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GAME RAW novel - Chapter 469
468화
63. One Man Army
2017년 1 월 30일. 샌안토니오, 텍사스. AT&T 센터 파크 웨이. AT&T 센터.
악명이 자자한 포포비치의 비디오 세션은 꼭 나쁜 점들만을 지적하는 시간은 아니다. 주로 우리는 지난 경기들을 통해 좋았던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누가 최근 컨디션이 좋은지에 관한 이야기도 나눈다.
분위기는 진지하면서도 자유로운 발언이 허용되었기 때문에 매우 활발하다. 폽의 이런 비디오세션을 본 한 동부 기업의 CEO는 마치, 브레인스토밍을 연상케 한다고 말하 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영상들을 통해, 누가 컨디션 이 좋고 누가 그렇지 않은 지를 확인 할 수 도 있다. 예를 들어, 대니 그린의 점퍼가 흔 들린다는 걸 지적하고 있는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대체 무슨 일이야 대니? 3점라인 밖이 든가, 안이든가 항상 똑같아야 하잖아?”
“나도 지금 막 확인했어, 칩?”
“그래.”
우리 스퍼스의 선수들은 슈팅에 관한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칩 엥겔랜드를 찾는다. 가벼운 지적 뒤에 약간 활발한 토론 이 오가고, 그렇게 영상이 하나 끝나고 난 뒤에는 제법 많은 숫자의 의견이 모였다.
어떤 날은 이정도만으로 비디오 세션이 끝나기도 하지만, 특별히 경계해야 할 대상 이 있을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하아- 얘는 정말로 큰 폭탄이라니까.”
“…”
동감이다.
올 오프-시즌 가장 큰 변화를 겪은 팀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오클라호마 씨티 썬더가 첫 손가락에 들어갈 것이다. 그동안 다
이나믹 듀오를 형성했던 케빈 듀란트가 워리어스로 이적했고, 드래프트 날에는 서지 이바카를 올랜도의 유망주들과 교환했다.
그리고 지난 8월에는 2라운드 두 장을 덴버에 주는 조건으로 죠프리 로버뉴를 영 입했고, 이바카 트레이드 때 영입한 얼산 일야소바를 필라델피아로 보내며 제라미 그랜트를 데려왔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오클라호마는 완전 한 다른 팀이 되어버렸고 사람들은 썬더의 성적이 추락할 거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어떠한 팀도 케빈 듀란트와 같은 남자의 공 백을 빠른 시간에 채워내긴 쉽지 않기 때문 이었다.
하지만 러셀 웨스트브룩은 OKC 팬들의
머릿속에서 케빈 듀란트에 대한 그리움을 빠르게 지워버렸다.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힌 듀란트와는 노선을 달리하며, OKC에 남을 것을 천명한 부분도 도움이 되었다.
현재 OKC가 거두고 있는 28승 20패란 성적은 분명 기대 이상의 것이었으며, 그 누 구도 이러한 성적이 러셀 웨스트브룩의 공 로임을 부정하지 못한다.
커리어 내내 많은 비판이 따라왔지만, 올 해의 러셀 웨스트브룩은 부정할 수 없는 일 당백 (One Man Army)이다.
“누가 쟤를 막지?”
“나.”
“하-! 행운을 빌어.”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지.”
예상했던 것처럼, 러스를 막는 것은 토니 파커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대니 그린이 우선 매치업을 이루게 될 텐데, 로테이션과 상황에 따라 카와이, 마누, 시먼스와 같은 남자들이 OKC의 ‘ Beastbrook ’을 상대 하게 될 거다.
토니는 우선 안드레 로버슨을 향하고, 올 라디포를 우선 카와이가 담당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러스와 카와이를 매치업 시키는 일은 위험성이 높을뿐더러, 체력이라는 부분에서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엉뚱한데서 뺨맞고, 코트 위에서 화풀이 하는 것 같지 않아?”
“너도 워리어스와 썬더의 매치업을 봤을 거잖아? 이건 진짜야. 녀석은 진짜 코트 위에서 분노하고 있어.”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절대적인 진리를 거스르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케빈 듀란트의 이적에 관한 뒷이야기들이 흘러 나왔다. 그리고 그 결과, 언론의 앞에서 했던 듀란트의 이야기 대부분이 거짓임 이 입증됐다.
