복한 이후에는 전쟁해도 된다는 뜻인가?”
“그런 뜻은 아닙니다. 그저 이런 상황에서 전쟁하면 공멸인 만큼, 최악은 피하자는 뜻이지요.”
“동의한다.”
주첨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로 굉장히 시원시원하네.
강한 모습을 보여줄 거라 생각했는데.
화북 지방의 피해가 생각보다 큰 모양이다.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던가.
“이쪽도 이견은 없소.”
공손하도 동의했다.
“그럼 다음 안건입니다.”
“잠깐.”
“음?”
주첨기가 손을 들어, 내 말을 막았다.
“만약 다른 안건을 반대하면 평화 협상은 무위로 돌아가는 건가?”
“아니요. 가장 중요한 내용이 평화 협정인 만큼 나머지는 곁가지에 불과합니다. 다만…….”
“다만?”
“다른 안건에 반대한다면 지원을 그만큼 적게 할 수도 있겠지요.”
“상인의 마음가짐이군.”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은 평화가 유지되는 한 무조건 할 것이니 너무 탓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온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는지만 알겠네.”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일 수 있어도, 조직은 도덕적일 수 없다.
조직의 장은 도덕적이어선 안 되고.
그렇다고 무조건 실리만 찾으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미국의 외교 전략을 좋아한다.
하고 싶은 건 다 하지만, ‘그래도 쟤보다는 낫지.’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수법.
대만의 외교 전략도 그렇게 할 생각이다.
확실한 아군은 아니지만, ‘그래도 누구보다는 낫지.’라고 생각하게끔 냉온을 조절하고자 한다.
“나머지 안건은 무엇인가?”
“항구 개방. 신원 회복. 그리고…… 제후국의 처우입니다.”
“다른 건 알겠다만 신원 회복은 무엇인가?”
“태조 고황제 때 숙청과 정난 전쟁 때 억울하게 죽거나 강등된 이들의 신원을 회복해주자는 내용입니다.”
주첨기가 인상을 찌푸렸다.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을 하는군. 일부러 그러는 건가?”
원 역사에서는 황태자 주고치와 황태손 주첨기가 사대부를 위한 관대한 정책을 많이 폈다고 하던데.
신원 회복도 마찬가지고.
상황이 바뀌니 원 역사와는 다르게 흐르는 모양이다.
“일부러라니요?”
“저 반란군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안이지 않은가?”
“딱히 진명의 편을 들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러면?”
“아내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아시다시피 내 아내 이소군은 한때 명나라 3대 개국공신이었던 한국공 이선장의 고손녀니까요.”
사실 사대부의 신원 회복은 안건으로 올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소군의 생각을 듣고 마음을 바꿨다.
한쪽 편을 들어 갈라치기 용으로도 좋을 것 같고.
이선장의 신원이 회복되고 나면, 과거 이소군을 괴롭혔던 사대부들을 합법적으로 처단할 수 있게 되니까.
이게 군자의 복수다.
“이선장의 명예라면 회복해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대부의 신원을 회복하라는 건 무리한 요구다.”
“그렇군요. 어디까지나 안건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차차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사대부의 신원 회복.
이에 대해 의논하기도 전에 주첨기가 사실상 거부하면서 진명의 대표들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그렇지.
그러라고 안건을 꺼낸 거야.
“말씀드렸다시피 안건 중에는 제후국의 처우도 있습니다. 나 역시도 당사자라는 뜻이지요. 따라서 이 협상을 주도할 새로운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의미 없는 이야기다.”
“왜 그렇죠?”
“각국의 대표가 모두 나와 있는 이 자리에서 협상을 주도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있다고 해도 어떠한 이해관계에도 얽히지 않을 수 있는가?”
“천명을 받았다면 그래도 되지 않겠습니까?”
“천명? 광오한 말이군. 누가 감히 천명을 받았다 말할 수 있는가?”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천명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라 하지 않습니까.”
선장실에서 화려한 옷을 입은 상녕공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햇빛을 잘 받지 않아 새하얀 그녀의 손 위에는 영롱하게 빛을 내는 다이아몬드 옥새가 들려 있었다.
“천명을 받은 자는, 죽음의 병에서 당당하게 살아남은 자가 아닐까요?”
치사율이 9할이라는 결핵(백사병)에서 살아남았고.
수없이 잔병치레를 한 덕에 면역력 하나는 아마 지상 최강 중 한 명일 것이다.
지금처럼 역병이 판을 치는 시대에는 그야말로 천명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존재.
회복을 염원하는 희망 그 자체다.
그녀가 바로 내가 선택한 파리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