듀란트는 이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친구인 러스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했지만, 러스는 전화는커녕 메시지조차 없었다고 답변했다. 기자들이 사실여부를 묻자 러스는 자신의 폰을 보여줬고, 듀란트는 답을 회피했다.
아마도 언론에서 더더욱 웨스트브룩의 활약을 조명하는 이유가 이 때문일 것이다. 이번 이적으로 듀란트는 공공의 적이 됐고, 러스는 동정과 위로의 대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정확한 이유야 모르지만 러스는 이번 시즌 코트 위에서 분노하고 있다.
‘뭐, 이유야 차고 넘치기는 하지.’
매 경기, 무시무시한 에너지 레벨을 뿜어 대는 그를 감당해야 할 동료들을 향해, 미 리 심심한 위로를 보내본다.
“외에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건?”
특별히 없어 보인다. 우리가 러스를 상대로 고민을 하는 것처럼, OKC도 분명 우리
를 상대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거다. 굳이 꼽자면 올라디포와 벤치에서 나올 앤쏘니 모로우의 세컨 옵션으로의 활약 정도였다.
반면에 OKC는 신경서야 할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닐 거다. 로버슨과 아담스야 어떠 한 경기에서고 좋은 수비력을 보여주겠지만, 남은 이들은 기복이 극명하다.
게다가 러스의 포제션이 답답해질 경우, 추가적인 공격옵션이 거의 없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대부분이 올라디포의 1 : 1이고, 추가로 활용할 수 있는 빅맨과의 2 : 2 또 한 초반 수비만 잘 넘길 경우에는 빈도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결국 종합하자면 우린, OKC가 빠른 공격
을 전개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롱-리바운드에 신경 써야만 해. 저들이 터프샷을 던지게끔 만들 거니까.”
“들었지, 다들? 대충 어떻게 할지를 말이야.”
“어때요, 폽? 오늘은 조용한 걸 보니 우리가 정답을 찾아낸 것 같죠?”
“…”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폽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우리끼리 전개한 비디오 세션의 내용이 마음에 들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지 적 될 만한 내용에 관한 우리의 대처도 좋
았던 것 같다.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이들을 바라 보며, 난 슬슬 퇴근을 준비한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고, 내일을 위해 휴 식을 취할 생각이다.
‘흐으음- Mr. 트리플-더블.’
현재까지 치른 48경기 중에서 무려 26차 례나 트리플-더블을 달성한 러셀 웨스트브 룩에게 붙은 새로운 별명이다. 11월 말과 12월 초에는 7경기 연속으로 트리플-더블을 기록했기도 하고, 시즌 평균 스탯이 30-10-10이다.
‘BIG O ’ 라는 애칭을 가진 오스카 로버 트슨(Oscar Robertson) 이 후, NBA 최초 로 시즌 트리플-더블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과연 러스를 코트 위에서 만나는 기분은 어떨지를 생각하는 중이었다.
‘최고의 선수들에겐 반드시 무언가 배울 것이 있었어.’
물론 이를 자각한 것은 르브론 제임스를 만난 뒤였고, 아쉽게도 덕 노비츠키와는 썩 많은 교감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몇 번 선 보인 ‘ 학다리웨이 ’를 보며 감탄한 정도다.
그래서 난 내일의 매치업을 더더욱 고대 하고 있었다.
++++
2017년 1월 31일. 샌안토니오, 텍사스.
AT&T 센터 파크 웨이. AT&T 센터.
□ 경기시작 3시간 전
SPURS : THUNDER
On Court
San Antonio Spurs
PG : No. 09 토니 파커 (6-2)
SG : No. 14 대니 그린 (6-6)
SF : No. 02 카와이 레너드(6-7)
SF/PF : No. 22 김민혁 (6-9)
PF/C : No. 12 라마커스 알드리지(6-11)
VS
Oklahoma City Thunder
PG : No. 00 러셀 웨스트브룩(6-3)
SG : No. 05 빅터 올라디포(6-4)
SG/SF : No. 21 안드레 로버슨(6-7)
PF/C : No. 03 도만타스 사보니스 (6-11)
C : No. 12 스티븐 아담스(7-0)
.
.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선 나는 일찌 감치 코트에 도착해 몸을 풀고 있었다. 스트레칭이라든가 요가는 잠시 뒤에 단체로 실행을 할 예정이기에, 지금은 이틀 전에 못 다한 슈팅세션을 마저 하는 중이다.
비교적 조용한 경기장 안은 OKC와의 48 번째 매치업을 준비하는 스태프들로 분주하다. 그들은 좌석 및 경기장 구석구석을 점검하고 각종 설비에 문제는 없는지를 꼼 꼼하게 살핀다.
내가 NBA에 진출하기 전에 꿈꿨던 그 완벽한 경기장은 지금의 이런 사람들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스태프들에게 친절했고, 이들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무대를 만 들어주는 이들이 없다면, 우린 길바닥에서 농구를 해야만 할 것이다.
“오-! 일찍 왔는데?”
“응?”
벌써 올 사람이 없다 싶었는데, 몸을 돌려 확인하니 아니나 다를까 우리 스퍼스의 선수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OKC의 선수들 또한 아니다. 그들은 아직도 비행기 안에 있을 것이고, 몇 십 분이 더 지나야 땅에 착 륙을 할 거다.
지금 내게 말을 걸어 온 사람은 의 코멘테이터인 레지 밀러였다. 그리고 그가 왔다는 건, 영혼의 파트너인 케빈 할 란도 왔다는 뜻이다.
“여어- 부지런하군!”
“하하. 반가워요, 케빈.”
예상대로, 잠시 뒤에 케빈 할란도 통로를 빠져나와 코트에 얼굴을 내밀었다.
“무슨 일이야? 보통은 부상 중이 아니라면 이런 시간엔 잘 오지 않는데. 설마 오늘 뛰지 않는 거야?”
“아뇨, 레지. 선발로 뛰게 될 거예요.”
“멋지군. 네가 뛰지 않는다면, 이곳에서 지켜 볼 재미가 하나 줄어들잖아?”
많은 방송 관계자들과 친분을 쌓아가고 있지만, NCAA에서 먼저 만났던 이들이 확 실히 조금 더 편했다. 나의 열렬한 팬임을 자처하는 빌 랜드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솔 직히 아직도 그는 조금 어색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럼?”
“네?”
“그럼 왜 이 시간에 온 거냐고.”
“아, 하하. 그게 사실은..”
나는 레지에게 지난 댈러스와의 경기에서 슈팅이 영 좋지 못했다는 것과 이 후, 개 인적인 슈팅 세션을 가져가지 못한 이야기를 전했다. 끈이 제법 긴 검은색 가죽 가방을 옆으로 이야기를 듣는 NBA의 전설적인 슈터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길지 않은 설명이 끝이 나자, 턱을 매만 지던 레지 밀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NCAA와 NBA가 가장 다른 점은 아주 제한적인 자유시간이 부여된다는 거지. 분명히 훈련 시간은 NCAA와 비슷하거나 더 짧은데도 말이야.”
“맞아요. 저도 그게 늘 궁금했어요. 대체 그 많던 시간들이 다 어디로 간 건지 말이죠.”
농담이 아니라, 대학에서의 삶이 24시간 이라면 NBA에서의 삶은 12시간밖에 되지 않는 기분이 들 정도다.
“하하하. 하지만, 넌 너만의 루틴을 만들었을 거야. 그렇지?”
“루틴이라면 어떤?”
“게임 전의 루틴 말이야.”
예를 들어 설명하는 레지 밀러는 자신은 늘 경기 전, 기어를 정돈하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왔다고 말했다. 기분에 따라 흰색 혹은 검은색 양말을 고르는 일도 마치, 명
품을 고르는 것처럼 신중했다고 한다.
농구화를 가지런히 바닥에 두고 양말도 곱게 포개어 바닥에 내려놓고 나면, 비로소 레지는 눈을 감고 그 날에 있을 매치업을 그렸다.
그리고 언제나 거기에는 버저비터를 성공하는 자신이 있었다.
“그 때는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었어. 만약 이미지 속에서 슈팅이 빗나 가면, 그것이 들어가는 또 다른 장면을 그렸지. 계속해서, 계속해서 말이야.”
“당신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상상인데, 안 들어 갈 때가 있었다고요?”
“물론이지. 너라면 어떨 것 같아?”
“…”
문득 머릿속으로 한 장면을 그려보았다. 1점 뒤진 상황에서 샷클락이 10초가 남았고, 어쩌다 내게 빅 샷을 던질 기회가 주어졌다 상상을 해봤다.
‘그리고 날 마크하는 남자는… 으음-’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가장 먼저 르브론 제임스가 떠올랐다.
‘안 돼. 난 그를 절대로 뚫어낼 수 없을 거야.’
비록 우리가 클리블랜드와의 접전에서 승자가 되기는 했지만, 4쿼터 르브론이 수비를 하던 장면은 전율을 일으킬 정도였다. 카와이 레너드를 강하게 압박하면서도, 어
디선가 툭 튀어나와 블록을 해댔고 몸으로 강하게 부딪쳐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난 머릿속에서는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여겼는데, 아무래도 레지의 말이 옳은 것 같다. 상상이라도, 위 닝샷을 집어넣지 못할 때가 있다.
“하하하. 보아하니, 실패인 것 같네. 그렇지?”
“…난 그를 뚫어낼 수 없었어요.”
“그게 누군데?”
“르브론 제임스.”
“흐음- 아무래도 그가 최근에 가장 네게 강한 영감을 준 남자인 것 같네.”
레지의 말이 옳다.
최근에 내가 받은 영향 중 대부분이 르브론에게서 나왔다.
“아무튼. 내가 나이를 먹었을 때, 난 더 이상 젊은 시절처럼 슈팅을 던질 수 없다는 걸 깨달았지. 코트 위에서가 아니라, 연습 장에서 말이야. 마일리지가 쌓여갈수록 휴 식이 필요해졌고, 어떠한 순간부터는 현상 유지가 최선이 됐어.”
“…”
그리고 그것은 곧 정상의 기량에서 내려 오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으로 바뀌었다. 최대한 그 떨어짐을 방지하기 위해 레지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오프-시즌을 알차게 보내는 것도, 시즌 중 연습을 더 늘리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연습해 온 모든 것들을 몸에 물으며, 연습을 하지 않아도 마치 연습을 한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지도록 만든 것이다. 일 종의 자기최면이다.
“지금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나오는 모습은 아주 보기 좋지만, 이것 봐. 넌 2년 전에 엄청난 종아리 부상을 당했어. 지금은 건강하지만, 신체는 늘 누적이 되지. 네가 미처 깨 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딘가는 나빠지고 있는 거야. 내가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건, 연습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휴식을 빠트리지 말라는 의미야.
“…이해했어요.”
“만약 네가 이 방법을 원한다면, 이건 얼 마든지 가져도 돼. 특허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하. 그럼 매일 밤 상상 속에서 늘 르브론에게 막히겠는데요?”
“뭐, 그를 통해 르브론을 제압 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지.”
유익했던 대화의 끝에, 내게서 농구공을 가로채간 레지 밀러가 H.O.R.S.E 게임을 제 안했다. 이를 승낙하면 기껏 일찍 출근한 보람이 없어지는 것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난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어졌다.
NBA 역사상 최고의 슈터와 H.O.RS.E 게임을 한다고? 이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이었다.
“좋아. 내가 먼저 하지. 단, 덩크는 안 돼.
알겠지?”
“받아들이죠. 은퇴한 노땅에게 승리하는 취미는 없지만, 그 정도 핸디캡은 있어야죠.”
“뭐?! 지금 뭐라고 했어?”
“전 당신이 해왔던 것처럼 하는 거예요.”
“하-! 두고 보지.”
현역 시절, 트래쉬 토크분야에서 둘째가 라면 서러웠던 것이 바로 레지 밀러였다. 가벼운 도발에 발끈하는 걸 보니, 그도 정말로 나이를 먹었나 보다.
재미있는 장면을 발견한 의 방 송 스태프가 카메라맨을 재촉해 얼른 전원을 켜 우리의 슈팅 장면을 담도록 지시한다.
그러다 여의치 않았는지, 혀를 차며 주위에 있는 한가한 스태프들에게 당장 휴대폰이 나 태블릿의 카메라를 켜라고 외쳤다.
졸지에 구경꾼이 생겨난 지금, 두 번째 슈팅을 준비하는 레지 밀러는 재킷을 벗고 넥타이까지 풀어헤치며 본격적인 모습이었다.
“아들뻘을 상대로 그렇게나 이기고 싶은 거예요?”
“오, 그러는 넌 아버지뻘을 상대로 한 번 쯤 봐줄 생각도 없는 거야?”
“만약 당신이 저라면 어떻겠어요?”
“굳이 설명이 필요해?”
레지 밀러가 45도 지점 사이드라인에서
던진 3점 슈팅이 백보드를 맞으며 림을 가른다. 그러면 난 H.O.R.S.E 게임의 규칙에 따라 똑같은 위치 똑같은 방법으로 득점에 성공해야만 했다. 만약 백보드를 맞추지 않고 그대로 림에 꽂는다면, 레지가 득점을 올린다.
이러한 방식으로 내가 한 번, 레지가 한 번씩 주고받으며 스코어를 최종적으로 계 산하게 될 텐데 우리는 토론(?) 끝에 5점을 먼저 내는 쪽이 승리자가 될 거라 말했다.
팅- ” 어라?”
“YES!!!”
정면 3점 라인보다 2M는 떨어진 거리에서 던진 나의 슈팅이 먼저 림을 갈랐고, 뒤 따라 던진 레지의 슈팅이 빗나가며 드디어 내가 선취점을 따내게 되었다.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하는 나를 보던 레 지는 이제, 셔츠까지 벗어 던졌다.
“우- 여전히 다부진데요?”
“Shut Up.”
은퇴 후 지난 12년의 세월도, 레지 밀러의 승부욕만은 어찌하지 못한 것 같았다.
++++
□ 경기시작 3분전
SPURS : THU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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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할란)
“Welcome! NBA Live On TNT! 여긴 샌안토니오, 텍사스. AT&T 센터입니다! 오늘!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오클라호마 씨티를 로데오의 도시로 초대해 승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2연패 뒤 다시 연승을 노리는 스퍼스, 그리고 지난 클리블랜드전의 패배를 극복하고 싶어 하는 OKC가 맞붙습니다. 그리고 제 옆에는 언제나처럼, 레지 밀러가 함께합니다.”
(레지 밀러)
“오늘 경기는 정말로 흥미진진할 겁니다. Mr. 트리플더블과 1월, 감각이 절정으로 오른 카와이 레너드의 맞대결이기도 하니까
요. 러스와 올라디포가 내뿜는 백코트의 에너지를 백코트 수비가 가장 취약한 스퍼스가 어떻게 맞대응 할 것이냐가 관건이 될 겁니다. 그리고 외에도 흥미 있는 매치업이 몇 가지가 있죠.”
(케빈 할란)
“본래라면 이쯤에서 매치업의 키-포인트를 짚어 드리지만, 오늘은 잠깐 다른 장면을 좀 보고 가죠. 3시간 쯤 전이었나요? 제 옆에 있는 레지 밀러와 스퍼스의 루키 킴이 잠깐 내기를 펼쳤습니다. H.O.R.S.E 게임이었죠.”
(레지 밀러)
“아, 제발. 진짜로 이걸 바로 내보낼 생각 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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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에서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와 걸음을 옮길 때, 나는 무의식중에 고개를 돌리다 낄낄거리는 케빈 할란을 발견해 낼 수 있었다. 지금쯤이라면 온-에어중일 건데, 레지의 표정으로 보아 H.O.R.S.E 게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민망한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레지와 다시 한 번 뿌듯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나만 보더라도, 내기의 결과가 어땠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에이, Dude. 방금 들었어. 네가 레지를 골탕먹였다며?”
“그래. 내가 조금 잘하긴 했지.”
사실, 가까스로 이긴 시합이었다.
4 : 4의 상황에서 레지와 난 살얼음판을 걸으며 두 번씩의 포제션을 교환했고, 더 이상 어렵게 던질 슈팅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던 나는 골밑으로 다가가 있는 힘껏 점프 해 림 바로 위에서 농구공을 내려놓았다.
어이가 없어하는 레지가 그건 덩크가 아니었느냐고 항의를 했는데, 레이업을 하듯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고 있었으니 엄밀히 따지자면 레이업이 아니었다.
난 말 그대로 림 위에서 농구공을 놓고 온 것에 불과했고, 한 숨을 푹푹 내쉬며 골 밑까지 접근한 레지는 몇 번 점프를 시도하 더니 결국 림에 농구공을 가져가고야 말았다.
‘하하. 진짜로 비겁하긴 했네.’
별달리 내기 종목이 결리지도 않았건만, 승리라는 단어 앞에서의 나는 쪼잔함의 극 치를 보여줬던 것 같다. H.O.R.S.E 게임 종 류 후 한참 동안 날 째려보던 레지는 한참 뒤에 다시 내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두르 며 말했다.
[ ” 하긴,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 ]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 지 않는 점이 내 장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어쩐지 비겁한 사람이 된 것 같았지만, 경기 중에는 절대로 그러지 않을 거다.
“준비는 됐어?”
” 언제든지.”
“헤이! 조나단! 음악은 준비 됐어요??”
“하아- 또 시작이로군.”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 젓는 포포비치는 우리의 이런 경기 전 세레 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코칭스태프들이 그에게 몇 번이나, 요즘 젊은 선수들에겐 춤을 추는 루틴이 유행한다고 알려줘도 좀 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다.
조나단 샌포드가 스태프에게 지시를 내 리고, 선수 소개가 있기 전의 그 짧은 시간 동안 신나는 음악이 스피커를 거쳐 흘러 나 왔다.
Silento의 Watch Me가 흘러나오자, 머레이와 스마트. 그리고 내가 한데 모여 열 심히 춤을 춰대기 시작했다.
한 원정 경기에서는 어떤 팬이 내게 [ ” 넌 흑인이 아냐! 이 노란 자식아! ” ] 라 외 치기도 했었는데, 그 분은 그 자리에서 경기장 밖으로 쫓겨남으로서 비싼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듣기론 티켓 가격이 1,950달 러(약 220만원)였나 그랬을 거다.
하지만 흑인의 비중이 미국 내에서 가장 적은 도시 중 하나인 이곳 샌안토니오에서는 내가 이런 흑인음악에 맞춰 춤을 춰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홈그라운드가 좋은 수많은 이유 중에 하 나다.
[ ” 너그러운 남부인들의 아량을 보여줍 시다! 원정을 떠나온 OKC의 선수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주시죠! 선수들을 소개합니다! No. 00! 러셀! 웨스트브룩! ” ]
야유와 함성이 뒤섞인 분위기 속에서, 나는 출전을 할 시간을 기다렸다.
“…”
그리고는 눈을 감고, 레지 밀러가 알려준 대로 상황을 가정해 상상력을 이어간다. 다만 지금의 매치업 상대는 르브론 제임스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도만타스 사보니스다.
이번에는 어렵지 않게, 머릿속에서 위닝 샷을 머리 위로 꽂아 넣었다.
[ ” 그리고 이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시죠!!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자랑스러운 얼굴을 소개합니다! From North Babylon, New-York!! No, 14! 대니이이이- 그리인! ” ]
하지만 갚아야 할 빚이 남아있는 나로서는 이에 만족할 수는 없다.
[ ” NEXT! From Seoul South Korea!! ” ]
조나단 샌포드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제 눈을 뜬다.
[ ” No. 22!! 미이인휘어어어억-! 키임-!! ” ]
난 경기를 뛸 준비를 완벽히 마쳤다.
부디 바라 건데, OKC의 선수들 또한 나와 같기를. 나는 간절히 원했다.